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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반양장) -전16권
박경리 지음 / 솔출판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2002. 8. 10
박경리, <토지>(전 16권), 솔, 1993~1994
임우기 정호웅 편, <토지사전>, 1997
<태백산맥> <아리랑> <혼불> 등등 굵직굵직한 대하소설이
탄생한 1980~1990년대부터 소설로 우리 현대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소설이라는 한계가 분명함에도,
권력과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는 밝힐 수 없었던
진실이 문학의 울 안에서 간신히 고개를 내밀곤 했습니다.
그 거대한 문학적 담론의 흐름 맨 앞자리쯤에
<토지>가 있지요.
1969년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1973년 삼성출판사에서 간행,
1974년 삼성출판사에서 [토지] 2부를 간행,
1978년 [토지] 3부를 [주부생활]에 연재, 1979년 3부 완결.
1980년 삼성출판사에서 [토지] 3부 간행,
1988년 [토지] 1~4부를 삼성출판사에서 간행,
그리고 1994년 5부로써 <토지> 전작을 완성합니다.
솔 출판사에서는 1993년 6월 [토지] 1부(3권), 2부(3권),
3부(3권), 4부(3권)를 재출간하고,
5부는 1권을 93년 6월, 2권을 그해 12월,
3권을 94년 4월, 4권을 그해 9월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2002년 1월 나남 출판사에서
다시 21권으로 재편집에 출간했지요.
16권짜리 소설을 어떻게 21권짜리로 만드는가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 예전 소설은
활자도 작고 행간도 빡빡하고, 그다지 읽기 편하게
편집하진 않았어요.
(전 사실 활자가 큰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글줄을 줄줄이 읽어 내리지 않고,
어린애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보거든요.
그것도 글자 모양을 눈으로 더듬듯이 획을 따라가며
단어의 의미를 파악합니다.
그래서 글자가 크면 피곤해요.
어쨌거나 그래서 전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지만,
글자마다 다른 느낌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요새 바쁘게 읽다 보면,
게다가 이런 대하소설을 읽다 보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휙휙 넘어가곤 하지요.)
<토지>를 다 읽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밖에 읽질 못했기에
제가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정말 1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작가는 25년에 걸쳐서 썼는데요 뭐.
사실 처음엔 최참판댁이라는 양반집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인 줄 알고 시큰둥하니 읽기 시작했습니다.
96년부터 이사다닐 때마다 짐짝처럼 끌고 다녔으니
이제는 읽어 봐야겠다 싶어서.
그런데, 최참판네 이야기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8월 15일에 이르는 이 거대한 서사의
한 구성요소일 뿐, 소설의 가지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뻗어나가 지리산 속으로, 서울로, 남원으로 진주로,
도쿄로, 간도로, 하얼빈, 상하이, 연해주까지,
그리고 곳곳에서 숨차게 삶의 행군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껴안고 있었습니다.
1부의 주인공은 참판댁 외동딸 최서희와 하인 길상이라기보다
오히려 마을의 소작농 용이와 무당의 딸 월선이고,
2부에 와서야 서희와 길상이 전면에 나서지요.
그리고 3부는 이상현의 방황,
4부는 명희와 인실이라는 인텔리 여성의 길,
5부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 갈피갈피에 등장하는 사람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물이 없지요.
저는 그 중에서도 정석이라는 남자와 야무어매가 마음에 남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제가 우리말을 얼마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그리고 현대사도.
그래서 결국 <토지사전>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표지에는 임우기 정호웅 편이라고 되어 있지만,
책 안쪽에는 솔 출판사 발행인이며 문학평론가인 임우기씨는 책임 편집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이며 문학평론가라는 정호웅씨는 감수자로
나와 있고 편찬위원이 따로 아홉 분 계시네요.
대개 국문과 석사나 박사과정 중에 있는 분들로 구성된
토지사전 편찬위원 중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 선생이 끼어 있습니다.
이 <토지사전>의 도움을 받은 바가 꽤 되긴 하지만,
완전히 마음에 드는 사전은 아닙니다.
인명 부분에 누락된 사람도 꽤 되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풍습을 소개할 때
소설 속의 맥락에 맞게 해설하지 않고
관련 문헌자료를 짜깁기한 흔적도 여실하거든요.
외국 문물에 대해서는 너무 간략히 설명해 놓기도 하고.
예를 들어 본문에 '쟌자꼬'라는,일본에서 아이에게 입히는 옷이
나오는데,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을 때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생긴 옷인가 궁금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이 사전에는 기껏 "일본 아이옷의 일종. 소매가 없는 웃옷"
이라고 나옵니다.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소설 자체에서 거대한 사건이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뭔가 책략을 꾸미는 듯, 독립운동을 위한
모략을 짜는 듯 분위기만 풍기고,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뭔가 탕 터지는 게 없지요.
그 점이 조정래 선생의 소설들과 다릅니다. 그래서,
1부는 매우 역동적이지만 그 후에는
역사의 흐름을 탈 뿐입니다. 물론 그 흐름 속을 산
사람들의 질긴 물밑 인생을 그리긴 했지만요.
그건 소설 <토지>의 특징이랄 수도 있겠지요.
<토지>에서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여성들의 형상입니다.
두만네, 야무어매, 성환할매, 천일네 같은 선량하고도
슬기로운 농민 여성들을 표현할 때와 달리,
교육받은 신여성들은 유인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딘가 인격적인 흠이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지요.
서희까지도. 남성들이 소설의 흐름 전면에 나서서
성장해 가는 것과 비교됩니다.
또 용모 묘사도 그렇습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잘생겼고, 악인은 흉측하게 생겼지요.
중요 인물 중에서도 조병수는 곱추로 나오고
송관수는 가늘게 째진 눈이 못생긴 사내,
몽치는 울뚝불뚝 못생겼다고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당대 사람들의 단점과 약점까지 그런 식으로
표현했는지 모르지요. 신언서판이라 하여 용모를 차별하고,
또 어쨌거나 여자를 2등 인간으로 치부하고...
(예를 들어 아내를 때리는 문제. 사람이 좋아서
때리지 않고 여자를 아끼는 것이지 서방이 안사람 때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분위기.)
소설에서 홍이의 딸 상의는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상의는 통영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자라고 진주에서 여학교를 다니며
책 읽고 글 쓰기를 좋아하지요.
작가 박경리 선생은 1926년에 충무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했다니 얼추 상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소설 속 하동이나 하얼빈 등등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지만
그래도 통영 이야기를 할 때 왠지 가장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통영에 꼭 가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