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무등경기장(야구장)에서 응원소리가 들려올 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지리선생님 그 소리를 듣더니 말씀하시기를,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
"남 돈 버는데 뭐 좋다고 저렇게 박수치고 소리지르는지 몰라"
어, 생각해 보니 그렇기도 하네.
어렸을 때는 야구글러브가 우리 동네에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비료나 사료 속포장지를 접어 글러브로 사용했다.
그 종이는 습기를 막기 위해 기름이 먹여졌으니 질겼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기름이 없는 속포장지도 괜찮았다.
그것마저 없을 때는 비닐포장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큰 자형 글러브를 우리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포수 미트 하나와 야수용 미트 하나.
그 글러브는 곧 우리 동네 공용 글러브가 되었다.
그 글러브를 사용하는 사람은 포수와 1루수였다.
야구 방망이도 나무를 잘라 깍아 만들었고,
추수 후 논바닥이나 묘가 여기 저기 있는 뒷동산이 야구장이었다.
그렇긴 했어도 야구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였다.
하지만, 난 돈을 내고 야구장에 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야구장에서보다 집에서 티비로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렇다고 한번도 야구장에 가보지 않을 것은 아니다.
매년 요때 두 대학이 벌이는 야구 시합을 몇번 보러 간 적은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일상 속에서 정치의 場"을 만들어야한다는 명분으로,
졸업한 후로는 그냥 야구 보러 한두번 갔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는 운동장 주위에 그리고 그 안에 정치적인 구호를 담은
펼침막이 많이 걸려있었고, 다음 날 체육행사 뒤에 거리행진을 했었다.
어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희망하는 걸개그림 하나만이 있었다)
어제는 난 사무실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 먹고,
학교 다닐 때 사귀었지만 한번도 야구장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각시와 함께 야구장으로 향했다.
빨간 벌레와 파란 벌레(울 각시의 표현이다)가 가득한 경기장에서
각시는 사진 찍다가 졸려, 배고파, 왜 저렇게 됐어 그 말만 반복하였고,
다음 스케줄인 영화 보기를 위해 경기가 끝나자 마자 경기장을 떠났다.
모처럼 직접 야구장에 가 보게 되어 즐겁기도 했지만,
기껏 체육행사 들러리나 된 것인지 경기장 밖에 있는 풍물패와
외야석 저 멀리 달랑 하나 있는 걸개그림을 보면서,
저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씁쓸한 생각을 동시에 갖게 한 하루...
내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