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느림에 기대어
김기석 지음 / 비아토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우리 같은 시민들이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19가 일상화되고 이제 곧 있으면 실내 마스크 해제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찌들고 녹록치 않은 삶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음울한 느낌이 든다. 새해 첫 날, 그리고 설날을 보내긴 했지만 희망찬 생각들은 그때만 잠깐일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숨이 막혀 올 때가 종종 있다.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부모 뜻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욕심인가. 부모인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보이는 자식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하고 낙담된 마음이 음습해 오기도 한다. 자식들만이라도 밝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자식들을 키워왔던 지나온 세월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자식 때문에 웃고 우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 

 

참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났다. 나를 돌아보게 책이다. 김기석 목사님의 깊이 있는 편지글이다. 코로나19를 맞이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방침 때문에 오랫동안 교우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보고 싶은 마음 가득 담아 틈틈히 편지로 교우들을 문안했다. 편지의 서두는 평안과 은총을 빌며 시작한다. 편지를 쓸 당시사회적 상황 때문에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교우들을 대상으로 썼다. 힘이 되고 싶고 위로를 전해 주고 싶어 하는 담임 목회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편지글은 저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교우들에게만 읽혀질 내용이 아닌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은총의 큰 손으로 감싸 주시기를 하나님께 청할 뿐입니다. _32쪽

 

이 책에서 저자는 다수의 책들을 인용했다. 책 읽는 내내 평범한 편지이기보다 마치 한 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저자가 얼마나 깊이 있는 독서 생활을 해 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친절하게 책의 앞부분에 사무실을 배경으로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사진들을 흑백으로 실어 놓았다. 꾸밈이 없고 정갈한 모습이다.

 

편지 글마다  주제에 맞게 그동안 읽어왔던 책에서 저자가 먼저 감동받고 도전되었던 문장들을 가지고 왔다. 깊이 있는 문장들때문에 편지를 읽는 독자들의 눈길이 오랫동안 글에 머무를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저자가 인용한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것 같다. 아니 그 책을 당장이라고 구해서 읽어 볼 마음이 들 것 같다. 고전에서 길어온 문장들은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편지마다 가지고 온 문장들도 그렇다. 두고 두고 메모해 두고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저자가 가지고 온 문장들은 아주 오래된 책에서 가지고 온 것도 있고 장르도 무척 다양하다. 시, 소설, 평론, 심지어 강원도 삼척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권일한)이 아이들과 만든 문집의 동시에서도 가지고 왔다. 

 

저자는 과연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변함없이 독서를 생활화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목회라는 특수한 직업적 특성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인간의 본성을 깨닫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교회가 사회를 품기 위해서는 시대적 소명과 방향을 먼저 읽어갈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여러 지혜들을 책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마셔야 한다. 

 

저자가 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간곡한 부탁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가 고백했던 것처럼 믿음에 덕을 세우는 일부터 하자고 간청하고 있다. 

 

자기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한 듯 보여도 실패자입니다. _59쪽

친절함은 지배하려는 마음의 금식입니다. _65쪽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어를 가려 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_117쪽

언어가 달라져야 세상이 달라집니다. 단정적인 언사는 대화의 의지를 차단합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늘 살펴야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합니다. _154쪽

말에도 멀미를 할 수 있다. _154쪽

이익에 담백해질 때 우리 속에 여백이 커집니다. 여백이 있어야 다른 이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_247쪽

 

책 제목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행동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앙 생활이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듯이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믿음, 기도라는 용어의 정의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청하여 얻어내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 마음에 접속하는 과정이다. _61쪽

믿음은 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_109쪽

 

저자 김기석 목사님처럼 품격 있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한다. 물론 우리 모두 나이들수록 언어가 정제되고 태도가 정숙해지며 사고에 깊이가 있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한다. 저자가 읽었던 책들을 찾아서 읽어가는 목표를 세워도 좋을 것 같다. 홍수 때에 오히려 마실 물이 없다고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도서관 서가에 무수히 많은 책들이 꽂혀 있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할 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이 시대의 존경 받는 어른들의 독서 목록을 참조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저자 김기석 목사님의 독서 목록을 참조해 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별이 된 다니엘처럼 청년이 희망이다 3
조영민 지음 / 죠이북스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22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시간이 빠르다. 일상의 삶에 쫓기며 살다보면 힘이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때다. 12월. 도서관에서 가서 종교 코너에서 몇 권을 뽑아 왔다. 그 중에 한 권이 이 책이다. 제목에서 메세지가 풍겨진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면 세상에 빛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종교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나약한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저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다니엘서를 묵상하며 난제에 빠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니엘'처럼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다니엘의 삶이 아닌 90살이 넘은 다니엘의 삶을 좀 더 부각하고 있다. 누구든지 젊었을 때에는 나름 포부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바라보는 시선의 범위가 축소되고 급기야 자기 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변하고 만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예외일 수가 없다. 겸손보다는 교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간다. 구약성서의 다니엘서만 보더라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니엘서 전반부에 나온 용맹무쌍한 다니엘의 모습만 흠모하며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다짐한다. 풀무 불 가운데에서도 살아나온 다니엘의 모습, 사자 굴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다니엘의 모습, 권력자의 다니엘의 모습만 보며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꿈을 꾼다. 

