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힘을 가져야 한다
2005.04.14

  

국가나 민족이 그 어떤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떠드는 이유는 그만큼 그런 결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들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국민대통합이니 민족대화합이니 국론통합이니 하고 떠들던, 자기들의 논리가 궁색하거나 근거 없으면 국론분열이니 어쩌니 하면서 하다 하다 안되면 반공의 칼날을 들어대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 아니었던가 ?  

 난 그래서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주입시키는 의미로서 그 단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어떤가를 생각해 본다.

 엊그제 일본의 우익단체 '새역모' 관계자가  "한국에서 데모하는 위안부할머니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했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애국자이며 우파라는 지만원이 "진짜 '일본군위안부'나 '종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은 창피해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후미진 곳에 산다고 한다"며 "최근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할머니들 중에서 중국에서 온 할머니 5명은 일본대사관 앞에 나오는 대가로 하루에 몇 만원씩의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거나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신적 고통과 성병 및 기타질병으로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TV에서 보여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연세가 그렇게까지 많아 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 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 있는 분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애초 성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될 수가 없는 것인데 왜 돈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는 것인지? 이런 치사하고 못난 짓은 하면서 어떻게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겠느냐?"고 하였고, 지난달 10일에도 "예전에는 규수가 봉변을 당하면 은장도로 죽었는데, 정신대 할머니들이 아무리 억울하게 당했어도 대중 앞에 얼굴을 들고 나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했었단다.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의 우파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하는 말이 뭐가 다를까 ?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국가와 민족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주변부 자본주의로의 편입과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자본 축적을 위해 온갖 법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적, 사회적 기본권을 짓뭉개버린 자들이 누구이며, 자기들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식민지 근대화론'이니 '공과론'이니 '현실상황론'이니 하는 어거지 논리를 퍼뜨리는 자는 또 누구인가 ? 그들과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수탈로 살아가는 거대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의 우파가 무엇이 다르며 얼마나 다른가 ?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한 개인의 아픔을 함부로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 똑같다. 지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같다. '성노예' 여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밝히고 주체로 서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일본사회의 폭압성을 그대로 쫓으려는 생각도 같다. 외국인 노동자를 그저 비용 줄이는 데에 필요한 기계 취급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본적 생존권 문제를 비용 절감과 맞바꾸어도 그것이 오로지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떠드는 것도 역시 그렇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

 그래서 일본 우파나 대한민국 우파나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국제적으로 경제적으로 누가 더 힘을 가졌는가에 차이가 있을 뿐 생각이 같으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이가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방법은 일본 내의 좌파 세력이 힘을 가져야 한다는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좌파하면 공동체를 파괴하는 몹쓸 사람들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들에 의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확장되어왔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들의 주장과 역할이 더욱 더 커져야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그 어떤 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고 나아가 일본의 우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한민국의 우파를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에서도 그 어떤 이의 말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04-19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4-1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숨은아이님, 멋진 글입니다. 이 정도면 신문 칼럼으로 실려도 충분하겠네요

숨은아이 2005-04-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런데 좌파는 그런대로 다양한데, 우파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도무지 논리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토론이 안 된다는 거지요. 토론이 이루어져야 의견 수렴이 되고 절충도 되고 할 터인데...
마태님, 칭찬 고맙습니다. 근데 이 글은 제 옆지기 블로그에서 퍼온 거여요. 카테고리 이름을 봐주시압! ^^

릴케 현상 2005-04-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좌파는 왜 그렇게 힘이 없을까요?

숨은아이 2005-04-1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생각해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 일본이나 한국이나 온 사회가 경제에 올인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게 적당히 골고루 온 국민이 먹고살 만큼 되는 게 목표가 아니고, "일단 부자가 되고 보자"->생존 경쟁 치열->경제동물이 일반적인 인간형이 됨->승부욕이 적은 사람들은 개인화, 파편화하여 자기 안으로 숨어버림. 너무 조악한 도식이군요. ^^

책읽는나무 2005-04-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페이퍼의 글이로군요..ㅡ.ㅡ;;

숨은아이 2005-04-2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옆지기 블로그에 가끔 쓸 만한 글이 올라오면 저도 좀 생각해보려고 퍼온답니다. ^^

숨은아이 2005-04-2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끅... 끅...
 

