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 - 세상을 바꾸는 착한 거래
박지희. 김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합리적 소비'가 아닌 '착한 소비'

 

  경제학의 오래된 논리 '합리적 소비'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잘 사는 방향으로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합리적 경제인의 행동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은 합리성이 높아질수록 맹목적이고 방향없는 빈부의 격차와 비정한 물질논리 그리고 끔찍한 미래에 대한 예고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나온 것이 '착한 소비'이다. 의식있는 소비야말로 세상의 정의에 대한 우리들의 투표행위이며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힘이자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이 그 생산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없다면 사멸하게 되어 있는 구조야말로 평등한 세상의 구조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데올로기에 속아 우리들은 기업이 휘두르는 거짓 신념에 속아 살아왔다. 이제 우리들의 정의로운 지갑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환경도 살리고 인간성도 살리는 윤리적 소비

 

  의식있는 우리들의 윤리적 소비는 지구의 환경을 개선한다. 보다 먼 곳에서 온 식품일수록 탄소배출량을 더욱 많게 하고 그것은 지구생태계를 파괴한다. 지역에 기반한 안전한 먹거리만이 탄소배출량을 줄여서 지구생태계를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 신뢰하며 살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게 하며 우리 사는 지구의 환경을 더욱 쾌적하게 하고 인간의 성숙한 의식의 기반 위에 인간정신의 성숙을 이룰 수 있게 한다. 그 모든 출발점은 의식있는 윤리적 소비로부터 출발한다. 식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비생명적이고 반윤리적 기업 행태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윤리적 소비는 윤리적 생산과 윤리적 기업을 만들어 낸다.

 

윤리적 소비의 사례

 

  나이키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유명잡지 [라이프]에 실린 1996년 파키스탄의 열 두 살 난 소년 타리크가 나이키 공을 꿰매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미국 소비자들의 의식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타리크가 하루종일 나이키 공을 꿰매고 받는 품삯은 60센트였다.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어린이를 위한 신발' 나이키는 소비자들의 뭇매 속에 매출액의 감소를 겪어야만 했다. 제 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피를 비롯한 플랜테이션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아이들의 임금 또한 살인적이다. 이에 착안해서 '공정무역'이라는 윤리적 소비운동이 생겨나고 그것은 점점 세상을 인간의 얼굴을 한 생산-소비활동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착한 돈

 

  1930년대 독일의 바이에른의 슈봐넨키르헨은 페광도시로 몰락할 운명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을 살린 것은 '착한 돈'운동이었다. 탄광의 소유주 헤벡커는 '베라'라는 통화를 만들어 언제든지 석탄과 바꿀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지역경제는 되살아나고 사람들은 폐광촌에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캐나다의 코목스벨리도 제2차 오일쇼크로 침체된 경제 속에서 쇠퇴해가는 마을이었다. 화폐의 근본인 물물교환의 매개로 돌아감으로써 '레츠'는 지역을 살리는 의식적 지역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이 잘 하는 일로서 타인을 도와주고 또 물건을 구입하고 하는 순환과정을 통해 이 도시는 경제적 활기를 잃지 않았다. 자본으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살리는 의식적 화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슬로라이프와 슬로시티

 

  결국 의식있는 윤리적 소비는 세상의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에너지와 좋은 점을 제공하지 못하면 안된다. 그런 면에서 슬로라이프와 이 공동체의 삶의 공간인 슬로시티는 윤리적 소비가 가져오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 우리가 윤리적 소비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기업

 

  그러나 이 모든 윤리적 소비의 귀결점은 윤리적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생산과 소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고 윤리적 기업이 탄생하지 않으면 대기업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부분적으로 또는 수단으로서만 '윤리적 소비'나 '공정무역'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농 농산물'도 보라 대기업에서 더욱 이 이미지를 광고하고 만들어내고 상품판매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래서 결국 인간의 의식적인 윤리적 소비는 '윤리적 기업'을 만들어내고 그 윤리적 기업이 세상의 주류로 만들어낼 때에라야 비로소 그 귀결점에 이른다. 그 출발점이 바로 윤리적 소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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