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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뛰는 이유 ㅣ 창비아동문고 277
최나미 지음, 신지수 그림 / 창비 / 2014년 10월
평점 :
지난 주말 공원에서 열살 안팎 소년들이 노는 것을 보았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셋은 걷고 뛰어서 우르르 어딘가로 몰려 가고 있었다. 덩치도 각각, 옷 입은 것도 각각인데 누가 봐도 한 패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뭐 한다고 저렇게 몰려서 갈까? 집 앞에서도, 도서관 앞에서도, 심지어 여행지에서도 소년들이 노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소년들이 우르르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주먹질하고 부둥켜 안는다. 고래가 뛰는 이유는 모르지만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부터 우선 기운이 난다.
원섭이와 도영이는 철천지 원수이지만, 뜻밖의 사건 때문에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네 책방에서 같이 일하는 벌을 받는다. 이 둘이 투닥거리면서 서로 가까워진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으니 대체 어떻게 화해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게 관건일 텐데, 다행히도 우리의 작가는 인간 관계 묘사 전문가다. 맛보기로 둘의 대립을 그 흔한 대사 없이 그린 장면.
원섭이와 도영이는 책방 앞에 올 때까지는 서로 모르는 척하다가 문 앞에서부터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싸웠다. 청소하려고 원섭이가 빗자루를 잡으면 도영이도 비질을 하겠다고 덤볐고, 도영이가 먼저 걸레를 잡으면 그것 갖고 주먹을 휘둘렀다.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그것으로 1차전은 끝이었다.
2차전은 트집을 잡는 것으로 시작했다. 원섭이가 비질을 하고 나면 먼지가 그대로라서 걸레질하기가 힘들다고 도영이가 불평했다. 도영이가 책 먼지를 닦아 내면 바닥 청소를 끝냈는데 도로 더러워졌다고 원섭이가 화를 냈다. 그것마저 시들해지면 상대방이 편하게 일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방해하는 게 3차전이었다.
원섭이가 비질을 하고 있으면 도영이는 걸레를 빠는 척하다가 일부러 물을 쏟았다. 원섭이가 달려와 멱살을 잡으면 실수였다고 히죽거렸다. 그렇다고 원섭이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영이가 잠깐 방심하고 걸레라도 달라고 하면 원섭이는 기다렸다는 듯 도영이 얼굴을 향해 던졌다. 명중! (76-77쪽)
둘이 이런 앙숙이 된 것은 전학 간 푸름이 때문이다. 푸름이와 절친이었던 원섭이는 푸름이를 못살게 굴고 자신마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한 도영이를 미워하는데, 푸름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아이들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원섭이는 도영이와 친해져서만이 아니라 푸름이와 잘 이별하면서 성장한다. 탁월한 포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저 발랄한 봉우(너무 좋다), 노년의 우정을 보여주는 대마왕 할아버지와 이발킴 할아버지, 넉살 좋게 원섭이네 식구인 양 굴지만 속이 여린 명은이 등 조연들의 캐릭터도 눈으로 보는 듯 선명하게 그려졌다. 원섭이가 엄마한테 야단맞을 때 식탁 모서리를 매만지는 장면, 자기 목에 팔을 두른 명은이 누나를 못마땅해 하다가도 막상 팔을 풀자 목덜미가 서늘하다고 하는 느끼는 장면처럼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대목들이 은연중에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아빠와 단둘이 사는 명은이가 원섭이네 가족 사진에 끼지 못하고 셔터만 누르는 장면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얼마 전 '소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어떤 책을 읽었다. 그런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나 소년들이 달리는 <<고래가 뛰는 이유>>는 내가 왜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다시 읽고 이 리뷰를 썼다. 쓰다 보니 이 책이 더 좋아졌다.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