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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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제목은 독자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 표지 디자인과 제목, 편집과 분량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적절하게 드러내거나 내용을 적절하게 압축한 제목은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진리는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이설의 장편소설 『환영』의 표지를 본 순간 소설의 제목과 내용과 표지를 한동안 음미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는다는 의미의 환영(歡迎)인가 아니면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을 의미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의 하드커버의 포장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허다한 일본 소설류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 그릇에 담겨 있어 마땅찮다.

소설이라는 갈래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한 비루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인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루함,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 포기하고 싶지 않은 희망,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들이 길게 나열되는 소설을 대할 때마다 독자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된, 국어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았을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는 문학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그 한없이 재생산되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김이설의 소설이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이야기들을 더 담아낼지 모르겠으나 칙릿(Chick Lit)과 거리가 먼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와 개성을 갖춰 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김이설의 개성 혹은 색깔은 어떤 것일까.

서른셋의 서윤영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과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갖고 옥탑방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의 경계를 넘어 물가의 백숙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무능했던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 동생 민영과 준영 모두 윤영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기대는 존재들이다. 마치 불행 종합선물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것 같은 주인공은 ‘여성’이다. 딸이고 언니이며 누나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엄마인 윤영이 위태롭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때마다 삶은 신산스럽게 부서진다.

왕사장과 아들 태민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모님과 언니를 둘러싼 일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독자들 입장에서 삶을 왜 고해(苦海)라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간접 경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공감의 끄덕임, 동정의 눈물, 안도의 한숨 – 그것이 무엇이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투명한 바닥을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없는 생의 비밀을 궁금해 한다. 누가 말해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절로 때로는 무당을 찾아 답답함을 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과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생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해함. 그 비밀의 문을 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까. 삶에 지쳐 문득,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거나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는 순간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김이설의 『환영』은 현실을 바라보는 겹눈처럼 다양하게 읽힌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우리를 반기는 ‘어서오세요’처럼 읽힐 때도 있고, 현실은 결국 환영(幻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다만 그 조건과 상황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순환 구조인 것 같은 구성은 뫼비우스처럼 우리의 생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샹송 같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삶의 허무주의가 아닌 아주 작은 ‘시작’과 ‘희망’의 불씨를 조금 아주 조금씩만 보여주는 소설을 기다려 볼 참이다.


2011112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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