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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이야기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2
이지유 지음, 이시우 감수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3. 2. 18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


이지유 글·그림, 이시우 감수, 미래M&B,
2001년 3월 1판 1쇄 발행, 2002년 12월 1판 7쇄 발행. 1만 2000원.


어린이를 위한 지식 정보 책은 참 만들기 어렵습니다.
'좋은' 어린이 지식 정보 책은 더욱 그렇지요.

어린이를 위한 책은 먼저 재미있어야 합니다.
모든 책이 다 재미있어야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책은 더욱 그래요.
그래야 생명력이 유지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책을 쓰는 사람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어른이에요.
어른은, 어린이가 느끼는 '재미'를 알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정확해야 합니다. 특히 문학이 아니라
지식이나 정보, 창의성을 자극하려는 책은 시적 변용이 허용되지 않거든요.
여기다 '좋은' 어린이 지식 정보 책은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즉문즉답과 같은 책, 외워야 할 교과서가 아니라
어린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 되어야 해요. 이러니 어려울 수밖에.

지식 정보 책을 만들려면 먼저 '글'이 있어야 하는데,
재미있게 어린이의 지식욕을 자극하고 또 채워 주면서
그 내용이 정확한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해당 분야를 잘 알며,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를 찾기란.
게다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어제의 정설이 오늘은 거짓으로 판명되기도 하는)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틀린 지식'을 버젓이 책에 실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러한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 책이랍니다,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는.

서울대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과학 교사로 활동하다가 천문학과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천문학자의 아내인 이지유 선생은,
천문학을 공부했으며, 아이들을 상대했으며,
또 어린 자녀를 키우며,
게다가 현재 천문학자랑 같이 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
222쪽에서는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영천으로 도청이 옮겨지면
보현산 천문대가 무용지물이 되는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역을 개발할 때 흔히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짚어 준 점이 매우 좋습니다.
224쪽에서 프랑스에서 만든 망원경을
보현산 꼭대기까지 어떻게 옮겨야 했는지 말하고,
<등산가? 기술자? 천문학자?>라는 꼭지에서는 천문학자의 일상을 알려 줍니다.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정말 살아 있는 이야기이지요.
이런 부분 때문에 이 책 한 권, 사서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뒤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 볼 만한 인터넷 사이트와 천문대,
볼 만한 책과 영화도 소개해 놓고,
천문학의 역사도 보기 편하게 정리해 놓았어요.

 

*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의 글은

어린이신문 <굴렁쇠>에 연재를 시작할 당시,

미래M&B의 이수애 편집장이 섭외하여 책을 위한 원고를 구성하는 동시에

신문 연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글쓴이 이지유 선생은 <...우주 이야기> 다음에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화산 이야기>를

굴렁쇠에 연재했고, 이 역시 최근 미래M&B에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 후 이지유 선생은 굴렁쇠에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몸 이야기"를

연재했습니다. 


* 어느 모임에서 이 책을 기획 편집한 이수애 편집장을 만났고,

그분을 통해 이지유 선생께 이 책에 대한 "딴지걸기"를 긴 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 하나, 정말 성의 있게 답변해 주셔서 크게 감동했습니다.

정말 멋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있었던 옥의 티는 재쇄 찍을 때 수정한다 하셨고, 또 메일의 내용을 다 이야기하려면

너무 기니까 여기선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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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구멍 길벗어린이 과학그림책 5
이혜리 그림, 허은미 글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3. 1. 7

가끔씩, 어린이를 위해 만든 책을 삽니다.
예전엔 조카들에게 선물하려고 샀는데, 요샌 저를 위해 삽니다.
참, 새로운 자극을 주는 멋진 책들이 많아요.
우리 어릴 때는 왜 이런 책들이 없었을까요?

허은미가 글을 쓰고, 이혜리가 그림을 그리고, 문승연이 디자인해서
돌베개어린이에서 출판한 32쪽짜리 그림책 <우리 몸의 구멍>은
"구멍"이라는 기제로 우리 몸을 보여 줍니다.

만화체 그림이지만 명쾌하고 생동감 있어,
말로 하면 어려울 우리 몸의 구조를 쉽게 설명하지요.

우리 몸에 대한 지식만을 전달할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우리 몸에도!) 흔하게 널린 "구멍"의 의미에 대해
은연중 깨우치게 합니다. 구멍은 "소통"을 뜻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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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열차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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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 1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시리즈


전부터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해 해문에서 나온
80권짜리 문고판 전집을 계속 사들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64권을 모았으니 16권만 더 사면 시리즈를 전부 갖추게 됩니다.
한동안은 절판된 듯 헌책방이나 대여점 정리 판매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2000년 들어 다시 나오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책값을 올린 채(4500원) 서점에 대거 등장했거든요.

