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타니 아키라,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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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에서는 고려시대가 차의 전성기였다 한다. 그래서 다반사란 말도 이 때 생겨났다. 차를 마시는 그릇은 우선 문양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차의 빛깔과 향을 잘 품을 수 있어야 하고 뜨거운 온도를 방지하기 위해 굽을 높게 만들어야 한다. 차를 타기에도 마시기에도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발달한 고려의 차문화가 조선에서는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조선시대 다완은 지방가마에서 사발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며 분청사기에서 많이 구워낸다.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르듯이 일본인들은 조선의 도공들을 데려가 일본 도자기의 전성기를 일구어 낸다.

 

  일본인들의 문화적이고 예술적 감각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좋지 못한 연질 또는 조질 흙을 사용해서 일상용품 또는 실용적 보관용품으로 구워낸 막사발을 일본인의 미감으로 세계 최고의 예술품 취급을 했다. 츠츠이 준케이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미움을 받아 성의 공격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가지고 있던 이도다완 하나를 선물함으로써 오히려 큰 상을 받게 된 것에서 조선의 막사발 하나가 성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처럼 일본의 지배층이 가진 미의식은 화려함과 기교를 떠나 자연스러움과 실용성이 어우러진 조선의 그릇을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우리가 분청사기 그릇을 재현해내고 그것을 말차 그릇이나 다완으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일본의 역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제서야 분청사기나 백분장사기에 대해 새롭게 해석해내고 재현해내게 되었고 또 기교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투박함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유약의 흘러내림이나 맺힘, 굽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요변현상으로 인해 세상에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유일함은 중국 송나라 다완을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가진 그릇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 책을 통하여 나도 백분장사기 다완을 몇 점 소장하게 되었고 또 그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음미하게 되었으니 고맙다.

 

  이러한 사발류는 조선에서는 당시 관요가 아니라 지방가마에서 구워낸 민요였다.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흔한 그릇에 미의식을 찾아내고 음미하는 일본인들의 미감이 훌륭하다 생각한다. 또한 나아가 자신들의 미감을 반영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그릇들을 주문제작하였던 점도 조선의 그릇에서 나아가 일본인의 문화로 재창조된 것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려하고 귀족적인 청자의 그림이나 문양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웁고 서민적인 미를 나타나는 반면에 가장 흔하고 서민적이고 화려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의 사발은 일본 권력층의 선호로 인해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취급받으니 물건의 업도 아이러니하고 우리들의 눈으로 알 수 없다.

 

  까칠까칠한 표면에 굽은 회돌이나 감꼭지가 달리고 못으로 파내어 돌린 자국이나 흙의 색깔이 드러나거나 유약을 바르지 않은 굽 등 그릇이 만들어지고 표현되는 방법도 다양하였다. 물론 이는 수요층의 다양한 미의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제작자의 미감과 능력이 발휘된 것이기도 하다. 굽의 형태도 높은 굽, 보통 굽, 도린 굽, 십자형 굽 등 다양하게 제작되었고 용도 또한 실생활용과 제기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본인의 수요와 미감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도자사의 중요한 공백이 다시 메워지고 다시 연구되고 재현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면 문화란 자연적으로 서로 퍼지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속성을 유지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의 국가적 경계나 그 당시의 민족적 경계를 떠나 예술품과 미감은 세계보편적인 것이며 그것을 누군가가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작자나 제작국가가 독점할 수도 없고 수요자나 수요국가가 독점할 수 없음도 명약관화하다. 인연에 의해 주어진 순간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음미하는 자가 진정한 주인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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