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갖게 된다. | 좋은 글 퍼나르자
2005.10.31

 

민주노동당이 도대체 뭘 하는지 또는 뭘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특히 노동문제에 있어 노동부는 재경부나 산자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라고 하고, 그 산하 기관도 역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래 글은 아주 작지만 매우 소중한 결과 중에 하나다. 그 외에 기억나는 것을 예로 들면, 연봉제 등에 퇴직금을 포함해 지급해도 된다는 취지의 노동부 행정해석을 변경시키거나, 사실상 사용자인 원청 업체가 하청업체에 있는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했을 때 그들도 형법상 부당노동행위(노동3권 침해행위를 말한다)의 공범으로 처벌하겠다는 지침을 마련케 하거나 하였다. 그것을 위해 실무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안다. 뭐, 별 것 아니네 할 수도 있지만 꼼꼼히 들여다 보면 노동자들의 소중한 권리 찾기에 소중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아래 내용도 위에서 말한 것들 중 하나다. 노동자 복지가 어쩌고 하면서도 정작 노동자 복지를 위한 아주 작은 것들에는 무심한 노동부나 그 일을 직접 하는 담당자(아래 내용에서는 근로복지공단)들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그래서 하지도 못한, 아니 어쩌면 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사업주 날인 없어도 산재신청 가능”

노동부, 산재신청서에 ‘사업주 날인 없어도 된다’는 문구 기재키로

 

앞으로 노동자가 산재요양 신청 시 사업주 날인을 받지 않아도 신청할 수 있다는 ‘문구’가 신청서에 포함된다. 노동부는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사업주 날인을 폐지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은 내용의 답변을 내놨다.


‘사업주 날인’이 산재노동자 발목 잡아


단병호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요양신청서에 사업주가 날인하지 않으면 산재신청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사용자들도 이것 때문에 산재신청을 방해하고 있다”며 “사업주 날인을 없애라”고 노동부에 요구했다.


실제 노동현장에선 산재요양 신청 시 산재노동자들이 ‘사업주 날인’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또는 아예 사업주 날인을 받지 못하면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장은 “민주노총으로 오는 산재상담 중 ‘사업주가 도장을 안 찍어주는데 어떻게 하냐’는 사업주 날인에 관련한 문의가 가장 많다”며 “하지만 현행 사업주가 날인하지 않아도 사유를 첨부해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가 많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자포자기’ 하는 산재노동자가 상당수 된다는 주장이다.


김갑경 산재노동자협의회 상담부장도 비슷한 지적이다. 그는 “건설쪽에서 심한데 하도급 관계에서 사업주는 다시 공사를 따야 하니까 산재노동자가 사업주 날인을 요구하면 거의 안 해준다”며 “설사 사업주 날인이 없어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나이든 건설노동자들은 산재신청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사업주 날인’ 문제는 이주노동자에서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 “‘사업주 날인 없어도 돼’ 문구 넣겠다”


이같은 현실에서 단병호 의원은 “사업주 날인 폐지”를 요구한 것. 그러나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폐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는 답변을 통해 “요양신청시 사업주 확인을 받는 이유는 재해발생 관련사실의 입증 및 자료제출 등에 있어서 사업주가 조력하도록 함으로써 업무상 재해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주 날인을 당장 폐지할 경우 오히려 업무상 재해 여부 판단에 장기간이 소용돼 재해근로자들이 신속히 보상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단병호 의원은 “당장 없애는 것이 곤란하다면 요양신청서에 사업주가 날인 거부 시 그 사유를 첨부해 제출가능하고 사업주는 날인에 조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문구를 기재하라”고 요구하자, 노동부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


노동부는 “(우선) 노동부·공단 홈페이지에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할 경우 그 사유를 첨부해 요양신청서를 제출하면 산재신청이 가능하다는 명시적 문구를 등재하겠다”며 “요양신청서에 동 문구를 기재하는 것은 추후 관련규정 개정 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올 연말 공단 서식규정을 정비할 계획으로 이때 이같은 문구를 반영할 예정이다.


