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의 가치 - 빵점 인생이라도 괜찮다
하근수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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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하면 영계 길선주(1869-1935)목사가 떠오른다. 새벽기도는 한국 교회에 이어온 소중한 자산이자 전통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든데 거기다가 기도까지? 라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역사는 새벽에 일어났고 새벽을 살아간 사람들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여갔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전 중에 제목이 『새벽』인 책이 있다.

 

"그는 철저한 신앙인이었다. 감옥에서 죽을 고비를 맞이했을 때, 일본에서 납치되어 수장 당할 뻔 했을 때 그 앞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죽음에서 건져 주셨다고 고백한다. 죽음의 고비에서 만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평생 예수님처럼 살기를 소망했다. 가난한 자들, 핍박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뚝심있게 펴 나갔다. 4대 의료보험제도가 그렇게 해서 정착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사형 건수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를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넉넉한 마음으로 품었다. 이렇게 소외자를 차별하지 않고 보호하는 정책을 폈던 것의 바탕에는 신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 종교와의 관계도 존중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 때 민정수석으로 김성재 목사가 청와대로 들어왔을 때에도 불교계에서 태끌을 걸지 않을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았다라고 김하중 장관이 말한다"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의 저자 이대희님은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은 달콤한 잠과 싸워 이긴 사람이라고 말한다. 전날 밤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욕구를 모두 이겨낸 사람이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초점을 새벽에 맞춘 사람이다. 『본문이 살아 있는 설교 』의 저자 권호 목사도 옥스퍼드 대학 재학시절부터 새벽과 저녁에 늘 기도했던 조지 휫필드 목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으며 끊임없는 기도로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했다고 전한다.

 

또 한 사람의 새벽기도의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동탄시온감리교회 하근수 목사다. 그의 책 『0점의 가치』는 새벽기도의 결과가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교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책이다.

 

"인간은 100점에 가치를 두지만, 하나님은 금이 간 인생이라도 가치를 두시는 분이다"

 

하근수 목사의 삶은 세상적인 측면에서는 0점에 불과했다. 푸주간의 아들로 초등학생 때부터 돼지를 도살하고 살과 내장을 발라내는 일들을 했으니 말이다. 소년 가장으로 어린 동생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대학문 앞까지도 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새벽기도만이 살길이다! 라고 외치며 만나는 이들마다 동기를 부여하고 계신다. 지금의 동탄시온감리교회가 있기까지 새벽기도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 교인이 100% 새벽기도에 출석하는 21일간의 대장정은 어느새 교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동탄시온감리교회는 동탄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0점의 가치』를 읽기 전까지는 하근수 목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C채널 힐링토크 행복플러스 출연하기 전까지는 동탄시온감리교회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하근수 목사님을 직접 뵙고 나서 단숨에 책을 읽어내려갔던 것은 책의 구절 구절이 곧 나의 얘기가 될 수 있겠다 싶은 공감이 밀려 왔기 때문이다. 나도 20대 초임교사 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녔던 것 같다. 띄엄 띄엄 다니다가 3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기필코 새벽기도를 쉬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새벽기도 시간이 기다려진다. 뜨끈미지근하게 기도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0점 인생이기에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한 하근수 목사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순종하며 살아온 그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고 싶다. 사람은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한다. 나도 공감한다. 아무리 출중하고 탁월한 삶의 살았더라도 인생의 결말이 더럽고 추하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 없는 고난은 없다!"

