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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 영국의 책사랑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나
권신영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0월
평점 :

영국을 왜 책의 나라라고 할까?
영국의 책 사랑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을까?
독일의 인쇄기술자 구텐베르크에 의해 책의 보급이 이전보다 원활해졌지만 실질적으로 책이 일반 시민들에게 보급되고 일상의 문화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일이 아닌 영국이 어떻게 책을 중심으로 문화를 만들었는지의 과정을 역사를 전공한 저자의 발품을 판 생생한 영국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는 일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문헌을 통한 조사도 있겠지만 저자처럼 책을 매개로 하되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역사적 유래를 살펴보는 일은 구체적이면서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영국은 책과 관련하여 진심인 나라다. 단지 산업혁명의 발상지며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측면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선진 문물이 발달하기까지 그 이면에는 소프트파워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영국은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배출시킨 이야기의 나라다. 문학, 철학, 역사를 포함하여 과학, 수학, 천문학 등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획을 그은 인물들이 주로 영국을 배경으로 자신의 지적 영역을 넓혔다.
케임브리지 대학 자체가 그 증거다. 현존하는 최고령 책 터의 주인이 바로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다. 1584년 첫 책을 출판하고 지금까지 이어온다. 그다음으로 유명한 출판사는 알렉산더 맥밀런이 세운 맥밀런 출판사다. 과학 잡지 네이처를 발간한 출판사다. 현존하는 최고령 시사잡지 스펙테이터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헤퍼스 서점, 펭귄 출판사 모두 영국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의 이야기 능력은 책에서 비롯된다. 이야기 문화는 토론 문화를 꽃피운다. 비판과 비난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반지성적 흐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무엇으로 공간을 채워야 할지 답은 자명하다. 오늘날 클라우드 펀딩의 원조 격인 책 구독 제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대략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에 대한 애착이 강한 영국 사회였기에 구독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당시 구독권은 매력적인 선물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헌 책방 거리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채링크로스는 책 경매를 통해 성장한 대표 기업인 소더비를 탄생시켰다. 쇼핑센터 안에 있는 케임브리지 공공도서관이 있다. 공공도서관의 시작은 1855년에 시작되었다. 쇼핑과 책을 결합한 문화다. 커피 하우스 안에 도서관을 만든 것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북 카페의 효시다. 스코틀랜드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미국에만 약 1,700여 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웠다.
책의 나라 영국은 지금도 공립학교에서 책 읽기 교육을 강조한다. 책의 날이 되면 학교는 동화 속 인물로 변장한다. 교장 선생님도 소설 속 인물들로 변장해서 다 같이 하루를 보낸다. 영국 사회는 어떤 인간상을 꿈꾸길래 책을 꾸준히 상기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 것일까?
아동 문학의 아버지 존 뉴베리(1713~1767), 그림책의 아버지 랜돌프 칼데콧(1846~1886)을 통해 아동 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생계를 위해 서평 작가로 시작한 조지 오웰의 이야기를 저자의 시각에서 읽어보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현대로 넘어오면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출신이자 프로 축구 선수 겸 작가인 마커스 래시퍼드가 시작한 아동복지 차원의 북클럽은 다양한 환경과 인종, 종교를 대표할 수 있는 작가들이 쓴 책들을 무상으로 보급하는 일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북클럽인 돌턴 북클럽은 250년 이상 유지되어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북클럽은 변화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 관습의 영역이요 일상 문화"라고 영국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_ 235쪽
지금도 유럽의 하원 의회 때에는 정부의 재무 장관이 그 해의 재정 보고를 연설하는데 관련 서류를 '빨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특정 사물에 이야기를 만들어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는 영국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케임브리지 도시도 전통이라는 그릇에 근대적 가치를 담아낸 도시다. 영국은 작은 흔적에라도 기대어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1863년 하원 의원 에드워드 이워트(1798~1869)가 제안한 '파란 명판' 달기 사업은 1867년부터 시작되었다. 평범한 길(도로)에 스토리를 담는 '파란 명판'은 우리나라의 동상 세우기 사업과 비슷하다. 뛰어난 인물들과 관련 있는 특정 장소에 간략한 설명을 명판에 새겨 놓은 후 건물 밖에 넣어 두는 제도다.
이야기의 나라 영국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