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외롭다고 말해 - 마음의 어두움을 다스리는 지혜, 마음을 여는 성장동화 2
범경화 지음, 오승민 그림 / 작은박물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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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도 않고서, 제목만 보고서 지난 추석 때 친정과 시댁의 두 조카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했어요. 시댁, 그러니까 큰집 둘째조카는 공부 잘하고 의젓한 언니, 그리고 막내에다 ‘아들’로서 귀염 받는 남동생 사이에 끼어 외로울 것 같았거든요. 겉으로는 활발하고 아무 걱정 없이 보이지만, 그 속을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이 아이가 더 어렸을 적에 집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외상이 있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워요. 친정 조카, 그러니까 언니의 딸은 개구쟁이 오빠에 비해 예쁘고 똑똑하다고 사랑을 듬뿍 받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외로움이 있을 거예요.

제목만으로 이 책은 위로가 돼요. 사실 외로울 때 외로운 건, 누군가에게 외롭다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데 돌아보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정말로 없지는 않을 거예요. 미처 돌아보지 못해서, 아니면 그 사람이 내 말을 들어줄지 몰라서 말을 하지 못할 뿐이죠. 그럴 때 용기 내어 한번 말해보라고, 이 책의 제목이 이야기해주네요.

머리말에서 지은이가 “눈이 크고 말이 없는 한 아이” 이야기를 했어요. 언니와 오빠는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렵고, 자기 또래의 친구들은 어려 보이고, 사람보다 책이 더 편했던 아이. 아, “눈이 크고”를 “눈이 작고”로만 바꾸면 바로 내 이야기예요. 부모님에게 이해 받지 못한 채 혼자 방문을 닫고 들어갈 때의 민주, 엄마도 아빠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가길 싫어할 때의 하승이, 체육 시간이면 괴로워한 진우도 꼭 나와 같아요. 그래서 민주, 하승이, 진우, 안나가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네요.

하지만 아쉬운 점은, 민주는 예쁜데다 공부를 잘하고, 하승이는 축구를 잘하고, 진우는 책이 많은데다가 컴퓨터도 잘하고, 안나는 수학을 잘한다는 것이에요.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공부도 못하고 축구도 못하고 컴퓨터도 못하고 책도 별로 없으며 특히 수학을 못하는 친구 이야기도 있다면 더 좋을 텐데. 그래서 별 네 개를 매겨요.

표지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그림이 참 좋아요. 민주가 혼자 문 닫고 제 방에 들어가서, 고개 숙이고 쪼그리고 앉은 그림은 특히 가슴이 뭉클했어요.

(* 덧붙임 : 로드무비님이 이 책 리뷰 쓰셨을 때, 책 읽고 나서 추천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너무 늦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진심으로 추천을 누를 수 있었어요. 하승이에 대해 이야기하신 건 제 마음 그대로였거든요. 하승이가 짐 쌀 때 저도 같이 울먹였고요, 하승이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모습을 저도 진짜로 보고 싶었어요. 저도 이 나이 되어서 주책없지 뭐여요. 하승이가 결국 민주에게 선물을 전하지 못한 것도 아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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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1-2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늦어서 호랑녀님께 죄송... <(__)>

깍두기 2005-11-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이 뭐가 눈이 작다고 그래요?^^

숨은아이 2005-11-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적 작은 편이구, 분명 크진 않거든요. ^^;

호랑녀 2005-11-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민망하여라...
제 친구가요, 전화했어요.
야, 네 책 없더라?
그래? 절판됐나부다. 어디서 찾아봤는데?
다 없어. 울고싶을 때 울어... 그렇게 검색했는데 안나오더라...ㅜㅜ

숨은아이 2005-11-2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호랑녀님...! 이렇게 훌륭한 책이 절판되면 안 되죠! 암요.

로드무비 2005-11-2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추천을 찾아서 누르셨다고요?
저랑 마인드가 좀 비슷하신가 봐요. 좋아라~~
저도 꾸욱 추천 누릅니다.

