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 알츠하이머병이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솅크 지음, 이진수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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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 화가의 대가 데 쿠닝이 뉴욕에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의 기내영화를 보면서 말했다. '정말 형편없는 영화네. 여보, 그만 나갑시다.' 이 이야기는 농담이 아닌 실화다. 데 쿠닝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뇌세포에 생기는 섬유농축제와 플라크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알츠하이머병은 이미 미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앞으로 전세계로 확장될 전망이다.

이 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다른 치명적 병이 단기간인데 비해 20여년 또는 그 이상으로 장기간이다는 점이다. 둘째,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서 500만명 정도의 환자에 전업으로 보호하는 사람이 500만명 정도이므로 환자가 증가할 시 미국의 사회경제구조의 기반이 허물어질 정도라는 것이다. 셋째, 공공의 안전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판단능력이 결여된 자에 의한 운전과 행동이 공공의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회문제가 된 알츠하이머병이 결론적으로는 가족이나 공동체내에서 부담지워지고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런 병이 생길까?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런 병은 그리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인한 수명연장으로 인해 육체가 노화되면서 이 병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 병의 증세는 독특하다. 점차 생각과 감정, 기억력, 인지력이 뇌세포의 파괴와 더불어 파괴되면서 사고력이 아이수준으로 되돌아가다가 탄생의 순간 아이의 무의 사고력으로 돌아갈 때 사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사고력은 아이와 같아서 아이들과 잘 논다. 하지만 다른 점은 아이들이 점차 사고력을 완성해간다면 그들은 점점 퇴보해간다는 점이다.

이 병을 만일 내가 앓게 된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그리고 만일 내 부모나 가족 중 누군가가 걸려서 내가 보호자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것은 여느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는 병을 대하는 태도와 같으며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이자 삶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망각을 모르는 모스크바의 20대 신문기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겪어온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일을 잊지 못해 제반사건으로부터 그 사건의 의미와 교훈을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망각은 참된 삶의 조건이자 숨겨진 미덕이 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는 인간의 삶을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다. 인간경험으로부터 노망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다 삶의 의미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창까지 없애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수많은 고통과 상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상처가 없다면 인류정신의 위대하고 고결한 성숙도 역시 없었을 것이다. 영생의 삶이 주어진다면 그로부터 얻을 이익보다 실이 더욱 많을 것이며 더욱 큰 사회문제화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계지워진 삶 그 자체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인간이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영생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는 인간의 강점이기도 한 것이다. 망각과 상실이 주는 운명적 교훈이 있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가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리고, 지각력과 사고력이 떨어지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다면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때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본래 있었으며 죽음의 장벽을 넘어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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