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재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안철흥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 전 JFK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한 나라였던 미국 사회의 이성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런 미국의 패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때가 있었다. 이 책 역시 불량국가이자 광신도들이 주도했던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에 의해 유린된 무수한 인간의 존엄과 법과 정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헨리 키신저라는 한 추악한 인물을 통해 본 미국 내의 정권다툼과 그 정권욕에 얼룩진 미국 민주주의 허상과 대외 정책은 인간으로서는 아니 인간사회에서는 생겨서 안되는 여러 가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역사에 남겼다.

베트남,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네시아, 칠레, 동티모르,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일어난 여러 유혈사태, 전쟁범죄, 실종, 강간, 테러 등의 온갖 죄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으며,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정권욕과 자신들의 명예욕과 부를 추구하고자 하는 미국 상층부의 몇 몇 광신도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흥분을 멎지 못하게 한다.

더욱 더 절망적이었던 사실은 닉슨과 키신저라는 이 광신도들이 이런 죄악을 저지를 때에 미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약소국의 생명과 심지어 자신의 젊은이들의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의 음모를 밀실공간에 그대로 유지시켜 줄 수가 있었단 말인가? 과연 미국 사회에 민주주의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미국 사회의 이성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여기서 어쩌면 경제와 기술이 가장 앞서 가는 미국이란 국가에서 가장 형체도 없이 흩어져 버린 민주주의의 실체를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의 무수한 희생을 대가로 치르고서야 비로소 여러 가지 인권협정과 독재정권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원흉의 처리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이 참담한 실정은 바로 미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하며 미국 사회의 이성에 대해 또한 의심하게 한다.

따라서 미국 사회의 여러 가지 요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비판하여야 하며 그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권력과 정치권력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여야 하며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민주주의를 참되게 세워야만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엄숙히 놓여 있음을 각성해야 한다.

단추는 하나가 잘못 끼워지면 그 뒤는 아무리 잘 끼워도 잘못 끼워진 것이 된다. 잘못 끼워진 것을 깨달았을 때는 과감하게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미국 사회에 필요한 미덕은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것은 해방 후 일제의 잔재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못한 우리 사회, 군부 독재의 단죄와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미덕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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