불어리
“불티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등잔, 화로 따위에 들씌우는 기구.”
“등불에 바람을 막기 위해 대오리로 테를 하고 종이를 발라서 만든 것으로, 위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불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바람 부는 날 야외에서 취사를 할 때 화로의 불길이 날리지 않도록 병풍처럼 둘러치게 한 도구가 있는데 이것 또한 불어리라고 할 수 있다.”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촛불 집회 할 때 촛농도 받고 또 바람막이도 되게 초를 꽂는 종이컵도 바로 불어리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북한의 “노동 1호 미사일”이라면 뉴스에서 몇 번 들은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북한이 자기네 미사일에 붙인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옮긴다.

노동 1호
본뜻 :
1990년 5월 말,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이 개발한 탄도미사일을 발견했다. 이때 미군 당국이 그 미사일에 붙인 이름이 노동 1호였다. 우리 언론이 이것을 임의로 ‘勞動 1號’라고 한자 표기를 해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계 각국의 영자 신문들이 이것을 영어로 바꾸어 ‘LABOUR 1호’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뒤에 알려진 바로는 ‘노동’은 ‘노동(勞動)’이 아니라 함경북도에 있는 노동(蘆洞)이라는 마을 이름이었다.
바뀐 뜻 : 노동(蘆洞)은 미군의 정찰위성이 찍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장소의 지명에서 온 것으로서, ‘노동 1호’는 북한이 개발한 탄도미사일에 미군이 붙인 이름이다.

그러니까 ‘노동 1호’는 미군이 임의로 갖다 붙인 이름이고, 그 노동(蘆洞)을 “노동자 농민” 할 때의 노동(勞動)으로 기자들이 멋대로 생각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영어로는 Rodong이라고 하던데, 그게 고유명사라서 그런 줄 알았더니, 고유명사인 건 맞지만 처음엔 LABOUR로 쓰다 한 차례 소동을 겪고 나서 Rodong으로 바꾸었을 터이다. 한국 기자들! 웬 망신이래. 북한과 이른바 한미동맹, 미군의 군사 활동에 대한 나의 정보와 인식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단선적인지 깨달았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4-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친미의 결과지요...

어룸 2005-04-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민들의 노동의 댓가라서 노동이라고 지은줄 알았는데...^^:;;;; 아이, 부끄럽슴다~

조선인 2005-04-19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황당한 일이네요. @.@

릴케 현상 2005-04-1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chika 2005-04-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거래요?

숨은아이 2005-04-1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이 공개를 안 하니까 그걸 "발견"한 쪽에서 편의를 위해 이름을 지은 건 그러려니 하는데, 적어도 어떻게 된 이름인지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걸 안 가르쳐주었어요. ㅠ.ㅜ

瑚璉 2005-04-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미그 기 시리즈의 패곳이니 펄크럼이니 하는 코드명도 모두 미국에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그런데 노동 미사일의 노동이 그 노동이 아니라 저 노동이라는 것은 정말 예상밖인데요.

숨은아이 2005-04-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려운 말이군요. 패곳, 코드명... --a 그러니깐 대포동 미사일도 미군 정찰위성이 북한의 대포동에서 포착한 미사일이겠지요?

瑚璉 2005-04-1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사례로 볼 때 혹시 '대포가 많은 동네'의 약자가 대포동이 아닐까요(-.-;)?

숨은아이 2005-04-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쿠헐헐!
 



이지유 선생이 쓴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에 관해 오래 전 허섭한 리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요새 “고마워요” 마일리지 이벤트 덕분인지 이 글에 “고마워요” 마일리지가 쌓입니다. 허섭한 글 한 편으로 이렇게 마일리지를 받는 게 송구스러워, 조금 더 쓸모 있는 정보를 알려드리고자, 전에 작가인 이지유 선생과 주고받은 메일을 공개합니다.

리뷰에 적은 대로, 어린이책을 공부하는 어느 모임에서 이 책을 만든 미래M&B의 편집장을 초대해 기획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질문 거리가 많다, 작가의 답변을 들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편집장이 자신에게 메일로 질문을 적어 보내면 작가 이지유 선생님께 전해 주겠다 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지유 선생님께서 역시 편집장을 통해 답변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지적한 것 중 몇 가지는, 글쓴이의 뜻을 알겠지만 문장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인데, 어쨌거나 선생님의 본래 뜻을 다시 한 번 밝혀 주셨습니다. 답변을 읽다 보면 제가 참 무식해서 겁도 없이 시비를 걸었구나 싶은 게 많은데, 그것들 하나하나 성의 있게 답해 주신 이지유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

<이지유 선생님께 궁금한 점>


1. 39쪽

"목성에 떨어졌던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민지 같은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걱정하기 전에 모두 죽을 테니까요."

