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시댁에 가는 길에 옆지기가 사투리 이야기를 하다가
“처진거리”란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데.
어머니가 쓰시는 말인데, 남은 밥, 먹다 남은 것을 처진거리라 한단다.
군대 용어로 잔반(殘飯) 되시겠다.
처진거리라. 뒤로 처진 것, 먹다 남긴 음식.
이렇게 딱 떨어지는 말이!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없고,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도 없다.
사투리라 그런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잔반을 '남은 밥', '음식 찌꺼기'로 순화했다고 나오는데,
음식 찌꺼기라고 하면 버릴 것이란 의미가 되지만,
남은 음식이 꼭 다 쓰레기는 아니다. 남겼다 나중에 다시 먹을 수도 있고
개나 돼지에게 먹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밥’이라고 하면 밥에 한정된다. 밥이 꼭 쌀이나 보리로 지은 밥만을
가리키지 않고 넓은 범위로 ‘식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기나 잡채 남은 것을 ‘남은 밥’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국립국어원에서는 왜 ‘처진거리’를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시어머니 말씀을 듣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무학으로, 글도 모르고 살아오셨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쓰시는 생활 용어가 어쩌면 그리도 적확하며,
어쩌면 그리도 기막힌 메타포인지!
아, 저 말은 적어놔야 하는데, 생각하다가도
잠깐 딴 일 하는 새에 까먹어버리는 내가 원망스럽다. ㅠ.ㅠ
녹음기를 갖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
아무튼, 국어학자들께서도 나름대로 노력하시겠지만,
앞으로 외국어나 공연히 어려운 한자어를 이른바 ‘순화’할 때는
먼저 시골 노인네들에게 여쭤보고 정했으면 좋겠다. 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