로드무비 2005-11-2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주하가 어제 하승이 편 읽고 너무 재밌다고 했어요.^^

숨은아이 2005-11-2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 제가 주하랑 같은 날 이 책을 읽었네요. 호호.

라주미힌 2005-11-2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되셨네용.. 짝짝짝... !!!

울보 2005-11-2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숨은아이님 래뷰당선되신것을요,,,

숨은아이 2005-11-2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라주미힌님, 울보님, 쑥스럽습니다. 생각지도 않던 리뷰가 뽑힌다더니, 정말 그렇네요. 고마워요.

로드무비 2005-11-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봤어요. 좋은 리뷰, 축하드려요!^^

숨은아이 2005-11-3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a

글샘 2005-11-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외로웁지만 외로웁다는 것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들의 무의식엔 얼마나 큰 얽매임이 가득할는지요. 숨은아이님의 따스한 마음에 알라딘에서 선물을 주셨네요. 축하합니다.^^ 짝짝짝~~~

숨은아이 2005-12-0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외롭지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아영엄마 2005-12-0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제가 아랫쪽 부분을 덜 살폈나 봐요... 숨은 아이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숨은아이 2005-12-0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영엄마님~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 알랭 드 보통(1994)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보다
좀더 신랄하고,
좀더 잘난 척하고,
좀더 길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젊은 남자의 심리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젊은 여자의 연애사.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보다
새로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이
더 두근두근.

그런데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와 마찬가지로,
처음 관계를 시작한 사람은 남자,
그리고 관계를 정리하는 사람은 여자다.
왜 그럴까?

한 가지 부러웠던 점,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여주인공 클로이도 그랬고, 이 책의 주인공 앨리스도 대학 입학 전 외국에서 1년간 머무른 경험이 있다. 빡빡한 학사 일정에 따라 진학하기에 급급하지 않고, 일하면서 외국 생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여유. 영국 청소년이면 대개 누릴 수 있는 여유인가, 아니면 작가인 보통처럼 유복한 집안 자녀들만 그런가?

그녀는 사랑의 영역에서 관광객임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울타리 밖으로 나가 애인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탐험하며 꿈을 시험해보는 호기심이 부족했다. (237쪽)

그래, 머릿속으로 이상적인 남자는 이러이러해야 해, 하고 정해놓고 거기에 상대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나?

리넨 드레스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292쪽)

음, 내가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을 사는 목적은?
(하, 하지만 안 사고 두었다가는 언제 절판될지 모른단 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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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사서 쌓아둔 책이 백권도 넘는다는 ㅠ.ㅠ;;;

panda78 2005-11-1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헌책방에서 구판 구해두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새로 나와서... ^^;; 흐흐..

숨은아이 2005-11-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저는 더더더더 심각해요. ㅠ.ㅠ
판다님/구판보다 번역이 더 좋다고 자신할 수 있슴미당. ^^

바람돌이 2005-11-1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쌓아두고 계속 사는건 범죄행위라고 저 혼자 결론지었음다. 근데 알라딘에서는 왜 이리 지름신들이 많단 말입니까? 결국 범죄없는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기 위해서는 알라딘을 떠야 될 듯..... 근데 이것도 맘대로 안되고.... 햄릿이 따로 없구만... ^^;;

숨은아이 2005-11-1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바깥세상은 더 험해요... 여기가 그나마 안전하다구요. (옷자락 붙들고 늘어진다.)

stella.K 2005-11-1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절판 생각하면 괜찮은 책들은 사 둬야 하는데 그게 또 맘 같이 안돼요. ㅜ.ㅜ

숨은아이 2005-11-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사고 싶은 책은 늘 백만원어치 있지만 정작 살 수 있는 책은 십만원어치도 안 되죠. ㅠ.ㅠ

릴케 현상 2005-11-1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라디오(양희은 목소리?)에서 미국 대학생들은 졸업할 때 다들 1년 정도 여행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아 오늘은 책 좀 훔쳐오라고 후배를 책창고에 투입시켰는데 성과가 어떨지...