걱정도 하기 전에 죽는다면,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죽는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느끼기 전에 어떤 과정이 진행되길래 그렇게 되나요?

*****

보통 우리 눈에 보이는 정도, 그런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부딪히면 지구 문명이 사라질 정도로 큰 폭발을 일으킵니다. 우선 지구 대기에 혜성이 들어 올 때 공기에 초음파 폭풍이 생기는데 말 그대로 음속을 돌파하는 폭풍입니다. 거기에 뜨거운 열기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지구상 에 있는 대부분의 생물이 그 때 죽습니다. 왜 그런 설명을 안했냐고 물으신다면..이 절의 주제가 목성의 크기과 제 2의 태양이 될것이냐 말것이냐..에 촛점을 두어서 그렇습니다.

우주이야기처럼 독자들이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어떤 경우는 편집인보다도) 있는 사실을 다 알려주는 것이 옳다기 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생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목성에대해 미주알고주알 다 쓰면 책 한 권 가지고도 모자람)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분도 생기고^^


*******************


2. 44쪽 <떠오르는 과자 반쪽>에서


"자정이 지나자 동쪽 하늘에서 달이 뜨기 시작했"다고 하고,
"저녁에 보는 달은 오른쪽이 둥그스름한 반달이나 초승달이었는데,
늦게 뜨는 달은 그 반대"라고 합니다.

달이 하루에 몇 번씩 뜨나요? 그러니까 초저녁에도 뜨고, 자정 지날 무렵에도 뜨는 건가요?
달은 지구를 하루에 한 번 도는 줄 알았는데.

*************

그런 것이 아니고요, 달은 날마다 50분씩 늦게 뜹니다. 오늘 저녁 8시에 떴으면 내일은 8시 50분에 뜨지요. 다음 날은 9시 40분에 뜹니다. 또 한가지 알아야할 사실은 달 모양에 따라 뜨는 시각이 거의 정해져 잇다는 것입니다. 오른쪽이 둥근 초승달은 아침에 해 뜨는 시간에 해와 같이 뜹니다.(계절마다 시간이 좀 다르지만) 그래서 초승달은 항상 해 질 때 서쪽하늘에 보입니다. 낮에도 해 옆에 잇었는데 해에 가려서 안 보인 것이죠. 다음날은 50분 늦게 뜨니까 애에서 약간 멀어져 있고 조금더 통통해 집니다. 그 다음 날은 또 50분 더 늦게 뜨고 조금 더 통통해지고 그러다......

보름달은 대부분 오후 6시무렵뜨는데 우리나라는 산이 있기 때문에 9시나 되야 보름달이 동쪽에 보입니다. 따라서 자정에 뜨는 달은 보름달을 지나 왼쪽이 둥근(하현달)입니다.그러다...

점점 달이 왼쪽만남은 갈비씨가 되 갈 수록 더 늦게 뜨다 급기야 새벽에 뜨게 됩니다. 아까 오른쪽이 둥근(상현)초승달 마냥 이 달도 잘 못봅니다. 해에 가려서리....

...................근데 이런 사실은 초등 교과서에 나옴 ㅡ.ㅡ

그러니 저녁에 뜨는 달, 늦게 뜨는 달이란 같은 날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달은 모양마다 뜨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


3. 63∼64쪽

"달은 어느 천체보다 하늘을 빨리 움직여 별 사이를 누비면서 다녀요."

사실 달과 별의 위치는 엄청나게 떨어져 있고, 달이 제 궤도를 벗어나 별 사이를 지나다니는 건 아니지요? 다만 지구에서 보기에 달이 별 사이를 지나는 것처럼 보일 뿐. 그런데 '누비면서 다닌다'는 표현은 달이 궤도에서 벗어나 이 별 저 별 사이를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

어느 천체도 달 처럼 하루에 50분씩 시간차를 두고 뜨는 것은 없습니다. 날마다 성도에 달이 지나가는 길과 위치를 표시하면 어제 잇었던 곳과 그제 잇었던 곳이 판연히 다릅니다. 요거 체험하시려면 한 달 동안 달의 위치를 성도에 표시해 보는 방법밖에 없는데, 누빈다는 말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표현을 빌은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실험으로 달의 위치를 일년동안 표시한 적이 잇엇습니다. 어느 천체보다 변화무쌍하게 자리를 바꾸지요.. 중학교1학년생이 한 말입니다.