 

그러나 저자는 서두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노년의 다니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제국이 바뀌지만 이스라엘의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포로된 상태는 끝이 없어 보인다. 제국의 권력자로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다니엘의 삶의 방향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포로로부터의 해방, 고국의 회복에 있었다. 회복된 고국에 발을 딛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다니엘의 심정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이 범한 죄를 회개하며 언제 풀릴지 모르는 식민지의 삶이지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기도하는 다니엘의 노년의 모습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끝까지 가 봐야 알 수 있다. 90세가 넘도록 자신의 믿음에 흔들림 없이 많은 이들에게 신앙적 본을 넘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지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는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갈망하여 이 세상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고난과 고통, 아픔과 실패 조차도 거뜬히 받아내며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부활의 신앙은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어려움과 고통은 잠시 잠깐 뿐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만큼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부활이 있으며 지금 이 세상 속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니엘의 습관은 결국 그의 삶이 되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법칙이 되었다. 습관이 참 중요하다. 기도하는 습관,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 믿음으로 살아가는 습관. 습관이 쌓여 삶이 되고 삶이 곧 그 사람 자체가 된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늘 살아 곁에 있는 것처럼 살았다. 죄를 두려워했지 권력자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정신, 세상의 가치, 세상이 말하는 성공, 세상이 말하는 행복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내가 하는 기도를 믿는가?

말씀이 나를 해석하도록 맡겨드리는가?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며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고 전하는 자였습니다." (285쪽)

 

다니엘서의 후반부는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시로 가득찼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오늘날의 상황도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라고 권면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적 갓난아이를 격려하려면 IVP 소책자 시리즈 11
마이클 그리피스 지음 / IVP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써 굳게 설 수 있도록 돌보고 관심을 가지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로 새신자를 초청하지만, 더 중요한 돌봄과 양육을 하지 않으므로써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 서로 돌아보아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서로 서로 돌아보는 일을 어려워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적 거리두기가 국가 방역 지침에 의해 시행되면서 서로 돌아보는 일을 놓치며 살아왔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음의 거리두기로 바뀐 것이다. 교회로 모이는 것조차도 어려웠던 팬데믹 초기 각자 흩어져서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하다보니 이제는 대면으로 모이는 것이 어색해지고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 뿐인가. 만남이 적어지면서 각자 도생의 길에 익숙해버렸다. 교회 뿐만 아니라 직장도 마찬가지다. 퇴근과 동시에 함께 무슨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결례를 범하는 것마냥 인식되어버렸다. 각자 개인의 시간이 우선이고 개인의 시간을 침범하는 것은 몰상식한 사람처럼 취급되어버렸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돌아보아' 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해야 될까? 서로 돌아보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영적 갓난 아이와 같은 초신자들을 그리스도안에서 든든하게 세워가기 위함이다. 돌아보는 일은 돌봄과 양육이며 영적 갓난 아이와 같은 초신자는 믿음의 멘토를 통해 성장하며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다.

 

2. 격려하며

 

영적 갓난 아이와 같은 초신자들을 세워가기 위해서는 '격려'가 필수 조건이다. 미숙한 모습을 보며 판단하거나 질책하기 보다 갓난 아이가 부모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듯 사랑과 선행으로 힘껏 격려해야 할 일이 멘토에게 달려 있다. 격려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도로 격려할 수 있고, 만남을 통해, 선물을 통해, 모범을 통해, 편지를 통해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격려를 할 수 있다. 격려의 대상인 영적 갓난 아이의 특성에 맞게 지혜롭게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 또한 '서로 돌아보는' 일이며 사랑이 필요한 이다. 영적 갓난 아이의 작은 성장에도 힘껏 격려해야 한다. 격려는 갓난 아이를 성장케 한다.

 

3. 모이기를

 

모이는 일이 쉬웠던 때는 없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박해와 핍박이 있었던 때에는 목숨을 걸고 모여야 했고, 오늘날처럼 전염병의 위협에 놓여 있을 때에는 주변의 사람들까지 고려하며 모여야한다. 자고로 앞으로도 '모이는'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시대 속에서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모이기'를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이기를'을 힘쓰는 이유는 성장을 위해서다. 영적 갓난 아이는 혼자서 일어설 수가 없다. 혼자서 성장해 갈 수 없다. 누군가의 돌봄과 양육이 필요하며 멘토가 필요하다. 영적 갓난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는 일은 방치하는 일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이기를 힘써 영적 갓난 아이와 같은 초신자들을 믿음으로 굳게 세워가야 한다.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며, 모이기를 힘쓰는 일은 참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다. 누군가를 돌보고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선행을 쏟는 일은 성숙한 이들만이 가능하다. 고달프고 신경쓰이고 남을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하는 삶이 결코 여의치 않는 삶임에는 분명하지만 반면 보람되고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슴벅찬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포기하지 않고 달려갈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 IVP 소책자 시리즈 22
앨리스 프라일링 지음 / IVP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결혼은 거룩 그 자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구별되어야 한다!

