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도 1 - 포수의 원칙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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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없는 백성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에 불과하다. 구한말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군대가 강제 해산된 나라가 과연 나라일 수 있을까. 백성의 선한 움직임을 민란으로 규정하고 외국의 군대가 자신의 백성들을 무차별하게 죽이도록 방관하는 지도자가 과연 한 나라의 믿을만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념 아래 양반과 천민의 반상 제도를 철떡 같이 신봉하며 기세 좋게 명분을 삼은 위국 운동이라고 하는 의병 운동은 결국 나라가 놓인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했다. 나라가 망가지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무명의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구한말 함경도 일대에서 호랑이를 잡던 포수들이었다.

호랑이를 '범'으로 칭하며 호랑이를 잡는 용맹 무쌍한 그들을 '범포'라고 불렀다. 깎아지른 산세 지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범포들은 구역을 나누어 포수의 원칙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양반들에게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벼랑 끝 위기 앞에 놓인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바로 무명의 범포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독립군의 효시였던 봉오통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바로 '범포'였다. 범포의 세계에서도 뛰어난 포수장이었고 포연대장이었다. 아마도 홍범도 장군의 이름도 어찌 보면 실제 이름이 아니라 호랑이를 잡는 '범'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다만 그가 노년에 강제로 이주된 러시아 땅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과 독립운동 투쟁기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점 등이다. 방현석 작가의 장편소설 『범도』1권 포수의 원칙(629쪽 분량)에는 홍범도 장군의 유년 시절의 생활 모습을 독자들이 유추할 수 있도록 작가의 상상력이 문장으로 잘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함경도 산악 지형에서 포수로써 다져진 탁월한 사격 솜씨가 실감 나게 표현되어 있다.

"총잡이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복부를 맞춰 낙명시키지도 못하는 총잡이는 백정이고, 심장을 맞춰 고통스럽게 낙명시키는 총잡이는 사냥꾼일 뿐이야. 두부의 급소를 맞춰 일격에 낙명시켜야 포수라고 할 수 있지" _500쪽

기관총과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정예 부대와 산속 지형에서 오랫동안 포수로 살아온 포수 부대를 단순 비교하면 전력 면에서 천양지차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꾸렸던 부대는 외형적으로는 화승총과 일본 군으로부터 노획한 소총으로 간신이 군대의 모양을 갖추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정신력은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적의 상태와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석하는 정보력이 4할이고, 작전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3할이며, 싸움에 나서는 군병의 역량과 전의가 2할, 선전 역량이 1할이다"_ 588쪽

4정 3작 2전 1선의 원칙으로 부족한 전력을 보완한 홍범도 장군의 대일 전쟁은 오늘날로 말하면 민관군 협력으로 치러낸 전투였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당시의 기득권 세력들은 일본에 넙죽 엎드리고 있을 때에 조선 팔도 무명의 백성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자시의 모든 것들을 조건 없이 받쳤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다.

나라를 위한 첫걸음은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찾아보는 일부터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현석 작가의 장편소설 『범도』를 모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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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걸음 - 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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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올해에는 최장 10일간의 명절 연휴라서 가족 간의 여행, 쉼, 여유가 가득할 것 같다. 열흘 전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한 움베르토 에코 『가재걸음 』을 꾸역꾸역 읽다 보다니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다. 20여 년 전의 글이라 시대성이나 현실감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꽤 상당한 분량(453쪽)의 글을 놓치지 않고 읽어간 이유는 아마도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등 다방면에 걸쳐 글을 쓰는 움베르토 에코의 식견에 그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상황을 토대로 유럽 나아가 전 세계의 이슈들을 다룬 『가재걸음 』은 2025년 지금 세계가 놓인 상황과도 흡사할 정도로 세계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고 있음을 본 게 된다. 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도 그렇고 심지어 인종 차별을 넘어 혐오 그리고 근거 없는 가짜 뉴스까지 20여 년 전의 모습이나 2025년 지금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고 유포하는 과정을 통해 분열의 양상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옮겨가면서 모방' 하고 '허구로 이루어진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잇대며 '출처의 허구성이 금방 드러나는 모순투성이' 글을 퍼서 나르는 정보 오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요, 케플러 이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내용의 교과서를 계속해서 발행하는 것'과 같다.