"선생님, 얘가 온 하늘을 누비면서 다니네요!!"

그리고 달이 궤도에서 벗어나 돌아다닌다는 상상을 하기에 요즘 초등학교5-6학년은 너무 아는 것이 많습니다. 슬픈 사실이죠 ㅠㅠ

*****************


4. 79쪽에서,

"1919년에 일어난 일식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어요. 아인슈타인은 빛은 무거운 천체 옆을 지나갈 때 휜다고 말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식이 일어나자 그 시간에 태양 바로 옆에서 보이던 별의 위치가 변한 것처럼 보인 거예요. 그 별의 빛이 똑바로 오지 않기 때문에 위치가 달라 보인 것이죠. 별빛이 태양 때문에 휘었던 거예요.

별빛이 태양 근처를 지나 올 때, 별의 위치는 항상 달라 보이지만 태양이 밝아 늘 그것을 볼 수 없었어요. 그러나 그 밝은 햇빛이 가려지자 태양 바로 옆에 있는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일이 있은 다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두 문단 간에 논리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별의 위치를 잘못 알았던 것이고, 일식 때문에 빛이 가려져 비로소 별의 원래 위치를 알게 된 것인데, 첫 문단을 보면 일식 때문에 별의 위치를 잘못 보게 되었다는 내용 같습니다. 그런데 뒷문단은 그 반대 내용이니,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점은,

일식이 일어나도 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빛이 무거운 천체 옆을 지나갈 때 휜다면 일식 때에도 빛은 계속 휘어야 하지 않나요?

******************

별빛은 계속 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태양이 너무 밝아 볼 수 없었고 일식때는 태양빛이 가려 별빛을 볼 수 잇엇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할 것은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태양 자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하루 운동은 물론 별과 별 사이를 움직이는 일년운동도하고 잇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해와 별이 하루에 한번 똑같이 뜨고 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년내내 별이 똑같지 않지요? 하지만 해는 일년내내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집니다.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이 두가지 운동이 복합적으로 일어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 해가 별 앞으로 지나간다 그런 말 되겟습니다. 바로 내 눈앞에서(물론 그걸 볼 수 없습니다. 해가 너무 밝아서)그래서....해가 분명 별을 가릴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도 별이 보인다 그런말입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림에 나온 것 처럼 (그림을 보시압) 그래서 그렇다 그거지요.

이부분은 상대성이론이 나오는 부분이라 사실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주 궁금하게 생각해서 한 꼭지 넣었지요.

*****************


5. 84쪽

"징기스칸은 혜성을 보고 모든 땅을 정복하라는 하늘의 뜻이 내려왔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몽골 군대를 이끌고 남의 나라 땅을 돌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였죠. 몽골인들은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질 않았어요."

마치 몽골인들만 남의 나라를 침략해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근세 이전에 세계는 거의 항상 전쟁중이었고, 강한 편은 약한 편에게 무자비했습니다. 잔혹하기로 말하면 아메리카를 침략하고 원주민들을 학살하며 그들의 문명을 철저히 짓밟은 유럽인들만 할까요?

**********************

요부분은 너무 그렇게 생각지 마시기를. 몽골인 욕하려고 쓴게 아니라 혜성이 그렇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쓴 것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그때 세계가 거의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아니까요. (저는 안장도 없이 말을 타며 사막을 누비는 몽고인, 말을 타고 바위산을 오르내리며 바팔로를 따라가는 인디언, 만주벌판을 달리던 말탄 고구려인, 초승달 같은 칼을 들고 희천을 휘날리며 돌집 사이를 곡예하듯 빠져나가는 말탄 아랍인(내가 좋아하는 말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또 '어 거꾸로 보이네(202쪽)'에 보면 제가 유럽인들 욕한게 나옵니다.

*************************


6. 90쪽

여러 혜성의 이름을 들어 이야기하다가 '이케야 세키 혜성'을 언급하고는

"이름이 좀 이상하죠?"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 이름이 붙은 혜성 이름은 안 이상하고, 일본 사람 이름이 붙은 건 이상한가요?

