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경의 룻기, 더불어 사는 공동체
권수경 지음 / 야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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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책이다. 책은 읽혀야 한다. 읽히지 않는 책은 종이에 불과하다. 성경도 그렇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책인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뜻을 왜곡해서 읽는다면 인간의 욕심이 끼어들 개연성이 높아진다. 곁길로 빠지기 않기 위해 믿을만한 안내자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권수경의 룻기,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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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의 한 권인 룻기는 기존의 해석에 의하면 흉년이라는 재난의 피해자가 하나님이 극적인 은혜로 다시 회복되는 해피엔딩의 내러티브로 읽혔다. 글 전체의 맥락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해석일 수 있다. 다만 시각을 달리하여 과연이라는 의문점을 던지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의미심장한 해석의 한 줄기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권수경의 룻기,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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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체 핵심 키워드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다. 사는 모양이 다르고 제각각 형편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필연적인 과제가 있다. 바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삶이 공의이며 소유한 것을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사는 삶이 정의다.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의와 정의라는 두 바퀴가 함께 움직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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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 시대다. 저마다 각자 옳은 소견대로 살아가는 혼동의 시대다.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삶의 기준점이 없고 제각각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이 결코 질서정연할 수 없다.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가진 것을 더 움츠리고 나누는 삶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세상의 소리가 사람들의 사고체계에 곧게 박혀 있다. 룻기의 시대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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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수경은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행위를 기존의 해석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조명한다. 함께 나누고 싶지 않아 공동체를 떠난 이기적인 행위가 결국은 파멸의 삶으로 치닫고 결국 뒤늦게 깨닫고 다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로 다시 돌아온다는 내러티브로 독자들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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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경의 룻기,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을 적극 권장한다. 권력을 낮춰 힘을 분배하고 이익을 분산하여 함께 공유하는 삶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의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은 곧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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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우상숭배다!

