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회식 때문에 늦게 온 그날 나는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웠고 양팔에 아들 딸을 안고 누웠다.
물론 엄마가 없어서 (아쉬운대로)아빠 품에 들어 온 아이들이지만...
목욕을 해서 살냄새 좋은 아이들이 양쪽에서 재잘재잘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내 품으로 아이들을 감싸고 있으니 의젓한 아빠 같아서 뿌듯했고 아이들과 많이 친해진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아빠 이야기 해줘"
"응? 어떤 이야기?(갑자기 생각 안나..) 산아 노래 불러줄까?"
"어, 노래 불러줘(^^)"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데로 가느냐. 헤헤헤"
"또 불러줘!"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됐지?"
"또 불러줘~"
.......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동요가 바닥이 났다. 그래도 아빠 쥬크 박스에서 노래 나오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실망시킬 순 없었다. 아 쟁반노래방 좀 자세히 봐둘껄....
"뜨음북 뜸북 뜸북새 노온에서 울고~ 뻐어꾹 뻐꾹 뻐국새 숲에서 울지(?)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됐지? 자자(빨리 자고 싶어졌다;;)"
"또 불러줘~"
"........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아악! 가사를 모르겠어~~) 산아, 다야 이거 말고 다른 거 불러줄게~"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사~아는 어릴적 내치인구~ 푸른파도 마쉬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아~~~~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젋은 나알~ 뛰는 가슴안고 수평선 까지 다~알려 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거친 바다를 달려라! 여어어엉 일만 친구야~~~. 또 불러줄까?"
그 새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노래가 지겨워 잠이 들었나?  동요 레파토리를 좀 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잠이 들었는데 그날 기억은 안나지만 좋은 꿈을 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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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8-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빠 쥬크박스, 이거 동요책 이름으로 딱이겠어요. 차좋아 님 같은 고민으로 동요책 찾는 분들 많을 테니.
아이들이 목욕한 다음에 풍기는 살 냄새 - 아, 눈물날 것 같이 좋은 그런 냄새.

차좋아 2011-08-18 12:53   좋아요 0 | URL
동요를 그렇게 모르는지 새삼 알았다니깐요 ㅎㅎㅎㅎ

pjy 2011-08-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쟁반노래방~~ 저도 요새 그생각 많이 납니다^^; 조카병 초기인데도 이러니 아빠는 얼마나 더 힘드시겠습니까ㅋ

차좋아 2011-08-18 18:10   좋아요 0 | URL
다른 아빠들 사정을 모르니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매우 편한 축이지 싶어요. 아마 조카병에 걸리신 pjy님이 더 힘들지도 몰라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1-08-1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노래도 있어요, 차좋아님.

토실토실 아기돼지 밥달라고 꿀꿀꿀 엄마돼지 오냐 오냐 알았다고 꿀꿀꿀
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꿀

꿀꿀꿀꿀은 아기들 잠들때까지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하하핫.

차좋아 2011-08-18 18:13   좋아요 0 | URL
꿀꿀꿀꿀꿀 다음은 다락방님도 모르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동요가 그렇다니깐요 어려워요 어려워~~~ ㅎㅎㅎ

웽스북스 2011-08-1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초등학교 때 걸어다니는 동요집이었습니다 :)

차좋아 2011-08-18 23:3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초등학교 때 동요 부르는 어린이가 있긴 있군요. 저는 주로 가요를 불렀지요. 유치원때부터 가요를 들었어요 구창모의 희나리 나미의 빙글빙글.ㅋㅋㅋ

지금도 동요 부르지요? ㅎㅎ

웽스북스 2011-08-19 09:42   좋아요 0 | URL
우리반 동요선생님이었어요! 2교시 끝나고 한곡씩 가르치는. ㅋㅋㅋ

지금은, 모든 노래를 동요처럼 부르지요 -_-

차좋아 2011-08-19 12:02   좋아요 0 | URL
오호~~ 제가 찾던 귀인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ㅎㅎㅎ
저도 알려줘요~~~ 수강생 모집해야겠다ㅋ

동우 2011-08-23 08: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야, 웬디님.
웬디님이나 굿바이님 댁은 들여다 보지만, 직접 닷글 달려니 웬지 빚장이 기분들 느끼실까봐 조심스러워... 하하
여기다 답글 한줄.
책부족에는 여일하게 굿바이님 웬디님의 자리 빈채로 있습니다.
두분 올 추천하신 책들도 모두들 읽었지요.
웬디님 추천하신 '불멸'은 책부족 추장님을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에 포옥 빠지게 하였고. ㅎㅎㅎ

웬디님.
아무말 마시고 내년도 책 추천하여 주시기를 앙망하나이다. 하하

내년도

블루데이지 2011-08-1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저는 아는 동요는 많은데....부르다 보면 음정도 가사도 어느새 그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구요~ 가사치임에는 틀림없어요~~ㅋㅋ
힘내세요~~ 차좋아님처럼 좋은 아빠님께서는 복받으실거예요~~아이들 참 행복하겠어요^^

차좋아 2011-08-18 23:32   좋아요 0 | URL
저도 아는 동요는 많아요. 알기는 많이 알아요. 부르지 못할뿐 ㅋㅋㅋㅋ 들으면 아! 동요다, 하고 알긴 알아요 ㅋㅋㅋ
힘나요^^ 고맙습니다.
다음에 동요 완주 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7년 전 결혼을 할 때, 나도 남들 못지 않게(그렇게 생각된다) 이저런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사정에 맞게 생략 할 것은 생략하고 마음이 가는 부분은 조금 더 공들이기도 하면서 내 결혼식을 디자인 하던 그 때의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 떠올려 봐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이 된다.
  