 

고난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근수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피난민의 아들로 백령도에서 안면도로 내려와 정착을 했건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렸어야했으니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우리의 삶에 다가온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유 없는 고난이 없듯이 고난이 곧 나를 단련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 하루를 인내하며 살아간다면 켜켜이 새겨진 고난의 흔적이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질 것이다. 불평 불만만 늘어 놓으며 신세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고난에 맞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모해야 되지 않을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근수 목사님처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고난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홀어머니와 셋방 살이를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나님의 존재, 기도의 비밀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직접 경험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경험하는 일이다.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0점의 가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새벽기도다! 새벽에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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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으로 사는 인생
폴 투르니에 지음, 정동섭.박영민 옮김 / IVP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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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격의학을 발전시킨 스위스 의사, 폴 투르니에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올 8월, JDM KDTI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모임 이사의 삶 & 이사의 역할' 에 대해 약 한 시간 반 가량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 후 답례로 받은 책이 바로 폴 투르니에의 『모험으로 사는 인생』 이었다. 책 더미에 쌓아 두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한 두달 지나다가 이번 한 주간 독한 마음을 품고 다른 책을 멀리 하고 이 책만 고집하며 오늘에서야 1독을 마쳤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 저자의 고백이며 나의 고백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KDTI 훈련생들에게 강의한 강의 주제도 '모험으로 사는 모임 이사'로 수정해야 할 듯 싶다. 인생의 책을 선물해 준 KDTI 훈련생들께 감사드린다.

 

폴 투르니에는 노년의 나이에 책을 써 달라는 청탁을 출판사로부터 받게 되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집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기도 했기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책을 쓰는 것 자체는 모험이라기보다는 의무로 느껴진다" 라고 고백했다. 무슨 말인가? 어떤 모험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이다. 새로운 일을 할 때 그 당시는 모험일 수는 있지만 그 일이 오래 지속될 경우 감흥도 감응도 긴장감도 떨어져 어느새 익숙한 일로 둔갑되어버린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노쇠해 지는 것도 있겠지만 폴 투르니에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겠다는 용기가 없어져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의 태도가 스스로를 노년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가! 오십 줄에 들어서고 있다. 아직까지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고 새로운 영역에 겁없이 덤벼들고 싶은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하면서 얻는 유익은 역동감과 존재감을 느끼며 성취감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점만 있는게 아니다.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짐으로 깊이로 나아가야 하는 시간들을 패스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심신이 지치고 일에 쫓겨 사는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행동 반경이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성취 보다는 존재함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때가 도래할 것이다. 잃어버린 젊음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거나 후회하며 아쉬워하기보다 움직임은 둔해질지언정 노년에 누릴 수 있는 장점인 살아있는 정신으로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감에 만족을 누리며 또 다른 모험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죽음도 모험이다. 살아생전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하기에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도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할 대상으로 여기며 애써 회피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삶을 기대하며 주어진 삶 속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지속해 가는 것이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분명 개인마다 자신이 '헌신할 가치가 있는 목표' 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바칠 수 있는 목표가 있는 삶이 진정 복 된 삶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삶이 과거보다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문명의 발전과 상응하는 '정신적인 보충' 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 폴 투르니에는 질병과 건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고로 그는 환자를 대할 때 환자를 인격체의 한 사람으로 대하며 독서 상담을 통해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의사였다. 

 

사람의 건강은 세균 감염이나 비타민 섭취의 문제만큼이나 자신과의 조화, 올바른 가치의 선택과 그 결과인 충만한 만족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72쪽)

 

질병은 세상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적한 곳을 찾을 수 있는 기회와 유익한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64쪽)

 

모험으로 사는 인생은 두려움 없는 삶이 아니다. 두려움이 예상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다. 기독교 의사인 폴 투르니에는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을 모험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생에 관해서는 비관주의자지만 하나님에 관해서는 낙관주의자였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갖는 신체적 장애물들이 극복하지 못할 것들이 아니라 위대한 모험의 출발점, 성취와 성공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독한 책벌레였던 폴 투르니에는 책을 읽을 때마다 읽지 못한 책, 읽을 수 없을 책들을 생각하며 주어진 현실을 아쉬워하고 고치지 못하는 환자의 질병 때문에 자신의 무능함을 괴롭워했다.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것조차도 모험의 대상임을 고백한다. 

 

최근 폴 투르니에의 저작들을 대하면서 한 번 읽고서 책장에 꽂아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책도 그렇다. 두고 두고 읽을 책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는 이 때에.