*************************

이건 '세키'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내가 아이들에게 혜성 이야기하다 이 혜성 이름만 말하면 다 웃어요. 왜 웃나고 물으면 이름이 이상하대요. 아마 '세키'를 '새끼'라고 생각하나봐요. 진짜 일본인들은 세키 보다 새끼 에 가깝게 발음을 하더군요. 아이들은 그래서 웃어요.

****************************


7. 91쪽

티티우스-보데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이름 없는 조수인 티티우스는 1729년생, 베를린 천문대 대장인 보데는 1747년생이라고 했습니다. 티티우스가 윗사람인 보데보다 20년 가까이 나이가 많은 셈. 그리고 백과사전에 보니까 이 법칙은 티티우스가 1766년에 발견했는데 보데가 1772년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백과사전 내용이 사실이라면 보데는 25세 때 벌써 베를린 천문대 대장이었던 것인데요. 그렇다면 티티우스는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무슨 까닭에선지 (신분이 낮았든지 학교를 못 나왔든지...) 자기보다 어린 보데의 조수였던 모양인데, 무슨 까닭에서 그랬는지요?

*********************

지금 저에게 자료가 없어(파일을 한국에 두고와서) 요거다 하고 말하기 힘든데, 티티우스가 좀 운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요건 제가 더 확인해서 알려드리지요. 이 사람들뿐 아니라 그 시대에는 나이에 관계 없이 상하관계가 정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


8. 113쪽

달의 인력과 조석 간만의 차를 이야기하면서,

"사실 이것은 물이 들어오고 나온다기보다, 땅이 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과 없는 곳을 번갈아 드나든다고 해야 옳을 거예요."

라고 합니다.

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과 없는 곳을, 땅이 번갈아 드나든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

지구에 있는 바닷물은 달이 있는 쪽으로 끌려 갑니다. 그리고 차등중력(이건 나중에 강의를 해드리죠. 그림이 필요하거든요. 이 부분은 교과서 한 챕터(장)가 될 정도입니다.)에 의해 달이 있는 반대쪽으로도 바닷물이 쏠립니다. 지구의 땅은 궁근데 바다는 계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닷물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는 하루에 한 번 돌지요? 곧 움직이는 주체가 바다가 아니라 땅이라는 이야기가 되겟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보면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 들어왔다 나갔다(파도 말고 조석간만의 차)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땅이 바다가 불룩 솟은 곳과 들어간 곳을 두번 드나든다는 뜻이죠..아까 바다가 달이 있는 쪽과 반대 쪽으로 불룩솟아 있다는 것 잊지 않았죠? 그래서 하루에 두번 조석같만의 차가 생기는 겁니다.

에구 어깨야...

******************************


9. 142쪽

허블 망원경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 외에 다른 지구상의 작은 망원경들은 쓸모가 없어졌는가요? 아니면 그럼에도 유용한가요? 그렇다면 왜 그러한지요?

***************************

정말로 쓸오 없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쓸모가 있지요. 큰 망원경은 자세히 볼 수 잇지만 좁은 곳밖에 못 봅니다. 작은 망원경은 덜 자세히 보이지만 넓은 구역을 볼 수 잇지요. 구상성단 이나 산개 성단(이 책에 널린별떼, 둥근별떼 를 보셈)은 작은 망원경으로 봐야 다 보입니다. 하지만 행성상 성운(159쪽)같은 천체는 큰 망원경일 수록 잘 보입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우주에 나가면 나가는 대로 다 쓸모가 있지요.

***************************


10. 218∼219쪽

고구려 고분의 사신도가 별자리이며, 그 문화가 일본으로도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편 우리 나라의 천문학은 이웃나라인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중국은 서양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요. ... 우리 나라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서양의 천문학을 들여왔어요. 그리고 그것을 일본에 전해 주었지요."라고 했습니다.

고구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중국을 통해 서양의 천문학을 받아들여 일본에 전해 주었다고 하면, 마치 고구려의 별자리도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의 것이란 말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을 통해 서양의 천문학을 받아들인 건 조선 시대, 높이 잡아 봐야 고려 후기. 통일신라 때에도 별을 관측한 기록이 있구요. 물론 단지 "영향을 받았다"고 했지만, 글의 순서상 중국에서 서양 천문학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우리 천문학이 없었던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

