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풀어쓴 성경 - 원문의 음성을 오늘의 목소리로 살려낸 번역과 메시지 풀어쓴 성경
강산 지음 / 감은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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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함에 있어서 당시 수신자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시대적 배경을 무시한 체 어떤 구절 하나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우리의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_ 『고린도전서, 풀어쓴 성경』, 13쪽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글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읽지만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글이 쓰인 당시의 '특정한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공통으로 쓰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한 책이지만 누군가가 자세하게 풀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글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맥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산 목사의 「풀어쓴 성경 시리즈 」는 '성경 원문의 음성을 오늘의 목소리로 살려낸 번역과 메시지'다. 성경과 함께 곁에 두고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성경에는 다양한 문학 장르의 글들이 있다. 그중에 「편지」로 쓰인 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인 편지 중에 한 편이다. 편지의 특성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상대편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이다. '당시 수신자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맥을 파악하기가 참 어렵다.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한다면 편지의 내용들이 귀에 쏙쏙 들어올 것이다. 「풀어쓴 성경」이 바로 그 역할을 해 준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한 바처럼 우리의 성경 읽기는 맹목적으로 내게 필요한 성경의 구절 구절만 뽑아 읽을 때가 있다. 본문을 토대로 전체의 문맥을 쫓고 제대로 된 적용이 있을 때 성경이 가진 '역전의 복음'을 경험할 수 있다. 성경을 통해 '복음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 전체를 통으로 읽고 해석해 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교회에서만 읽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오늘의 목소리'로 번역하는 책이 성경이다. 특별한 사람만이 읽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원문의 음성'을 잘 읽어내면 '특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강조한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포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나를 낮추는',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낮춤과 희생'의 특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기독교인은 성경을 날마다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읽고 삶으로 실천하는 행동가여야 한다. '세상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염려에서 벗어나는' 역전의 신앙인이어야 한다. '세상의 가치나 자리에 노예'처럼 종속되지 않도록 저항해야 한다.

강산 목사의 『고린도전서, 풀어쓴 성경』 일독을 권한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4093070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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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 선입견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다시 듣는 하나님의 음성
권연경 지음 / 야다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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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사상의 빈곤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죄의 전횡을 극복해 내는 능력이다" _ 에필로그 369쪽

숭실대학교 권연경 교수는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를 통해 현재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지 안내해 준다. 아니 성경을 제대로만 읽는다면 삶의 태도가 복음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음을 자세하게 그러면서 강한 톤으로 호소한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를 욕한다. 사실 교회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대신 욕을 먹는 거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열심히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열성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열성은 성경을 덮고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만족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성경을 맞추고 있다. 내가 만족할 만한 성경 구절 구절을 따로 떼어 내어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자신의 삶의 논리에 합당한 근거가 될 만한 성경 구절을 찾아낸다. 더 나아가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한다. 시간과 정성을 다해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쉽게 오르려고 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지름길이 오히려 목숨에 해를 끼치는 길이 될 수 있다. 힘들지만 정석대로 올라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힘들 수밖에 없다. 성경 읽기도 그렇다. 읽어내는 일이 쉬울 수 없다.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문맥과 상황을 잘 살펴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삶으로 실천해가야 한다는 점이다!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는 성경을 읽는 모든 이들이 귀를 열고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https://blog.naver.com/bookwoods/22409228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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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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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나?』는 기윤실연속토론회에서 여섯 명의 발제자들이 연구물을 토대로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며 발제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한국교회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톺아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옥성득 교수의 말처럼 역사는 우리가 현재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신학은 복음과 상황의 만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지형은 이사장은 한국교회가 언제부터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고 하면서 '사회적 연관성'을 무시했다고 일침을 가한다. 교회가 자기 집단의 만족을 위한 닫힌 모임으로 변질될 때 '세상을 돌보며 섬기는 본질적인 사명'을 잃게 된다고 슬픈 현실을 고백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신앙적 정체성과 사회적 연관성에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의 변화는 인격과 일상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인격은 속사람이고 일상은 실제의 삶'이다. 인격이 변하지 않으면 일상이 바뀔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권수경 목사의 「한국교회의 우상 숭배 : 권력, 재물, 이념」은 한국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권력을 하나님 이상으로 의지했을 때 공의와 인권, 자유와 약자 보호 등 성경적 가치를 지켜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과거 우리의 정치적 역사에서 확연히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심히 우려가 되는 현상은 기독교 민족주의다. 폭력적인 현상으로 둔갑하고 있다. 복음의 공의와 자비에 대해 침묵한다. 이것은 온전한 복음이 아니라 반쪽 복음에 불과하다. 국가조찬기도회의 폐해에 대해 기술한 부분은 권력을 탐하는 것이 곧 우상 숭배임을 알게 해 준다.