 

 

나도 청년 시기에 결혼을 앞두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분명한 기준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매였다. 단순히 믿는 자매가 아니라 영적 성숙도가 어느 정도 레벨을 갖춘 자매이기를 바랬다. 물론 순간 내가 세운 배우자의 기준이 흔들릴 때도 많았다. 왜 흔들렸을까 생각해 보니 '조급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급함은 타협하게 만든다. 성경적인 기준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기준으로 타협안을 만든다. 그리고 어쩔 수 없기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이러한 생각에는 커다란 위험이 있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어느새 하나님이 아닌 내가 중심에 있고 그것을 결단 내린다는 점이다. 오늘날 결혼을 앞둔 많은 청년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배우자를 만나고 데이트를 한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결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데이트를 넘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을 위한 대상자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을 알려준다. 선택은 본인이다. 단, 하나님은 선택에 앞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우리는 사랑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사랑의 의미와 하나님 나라 밖에서 맺어지는 사랑의 결과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5쪽)

 

 

데이트를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짜릿하고 육체적인 달콤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이루는 과정을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한다. 목숨을 내어 줄 줄 아는 사랑,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할 줄 아는 관계가 곧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데이트 대상자를 만날 때 서로의 신앙의 척도를 살펴 보는 것이 우선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히 설 때 그 두사람은 서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 아닐 경우 그 이후의 사랑의 결과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쓰디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치관의 충돌,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죄악의 결과들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전제로 한 데이트에서는 결코 타협함이 없어야 한다.

 

 

"신자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7쪽)

 

 

거룩함과 구별됨은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혼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들이 가장 시험을 많이 당하는 것이 이성과의 관계다. 데이트다.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다. 대부분의 데이트가 결혼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통해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두 남녀가 주도권을 주님께 맡길 때 가능하다. 모든 선택의 결정권을 주님께 우선순위를 둔다면 그러지 않았을 때의 혼돈 속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비그리스도인과 데이트 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로 인간의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 때문이다" (16쪽)

 

 

결혼에 앞서 여러 가지 변명으로 결혼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 부패되었다는 점이다. 결혼 뒤에 후회하기보다 차라리 실연의 아픔이 있더라도 결혼 전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이미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 삶의 깊은 변화를 동반한 제자의 길 Emotionally Healthy 시리즈 4
피터 스카지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도안에서 건강한 제자란 무엇일까? 저자는 '정서적'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한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에 대해 이 기도문만큼 정확하게 나타내 주는 표현이 없을 것 같아 옮겨 적는다.

 

312쪽

 

성공하고 싶어 힘을 구했지만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도록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더 큰 일을 행하고 싶어 건강을 구했지만

더 나은 일을 하도록 허약하게 만드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를 구했지만

지혜로워지도록 가난하게 만드셨습니다.

 

세상의 찬사를 받고 싶어 힘을 구했지만

하나님을 갈구하도록 약함을 받았습니다.

 

삶을 즐길 수 있게 해 줄 모든 것을 구했지만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도록 생명을 받았습니다.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소망하던 것은 모두 받았습니다.

구하지 않은 기도는 뜻밖에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보다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탁월한 사역자로 누가 보기에도 멋진 큰 교회를 이끌고 싶어 했던 저자는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이 모두 허상이며 건강한 제자의 모습이 아닌 병든 모습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간과했던 건강한 제자의 모습을 '정서적'인 모습에서 찾게 된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며 더디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 만큼만 하는 것이 곧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성공, 위대함은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다. 인기와 명예를 추구하고 부를 자랑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다만 이런 것들을 쫓게 되면 어느 순간 정서적으로 메말라지고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켜 쥐게 된다고 말한다. 
 

"성공주의는 우리를 예수님에게 떼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가짜 신앙이다" (121쪽)

 

약함, 가난함은 현대인들이 멀리 하고 싶어 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사람들 앞에서 강해 지고 싶고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착착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심들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그리스도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나를 죽이려고 한다.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전체를 대신하여 사과를 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더라도 최대한 내가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낸들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자아를 대항하여 내 속에 '정서적으로 건강한 모습'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성숙을 바라고,

위대함에 도취되기보다 상실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약함을 찾아 나서고,

능력을 자랑하기보다 한계와 실패를 떳떳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제자가 되고 싶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