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장 골목을 떠나온 지가 6년 반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고대 앞 시장인데 많이 변했다. 지난 주 금요일 늦은 밤 그곳에 들릴 일이 있었다. 닭곱창집도 참 많았는데, 지금은 서너 개뿐이고 그나마 요즘 애들은 그런 걸 먹지 않는단다. 그래서 생곱창은 없고 냉동곱창뿐이란다. 허름한 술집에 닭곱창을 먹으로 드나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세상을 뒤집자던 이야기들로 넘쳐났던 곳이었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애들이 화려한 불빛이 있는 다른 곳으로 다 떠난 모양이다. 그래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도 있고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골목 입구 쪽에는 16년 전에도 있었던 호프집이 아직도 있다. 생맥주 한잔에 1700원, 여전히 싸다. 10000원이 넘는 안주는 저 아래 두어개 정도. 허름한 것도 예전과 같다. 테이블도 네댓개. 그런 곳이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참, 뭐가 달라졌나 두리번두리번하면서 가는데, 유리창에 체게바라 사진이 수십장이 붙여진 가게가 있었다. 뭘까 하고 가게 이름을 보니 '장백서원'이었다. 아 ! 장백이구나. 장백, 80년대, 90년대에 그 근처 학교를 어슬렁거렸던 사람들은 장백을 알 것이다.
장백은 서점이다. 단지 '책이 왼쪽으로 기울여 꽂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은 압수수색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던 때, 고대 후문에 있는 장백은 왜 책을 왼쪽으로 기울여 꽂아 두었을까 ? 장백이 털린다(압수수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는 돌과 화염병, 쇠파이프를 들고 장백을 지키러 갔다. 장백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과 공간을 내어주었기 때문에.......그래서 경찰은 압수수색하는데 진압장비를 갖춘 전경들을 닭장차에 싣고 나타난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오직 간사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변해버려서 또 개발에 밀려 - 그곳과 그 근처는 길이 넓어지고 지하철이 들어서고 먹고 마시는 노는 것들로 거의 메워졌다 - 그 자리를 내주고 학교에서 좀 더 먼 곳으로 밀려났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진리는 오갈 데가 없어 저 멀리 사라져가는 것처럼...장백을 살리자고 해서 회원을 모집했고 마침 직장에 다니던 나는 10만원을 냈지만 결국 장백은 문닫았다. 그리고는 신문 한귀퉁이에 장백도 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이제 영원히 장백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 장백이 여기 있구나 ~ 장백이 여기 있어. 그 장백이 내가 생각하는 그 장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하고, 장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반가웠다. 발길을 멈추고 불꺼진 가게 안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정말 자그마한 곳에 많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다. 앞서가는 친구들에게도 말을 건네다. 저기 장백이 있어. 장백이....
나, 장백한테 돈 받아야 하는데, 내 투자금 돌려 줘~~~~~ 괜한 소리도 해 본다. 나, 장백한테 꼭 내돈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장백이 잘 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어쩔 수가 없구나 ! 내 돈 받으려면 또 투자를 하는 수밖에 ㅠ.ㅜ
아래 글은 장백이 하고 싶은 말이란다. 그리고 장백이 회원을 모집한단다.
“인문학만이 살 길이다”
자본의 경쟁력 시대이다.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은 지역 서점이 살아갈 길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시장의 원리를 내세우는 자유 경쟁은 무분별한 유통의 독점과 책이란 상품에 가치를 떨어드리는 결과를 가져 왔다. 출판의 다양성은 판매 부진으로 시장에서 사라진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이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판매 경쟁에서 비롯된다. 책의 경쟁은 필요한 정보와 교양과 인간 내면을 추구하는 삶의 지침서 일 때 올바른 의미를 찾는다. 지금의 도서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일반적 법칙을 조작한다. 독자들이 책을 다양하게 선택할 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사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할인 경쟁은 독자들을 기만하여 도서 가격 상승과 물류비용까지 소비자는 지불해야 한다. 각종 마일리지와 책 배송 무료의 선전은 이미 도서 가격에 포함되어 정해진다.
우리는 점점 책을 구경하면서 필요한 책을 고르는 재미를 잃어버린다. 출판의 흐름으로 세상을 읽던 시대는 사라졌다. 독서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여유는 없다. 다만 경쟁에서 이긴 승자만이 살아남는 서글픈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 경쟁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의 승리자는 되겠지만 인생의 기쁨을 맛보는 기회는 없을 지도 모른다. 장백은 지금까지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책만 판매하는 슈퍼마켓의 진열에서 벗어나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는 문화적 중심에 서 있었다. 한 해의 신간을 주제별로 정리한 도서기획전 행사, 각종 공연 활동과 학술 강연, 열린 세미나, 소식지 발행 등은 서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탄압했다. 이데올로기 색깔에 물들어 있는 현실은 장백에 존립을 궁지로 몰아갔다. 장백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동체적 조합의 체계와 문화적 연대의 모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벽은 높았다. 장백은 무너지고 있다. 인문학의 시대는 이제 개인화되고 각자의 세분화된 관심의 영역으로 흩어 졌다. “함께하는 희망 찾기!”는 이제 불필요하다. 필요한 정보는 손쉽게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대학 도서관 순위 1위가 무협지와 환타지 소설로 10년째 발표되어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대학의 학문은 건물에 갇혀 있거나 부동산의 가치만 남을 뿐이다. 인문 사회과학의 위기는 이미 1990부터 시작됐다. 장백 역시 그 위기를 건너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다. 희망이 있을까?
지역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은 전문성에 있다. 장백은 그 전문성을 인문학의 정신과 올바른 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문화적 공간에서 찾고자 한다. 그동안 인문 사회과학 서점은 대학가에 위치했다. 지역 서점과 구별된 차별성을 가지고 운영했다.
하지만 인문 사회과학 서점은 애석하게도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서점 운영을 개인의 정치성과 자본에 의존한 탓이 크다. 또한 지역서점의 역할 분담에만 한정지운 탓도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독서 시장은 아직도 부족하다. 대학과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공간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과 주변 초 중고등학교 그리고 인근 주민의 다양한 독서 운동을 조직하거나 지역 주민의 독서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역 서점이 참고서와 베스트셀러만을 주된 판매 방식으로 하는 것은 독서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장백은 전문성을 갖춘 지역 서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장백의 주인으로 당신을 모십니다.
투자 금액 : 일 만원
조흥은행 : 김용운 319-04-538366
문화를 열어가는 자치 공간 장백서원 02 6409-6258 016-9310-6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