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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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매너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여성이 원피스를 입을 때는 지퍼를 반드시 올려주어라.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애할 때나 결혼해서 실제로 그런 적은 거의 없지만 내내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인상깊었음에 틀림없다.

 

이성애 대한 관심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때가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청소년기가 가장 활발했다. 길가에 지나가는 예쁜 여성을 보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눈치를 보며 고개라도 한번 더 돌려보곤 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런 증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도가 덜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이성을 떠올리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남자다움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간다. 주로 신체적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마인드도 차츰 변하게 된다. 이를 테면 남들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고 누굴 만나도 기죽지 말아야 하며 여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식이다.

 

토니 포터는 이런 남자다움이 남자를 괴롭히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작한다. 남자를 남자답게 만드는 여러 특성들이 사실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그 틀에 속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자다움에 대한 강박이 더욱 심하다. 국민모병제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일정한 나이가 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죄다 군인이 되는 것이다. 군이란 남자다움의 표본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모르게 재사회화되는 길을 막을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도 군대를 다녀와서 사회가 일종의 군대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강한 위계, 쓸데없는 눈치, 여성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 같은 것들이 알게모르게 몸과 마음에 배어버렸다. 늦게나마 남자다움의 틀을 벗어난 계기가 있었다. 그건 춤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겠다거나 혹은 배워보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없었다. 방송에서 춤추는 아이돌을 보며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번, 두번, 세번째 들었을 때 과감하게 질러버렸다. 정직하게 말해 쑥스러움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과연 따라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춤을 추고 싶었다.

 

알게 모르게 맨박스에 갇히 남자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취미가 술마시고 떼로 몰려가 노래 부르고 정치 이야기나 하는 중늙은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뒤늦게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정신만 살아 남어 방황밖에 할 게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남자다움은 개나 줘버리고 뭐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라.

 

덧붙이는 말

 

우먼박스도 맨박스에 버금갈만큼 심각하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짓눌려온 여성스러움에 대한 강요는 맥박스 못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혹시 후속편이 나오지는 않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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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맥긴리 컬렉션 : 바람을 부르는 휘파람 - 청춘은 언제나 옳다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
라이언 맥긴리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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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두툼한 책보다 더 많는 것을 말해줄 때가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순간은 역사가 되기도 한다.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은 청춘이다. 대체 언제부터 어디까지를 그렇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사진을 보는 순간 청춘 냄새가 풀플 난다. 그저 젊기에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찬양이라고나 할까?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재수를 했지만 여의치 않아 다시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복귀했을 때 이미 나는 만신창이였다. 1년 남짓한 기간동안 겪은 쓰라린 상처는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날 만개한 봄햇살과 함께 찾아온 축제에서 나는 그 여인을 만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을 다시 보았다. 그날 나는 이 시간이 내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청춘임을 직감했다. 정말 꿈같은 만남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청춘이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라이언이 담은 젊음도 마찬가지였다. 치기라고 하기에는 도가 넘은 사진들이 넘쳐난다. 그럼 어떠랴? 이것저것 재며 뒤돌아보는 청춘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삼사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 봄날에 이게 웬 날벼락? 두고봐라. 봄은 당당히 찾아 올 것이 분명하니까. 기죽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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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 책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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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꿈은 9급 공무원이었다. 정시에 퇴근하면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다는 희망때문이었다. 실제 9급 공무원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가지 꿈은 이루었다. 책을 마음껏 읽는 것. 거기에 더해 책에 대한 감상까지 남겼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장정일만큼 낮게 평가된 작가도 드물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 다소 빈약한 외양 때문만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성실함이 아우라를 갉아먹었다. 장정일은 소설을 씀과 동시에 독서일기를 작성했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균형점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설 쓰기보다는 독서에 더 열중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음악듣기라는 외도까지.

 

<악서청람>은 외도의 결과다. 책읽기와 음악듣기를 좋아하니 음악과 관련한 서평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남다른 필력인지라 기대가 컸는데 역시 좋은 글들이 많았다. 특히 음악감상평에 대한 비평이 마음에 와닿았다. 음악자체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감성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게 음악평이라는 지적은 나도 늘 느끼고 있었다.

 

한가지 바란다면 책읽기를 조금 줄이고 창작에 더 몰두하셨으면 어떨까 싶다. 책의 미로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걸 나도 잘 알지만 그러다보면 자기 글쓰기를 잊어버리게 되니 말이다.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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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과학자 프래니 1 - 도시락 괴물이 나타났다 도시락 1
짐 벤튼 지음, 박수현 옮김 / 사파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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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학교는 놀이터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놓을 수 있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듯 다녀야 하고 수업시간도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하니 일종의 사회화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정해 사람을 쑤셔넣는건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다. 학교나 회사 교도소가 다 같은 감옥인 셈이다. 미세 푸코의 위대함이란.

 

프래니는 규칙을 깨트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기존 질서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방황한다. 혼자 있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외모나 취미 등이 다르게 다가올 때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어떻게든 맞추려고 해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대신 즐거움으로 무장한 채 친구들을 서서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왜 점심으로 매일 똑같은 모양의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지, 왜 여자아이는 다들 청순가련형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따지고 지지고 볶는다. 결론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관찰과 실험이야말로 프래니의 특기중의 특기. 결국 프래니는 친구들을 신나는 세상으로 초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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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플랜 - 아웃케이스 없음
로베르트 슈벤트게 감독, 조디 포스터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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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상 예술이다. 말이나 글보다 영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플라이트 플랜>은 그러지 못했다. 남편의 추락사, 비행기 안에서의 딸의 납치로 혼돈에 빠진 여주인공은 애매하기만 하다. 그나마 조디 포스터의 연기가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고 있을 뿐.

 

초반 심리 스릴러로 흘러가던 영화는 액션으로 변하다가 유주얼 서스팩트류의 반전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말은 허무했다. 비행기내 보안요원이 납치범이 되어 기장에서 거짓말로 큰 돈을 송금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했다. 게다가 액션 요원 뺨치게 비행기 안을 휘젓고 다니는 조디 포스터는 왠지 낯설었다. 단지 항공 엔지니어 였기 때문에? 게다가 남편의 죽음과 딸의 납치가 단지 우연이었다는 설정도 어설펐다. 아무리 남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여자아이를 납치하는데 목격자가 한명도 없었다는 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모든 결점을 극복한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디 포스터의 열연뿐이었다. 남편을 잃고 딸마저 사라진 어머니의 심정을 스크린위에 절절이 녹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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