숨은아이 2005-11-19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아, 그런가요? 아무튼 부러워요. 책창고에서는 반품된 책만 훔치시는 거죠?

릴케 현상 2005-11-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 결과를 봐야 알듯^^

숨은아이 2005-11-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1.
요즘에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학교 운동회 때면
편을 갈라서, 오재미를 던져 박을 터뜨리는 경기를 했다.
얼마 전에 오재미란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려고
국어사전을 찾아봤는데 나오지 않아, 왜 그럴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게 “모래나 콩을 넣은 놀이주머니”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라고 한다.
음, 그래서 사전에 없었구나. 그래도 널리 쓰인 말인데,
사전에 실을 만하지 않나?

방금 치카님 댓글 보고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온다.

오자미
「명」헝겊 주머니에 콩 따위를 넣고 봉하여서 공 모양으로 만든 주머니.

이번엔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이 틀렸나 보다!


2.
윤중로 벚꽃놀이라는 게 있다는 걸 서울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여태,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빙 둘러싼,
벚나무가 죽 늘어선 길 이름이 그냥 윤중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윤중로는 윤중제(輪中堤)란 말에서 나왔고,
이 윤중제란 “강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을 뜻하는
일본어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 : 輪中堤)를
그냥 우리 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뿐이라고 한다.
1968년 서울시가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섬 둘레에 방죽을 쌓고
거기에 윤중제란 이름을 붙였으며,
그래서 윤중제의 길(방죽길)을 윤중로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윤중제, 윤중로란 특정한 둑 이름이나 길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일본어 보통명사였던 것.
1986년 서울시가 윤중제를 여의방죽으로 고쳤다는데,
내가 잘 못 본 탓인지
“여의방죽” “여의방죽길”이 공식적으로 쓰이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냥 쉽게 강둑이나 섬둑이라고 하면 될 것을 그 뜻도 알기 어려운 일본 한자말을
굳이 갖다 붙이다니, 1960년대의 공무원들 참 못 말린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보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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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11-1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게다가 전 '오자미'가 표준어인줄알았어요.;;

숨은아이 2005-11-1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치카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조선인 2005-11-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글 보고 저도 여의방죽이라고 고쳤어요. *^^*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662918


숨은아이 2005-11-1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고마워요. ^^
 

장백이 여기 있었구나!!!! | 혼자 중얼중얼
2005.11.14

 

그 시장 골목을 떠나온 지가 6년 반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고대 앞 시장인데 많이 변했다. 지난 주 금요일 늦은 밤 그곳에 들릴 일이 있었다. 닭곱창집도 참 많았는데, 지금은 서너 개뿐이고 그나마 요즘 애들은 그런 걸 먹지 않는단다. 그래서 생곱창은 없고 냉동곱창뿐이란다. 허름한 술집에 닭곱창을 먹으로 드나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세상을 뒤집자던 이야기들로 넘쳐났던 곳이었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애들이 화려한 불빛이 있는 다른 곳으로 다 떠난 모양이다. 그래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도 있고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골목 입구 쪽에는 16년 전에도 있었던 호프집이 아직도 있다. 생맥주 한잔에 1700원, 여전히 싸다. 10000원이 넘는 안주는 저 아래 두어개 정도. 허름한 것도 예전과 같다. 테이블도 네댓개. 그런 곳이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참, 뭐가 달라졌나 두리번두리번하면서 가는데, 유리창에 체게바라 사진이 수십장이 붙여진 가게가 있었다. 뭘까 하고 가게 이름을 보니 '장백서원'이었다. 아 ! 장백이구나. 장백, 80년대, 90년대에 그 근처 학교를 어슬렁거렸던 사람들은 장백을 알 것이다.

