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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를 봤을 때의 그 얼떨떨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제목 그대로 단 한 번의 거스름 없이 오로지 '친구의 집을 찾는 여정'만 보여줘서 마지막까지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보다가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었다.
어제 <사랑을 카피하다>를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는 영화가 지루했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전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그 지루함을 이해했다. 이 감독은 옛날부터 '지루해도 할 수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다인 걸'이라며 느긋한 포즈를 취하는 데는 도사니까.
그런데 나는 이제 그 느긋함이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쇼킹한 반전이나 집요한 메세지가 없는 이런 영화가 다른 다이내믹한 쟝르의 영화만큼이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동안 장면 장면에만 몰입하지 않고 내 멋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보는 긴 호흡이 좋아서, 그 지루함에 무감각해진 듯하다.
물론 이런 나의 무감각만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요소는 아니다. 무릇 대개의 좋은 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대사 하나 하나가, 장면 하나 하나가 내포하는 것들이 한 가득이라서 놀라운 부분이 많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또 그런 장인이 갖춘 다른 미덕인 '내포하는 것은 많지만, 공은 엄청 들였지만, 결과물은 편안하고 심플하며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작품이 되기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갈채를 받는 것일 테다.
그나저나, 극 중 줄리엣 비노쉬의 대사에는 exactly 내 대사랑 똑같은 대사가 여럿 있다. 아이고, 찔려. ㅋㅋ (뭐, 그래도 나는 우선 기억력이 제로인지라 비노쉬보다는 덜 집요하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