제 책꽂이의 이 시리즈 책들 판권을 훑어보니,
1985년에 나오기 시작해(당시 책값 1500원)
80년대 말 중판을 내면서 1500원으로 유지하던 책값을
2500원으로 올리기 시작, 그리고 90년대를 거치면서
3000원, 3500원으로 값이 오르더니 2000년대에 4500원이 됩니다.

물가가 상승하고 제작비가 오른 만큼 책값이 오른 것은 당연합니다.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는 읽다 보면
번역의 문제가 많이 드러나긴 하지만,
한 작가의 전작을 모두 소개하려는 출판인의 의욕이 느껴져요.


이 시리즈는 명절 때 고속버스에서 읽기 딱 좋은데, 이번에 읽은
<푸른열차의 죽음The Mystery of the Blue Train>은 1928년 작품으로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1891-1976)의 여덟 번째 장편이며
아홉 번째 추리소설,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하는 다섯 번째 장편이라네요.
(책 뒤의 작품해설에 이런 게 꼭 나와서 좋아요. ^^;)

1998년쯤 일신서적의 문고판 시리즈로 헌책방에서
한번 샀는데 파본이어서 올해 들어 해문 것으로 다시 산 책입니다.
파본인 책은 중요한 열차 안 장면이 통째로 없었으니
추리소설로서 생명이 없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해문의 번역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네요.
이것 때문에 끝까지 헷갈렸습니다.
이 책의 제10장은 푸른열차가 파리에 정차한 뒤
새벽에 리용 역에 멈추는 걸로 끝나는데,
파리에 정차하기 전에 리용 역에 한번 서는 걸로 나옵니다.
리용 역 앞뒤에 일어난 일들이 사건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진짜 리용인지 알아야 독자가 소설의 진행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출판된 영어판을 보니
파리 앞에 정차한 것은 Gare de Lyon,
그리고 10장 맨 끝에 서는 역이 Lyon이더군요.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하자면 리용이 아니라 리옹이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등장인물 중 케터링Kettering과 나이튼Knighton의
이름 철자를 이들이 맨 처음 등장할 때쯤 써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는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인간에 대한 유머 감각이 느껴져 좋습니다.
나약한 인간을 따스하게 이해하는 마음도 느껴지고요.
그리고 가슴 저리는 로맨스와 신비한 환상도 곧잘 보여 줍니다.


* 지금 검색해 보니 책값이 다시 5000원으로 올랐군요.

* 제 실수로(전에 산 적이 있는데 까먹고 다시 사는 바람에... ^^)
 <엔드하우스의 비극>(시리즈 16)과 <복수의 여신>(시리즈 72)이
두 권씩 있는데, 혹시 갖고 싶으신 분 있으면 한 권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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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나 2005-04-2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해문추리문고가 5000원이요? 정말 많이 올랐네요..쌀 때 잔뜩 사둘걸..-.-,

숨은아이 2004-05-1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못 샀는데, 아쉽지만 뭐... ^^
 