   

장백은 서점이다. 단지 '책이 왼쪽으로 기울여 꽂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압수수색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던 때, 고대 후문에 있는 장백은 왜 책을 왼쪽으로 기울여 꽂아 두었을까 ? 장백이 털린다(압수수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는 돌과 화염병, 쇠파이프를 들고 장백을 지키러 갔다. 장백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과 공간을 내어주었기 때문에.......그래서 경찰은 압수수색하는데 진압장비를 갖춘 전경들을 닭장차에 싣고 나타난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오직 간사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변해버려서 또 개발에 밀려 -  그곳과 그 근처는 길이 넓어지고 지하철이 들어서고 먹고 마시는 노는 것들로 거의 메워졌다 - 그 자리를 내주고 학교에서 좀 더 먼 곳으로 밀려났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진리는 오갈 데가 없어 저 멀리 사라져가는 것처럼...장백을 살리자고 해서 회원을 모집했고 마침 직장에 다니던 나는 10만원을 냈지만 결국 장백은 문닫았다. 그리고는 신문 한귀퉁이에 장백도 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제 영원히 장백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 장백이 여기 있구나 ~ 장백이 여기 있어. 그 장백이 내가 생각하는 그 장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하고, 장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반가웠다. 발길을 멈추고 불꺼진 가게 안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정말 자그마한 곳에 많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다. 앞서가는 친구들에게도 말을 건네다. 저기 장백이 있어. 장백이....

  

나, 장백한테 돈 받아야 하는데, 내 투자금 돌려 줘~~~~~ 괜한 소리도 해 본다. 나, 장백한테 꼭 내돈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장백이 잘 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어쩔 수가 없구나 ! 내 돈 받으려면 또 투자를 하는 수밖에 ㅠ.ㅜ 

  

아래 글은 장백이 하고 싶은 말이란다. 그리고 장백이 회원을 모집한단다. 

  

  

“인문학만이 살 길이다”

자본의 경쟁력 시대이다.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은 지역 서점이 살아갈 길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시장의 원리를 내세우는 자유 경쟁은 무분별한 유통의 독점과 책이란 상품에 가치를 떨어드리는 결과를 가져 왔다. 출판의 다양성은 판매 부진으로 시장에서 사라진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이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판매 경쟁에서 비롯된다. 책의 경쟁은 필요한 정보와 교양과 인간 내면을 추구하는 삶의 지침서 일 때 올바른 의미를 찾는다. 지금의 도서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일반적 법칙을 조작한다. 독자들이 책을 다양하게 선택할 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사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할인 경쟁은 독자들을 기만하여 도서 가격 상승과 물류비용까지 소비자는 지불해야 한다. 각종 마일리지와 책 배송 무료의 선전은 이미 도서 가격에 포함되어 정해진다.

우리는 점점 책을 구경하면서 필요한 책을 고르는 재미를 잃어버린다. 출판의 흐름으로 세상을 읽던 시대는 사라졌다. 독서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여유는 없다. 다만 경쟁에서 이긴 승자만이 살아남는 서글픈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 경쟁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의 승리자는 되겠지만 인생의 기쁨을 맛보는 기회는 없을 지도 모른다. 장백은 지금까지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책만 판매하는 슈퍼마켓의 진열에서 벗어나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적 중심에 서 있었다. 한 해의 신간을 주제별로 정리한 도서기획전 행사, 각종 공연 활동과 학술 강연, 열린 세미나, 소식지 발행 등은 서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탄압했다. 이데올로기 색깔에 물들어 있는 현실은 장백에 존립을 궁지로 몰아갔다. 장백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동체적 조합의 체계와 문화적 연대의 모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벽은 높았다. 장백은 무너지고 있다. 인문학의 시대는 이제 개인화되고 각자의 세분화된 관심의 영역으로 흩어 졌다. “함께하는 희망 찾기!”는 이제 불필요하다. 필요한 정보는 손쉽게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대학 도서관 순위 1위가 무협지와 환타지 소설로 10년째 발표되어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대학의 학문은 건물에 갇혀 있거나 부동산의 가치만 남을 뿐이다. 인문 사회과학의 위기는 이미 1990부터 시작됐다. 장백 역시 그 위기를 건너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다. 희망이 있을까?

