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서 오늘 읽은 부분 중 특별히 새기고 싶은 말은 나비물과 벌물이다.
요즘도 가끔 길가에 난 가게에서 개숫물을 길에다 휙 뿌려 지나는 사람 옷에 물이 튈 때가 있다. 지나는 사람 없을 때 하거나 지나는 사람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 그러려면 좋으련만, 때로 무심코 끼얹은 물이 얼굴까지 튄다. 그럴 때면 멀쩡한 하수도 놔두고 왜 길에다 물을 버리나 낯을 찌푸리게 되지만, 실은 건조한 날 풀풀 날리는 먼지 가라앉히는 데는 그런 식으로 간간이 물을 뿌리는 게 좋을 터. 다만 좌우를 살피는 배려가 아쉬울 뿐이다.
집안에 화장실이나 욕실이 따로 없을 때, 마당의 샘(우물이나 펌프나 수도꼭지) 가에서 대야에 물을 담아 씻고 나서는 대야의 물을 옆으로 휙 끼얹어 마당이나 골목의 먼지를 재우거나 화단에 뿌려 물을 재활용한다. 그렇게 가로로 쫙 퍼지게 끼얹는 물을 “나비물”이라 한다.
나비 날개 모양으로 뿌린다고 해서 나비물일까? 그런데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 말고, “너비”도 나비라고 한다. 곧 “폭”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그냥 옆으로 길게 퍼지도록 끼얹는 물이라 해서 “나비물”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소한 생활 습관에도 따로 이름을 붙이다니, 재미있다.
벌물은 “논이나 그릇에 물을 넣을 때 다른 곳으로 흘러 나가는 물”, 곧 새는 물을 말한다. “저수지의 둑이 터져서 한꺼번에 넓은 지역에 넘쳐흐르는 물”도 벌물이라 한단다. 나비물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니듯, 벌물의 "벌"도 아마 왱왱 날아다니는 벌이 아니라 수로를 벗어난 물이 흘러드는 벌판을 가리킬 것이다.
벌물이란 낱말을 보니 바로 우리집에서 찻물을 끓이는 주전자 생각이 난다. 그 주전자는 주둥이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나오지 않고, 둥그런 아가리 한구석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래선지 아무리 자세를 잘 잡으려 해봐도 물을 따를 때 꼭 주둥이 한편으로 물이 새어 주전자 몸체를 타고 흐른다. 이놈의 주전자가 벌물이 새는 주전자로구나. 물이 아까우니 얼른 새 주전자를 장만해야 할 터인데, 게으른 탓에 몇 년째 그냥 쓰고 있다.
옆으로 새는 물이 벌물이니, 곁으로 새는 불은 벌불이다. 벌불은 심지가 갈라져 “등잔불이나 촛불의 심지 옆으로 뻗쳐 퍼지는 불”이다. 등잔불이나 촛불이 곧게 타오르지 못하고 “벌불이 생기면 벽에 어룽어룽한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