 

p.s. 죄송합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나이 타령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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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론 제29호 - 2020.9.10
우리신학연구소 지음 / 우리신학연구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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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독자가 읽는 신간' 홍보 안내문을 보고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라는 책을 신청한 적이 있다. 마침 서평 대상자로 선정되어 책을 우송 받게 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단숨에 책을 읽고 짧은 소회를 밝혀 글을 메일로 보내게 되었다. 며칠 뒤 서평글을 책자에 싣고 싶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고 지난주 따끈한 평론집 한 권이 담긴 우편물을 손에 얹게 되었다. 「가톨릭평론」9/10월호다. '독자가 읽는 신간' 란은 책의 맨 뒤쪽에 있었다. 나 말고도 『행복한 자유인, 앤소니 드멜로』를 읽고 쓴 서평문, '수행의 지평을 넓혀준 앤소니 드멜로.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 』를 읽고 쓴 서평문,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존하기'. 『유예된 존재들 』를 읽고 쓴 서평문, '청소년도 오늘을 살 권리가 있다'. 『천장 위의 아이 』를 읽고 쓴 서평문, '이상한 아이, 모두의 곁에, 나도 함께!'. 총 다섯 편의 서평문이 책의 끝부분을 마무리했다. 

 

 

개신교인인 내가 「가톨릭평론 」을 읽게 될 줄이야. 9/10월호는 코로나19에 관한 각 분야 전문가들과 지성인들이 자신들만의 안목으로 쓴 여러 비평문이 실려 있다. 특히 내게 주목된 글은 코로나19로 인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을 사실대로 조사하여 밝혀낸 글들이다. 대략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하는 계층이 파악된다. 소위 중위소득 50%미만의 저소득층 가정들과 소상공인으로 축약 보도되는 매스컴의 언론과 달리 이 평론집에는 외국인 이주민들, 그중에서도 불법 체류 노동자들과 그의 자녀들, 1평 남짓한 공간인 쪽방촌에 기거하는 빈곤한 주민들, 일자리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이름 없는 청년들, 닭장처럼 빽빽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저임금에 시달리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직원들을 다루고 있다.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되었다지만 이것마저도 혜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우리나라가 '아이를 수출한 나라' 였다는 점을 고발한 글이다. 유독히 입양을 많이 보냈던 1980년대. 아이 한 명을 입양보내면 외화 벌이가 되었기에 미아, 고아 구분없이 틈만 나면 입양을 주저없이 보냈던 당시 정책의 허점을 낱낱히 밝혀내고 있다. 유럽으로 보내진 입양아들이 세월이 흘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나이가 되었을 때 심적으로 받는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다고 한다. 떠나보낸 생모도 그렇겠거니와 기억 나지 않는 유아 시절에 낯선 땅에 오게 된 입양아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뒤늦게 고민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점이 이제서야 밝혀지게 되었다. 돈으로 보였던 부모 잃은 아이. 입양 보내고 나면 그만. 국가도 그 어느 누구도 관심 조차 가지지 않았음을 우리 모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종교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가톨릭에서 제시하는 종교의 역할론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인간의 탐욕이 똬리를 틀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볼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을 향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할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몸소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은 이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경험하신 내용이다. 고난의 순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무거운 짐때문에 어깨가 짓눌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다시 말하면, 우리와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는 외침이 아닐까 싶다. 밖을 향해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리 이제는 내면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며 변화된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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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 -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외침
제이슨 앨런 외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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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기세는 대단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조작된 교리로 민중을 현혹했다. 면죄부의 발행은 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지만, 드려지는 헌금 액수에 따라 지옥에 갈 사람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천국행 면죄부를 사두라고 곳곳을 다니면서 판매했던 행위는 종교의 민낯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마리아를 위시로 한 성인들의 공로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갈 수 있으니 그 공로를 사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일반 민중들은 전혀 의심치 않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면죄부를 사 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면죄부'에 목을 매었을까? 16세기 유럽에는 지독한 전염병 유행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죽음을 두려워했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어야 했다. 막 태어난 어린 아기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안타까운 가족의 죽음 앞에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면죄부'를 사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악하여 돈장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마르틴 루터 또한 로마 카톨릭의 수도사로서 이런 일을 모를리가 없었을 것이다. 