성경에서 재물에 대해 누차 강조하는 이유는 풍요한 재물이 가난보다 우리를 물질의 노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물은 얻을 때도 쓸 때도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교회가 먼저 서로 나누고 더불어 사는 삶의 본을 보여야 할 텐데 재물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교회는 성경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이념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배덕만 교수의 「트럼프, 근본주의, 그리고 한국교회」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트럼프의 미국, 근본주의는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성철 교수의 「한국교회와 기독교 극우의 문제」는 일부 극우적 현상에 매몰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의 단적인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주권이 일상의 삶에 보편적으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삶에서 정직한 삶이 왜 중요한지, 무엇이 공의며 정의인지, 어떤 행동이 자비로운 것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종교적 영역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문제에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과 재물, 이념의 그늘에 벗어나지 못하는 기독교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구원을 경험한 이들은 믿음과 행위가 같다" 성경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종교색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겸손을 나타내야 한다.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는 현재 한국교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반성적 성찰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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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송민원 지음 / 복있는사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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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에 모이려는 인간의 집단적 욕망과 사방으로 흩어 문화를 다양하게 펼치려는 하나님의 의지 사이의 충돌로 보는 자신의 새로운 읽기를 '수평적 해석(horizontal interprcti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_15쪽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의 저자 송민원 교수는 성경 읽기를 '성경 안의 세계(in the Bible), 성경 뒤의 세계(behind the Bible), 성경 앞의 세계(in front of the Bible)'로 구분했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시선 또한 기존의 많은 교인들이 적용했던 '수직적 읽기'와 새로운 시선으로 강조하고 있는 '수평적 읽기'로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경 본문은 창조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창세기 1장~3장), 가인과 아벨의 사건, 소돔과 고모라 사건, 노아의 홍수 사건, 바벨탑, 거룩의 의미를 담아낸 부분이다.

보통 기존의 해석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초래된 징계, 벌, 회개를 토대로 한 '수직적 읽기'에서 흔히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반해 저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건들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초래된 폭력, 깨짐, 부조화, 분열 등을 '수평적 읽기'를 통해 찾아냈다.

저자는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바는 다음과 같다.

성경이 말하지 않은 바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해석자나 독자의 태도가 아니다(59쪽), 성경에 없는 표현을 채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의 표현 자체에 집중하는 읽기(61쪽)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본문에 없는 설명을 보충하려는 시도, 본문에 없는 추정에 근거한 것, 본문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삽입하는 것, 본문이 말하지 않는 의미를 덧붙이는 행위, 우리는 쉽게 그 빈자리를 특정한 신학적 상상력으로 채우려고 한다. 우리의 상상력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본문보다 앞서 나가는 것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상상력으로 채우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장면에서 "질투나 분노로 가득 찼을 때 나는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체면이나 권위보다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신다" _90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 진술이다.(111쪽)

성경을 수평적으로 읽으면 죄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살아 있는 부모님의 관계는 등한히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사람과의 관계를 무척 중요하게 말한다. "낯선 이를 맞이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동체의 수평적 관계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사람됨의 본질이라고 가르친다"(165쪽)

본문을 정확히 읽는다는 것은 신학적 틀로 익숙하게 받아들인 해석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_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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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감정 수업 - 불편한 감정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앨리슨 쿡.킴벌리 밀러 지음, 김총명 옮김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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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영역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감정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신체적 성장만큼 감정적 성장도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내면의 풍경을 돌아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감정이 무너진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압도적인 충동에 굴복 당하는 때가 있다. 마음에 분열이 일어났다는 징조다. 우리 내면에 있는 욕망은 끊임없이 우리 안의 경계 즉 바운더리를 침범한다. 바운더리를 지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우리 안에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내면의 다양한 부분들이 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초대해야 한다.

우리의 내면을 침범한 불편한 감정들을 무조건 경멸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시기심, 죄책감, 수치심, 분노, 질투 등 다양한 감정들의 이면에는 단점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켜내는 이점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한 감정들을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각 개인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다.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뜻이다.

부정한 감정은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초대함으로 그 감정들에서 일시적으로 유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유턴한단 것은 문제로만 여겼던 것들을 동반자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각과 감정에 압도당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번영은 권위와 연약함, 능력과 한계를 모두 포용할 때 이루어진다"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이끌려 속도를 잠시 늦추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감정 수업』에서는 다양한 영혼의 부분들을 내면 가족 체계(IFS) 모델로 여기며 가족 구성원처럼 생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조화는 개인적 욕심을 내려놓고 전체의 유익을 위해 협력할 때 생긴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원치 않은 생각과 감정들을 내면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환영해야 한다.

성령과 연결되면 분노도 호기심으로 보인다. 타인과 건강한 심리적 거리를 설정할 수 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내면의 부분에 휘둘려 말하지 않고 그 부분을 대신해서 말할 수 있다.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소통 기술 중 하나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잃어버린 내면의 부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내면의 모든 부분을 통해 선한 일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환대는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어렵고 힘든 부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함께해 주고 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할 때 불편한 감정과 친해질 수 있다. 그 감정들도 연민을 필요로 한다. 우리 안에 가두고 유배시킨다면 피하려고만 하거나 더 완강해질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놓아 줄 필요가 있다. 부드러운 바운더리를 세울 필요가 있다.

"내면에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은, 영혼 안에서 충돌하던 부분들과 협상하여 그들을 자신의 가치와 헌신, 목표 안에서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이다" 상처 입은 부분들을 기도로 돌보는 일은 내면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해진다는 것은 상충하는 감정들 사이를 조율하여 하나의 사명을 향하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다양한 감정들을 이해하며 존중할 때 그것들이 가진 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참자아가 내면에 존재할 때 불편한 감정들을 내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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