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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길이 되다
이원식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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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온 나라, 조선!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에 보기 드문 사례가 있다. 선교사 보다 성경을 먼저 접한 나라가 있다는 점이다. 조선이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속에서 목숨을 걸고 '성경'을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기독교가 삽시간에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앞서 병인박해를 통해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들 당한 바가 있다.  '성경'을 지닌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극히 위험한 일이었다.(『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1~2권, 정민, 천년의상상, 2019) 

 

누군가 던져 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민족과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기독교만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한 믿음의 사람들 이야기다.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저자가 중국, 일본 곳곳에 다니면서 '코리안 바이블 루트'를 조사했다. 한글로 성경이 번역된 곳이다. 몰래 성경을 조선으로 들여 온 곳이다. 낯선 땅(중국, 일본)에서 조선을 품고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처자식과 본인의 생명까지 송두리째 바친 외국 선교사들이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저자가 촬영하고 조사한 지역을 장소별로 구분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알려 진 곳이지만 '코리안 바이블 루트'에서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1865년(제1차 전도여행), 1866년 8월(제2차 전도여행) 미국 무장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통역관으로 대동강 평양 근처를 방문해 한문성경을 전하다가 순교가 로버트 J. 토마스를 기억하고 있는가? (『회복해야 할 사명, 전도』최종상, 성서유니온)

 

한국의 첫 개신교 순교자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를 아는가? 그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으로 올라오다가 군졸들에게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죽을 때 군졸에게 건넨 성경은 '최치량'에게 건네져고 그는 훗날 평양교회를 세웠다. 제너럴셔면호 부근에서 성경을 받은 홍신길은 서가교회를 세웠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베었던 군졸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전도는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나님은 영국의 웨일즈, 거기서도 아주 작은 마을 흘라노버의 작은 교회 20대 청년 '로버트 제메인 토마스'를 선택하여 한국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회복해야 할 사명, 전도 』60~62쪽

 

중국 상하이로 파송되어 온 토마스 선교사는 항구에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중국 내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후베이성 우한시로 정탐을 다니던 중 아내가 유산을 한 채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아내와 아기가 묻힌 중국을 떠날 수 없었고 산둥반도 세푸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만난 조선인 김좌평과 최선일을 만나면서 조선을 알게 되었다. 그후 예수를 모르는 조선이라는 땅을 놓고 기도하며 자신이 있을 곳이 베이징이 아닌 조선이라고 확신했다.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에서 순교가 내막이다. 만약 토마스 선교사가 상하이에서 서쪽으로 중국 내륙 중심지에 위치한 우한시 가지 않았다면 아내를 잃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조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후베이성 우한시는 조선에게는 각별한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토마스 선교사를 통해 윌리엄 번즈, 윌리엄슨 목사가 조선을 알게 되었고, 존 로스(스코틀랜드) 선교사가 한글성경을 최초로 번역하게 된다. 존 로스 선교사의 한글 선생이었던 이응찬, 존 로스 선교사를 통해 성경을 건네 받은 의주상인 백씨가 집에 돌아와 아들 백홍준에게 주었는데 그 백홍준이라는 아들은 훗날 조선의 사도바울로 불린 인물이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와 관련된 인물로 서상륜은 권서인이 되어 서울까지 성경을 가지고 내려온 인물이다. 김진기, 이성하는 조선 최초의 세례인이 되었다.

 

2. 의주

 

의주는 예로부터 중국 접경지역이어서 중국을 오고 가는 관문이었고 국경이 폐쇄되는 가운데에서도 밀수입이 성행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 의주를 관통하는 압록강을 통해 '코리안 바이블 벨트'가 형성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의주상인 백씨는 영국산 옥양목을 얻기 위해 토마스 선교사에게 접근했지만 대신에 한문으로 쓰여진 얇은 성경을 건네 받았다. 백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성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백씨의 아들 백홍준은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인쇄된 성경을 들고 의주를 거점으로 주변 지역에 성경을 퍼트리게 되었다. 한글성경이 들어온 역사적 장소가 의주다. 한글성경 번역에 앞서 1816년 서해안을 탐사하던 바실 홀과 맥스웰은 서해안 마량진 근처에 정박해 영어성경을 전했고, 1832년 귀츨라프가 동인도회사의 배인 로드 앰허스트호를 타고 백령도와 고대도, 제주도 등을 탐사했는데 고대도에서 한문성경을 전한 바가 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듯이 당시 한글성경 번역을 위한 최상의 조합이 만들어졌다. 의주 상인들은 성경 번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문과 중국어를 알았고 한글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 팔도와 중국 땅을 누비고 다니며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95)

 

3. 일본

 

일본은 조선의 의주와 동시다발적으로 성경이 들여온 곳이다. 의주 상인을 통해 번역된 한글성경이 여인들과 일반 백성들에게 급속도록 퍼졌다면 일본에서 번역되어 들여온 국한문혼용성경은 소위 식자층과 고위층으로 번져나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에서 성경이 번역될 수 있었을까?