“문구 기재, 중세영세노동자에게 도움될 것”


이에 대해 일단 단병호 의원실은 “궁극적으로는 사업주 날인은 폐지돼야 하나 당장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기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단병호 의원실 강문대 보좌관은 “폐지까지 가지 못해 아쉽지만 사업주 날인이 없어도 된다는 문구가 삽입되면 산재노동자들이 심리적 압박 없이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사업주 날인이 폐지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근본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주 날인이 산재처리 절차에서 ‘진입장벽’ 역할을 하면서 ‘산재은폐’의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 이에 사업주 날인 제도를 폐지하는 동시에,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재해노동자의 소속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산재신청 시 소속사업장을 명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으로 ‘선보장 후평가’ 제도를 도입해 산재신청 절차에서 담당의사가 직접 산재노동자의 소속사업장을 확인해 산재신청을 하도록 하면 사업주 날인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5.10.28.)

원글 있는 곳 : http://blog.daum.net/cyseok71/409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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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놀고 먹는 놈들 틈에서 애쓰네요...

숨은아이 2005-11-0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고 먹는 놈들이라뇨. 다른 의원들은 다 편갈라 먹기 하느라고 바빠요. ^^

글샘 2005-11-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노당의 분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숨은아이 2005-11-0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잘못하는 것도 많다고 합니다만, 박수 보내고 싶지요, 이번에는. ^^

글샘 2005-11-0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하는 국회의원 잘하면 이상한거죠. 유시민이가 라운드티 입고갔을 때 국회의원들이 깝죽댔지만, 민노당 의원들 개량한복 입고 다녀도 아무도 딴지 걸 수 없다는 건 통쾌한 일입니다. 그만큼 진보는 사소한 데서 오는 것 아닐까요?
노동당이란 말을 내걸 수 있는 만큼 말입니다. 그나마 진보를 표방하는 당은 여기밖에 없으니 힘을 실어 주고 싶네요. 특히 저렇게 훌륭한 일을 했을 경우에는 더욱!!

숨은아이 2005-11-0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보는 사소한 데서 오는 것이란 말씀에, 동감합니다.
 



전에 하라 히데노리 작품 중에 “연인”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게 바로 그 책인 모양이다. 독립적이면서도 너그러운 여주인공, 아야. 어여쁜 여성인 그가 관계의 종말을 짐작하고도, 끝까지 매달리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게 관계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안다. 나도 몇 번 있는 연애 경험을 주로 “차이는” 쪽으로 끝냈는데, 그게 헤어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랬다. 아마 자주성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친구 사이든 애인 사이든 늘 좋을 수만은 없다고, 싫고 미운 점도 다독이고 고쳐가면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내가 좀 덜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어쨌거나 이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랬다. 물론 순진한(!) 스무 살 무렵의 생각이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다. 그 뒤로 애정 관계에서는 자기감정에 이기적일 만큼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튼 그래서, 아야가 “울면서 끝내는 것만은 안 하겠다고 맘먹었는데...” 하면서 펑펑 울 때,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가슴이 아파서 한동안은 다시 이 만화를 보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빌려주신, 물장구치는금붕어님께 감사!

표지가 재미있다. 표지 사진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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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05-1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을 예감하고도 차인다는건 관계에 충실한 것... 가슴에 와 닿아요 ^^

처음 뵙겠습니다.

숨은아이 2005-11-0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티필름님 반갑습니다. ^^

릴케 현상 2005-11-0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흥미가 동하네요

숨은아이 2005-11-0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superfrog 2005-11-0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저는 왜 이 페이퍼를 못 봤지요?? 주먹이 운다 쓰신 건 봤는데, 거기서 많이 슬펐다고 언급하신 거까지는 봤는데.. 그 담에 뭘했더라..??
아.. 그렇게 감정이입을 하셨군요. 저 작가 작품은 색깔이 참 여러가지에요. h2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청공도 있고, 시소게임이라는 책도 있고..
재밌게 보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재밌게 보신 거 맞죠?^^;;)

숨은아이 2005-11-0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재미있게 봤죠! 이제라도 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
 

주먹이 운다(2005, Crying Fist)




참으로 불친절하구나.
역경을 딛고 일어선 복서, 관객들의 기원과 함께 화려하게 빛나는 승리의 순간,
뭐 그런 승리 드라마라야 속이 편할 텐데,
잔인하게도, 어느 한 편을 응원할 수 없이 만들었다.
나란히, 따로따로 진행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
두 사람에게는 모두 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고,
또 이긴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 역전, 앞으로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란 보장도 없다.
승자와 패자를 동등하게 대우함으로써,
속 편히 승자를 축하해주지 못하고, 눈물 찔끔 흘리게 하는,
잔인한 감독이여.

