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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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원리는 도서관태곳적부터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의 미래 역시 영원하리라는 것을 곧바로 추리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그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우연이나 개구쟁이 조물주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 ‘바벨의 도서관’, 99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는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즐겁지 않은 책읽기는 고통이지만 자극과 도전이 필요한 책도 있다. 조금 어렵고 난해한 책의 경우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손대지 않기 시작하면 자기계발서와 감성적인 에세이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설도 그 층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고 문장이 만만치 않으며 사건과 갈등이 중심이 아닌 경우이다. 흔히 고전의 경우에 그런 소설을 만나기 쉽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이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열일곱편의 단편이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쉽고 재밌는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읽을 이유가 없고 그의 명성 때문에 읽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해설을 먼저 읽는 방법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 평론가의 해설이 더 난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옮긴 송병선의 해설은 스포일러가 없고 보르헤스 문학이 가진 장점과 소설의 의미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문학 세계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20세기의 명민한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 다양한 현대 사상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이 한 권의 소설로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70년 전에 남미 작가가 쓴 소설들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환상문학이라고 명명되는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일반적인 소설의 문법과 거리가 멀다. 현실에 존재하는 작가와 철학자가 등장하지만 허구의 인물과 책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보이지 않고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풍부한 부사와 형용사의 사용으로 수식어를 꾸며주지만 피수식어의 의미는 오히려 모호하다. 표현과 문장을 알기 쉽게 풀어내지 못한 번역가의 고민을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집중력과 기초적인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소설이다.

 

어떤 작품을 하나의 구조적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방법은 이 소설에서 무의미해 보인다. 현실과 소설의 내용이 중첩되고 곳곳에 허구적 인물과 사건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걸어온 길을 잊기 쉽다. 소설에 등장하는 쇼펜하우어와 칸트 그리고 보르헤스의 동료 작가와 들어본 적도 없는 작품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해야 한다. 소설 자체가 허구라는 순진한 믿음을 넘어 작가는 무한한 세계를 담은 절대적인 한 권의 책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국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도서관과 닮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 보르헤스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가 아니라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상가로 보는 편이 적당할 듯 싶다. 그렇다면 보르헤스의 문학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셈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볼 순 없지만 보르헤스는 인간의 상상력과 현실에서 불가능한 환상을 통해 세계 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작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미국의 많은 작가들에게 수용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그의 문학은 세계 고전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혹은 낯선 세계에 대한 환호였을지도 모르고 현실에 숨어있는 환상에 대한 호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문학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작가도 소설도 결국 인간의 삶과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현실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말이 아니라 70~80년대에 우리가 보르헤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엘리트문학으로 치부한 데는 그만한 이유도 숨어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문학을 보는 내적 기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고 외적인 관점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문학에 절대반지는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도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읽는 사람 나름의 방식대로 읽어도 좋다. 그 의미와 감동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때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12

 

 

201112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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