지역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은 전문성에 있다. 장백은 그 전문성을 인문학의 정신과 올바른 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문화적 공간에서 찾고자 한다. 그동안 인문 사회과학 서점은 대학가에 위치했다. 지역 서점과 구별된 차별성을 가지고 운영했다.

하지만 인문 사회과학 서점은 애석하게도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서점 운영을 개인의 정치성과 자본에 의존한 탓이 크다. 또한 지역서점의 역할 분담에만 한정지운 탓도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독서 시장은 아직도 부족하다. 대학과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공간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과 주변 초 중고등학교 그리고 인근 주민의 다양한 독서 운동을 조직하거나 지역 주민의 독서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역 서점이 참고서와 베스트셀러만을 주된 판매 방식으로 하는 것은 독서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장백은 전문성을 갖춘 지역 서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장백의 주인으로 당신을 모십니다.


투자 금액 : 일 만원

조흥은행 : 김용운 319-04-538366

문화를 열어가는 자치 공간 장백서원 02 6409-6258 016-9310-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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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1-15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장에, 떡볶이집이 없어졌다. 새벽 2시에도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산사춘 2005-11-16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장백서점 소식지(?) 열심히 얻어다 봤었는데!
그 필자들도 그립습니다.

숨은아이 2005-11-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산사춘님도 장백을 아시는군요!

릴케 현상 2005-11-1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아는 분이 두 달 동안 애 업고 알바했는데 월급을 못 받았다는-_-

숨은아이 2005-11-1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3권 세트를 샀더니 [코맹맹이 우리말 사전]이 딸려왔다. 책날개 부분의 글쓴이 소개에 [우리말 지르잡기]라는 책 제목이 나오기에 “지르잡기”가 무슨 뜻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해 보았다.


지르-잡다
[---따]
〔-잡아, -잡으니, -잡는[잠-]〕「동」【…을】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빨다.


앗, 저런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었구나. 어제 시어머니랑 큰시누 모시고, 막내시누의 막내시동생(음, 촌수가 어케 되나... -.-) 결혼식에 가서 음식 먹다가 분홍 셔츠에 흘려서(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흘리기 일쑤냐) 집에 와서 지르잡았는데. 희한하게 회사 다닐 적에도 보면 꼭 흰 셔츠 입은 날 자장면을 먹어서 옷에 튄 검은 얼룩을 지르잡아야 했다. 다른 색깔 옷을 입은 날 떡볶이 먹다가 흘리면 귀찮아 그냥 냅두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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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투리... 지리잡다 ㅜ.ㅜ

깍두기 2005-11-1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걸 뜻하는 말도 있군요. 역시 우리말이 최고여~^^

가시장미 2005-11-1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르잡다..으하하하! 제가 자주 하는 짓입니다. 뭔가를 많이 흘리기를 즐기거든요.
아주 좋은 말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참! 숨은아이님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몇 번 들렸는데... 이제서야 댓글을 남깁니다. ^-^ 안녕하세요!

숨은아이 2005-1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앗, 이 말을 알고 있었군요! *.*
깍두기님/ ^^
가시장미님/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다른 서재에서 가시장미님 자주 뵈었는데, 제가 요새 서재 친구 늘리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는지라... 와주셔서 고마워요.

2005-11-14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1-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오, 부쳐드려야죠. 오늘 한 번 더 보고 내일 부칠게요.
새벽별님/너무 풍부해서 허우적대고 있어요. ^^

하늘바람 2005-12-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 한국말 배우는 느낌이에요

숨은아이 2005-12-0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저도 그렇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