고구려 이야기할 때는 '별자리'라는 말을 썼고, 중국에서 들여온 '천문학'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말을 달리 쓴 것은 고구려시대에는 고분벽화에서 별자리는 발견되었으나 역법을 사용하는데 별이 쓰였다거나 주기적으로 천체를 관측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벽화가 별자리라는 것도 최근에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천문학'에서 천문학은 망원경을 사용하고 역법, 시간계산, 일식 월식 예측을 하는에 천체를 이용한 근대적인 천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중국에서 들여 왔습니다. 그 때 사신들이 중국에 다녀오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달력을 받아 오는 것이었거든요. 우리 천문학 으로 책을 쓰신 분도 '동양천문학'이라는 말을 책에 쓰는데, 이건 '우리 천문학'이라고 하기엔 여러가지 자료가 부족하고, '중국천문학'이라고 하기엔 좀 자존심 상하고 그래서 약간의 타협점으로 '동양 천문학'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11. 237∼241쪽에서는

지난 1998년 사자 자리 유성우를 보기 위해 우리 나라의 보현산 천문대로 모여든 외국과 우리 나라의 천문학자들이 유성의 수를 세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 가까운 곳의 천문학을 느끼게 해주어 참 좋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유성의 수는 왜 세는지도 이야기해 주면 좋았을 듯합니다. 유성의 수를 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

기록해야 하니까요. '몇년, 유성우 많이 떨어짐, 2년 뒤, 적게 떨어짐', 이렇게 쓸 수는 없거든요.

***************************


12. 262쪽 <천문학의 역사>를 보여 주는데 3만 5천 년 전에야 인류가 나타났으며,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3만 5천 년 전이면 호모 사피엔스 단계. 원숭이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

3만 5천년전에야 인류가 나타났으며.....라고 했으므로 이미 사람이 나타났다는 뜻이고, 원숭이에 가깝다고 한 것은 지금 사람보다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그랬습니다.

*******************


아래 편집자에게 묻는 말도 제가 답할 것은 하고 싶습니다.

<편집자에게 딴지걸기>

1. 118쪽

우주에 유전자나 뼛가루를 보내는 사업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것들은 우주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해요. 돈도 좋지만 이러다 우주가 전부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하는데,

책 곳곳에 우주에 얼마나 방대한지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지 이야기했으면서 겨우 인간의 쓰레기로 우주가 '전부' 무덤이 될지 모른다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표현인 듯합니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태양계나 우리 은하 정도라면 몰라도.

*******************************

지구(대기권포함)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우주입니다. 그리고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는 경각심정도가 아니고 중대한 경고 입니다. 많은 인공위성과 우주선들이 우주에서 고장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우주쓰레기에 맞아 구멍이 나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기체가 아주 희박해서 관성에 따라 불체가 웁직입니다. 시속 1000킬로로 나르던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온 나사못은 영원히 그 속도로 움직입니다. 지구 중룍권에 붙들린 것들도 중력 때문에 점점 속도가 줄겟지만 그 속도 그대로 나릅니다. 시속 1000킬로로 나르는 바카스병에 맞아보십시오. 우주선에 구멍이 뻥뻥 뚧립니다.

그리고 방대한 우주에 비해 인간이 미약하다는 비유와 우주에 쓰레기가 많아 걱정이라는 말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 무섭습니다.

**********************************


2. 152쪽

크기를 비교할 수 있도록 나란히 포개어 그린 별들의 색깔이 본문 설명이나 그림 윗부분의 스펙트럼과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도 신경 썼으면 더 좋았을걸.

******************************


*******************************


3. '우리가 갈 수 있는 우주'라는 2장 제목은 우주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구상,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줍니다. 일식, 혜성, 유성, 달이 미치는 영향, 허블 우주망원경 등등. 그래서 좋은데, 반대로 3장 '우리가 갈 수 없는 우주'는 가능성을 닫아 놓은 표현이란 점에서 아쉽습니다. 지금은(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랜 동안) 갈 수 없는 곳이겠지만, 영영 갈 수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

이 제목은 제가 붙인 것인데요, 머릿말에 설명을 쓰려다가 읽는 사람들이 저대로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그냥 두었습니다.

제가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우선....우리가 갈 수 있는 우주...란 그냥 느낌이 아니라 진짜 갈 수 있는 우주를 말하는 겁니다....즉 태양계 되겟습니다. 태양계 안에 있는 이야기만 썼습니다. 제 그림에 보면 (192쪽) 태양계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도 같다...라는 그림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인간은 달 밖에 못 가봤고, 화성도 가려고 애는 쓰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아직 사람은 안 갔음. 우주선은 몇 대 갔음).