 

이수정이라는 인물을 기억해야 한다. 1882년 임오군란의 결과로 조선은 일본에 사죄한다는 의미로 박영효를 단장으로 한 '수신사'를 일본으로 급파한다. 이수정은 당시 수신사의 비공식 수행원이었다. 이수정은 일본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츠다센'이라는 일본인 목사를 만난다. 우치무라 간조 목사와도 관련된 인물이다. 이수정은 일본에서 기독교를 접한 뒤, 미국에 선교사를 요청한다. 이 일로 조선에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가 언더우드, 헤론, 아펜젤러, 스크랜턴이다. 이수정은 일본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매진한다.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성경이 먼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길이 되어준, 목숨 걸고 성경을 날라 준 무명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기독교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코리안 바이블 벨트의 중심지였던 '의주'가 다시 한번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대부흥의 근원지였던 '평양'의 배후에는 코리안 바이블 벨트 '의주', '중국', '일본'이 있었다. 성경을 번역하여 날라준 곳이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준 성경의 가치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참고로 네팔 T족에도 부족의 언어로 성경이 보급되어 활발히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저자가 기록으로 남겼다. 하루 3시간을 걸어 예배에 참석하러 온다고 한다. 부끄러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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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혁명가 - 영성의 두 갈래 길
이도영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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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봉담마을에 위치한 더숲어숲동산교회 이도영 목사는 남다른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작 『페어처치 』에서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다. 이번 『성자와 혁명가 』에서는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두 갈래 영성을 말하고 있다. 왜 기독교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는가? 그 이유를 이도영 목사는 성자적 영성과 혁명가적 영성이 통합되지 못한 결과로 본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여된다면 기형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이기주의에 도취된 기복만 바라는 교회(혁명가적 영성의 결여)되거나 자기 의만 드러내려는 과격한 교회(성자적 영성의 결여)가 될 수 밖에 없다.

 

저자 이도영 목사는 의도적으로 책을 구성할 때 성자적 영성을 전면에 배치한 뒤 나중에 혁명가적 영성을 소개한 듯 싶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도 성자적 영성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혁명가적 영성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존재'보다는 '소유'만 강조하고 하나님의 위대함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믿음의 위대함만 의지하려는 영성은 사실 없는 것만 못한 신앙이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교인을 불쌍히 생각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성자의 영성'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자와 혁명가 』앞부분 성자적 영성의 기초와 적용을 다룬 1,2부에서는 저자의 어렸을 적 힘들게 살았던 자기 고백(불우한 가정, 열등감 등)과 신학을 한 뒤 공군 군목으로, 안산동산교회에서 부목사, 더불어숲동산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경험하고 실천한 신앙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있는데 병든 자를 치료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들이 필요할 때마다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면의 3분의 2를 할애하면서 성자적 영성을 이야기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3분의 1에 해당하는 '혁명가적 영성'을 왜 지녀야 하는지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개신교에서 개혁하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장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독교강요'는 프랑수아왕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서론에 담겨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쓴 책임을 알 수 있다. 개신교에서 중요시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인 바울의 교회론도 세상과 분리된 종교적 목적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도시국가의 대내외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사회적이고 참여적인 도시 전체의 민회에 가까웠다고 한다. 왈도파 개신교인 마리 뒤랑은 38년 프랑스 콩스탕스 감옥에 갇혀 지내지면서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혁명가적 영성'을 불온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간절히 담아 놓았다.

 

교회의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깨어나야 한다, 시민사회 안에서 시민의 덕목을 소유해야 한다,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소회된 자의 편에 서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여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으로 변혁시킬 개혁가 또는 혁명가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명가적 영성으로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세월호, 미투, 장애, 난민, 공정 무역, 대안 건축(헤테로토피아) 6개 부분을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봉담 마을에서 실천하며 지역을 넘어 시 전체로, 도 단위에서 의제로 삼을 정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구원론과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분리 된 점" (242) 이라고 강조한다. 신분만 변하고 사람은 변화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는 용서되지만 죄인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롭다 여김을 받았지만 성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사사화"(247) 라고 말한다. 복음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결코 내용은 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복음은 공공의 장에서 선포되며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복음은 공공의 진리라는 것이다. 개인 윤리만 있고 사회 윤리가 없는 것이 한국 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자선과 시혜 안에 정의의 문제가 생략되어 있다"(248)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없다고 지적한다. 구조적인 악을 해결해야 하는 정의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오직 개인적인 자선과 호의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공의와 정의는 사회적 차원의 윤리이다. 성경은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집단의 자유를 말한다.

 

성경은 시선의 문제가 곧 권력의 문제라고 본다.(280) 지배와 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의 문제라는 점이다. 공동체는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존재한다. 공동체는 연약한 자를 돕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연약한 자임을 아는 곳이고, 우리 모두에게 장애가 있음을 아는 곳이며, 서로 연약함을 보듬어주는 곳이다.(284) 손상은 생물학적인 것이고 장애는 사회적인 것이다 .

 

"교회가 그 지역만의 필요를 알아내고 그 지역을 섬기는 것이 없으니 지역이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역 교회는 반드시 지역의 공공재 또는 공유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기에 지역이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정한 교회라면 지역이 교회를 붙들게 만들어야 한다" (326)

 

이도영 목사의 『페어처치』와 더불어 『성자와 혁명가』가 기존 교인들에게는 불편한게 사실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폭넓은 관점으로 보게 해 주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분명한 것은 저자가 말한대로 성자적 영성과 혁명가적 영성의 두 갈래에서 균형을 이뤄간다면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빛과 소금'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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