케스 - 매와 소년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02. 8. 31배리 하인즈 지음, <케스-매와 소년>, 녹색평론사 2000년 가을, 종로서적에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마크 트웨인의 책들을 사면서 집어들었던 책이지요. 2002년 8월 중순, 고구려 유적 답사 갈 적에 이동 시간이 꽤 많으리라 생각하고 그 사이에 읽으려고 챙겨 넣었는데, 책을 집중해서 읽을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동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으로 다녔던 여행이라, 버스나 기차 안에서는 기진맥진 늘어지기 일쑤였거든요. 영국의 배리 하인즈(Barry Hines)가 쓴 이 소설의 원제는 <A Kestrel for a Knave>입니다. 1968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그 후 10년 넘게 해마다 한두 차례씩 쇄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녹색평론사에서 1998년 8월 처음 펴냈고, 11월에 2쇄를 냈습니다. 아주 진한 어둠이 느껴지는 책, 무미건조한 문체가 뒤러의 동판화에 나오는 검은 펜선을 연상케 하는 소설입니다. 진창에 처박힌 흑요석 같은 작품이에요. 특히 수업시간에 허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적어내라는 선생님 말씀에 주인공 빌리가 쓴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지요.중간중간 번역이 좀 뜨기는 하지만 (그러니깐 무슨 말이 착 감이 오지 않는 어설픈 번역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어휘라든지 문장에.) 번역자의 글이 이 책을 아주 잘 소개했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 봅니다. -옮긴이의 말- 빌리 카스퍼는 종합중학교(comprehensive school) 과정의 졸업을 앞둔 소년이다. 빌리 몫의 우유까지 마셔버리고 빌리의 자전거를 타고 일터에 가버리는, 아버지가 다른 형이나 집안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는 가족이라 기보다는 부담스러운 동거인일 뿐이다. 아무에게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이 소년은 그래서 신문을 배달하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먹을 것을 훔쳐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등 스스로 생존 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학교에서 빌리는 열등생들의 학급에 속해 있다. 대부분의 선생들에게 이 '멍청이'들은 그저 귀찮은 존재이거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빌리에게 분명한 것은 자신은 형처럼 광부가 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빌리는 동물들을 잘 다룰 줄 안다. 축구장에 뛰어 들어온 떠돌이 개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조그만 빌리뿐이다. 모두들 겁을 먹고 선생은 크리켓 막대를 가져다 개를 때로 쫓아낼 궁리를 하는데 빌리는 우호적인 태도로 개에게 다가가 달래어 데리고 나간다. 이런 빌리가 유일하게 정을 줄 수 있는 대상은 케스이다. 폐허가 된 높다란 성벽 위의 매 둥지에서 꺼내다 키운 새매이다. 케스는 그러나 소위 애완동물은 아니다. 빌리가 주는 먹이를 먹고 빌리의 손에 훈련을 받지만 본래의 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케스는 거의 누구에게나 쫓기고 매맞고 구박을 당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빌리의 다른 모습이다. [중간 생략] 커튼이 걸려 있지 않아서 밤하늘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침실의 새벽 장면으로 시작하여 죽은 매를 뒷마당에 묻고 자러 가는 것으로 끝나는 빌리의 길고 긴 하루는 우리가 영위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나 기초적인 교육이 제공되고 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에게는 내용은 어찌 되었든, 상담을 통해 적절한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사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영주택이 있고 광부들도 일요일이면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이런 복지사회가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중간 생략] 빌리가 경험하는 삶의 범위는 아직 제한된 것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누추함을 본다. 동물들을 잘 다룰 줄 아는 빌리의 재주는 사실 상대를 신뢰하고 자신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며 그 특성을 존중할 줄 아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중략] 이 소설의 지은이 배리 하인즈는 1939년 영국 북부의 광산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에클레스필드 그래머스쿨에 다닌 그는 영국 그래머스쿨 축구팀의 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학교를 마치고 반스리 축구팀의 선수로 활약하면서 광산 감독견습, 수력탄갱 프로펠러 수리공, 대장간 조수 등의 일을 하였다. 그는 다시 교원양성대학에 들어가 3년간 체육교육을 공부하고 런던으로 가서 2년간 체육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북쪽으로 돌아갔다. 이 책은 1968년에 A Kestrel for a Knave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판된 이래로 10년 넘게 해마다 한두 번씩 재판을 거듭하였고 영국에서는 텔레비전 필름으로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번역대본은 1969년 펭귄 판을 사용하였다. 1998년 8월 김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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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반양장) -전16권
박경리 지음 / 솔출판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2002. 8. 10

 

박경리, <토지>(전 16권), 솔, 1993~1994
임우기 정호웅 편, <토지사전>, 1997


<태백산맥> <아리랑> <혼불> 등등 굵직굵직한 대하소설이
탄생한 1980~1990년대부터 소설로 우리 현대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소설이라는 한계가 분명함에도,
권력과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는 밝힐 수 없었던
진실이 문학의 울 안에서 간신히 고개를 내밀곤 했습니다.
그 거대한 문학적 담론의 흐름 맨 앞자리쯤에
<토지>가 있지요.

1969년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1973년 삼성출판사에서 간행,
1974년 삼성출판사에서 [토지] 2부를 간행,
1978년 [토지] 3부를 [주부생활]에 연재, 1979년 3부 완결.
1980년 삼성출판사에서 [토지] 3부 간행,
1988년 [토지] 1~4부를 삼성출판사에서 간행,
그리고 1994년 5부로써 <토지> 전작을 완성합니다.

솔 출판사에서는 1993년 6월 [토지] 1부(3권), 2부(3권),
3부(3권), 4부(3권)를 재출간하고,
5부는 1권을 93년 6월, 2권을 그해 12월,
3권을 94년 4월, 4권을 그해 9월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2002년 1월 나남 출판사에서
다시 21권으로 재편집에 출간했지요.

16권짜리 소설을 어떻게 21권짜리로 만드는가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 예전 소설은
활자도 작고 행간도 빡빡하고, 그다지 읽기 편하게
편집하진 않았어요.

(전 사실 활자가 큰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글줄을 줄줄이 읽어 내리지 않고,
어린애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보거든요.
그것도 글자 모양을 눈으로 더듬듯이 획을 따라가며
단어의 의미를 파악합니다.
그래서 글자가 크면 피곤해요.
어쨌거나 그래서 전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지만,
글자마다 다른 느낌을 즐길 수 있어요.
하지만 요새 바쁘게 읽다 보면,
게다가 이런 대하소설을 읽다 보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휙휙 넘어가곤 하지요.)