덧붙임 : 천호진은 요새 조연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 많은 장면 나오지도 않으면서,
짧지만 인상적인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멋지다.


134 분 / 15세 이상 관람가 / 2005-04-01 개봉
제작사 : 시오필름(주), ㈜ 브라보 엔터테인먼트 / 배급사 : 쇼이스트(주) /

감독/류승완
출연/최민식 류승범 임원희 천호진
각본/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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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1-0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류승범의 영화로 기억합니다.
최민식의 연기가 나빴던 건 아니지만, 이미 다른 영화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줬고, 더 나가기는 힘들어 보여요. 반면 류승범은 반짝반짝 빛이 나더군요. 천호진도 좋았지요. 천호진은 오히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조금 어색했어요. -_-;

릴케 현상 2005-11-0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호진이 누구더라?

숨은아이 2005-11-0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그렇군요. 그런데 전, 최민식이 힘겹고 보잘것없는 인물인 배역에 맞춰 진짜 힘겹고 보잘것없는 인물이 돼버린 것 같아서, 대단하다 싶었어요.
산책님/이 아저씨지요. ^^




숨은아이 2005-11-0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님께서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으시는 듯. ^^ 류 감독 영화는 정확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아무튼 점점 더 영화를 잘 만드는 것 같습디다. ^^

어룸 2005-11-02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게을러서 아직도 안봤어요...캐치온에서 계속해주는데도!! ^^;;;;;;;

숨은아이 2005-11-0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반가워요! ^ㅂ^ 캐치온에서 계속 해주는데도 결국 홈cgv로 넘겨버리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릴케 현상 2005-11-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 사람 아닌가 했는데^^ 이중간첩에도 나왔죠^^

숨은아이 2005-11-0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범죄의 재구성"에도 나오고, 얼마 전 TV에서 보니까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나왔더군요.

릴케 현상 2005-11-0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왜 생각 안 나지?

숨은아이 2005-11-0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형사로 나와요. "단디 해라, 단디"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선 권상우 아버지로 나왔어요.

릴케 현상 2005-11-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는 생각나네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6개월은 된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끌다니 너무 심했지. 그게 처음에는 밤에 잠 안 올 때 읽기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외출할 때 전철 안에서 읽기로 한 탓에 그렇다. 요 6개월 사이에 전철 타고 외출할 일이 한 달에 서너 번이나 될까 말까 하다 보니, 이 책이 가방 속에서 그냥 잠자는 날이 많았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라는 주제를 달고 있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제는 “비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사회의 경향과 한국 사회, 그리고 세계적인 질서를 견주면서 끊임없이 “자아와 타인에 대한 비폭력”을 주장한다. 박노자 선생의 첫 책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비판”이라면 이 책은 비판과 함께 대안 모색이랄까. 2002년에 나온 책인데,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는 되풀이되고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라 뭐라 덧붙일 말도 없다.

앗,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구나. 노르웨이에서 군대 해산을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군대를 해산시키는 대신 나토 기부금을 늘려 안보 분야에서 나토에 의존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노르웨이군의 기존 전략이 어차피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며 나토 구원군 도착을 대기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는 사실로 보면, 그렇게 놀라운 발상은 아니”라고 한다. 으허, 군의 전략이 나토군 도착을 기다리며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는 거라니? 혹시 한국군의 기본 전략도 ‘침공을 며칠 동안 저지하며 미군이나 유엔군의 도착을 대기’하는 거 아냐? 그렇거나 말거나, 그런 생각이 군대 해산의 기본 주장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국 젊은이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대신(군대라는 강제적 살인 기관 속에 몰아넣지 않는 대신), 돈을 내어 타국 젊은이들의 군대에 기대겠다는 것 아닌가? 좌파는 같은 군대 해산을 주장하면서도 이와 달리 “공동 스칸디나비아 병력의 창립과 구소련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와 지원을 통한 전쟁발발 위험의 봉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책의 끝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징역형을 받은 오태양 씨와 지은이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가 “데몰리션맨”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런데 어젯밤에 마침 케이블 TV에서 그 영화를 해주더군.) 실베스타 스탤론과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이 영화에서는 시대 배경이 2032년인데, 이 시대에는 누군가 욕을 하면 경고와 함께 벌금을 물리는 쪽지가 벽에서 튀어나오고, 악당들은 모두 냉동된 채 잠들어 있어 폭력 범죄라는 게 없다. 이 부자연스러운 사회를 실베스타 스탤론이 남성적인 박력으로 뒤흔든다. “비폭력”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이처럼 무식하게 드러낸 영화도 없지 않을까. 시민을 항상 감시하고 단지 욕만 못하게 하는 것이 어찌 비폭력이라 할 수 있을까. 범죄자에게 신체와 생활의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이 어찌 비폭력이라 할 수 있을까. 욕만이 언어폭력일까? 욕은 단 한 마디도 없이, 아주 점잖고 세련된 말만으로, 얼마든지 사람을 짓밟을 수 있다.