욕심을 배척하고 자족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있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고 앞으로 얻게 되는 이익들을 함께 공유할 때 공동체가 공동체다워진다. 책임 있는 자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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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
코리 M. 마쉬 지음, 이현호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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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또 다른 위험은, 성경의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하루 한 구절씩 주어지는 묵상용 말씀에만 단편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_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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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의 핵심 문장 한 개를 고르기 위해 완독한 책을 다시 쓱 훑어보았다. 며칠에 걸쳐 조금씩 읽었기에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밑줄 그어 놓은 문장만 찾아 읽어도 큰 도움이 된다. 주제를 가장 많이 함축한 문장이거나 당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앞뒤 맥락이 다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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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을 때 빠지는 오류 중 하나는 문장에 녹아져 있는 역사적, 문학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체 섣불리 적용하려는 태도다. 「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성경을 오독했을 때 성경을 악용하게 되고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의 역사에서도 나타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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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다. 읽고 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판단하여 삶에 적용하는 것이 문해력이다. 문해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글의 특성, 글의 종류, 글을 쓴 저자의 의도를 역사적, 문학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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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문맥을 읽고 배우고 음미하는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기본을 지킬 때 성경을 왜곡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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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의 원저자인 하나님의 의도를 분별하기 위함이다. 시야를 자기 자신에게서 타인에게까지 확장하여 성경이 삶 속에 스며들게 하여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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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 자체로 진리다. 진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내포하고 있다. 성경을 오용하는 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일이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변질시키는 일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올바른 이해에는 수고가 뒤따른다. 그 수고스러움을 덜어주고 성경이 지향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줄 「평신도를 위한 쉽게 쓴 성경 문해력」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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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
권연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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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언어와 사람을 사랑하는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_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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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곧 존재라고 말했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고 했다. 즉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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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가 언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언어와 사람을 사랑하는 언어가 다르다고 비칠 때 기독교는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된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상의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믿는 신앙의 내용을 윤리적 실천으로 드러낼 때 다시 기독교에 드리워진 혐오 정서를 걷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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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교로 가톨릭, 불교, 기독교 순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정치적인 이슈의 한복판에서 불거진 극우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기독교의 모습은 합리성과 현대성, 보편타당성을 갖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종교의 기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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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기능 중 하나는 교리를 중심으로 이성을 초월한 경건한 삶의 태도다. 세속 주의와 물질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신앙의 삶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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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삶으로 말한다. 삶은 욕망의 전시장이다. 그의 삶이 자기 욕망에 복무하는 한 언어의 거룩함이 삶의 비루함을 상쇄할 수는 없다" _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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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극우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그들이 사용하는 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를 보건대 일반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기대하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함' 모습이 일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언어는 그 사람 자체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가치관과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략 유추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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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된 권력의 욕망을 감추고 입으로는 신앙의 언어를 외친들 이제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 '언어의 교란, 의미의 해체, 인식의 혼돈, 도덕적 아노미'를 가중하는 오염된 언어를 사용하는 한 기독교는 혐오 종교로 사람들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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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기독교가 사람들 사이에서 최소한 소통의 창구가 되기 위해서는 정제된 언어, 순수한 신앙의 언어를 삶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 거창하고 고상한 언어보다 꾸임 없는 경건의 언어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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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ㅣ 기독교윤리연구소 총서 3
기윤실 기독교윤리연구소 엮음 / 야다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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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환대가 주제어로 된 책들이 눈에 쏙 들어온다. 기윤실 기독교 윤리연구소가 엮은 책으로 여덟 분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바라본 환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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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기독교가 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답이 나온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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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독교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 '최소한의 윤리' 즉 상식 선에서 행동해 달라는 얘기다. 좀 더 기대 수준을 상향한다면 성경에 나온 것에 최소한의 몇 가지라도 실천하며 살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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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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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혐오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대하는 현상들이 정치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비롯한 사회 전반적인 곳에서 극단적인 사고방식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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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의 철학이 가슴에 와닿는다. 타인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자를 향해 책임을 느끼기 위해서는 얼굴을 보라고 말한다. 개인화가 가속화되는 이유도 어찌 보면 타인의 얼굴을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관계를 맺지 못할 때 타인을 공감할 수도 환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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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란 기꺼이 나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 실천도 환대를 통해 행할 수 있다. 조건적이 달린 환대라 할지라도 그 환대의 힘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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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윤리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제일 덕목으로 공감으로 대표되는 환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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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신학 -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가?
김진혁 지음 / IVP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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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으나 막상 행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환대 받기는 좋으나 환대하기는 노력이 수반된다. 사람 사는 세상이 좀 더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환대인 것은 분명하지만 환대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은 갈수록 위축되는 것 같다. 나 혼자 살아가기에도 힘든데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말인가라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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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순히 환대라는 말이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행위라면 환대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을 것 같다. 더 나아가 '폭력'이 될 수 있겠다 싶다. 환대가 폭력이 될 수 있는 경우는 환대 받는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을 때다. 쉽게 접하는 예로 낙인 효과가 있다. 단순히 돕는 행위가 상대에게는 굴욕감을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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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에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공감하고 동정하며 연민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의미다. 책 제목과 같이 신학에서 환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성경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강조점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의 구절은 실상 하나님이 직접 본을 보이는 행위다. 조건 없이 죄인 된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무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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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 즉 환대를 행할 수 있을까? 조건 없이 환대를 끝까지 베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일반 상식이 작용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먼저 남을 대접하는 일반 상식 말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 환대를 베푼다면 이것만 하더라도 칭찬받을 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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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환대의 신학은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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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신학」김진혁 저자는 환대의 의미를 다양한 시선에서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편협적인 시각을 깰 수 있도록 환대의 개념에 대해 폭넓게 제안하고 있다. 다만, 깊이 있는 내용인지라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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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_동화같은_학교

#신동으로키울게요

#삼척_신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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