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시댁에 가는 길에 옆지기가 사투리 이야기를 하다가
“처진거리”란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데.
어머니가 쓰시는 말인데, 남은 밥, 먹다 남은 것을 처진거리라 한단다.
군대 용어로 잔반(殘飯) 되시겠다.
처진거리라. 뒤로 처진 것, 먹다 남긴 음식.
이렇게 딱 떨어지는 말이!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없고,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도 없다.
사투리라 그런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잔반을 '남은 밥', '음식 찌꺼기'로 순화했다고 나오는데,
음식 찌꺼기라고 하면 버릴 것이란 의미가 되지만,
남은 음식이 꼭 다 쓰레기는 아니다. 남겼다 나중에 다시 먹을 수도 있고
개나 돼지에게 먹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밥’이라고 하면 밥에 한정된다. 밥이 꼭 쌀이나 보리로 지은 밥만을
가리키지 않고 넓은 범위로 ‘식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기나 잡채 남은 것을 ‘남은 밥’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국립국어원에서는 왜 ‘처진거리’를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시어머니 말씀을 듣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무학으로, 글도 모르고 살아오셨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쓰시는 생활 용어가 어쩌면 그리도 적확하며,
어쩌면 그리도 기막힌 메타포인지!
아, 저 말은 적어놔야 하는데, 생각하다가도
잠깐 딴 일 하는 새에 까먹어버리는 내가 원망스럽다. ㅠ.ㅠ
녹음기를 갖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
아무튼, 국어학자들께서도 나름대로 노력하시겠지만,
앞으로 외국어나 공연히 어려운 한자어를 이른바 ‘순화’할 때는
먼저 시골 노인네들에게 여쭤보고 정했으면 좋겠다. 흐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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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것도 사라질 것 같으니 모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야클 2005-09-2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 실전용어로는 '잔반'이 아니라 '짬빱'이 되시겠습니다. ^^

숨은아이 2005-09-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앞으로 애용해주세용~ ^^
야클님/앗, 그렇습니까. 전 짬밥은 그냥 군대에서 먹는 밥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요. ^^

진주 2005-09-2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짬밥은 고유어로 살리자는 의견도 강하게 일고 있다지요.
숨은아이님, 제가 늘 주장하는 바가 그것이랍니다.
표준말은 향토성짙은 지방어들의 어휘들을 다 안을 수 없는 단점이 있어요. 언어와 땅도 신토불이랍니다. 그 지방에서만 나는 독특한 낱말들이 있죠. 사투리를 살립시다아아아~

숨은아이 2005-09-2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립시다아아아~!!!

물만두 2005-09-20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리시껴!!! (강화사투리)

숨은아이 2005-09-2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고마워요. ^_________________^
만두 언니/호오, *.*
 

실타래 : 길고 둥글게 풀어놓은 실몽당이.



 
토리 : 둥글게 공처럼 만 실뭉치.





실-톳 : 방추형으로 감아 놓은 실몽당이.



 

실-꾸리 : 둥글게 감아 놓은 실몽당이.






실-테 : 물레의 얼레나 실패에 감아놓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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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5-09-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몽당이들....전 순간 제목만 보고 아이들을 말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실타래를 말하는거군요?
토리...실톳...실꾸리...실테.....첨 알았어요..ㅡ.ㅡ;;

숨은아이 2005-09-14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흔히 보는 것인데, 그 이름을 제대로 못 불러주었어요. 이제 알았으니 잘 불러줘야지! ^^

플레져 2005-09-1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가 아니라 실테였어요?? 아, 이런...삼십년 세월 헛살았네...
추천하고 퍼갑니당 ^^

숨은아이 2005-09-1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실패는 실을 감는 나무쪽이나 종이를 말하는 거고, 실테는 거기 감은 실뭉치를 얘기하는 거지요. ^^
 

실을 배배 틀린 모양으로 감아놓은 건 실타래,
실타래를 풀어서 손가락으로 동글동글 공처럼 감아놓은 건 토리,
줏대가 배배 틀린 송곳은 타래송곳(코르크 따개),
굵은 줏대에 타래 모양으로 골이 패어 있는 송곳도 타래송곳(드릴),
소용돌이 모양으로 둥글게 감아 문고리에 거는 쇠는 타래쇠.

어릴 적에 창호지 바른 여닫이문에 고리를 걸고 꼭 타래쇠도 걸어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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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1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래과....타래모양으로 만든 과자.