분명한 증거를 두고도 끊임없이 부정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뿌리를 가진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선 혹은 악으로만 판단'하려는 것 때문일 게다. 다양성을 말로만 이야기하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해결책을 선택하게 이른다'라고 움베르토 에코는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답을 미리 정해 놓고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불신을 넘어 적대적 관계로만 남게 된다.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장면만 본다면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은 요원하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주장과 논리 속으로 들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노력을 보여야 한다. 무작정 자기 편의 이야기만 듣고 공격한다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올 추석부터 여론전이 치열하다. 추석 밥상에 올릴 정치적 이슈거리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움베르토 에코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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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르는 언덕
어맨다 고먼 지음, 정은귀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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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나라, 한 시절을 잇는 사람들

여기선 깡마른 흑인 소녀,

노예의 후손으로 홀어머니가 키운 그 소녀가

대통령이 되는 꿈을 꿀 수 있다지,

대통령에게 시를 낭독하는 자신을 문득 보네. _19쪽

2021년 1월 20일, 스물두 살 흑인 소녀 어맨다 고먼은 미합중국 제46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최연소 시인으로 시를 낭독한다.

The HILL WE CLIMB

우리가 오르는 언덕

우리 어른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무엇일까? 타성과 무기력이 아닌 힘과 폭력이 아닌 자비와 정의로 사랑이 유산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어야 할 텐데..

지금은 비롯 끝 모를 어둠이 자욱하지만 상실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지만 깊은 바다를 노 저어 용감하게 고요와 평화를 찾아가야 할 텐데...

완벽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목표가 있는 공동체를 벼리는 일은 애쓰고 노력할 만한 것이기에 분열된 공동체를 화합과 통합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가야 할 텐데...

서로에게 팔이 되어 주고 무기를 내려놓고 모두 화해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오르는 언덕은 희망찬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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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어나더커버)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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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말처럼 그의 글도 자극적이지 않고 효용적이지도 않다. 편안하게 부담 없이 술술 읽히도록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한 품이 느껴진다. 희망을 남발하지 않아서 참 좋다. 솔직하게 있는 마음 그대로 풀어내서 위로가 된다. 요란하게 열심히 노력하라고 하지 않아서 읽고 나서도 한결 가볍다. 묵직한 글도 좋지만 깃털처럼 훌훌 날려 보낼 수 있는 글이 마음에 착착 와닿는다.

'틀림도 특별함도 될 수 있다',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등과 같이 하나하나의 문장에 담긴 사고의 깊이,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실패도 좌절도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님을 그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요 삶 그 자체임을 다시 생각한다.

경주마와 같이 앞만 보고 달린 것은 아닌지 세월의 흐름 속에 문뜩 자신을 돌아본다. 앞뒤가 아니라 좌우를 돌아보아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천천히 가도 괜찮을 나이인데도 왜 그리 놓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만 가고 있는지. 더 이상 피로가 쌓이면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체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냥 자신의 몸을 학대하듯이 쉼 없이 직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잇몸도 주저 내려 않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제 남은 이라도 잘 관리해야지라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포기한다는 것이 나약한 모습이 아닌데 왠지 내 사전에는 포기가 없다고 작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푸근한 인상으로 아무 때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사람의 인상은 40이 넘으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하지 않던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좀 더 내 품을 내어 주고 시간과 지갑을 열어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이상을 가져본다. 어른에게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하듯이 혼자 우두커니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둥글둥글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행복은 조용함과 같이 찾아온다. 비교와는 거리가 멀다. 나만의 개성으로 나를 다독거리되 나에게만 갇힌 삶이 아니라 시선을 돌려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억지로라도 챙기는 삶이 행복이 아닐까.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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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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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평 남짓 햇볕이 들지 않는 북향집 작은 서재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우쭐할 수 있는데 여전히 자신만의 공간에서 칩거하며 작품을 구상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낸 위대한 문학성에 혀를 두르게 된다.

북향으로 난 단층집에서 희소한 햇볕으로 식물을 키워내기 위해 거울을 활용하고 식물의 생장 일기라고 할 수 있는 '정원일기'를 쓴다. 하루에도 시집 한 권, 소설 책 한 권을 읽으며 보내는 바쁜 작가의 삶 속에서도 빠짐없이 정원일기를 적어간다. 작품의 연속성상 안에서 그가 쓴 일기는 생각을 모으는 과정일 테이고 더 나아가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 그만의 방법일 것 같다.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그 또한 오랜 작업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산책을 한다. 산책하는 과정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시 정돈한다. 그가 작품을 구상하는 방법에는 독특한 모습이 눈에 띈다. 작품 속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몸으로 느껴본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실제 인물이 된다. 작가는 나와 다른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시대의 결여된 부분을 다시 소환하는 작가의 소리 없는 외침이 위대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사람의 내면에 깃든 아픔과 상처를 도려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는 안목은 사람에게 오로지 집중할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 본질 그 자체다. 쓸모없으면 잊히는 대상이 아니라 고유의 특성을 지닌 살아있는 생명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작가의 작품에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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