잘못된 교리로 우둔한 사람들을 현혹하는 로마 카톨릭의 행태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었다. 선택은 딱 하나다. 까발리는거다. 면죄부의 거짓됨을 공개하는 것이다. 무명에 불과한 젊은 수도사의 의분에 넘친 성명서(비텐베르크 성당 벽면에 부착한 95개조 반박문)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루터는 목숨을 건 항명을 한 셈이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협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잘못된 것을 굽히지 않았다. 거대한 성벽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었지만 루터는 성서에 입각하여 바로 잡는 일에 소신을 꺽지 않았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창한 것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사람의 행위와 공로로 하나님께 갈 수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깨닫은 사실이다.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으로 시작하기로 결단한 젊은 수도사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유럽은 바뀌기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의 억눌림 속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삶은 풍요해지기 시작했다. 경제활동도 왕성해 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인 국가(네덜란드)는 신흥 강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에릭 리델 올림픽 육상 금메달 리스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대표적인 사람이다. 금메달 수상 후 얼마든지 부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선교사로 헌신한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이 포위되었을 때 그는 산둥 수용소에 갇힌다. 그곳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을 돌보는 이에 앞장 선다. 질서와 윤리가 깨진 수용소 집단 생활 가운데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갔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뇌종양으로 숨진다. 어떠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드린 삶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도 종교개혁가들의 정신인 '오직' 성경, 믿음, 그리스도, 은혜, 하나님의 영광은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다.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간직하고 지켜나가야 할 고귀한 가치다. 세상이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나설 때다. 종교개혁가의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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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사계절 (미니북)
폴 투르니에 지음, 박명준 옮김 / 아바서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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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사의 관점이 돋보인다. 폴 투르니에는 스위스 의사다.  상처난 부위에 매스를 대듯 날카롭게 사람의 존재성에 대해 의미를 재조명한다. 그렇다고 상처난 부위를 휘벼파는 치료적 언어가 아닌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감하는 언어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글쓰는 전업 작가가 아닌 날마다 새로운 환자를 만나는 의사이기에 인생에 접근하는 관점이 새롭다.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라 굴곡이 반복되는 부침이 있어 다소 복잡한 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은 그런 부침의 역사를 온 몸에 받아들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패의 주인공을 전면에 드러낸 책이 있을까? 성경은 살인자, 이중인격자, 위선자 등 차마 현대 사회에서 입에 담아 두기 어려운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렇다는 얘기다. 성공한 사람만 등장하는 책이라면 자기계발서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로 표현한 폴 투르니에는 사람은 전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육체를 가진 신체적인 존재이기에 자연과 동떨어져 지낼 수 없고 자연의 일부다. 동시에, 여기에서 폴 투르니에는 '동시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한다. 환자를 상담하며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며 육체적인 치료가 환자를 살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가진 환자들이 의외의 결과로 병에서 회복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어린 아이를 지나 청년 시기와 장년 시기를 거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것이 노년이다. 노년은 어느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폴 투르니에가 보기에는 불쌍한 모습을 비춰진 것 같다. 차라리 노년의 시기를 인정하며 노년의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성숙함으로 인생의 마무리를 지어보는 것이 어떻게냐며 독자들에게 의사로써 권면한다.

 

"노년기의 과제는 과거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사실, 다양성의 대명사는 '하나님' 이시다. 그분은 다양한 동식물을 서로 다양하게 만드셨다. 사람을 만드실 때도 다양성을 적용하셨다.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개인의 삶을 봐도 그렇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성격들이 모두 다양하다. 재능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쩌려고 하나?

 

일각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에 구속당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맘껏 누릴 권한이 있음에도 스스로 구속된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폴 투르니에는 도덕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도덕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추구하고 자신이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도덕주의는 실수할 만한 모든 상황을 양심의 가책과 자기 억제의 힘을 동원해 피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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