숨은아이 2005-09-1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타래과. ^^ 시댁에선 그걸 약과라고 부르시데요.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미역국 먹었어”라고들 한다.
시험에서 떨어진 거랑 미역국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무리 미끈미끈, 미끄러지는 성질이 있다 해도, 피를 맑게 한다는 미역을
시험 전에 기피하는 풍습까지 간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구한말 일본에 의해
조선의 구식 군대가 강제 해산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군대를 해체한다는 의미로 “해산(解散)” 명령이 내렸는데,
그 발음이 아기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같아서 생긴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는 미역국을 먹었다 하면 실직했다는 말인데,
그게 자리를 잃다 → 시험에서 떨어져 붙을 자리를 놓치다,
이런 식으로 된 것이다.
아마 해산 명령을 받은 남자 군인들이,
“뭐, 우리더러 해산하라고? 몸 풀게 생겼으니 미역국 먹어야겠네.”
하고 자조적인 농담을 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흩어지라는 의미로 쓰는 “해산(解散)”이란 한자어는 그
전에는 조선에서 쓰이지 않았던, 일본식 한자말이 아닐까 싶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흩어짐”으로 순화했다고 나오는 걸로 보아
내 생각이 옳은 듯하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보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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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재밌군요.

숨은아이 2005-09-1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재밌는 말이 많아요.

호랑녀 2005-09-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정말요? 그렇구나...ㅜㅜ

숨은아이 2005-09-1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씨년스럽다'와 함께 서글픈 역사의 산물인 셈이죠. -.-;
 

숏 컷 [Short Cuts] 
 
1996년일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것은. 미국 소설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엮어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그때만 해도 영화보다 원작을 먼저 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사재에서 나온 카버의 소설 전집 세 권,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숏 컷]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를 덜컥 사고 말았다. 그 전해 여름에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푹 빠졌다 나왔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설을 했다는 데 혹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카버의 소설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는지, 깊이 공감할 수 없어서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와 [숏 컷]만 읽고는 일단 접었다. 그사이에 영화는 상영이 끝났고, 나는 언젠가 비디오로 볼 생각만 했다.

그러다 어젯밤 10시 케이블의 MBC 무비 채널에서 영화 <숏 컷>을 하리란 걸 알았다. 무료 채널은 시간을 안 지키는 게 문제다. 10시 38분이나 되어서야 시작해, 자정 넘어 1시 47분에 끝났다. 중간에 두 번 광고가 나온 건 당연하고. 마지막 크레딧 화면은 과감히 잘라버리고. 무료 채널이니 그러려니 한다.

카버의 단편소설들, 무엇 무엇이 있었는지 다 까먹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난번에 이안님 리뷰를 읽었을 때처럼, 지금 카버의 책을 읽으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관이 없는 여러 단편을 굴비처럼 참 잘 엮어놓았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카버의 소설에 대체로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마음을 크게 울린 작품이 몇 개는 되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빵집 이야기(책에서 제목을 찾아보니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가 흐지부지 처리된 것이다. 속이 다 상했다. 그리고 남의 집을 봐주는 이야기(제목이 “이웃사람”)도 그렇고. 역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그렇게 된다.

출연진이 호화 찬란한데, 지금 보니 제니퍼 제이슨 리도 나온다.


감독 각본  로버트 앨트먼 Robert Altman | 원작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상영시간  187분 | 제작연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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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9-09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그 긴 걸 단숨에 보셨군요.
저는 비디오로 빌려봤어요. 영화가 금세 개봉관에서 막 내렸더라구요.
영화 공부하던 시절이라 안 볼수가 없었죠.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잘 볼 것 같아요. 사소하지만... 그 단편 다시 읽어볼래요.
어렴풋 기억나요 ^^

숨은아이 2005-09-0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지난번에 시나리오 이야기도 하시더니, 영화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셨군요. 오오. 책도 영화도 역시 운때가 맞아야 하나 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9-1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또 속상해지는걸요. 전 이 영화 못 봤어요. 카버의 소설은 우리나라 시중에 나온 걸로는 다 읽었는데 영화를 빠뜨려놨거든요. 에잇, 제니퍼 제이슨 리도 나온다는데. (지금 머리 쥐어박았음)

숨은아이 2005-09-1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블 보시면 이 영화 보실 수 있을 텐데. ^^ (근데 영화보다 이안님 리뷰가 훨 더 좋아요. 소곤소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