우리가 갈 수 없는 우주....는 아직 정말 갈 수 없는 우주 입니다. 이걸 가능성을 닫아 놓았다고 해석하셔서 저도 애석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더 아득한 느낌이 들어서 우주가 더 넓게 느껴진다고 했거든요...

아무튼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앗더라면....2장:태양계에서, 3장: 태양계 밖에서......
또는 .....2장: 태양계에는 무엇이 잇을까요? 3장: 더 먼 우주를 알아봐요.....등등

등등등 ........이런 평범한 제목을 달았을 것이 분명한데...........제 성격상 이런 게 안됩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5-04-1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주 철저하게 읽으신 표가 납니다. 땡스투 더 많이 받으세요! ^^ 저는 이미 구입했으니 추천이나....

chika 2005-04-1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땡스투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거 아닌가요?
숨은아이님 페이퍼 읽을 때 자주 느끼는거 같아요. 이주의 페이퍼 상은 없나? ^^;;

숨은아이 2005-04-1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치카님, 으흐흐, 고맙슴다!

숨은아이 2005-04-1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도 팬이라면 책 한 권 정도는 읽어야... :p =3=3=3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 오늘 읽은 부분 중 특별히 새기고 싶은 말은 나비물과 벌물이다.

요즘도 가끔 길가에 난 가게에서 개숫물을 길에다 휙 뿌려 지나는 사람 옷에 물이 튈 때가 있다. 지나는 사람 없을 때 하거나 지나는 사람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 그러려면 좋으련만, 때로 무심코 끼얹은 물이 얼굴까지 튄다. 그럴 때면 멀쩡한 하수도 놔두고 왜 길에다 물을 버리나 낯을 찌푸리게 되지만, 실은 건조한 날 풀풀 날리는 먼지 가라앉히는 데는 그런 식으로 간간이 물을 뿌리는 게 좋을 터. 다만 좌우를 살피는 배려가 아쉬울 뿐이다.

집안에 화장실이나 욕실이 따로 없을 때, 마당의 샘(우물이나 펌프나 수도꼭지) 가에서 대야에 물을 담아 씻고 나서는 대야의 물을 옆으로 휙 끼얹어 마당이나 골목의 먼지를 재우거나 화단에 뿌려 물을 재활용한다. 그렇게 가로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을 “나비물”이라 한다.

나비 날개 모양으로 뿌린다고 해서 나비물일까? 그런데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 말고, “너비”도 나비라고 한다. 곧 “폭”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그냥 옆으로 길게 퍼지도록 끼얹는 물이라 해서 “나비물”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소한 생활 습관에도 따로 이름을 붙이다니, 재미있다.

벌물은 “논이나 그릇에 물을 넣을 때 다른 곳으로 흘러 나가는 물”, 곧 새는 물을 말한다. “저수지의 둑이 터져서 한꺼번에 넓은 지역에 넘쳐흐르는 물”도 벌물이라 한단다. 나비물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니듯, 벌물의 "벌"도 아마 왱왱 날아다니는 벌이 아니라 수로를 벗어난 물이 흘러드는 벌판을 가리킬 것이다.

벌물이란 낱말을 보니 바로 우리집에서 찻물을 끓이는 주전자 생각이 난다. 그 주전자는 주둥이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나오지 않고, 둥그런 아가리 한구석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래선지 아무리 자세를 잘 잡으려 해봐도 물을 따를 때 꼭 주둥이 한편으로 물이 새어 주전자 몸체를 타고 흐른다. 이놈의 주전자가 벌물이 새는 주전자로구나. 물이 아까우니 얼른 새 주전자를 장만해야 할 터인데, 게으른 탓에 몇 년째 그냥 쓰고 있다.

옆으로 새는 물이 벌물이니, 곁으로 새는 불은 벌불이다. 벌불은 심지가 갈라져 “등잔불이나 촛불의 심지 옆으로 뻗쳐 퍼지는 불”이다. 등잔불이나 촛불이 곧게 타오르지 못하고 “벌불이 생기면 벽에 어룽어룽한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울보 2005-04-1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보아도 새로운 한글..

숨은아이 2005-04-1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이라기보다 우리말. :-)

릴케 현상 2005-04-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재밌단 말이야^^

숨은아이 2005-04-1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말이요, 아님 제 글이요? ^^

릴케 현상 2005-04-1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글이 말이죠^^

숨은아이 2005-04-1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