<토지>를 다 읽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밖에 읽질 못했기에
제가 집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정말 1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작가는 25년에 걸쳐서 썼는데요 뭐.

사실 처음엔 최참판댁이라는 양반집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인 줄 알고 시큰둥하니 읽기 시작했습니다.
96년부터 이사다닐 때마다 짐짝처럼 끌고 다녔으니
이제는 읽어 봐야겠다 싶어서.

그런데, 최참판네 이야기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8월 15일에 이르는 이 거대한 서사의
한 구성요소일 뿐, 소설의 가지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뻗어나가 지리산 속으로, 서울로, 남원으로 진주로,
도쿄로, 간도로, 하얼빈, 상하이, 연해주까지,
그리고 곳곳에서 숨차게 삶의 행군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껴안고 있었습니다.

1부의 주인공은 참판댁 외동딸 최서희와 하인 길상이라기보다
오히려 마을의 소작농 용이와 무당의 딸 월선이고,
2부에 와서야 서희와 길상이 전면에 나서지요.
그리고 3부는 이상현의 방황,
4부는 명희와 인실이라는 인텔리 여성의 길,
5부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 갈피갈피에 등장하는 사람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인물이 없지요.

저는 그 중에서도 정석이라는 남자와 야무어매가 마음에 남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제가 우리말을 얼마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그리고 현대사도.
그래서 결국 <토지사전>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표지에는 임우기 정호웅 편이라고 되어 있지만,
책 안쪽에는 솔 출판사 발행인이며 문학평론가인 임우기씨는 책임 편집자,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이며 문학평론가라는 정호웅씨는 감수자로
나와 있고 편찬위원이 따로 아홉 분 계시네요.
대개 국문과 석사나 박사과정 중에 있는 분들로 구성된
토지사전 편찬위원 중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 선생이 끼어 있습니다.

이 <토지사전>의 도움을 받은 바가 꽤 되긴 하지만,
완전히 마음에 드는 사전은 아닙니다.
인명 부분에 누락된 사람도 꽤 되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풍습을 소개할 때
소설 속의 맥락에 맞게 해설하지 않고
관련 문헌자료를 짜깁기한 흔적도 여실하거든요.
외국 문물에 대해서는 너무 간략히 설명해 놓기도 하고.
예를 들어 본문에 '쟌자꼬'라는,일본에서 아이에게 입히는 옷이
나오는데,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을 때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생긴 옷인가 궁금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이 사전에는 기껏 "일본 아이옷의 일종. 소매가 없는 웃옷"
이라고 나옵니다.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소설 자체에서 거대한 사건이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뭔가 책략을 꾸미는 듯, 독립운동을 위한
모략을 짜는 듯 분위기만 풍기고,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묘사는 없습니다. 뭔가 탕 터지는 게 없지요.
그 점이 조정래 선생의 소설들과 다릅니다. 그래서,
1부는 매우 역동적이지만 그 후에는
역사의 흐름을 탈 뿐입니다. 물론 그 흐름 속을 산
사람들의 질긴 물밑 인생을 그리긴 했지만요.
그건 소설 <토지>의 특징이랄 수도 있겠지요.

<토지>에서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여성들의 형상입니다.
두만네, 야무어매, 성환할매, 천일네 같은 선량하고도
슬기로운 농민 여성들을 표현할 때와 달리,
교육받은 신여성들은 유인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딘가 인격적인 흠이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지요.
서희까지도. 남성들이 소설의 흐름 전면에 나서서
성장해 가는 것과 비교됩니다.

또 용모 묘사도 그렇습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잘생겼고, 악인은 흉측하게 생겼지요.
중요 인물 중에서도 조병수는 곱추로 나오고
송관수는 가늘게 째진 눈이 못생긴 사내,
몽치는 울뚝불뚝 못생겼다고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당대 사람들의 단점과 약점까지 그런 식으로
표현했는지 모르지요. 신언서판이라 하여 용모를 차별하고,
또 어쨌거나 여자를 2등 인간으로 치부하고...
(예를 들어 아내를 때리는 문제. 사람이 좋아서
때리지 않고 여자를 아끼는 것이지 서방이 안사람 때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분위기.)

소설에서 홍이의 딸 상의는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상의는 통영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자라고 진주에서 여학교를 다니며
책 읽고 글 쓰기를 좋아하지요.
작가 박경리 선생은 1926년에 충무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했다니 얼추 상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소설 속 하동이나 하얼빈 등등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지만
그래도 통영 이야기를 할 때 왠지 가장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통영에 꼭 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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