눈에 쏙쏙 들어오는 박노자 선생의 글을 읽다가, 이 사람은 어째 이렇게 읽기 좋게 글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살론]의 재미없는 번역을 읽던 참이라 더욱 비교되었다.) 그건 이 사람이 신문 기사처럼 글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웬만한 번역서보다, 아니 초등학교 국어부터 다시 배웠으면 싶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제멋에 겨운 글보다 훨씬 문장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심지어 토박이 작가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보다 그의 글이 더 이해하기 쉽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사투리와 국문학을 소홀히 하며 자란 탓에 토박이 우리말을 종횡무진 구사한 글은 외국어만큼이나 한 번에 읽어 내리기 어려운, 슬프고 부끄러운 사정이 있다. 그런데 딱 신문에 나오는 정도 어휘를 가지고 해야 할 말을 정확히 간결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그냥 술술 읽어 넘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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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교수에게서는 점잖은 학자의 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5-11-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디터로 쓰기 눌러야 댓글 저장됨!)

6개월 동안 꼼꼼히 읽은 리뷰답습니다.

박노자 씨의 글은 정말 쉽게 재밌게 읽히죠?^^


릴케 현상 2005-11-0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방에 있는 한국군의 임무는-적어도 사병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3분간 적을 저지하며 전멸하기예요^^

숨은아이 2005-11-0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점잖고 명랑한 학자의 냄새가 풍기죠. ^^
로드무비님/댓글 한번 날리셨군요. 이런... 시간만 오래 걸렸지 꼼꼼하게 읽느라고 그런 건 아닌데... ^^a 공감 고맙습니다.
산책님/흐음, 그 소린 들어본 것도 같아요. -ㅂ-;

릴케 현상 2005-11-02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근데 병장들의 속셈은^^ 3분 채우기 전에 자살하겠다는 쪽이던데~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려나 ㅋㅋ

숨은아이 2005-11-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없어야겠죠.

마태우스 2005-11-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읽었어요. 같은 책 읽으니 반가운데요? 박노자의 존재가 우리에겐 참 소중한 것 같습니다.

숨은아이 2005-11-0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독서량을 제가 따라갈 수가 있나요. ^^
 

“아차,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고 할 때,
나는 그만 ‘간발의 차이’를 발 반쪽 차이, 그러니까 반걸음 차이쯤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 보니,
간발이 間髮(머리카락 사이)이라지 뭔가!
이는 아주 작은 차이를 이르는 일본말 간파쓰(間髮)를 그대로 옮긴 말이란다.
그래서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는
‘간발의 차이’ 대신 종이 한 장 차이, 터럭 한 올 차이라고 말하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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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구만... 그럼 종이 한장 차이~ 근데 이상하네 ㅠ.ㅠ;;;

숨은아이 2005-11-0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란 말도 있잖아요. ^^

물만두 2005-11-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실생활에서는 길어서 불편할 것 같아서...

릴케 현상 2005-11-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발,의, 종,이,한,장,, 한 글자 차인데요^^

라주미힌 2005-11-0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터럭 차이... 어때요...

숨은아이 2005-11-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짓장 차이라고 할 수도 있죠. ^^

어룸 2005-11-0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대학다니면서 당구칠때 입에 붙은 '깻잎한장차이'를 주로 씁니다만...ㅋㅋㅋㅋ

숨은아이 2005-11-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표현 멋져요, 깻잎 한 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