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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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니 타인과 진솔한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진심보다는 가식적인 관계로 지내기 일쑤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과도 같다. 관계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은 시선을 피한다는 점에 있다. 눈을 맞추지 못한다. 불편해한다. 눈빛이 말해 준다. 나조차도 그렇다.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본능이다. 반면 편안한 사람과의 만남은 전혀 다르다.

청소년기에 죄책감은 마음에 바윗덩어리를 얹어 놓은 것과 같다. 시선을 떨군다.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땅에 둔 시선이 얼굴까지 올라오기까지 숱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율의 시선이 그렇다. 찬구의 운동화만 바라본다. 발에 시선이 꽂혀 있다. 의학적 치료도 효과가 없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원한다. 가족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입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가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마음이 통해야 한다. 의미 없이 주고받는 많은 말보다 가끔이지만 마음으로 와닿는 몇 마디가 위로가 된다.

가족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이혼 등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인다. 아니 말을 잊고 관계의 단절을 선포한다.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상처와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을 감싸는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선생님들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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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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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책의 막바지로 가면서 가슴 뭉클해졌다.

'설마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야'가 사실이 되었다.

작가의 이야기 구성력에 소름이 끼쳤다.

요즘 청소년 소설에 푹 빠졌다. 나름 검증된 책을 읽고 싶어서 문학상을 수상한 책부터 섭렵하고 있다. 소설 읽기에 취약한 내가 선택한 전략이다. 기존의 기성 작가들의 훌륭한 소설집도 읽고 싶은 마음이 컸으나 아직 문해력 수준 미달인지라 단계를 낮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동과 여운은 상상 이상이다. 새해 들어 읽기 시작한 청소년 소설 모두 재미를 넘어 울림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고 공명은 여전히 가슴 구석구석을 울리고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은 그야말로 청소년들이 흔히 쓰는 말로 '쩐다'. 대박이다. 어쩜 이렇게 이야기 구성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연의 일치로 작품 속 주요 인물은 나와 같은 동시대에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내며 IMF라는 단군 이래 전대미문의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했으며 취업의 불황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청년기를 지냈던 마치 내가 살았던 과거를 다시 소환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새로운 구성을 보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하루 만에 뚝딱 쉴 틈 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아마도 이 책을 접하는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웬만해서는 아내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는데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자신 있게 권했다.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책과 달리 문학의 묘미는 결국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이 살아가는 시대로 돌아가 인물이 생각하는 동선을 따라 함께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속 깊숙이 고민하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알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만 문학 읽기는 관계 맺기의 예행연습이며 시공간을 초월한 탁월한 만남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통해 작가 이꽃님을 분명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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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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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은 사람의 많고 적음만 다르지 비슷한 원리가 작동된다. 리더가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할 때 관계가 삐걱거린다.

"우리가 원하는 진짜 어른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자신들이 모르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_112쪽

진짜 리더는 구성원들을 믿고 신뢰하며 인정하는 사람이다. 직원들의 생각과 의견을 믿고 인정할 때 리더십이 작동된다. 자발적 참여는 조직에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배우려고 하고 경청하려는 자세는 리더십을 강화시킨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목소리에 힘이 생기게 한다. 리더십의 역설이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페인트』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가상의 소설이다. 『페인트』는 '부모를 인터뷰한다'라는 영어 발음인 parent's interview에서 가지고 왔다.

더 이상 아이를 낳지도 기르는 것도 기피하는 시대에 국가가 부모가 외면한 아이들을 관리하고 일정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부모가 될 만한 사람들을 엄격한 면접 과정을 통해 매칭시킨다는 이야기다. 있을법한 이야기다.

초저출산 시대에는 아이 한 명 당 국가에서 지급되는 혜택이 늘어날 것이다. 국가가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슬로건도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앞으로 미래도 그렇지 않을까? 『페인트』에서는 아이 한 명을 입양하는 대가로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엄격한 부모 면접 과정인 페인트를 감수하고서도 입양하고자 하는 어른이 줄을 잇는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페인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랑을 넘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맨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아니 아이를 양육하면서 웃는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직접 낳고 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가 되기 위해 부모다워지라고 말한다. 부모 공부를 한다고 해서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 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누구는 되어 가는 것이 더딜 수가 있다. 과정 속에 힘듦이 더 많이 새겨질 수 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는 것이 부모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이는 도구가 아니다. 대리 만족의 대상이 아니다.

관리자가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관리는 시스템에 의해서 작동된다. 관리자는 시스템을 잘 관리해야 한다. 시스템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관리자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진작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관계다. 리더십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성장도 관계가 좌우한다.

부모 되어 가는 것, 리더 되어 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다.

『페인트』에서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듯이 학교에서도 교직원들이 학교 관리자를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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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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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아픔이 불쑥 다가오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지만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동안 그치지 않는 비를 맞아야 하겠지만.

비를 피한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대신 비를 맞아 줄 수도 없다. 비를 함께 맞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내가 맞아야 할 비의 총량이 있다.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위하는 일이 아니기에 묵묵히 그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길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가족을 잃는 상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별은 정리의 과정이 필요한 듯싶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기억의 정리 과정이 필요하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비는 계속되지 않는다. 비가 그칠 것이라는 징조는 먹구름이 거칠 때 알 수 있다. 먹구름 사이에 살짝 내비치는 유난히 밝은 별 빛 속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았던 비가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내린 비도 마찬가지다.

한국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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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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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날려보내고 싶은 고통이 사람마다 있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다. 훌훌 털어 보내고 싶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입양이라는 나의 선택의 여지는 일도 없는 엄청난 사건 앞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된다.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통해 더욱 강하게 순식간에 찾아온다. 머리도 이해받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감정으로 위로받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무언가 탁 트인다는 느낌,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큰 바위가 지각변동에 의해 저절로 굴러 움직여진다는 느낌이다. 우리 주위에 큰 바윗덩어리를 안고 사는 이들이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참 많을 것이다. 말 못 할 사연을 간직한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를 나되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 어머니가 나를 끝까지 지켜주셔서 참 감사하다. 1970년대 모두가 살기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여자 혼자 힘으로 갓난 아기를 키워낸다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적 냉대와 멸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금에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 따뜻한 손길을 보내오는 곳이 많지만 그때 당시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다행이던 시절에 어머니는 홀로 모두 것을 포기하고 나를 키워내셨다.

당연히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이름 석 자도 모른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부모는 오직 딱 하나 엄마 혼자였다. 이런 사실이 사춘기 시절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들이었다. 철저히 감추고 감추어야 할 비밀이었다. 그럴수록 점점 외톨이가 되었고 과장이 심하거나 거짓말투성이인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훌훌 털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전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숨겨야 비밀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철이 들었다.

훌훌 날려버리고 나니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나와 같은 입장에 처한 아이들을 만날 때 그 아픔을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담임 교사로 살아갈 때 상처 입은 우리 반 아이들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상처가 오히려 나에게 교사로 살아감에 있어 큰 선물이 되었다.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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