축가는 해병대 동기이자 훈련소 작꿍인 J의 몫이었다. 그건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의 약속이었고 나는 그 친구의 축하를 꼭 받아야만 했기에 수소문 끝에 J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5년 만에 만난 훈련소 동기에게 지금의 아내를 소개했고 축가를 부탁했다. 친구는 우리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고 기쁘게 축가를 맡아주겠노라 대답했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로 했었는데 엄마 친구들이 태형이 결혼 선물로 축가를 연습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54년생 권사님들의 비브라토 가득한 30년 성가대 내공의 축가라니, ㅋㅋ 당황스러웠지만 재미있겠다 싶었다. 깜작 이벤트로 딱이겠는 걸~
묻지도 않고 연습중이신 엄마 친구들. 내 친구들의 엄마들. 엄마 친구 자식중에 처음 결혼을 하는 내가 기특하고 이뻐서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비를 하신거란다. 엄마는 내게 권사님들의 축가를 식순에 넣어달라고 하셨고 나는 기쁘게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하면서 축가가 두 번 있을 예정임을, 하나는 교회 권사님들이 준비했고 또 하나는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준비했다고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은, 꼰대 대식이 목사님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나이 먹은 권사들이 무슨 축가를 하냐며 순서에서 빼라고 하셨다. 그리고 축가는 하나가 좋다고 하셨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하지만, 바로 개길 순 없고 일단 "네... 목사님" 대답을 하고는 나는 식순에 두 개의 축가를 넣었다. 대식이 목사....님(젠장 장인어른 친구다ㅡ,.ㅡ)도 어쩔 수 없게끔.(어쩔거야~) 

결혼하는 날. 권사 취임식 날 맞춰입은 고운 한복을 다시들 꺼내 입으시고 교회에 모이신 권사님들은 자기 자식들 결혼처럼 기쁘게 축하를 해줬고 나는 권사님들의 축가가 기대되서 축가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입장 직전에 권사님이 축가를 안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일인즉슨, 결혼 당일 아침 식순을 확인하신 목사님이 권사님들 축가를 뺀 식순지를 다시 만들라고 교회사무실에 얘기했고, 권사님들을 불러 오늘 축가를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 말을 안들었다고 권사님들을 혼을 내셨다는 거다. (혼을 냈는지 훈계를 하셨는지는 분명치 않다.)  

내 결혼 최고의 이벤트는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나는 주례하는 목사님을 소심하게 쏘아보는 반항을 하는 수 밖에는 별다른 항의도 못했었다. 대부분의 권사님들은 옷을 갈아 있으셨지만 몇 분 권사님들은 분홍생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하객들 사이사이에 앉아 계셨다.

요즘 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을 보면 자꾸 그때가 떠오른다.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화가 난다. 대식이 목사.......이 영감탱이.  

시간이 지나면 속상했던 일도 추억이 되고 슬픔의 순간도 조금은 무뎌지게 마련인데 아쉬움은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듣지 못한 축가는 어떤 노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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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8-10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전 더 황당한..경우를. 군대 있을 때 데리고 있던 녀석과 연습을 하고..그 녀석은 제 결혼식에 맞추어 말년 휴가를 나와 하얀 양복을 입고 대기.. 주례 후에 아내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은 후 이재훈의 "난 행복합니다"를 아내에게 불러 주려고 야심찬 계획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 앨범에서 뽑은 사진으로 만든 동영상도 띄우고요. 모든 것이 다 준비 완료. 드디어 주례식이 끝나고 축가를 하려던 찰나에 주례 목사님께서 축도하시고 결혼식을 끝내셨습니다. 식순을 꼼꼼이 점검해 보지 않으신 결과죠. 여하튼 지금도 두고두고 아내에게 한소리를 먹습니다.

차좋아 2011-08-11 12:13   좋아요 0 | URL
엥? 그런 실수를 하시다니.
아내분께서 한소리 하실만 합니다.ㅋㅋㅋ

노래를 잘하시는구나 부럽습니다. 저도 노래 잘했으면 하고 가끕 생각하곤 해요. 저 내년부터 성가대 할까 고민중 ㅎㅎ 노래가 하고 싶어서요(")

風流男兒 2011-08-1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갑자기 내가 왜 혈압이.. ㅋㅋㅋ

차좋아 2011-08-17 12:15   좋아요 0 | URL
나 아직도 종종 그래. ㅋㅋ 혈압 상승,,,ㅋㅋㅋㅋㅋㅋㅋㅋ

동우 2011-08-15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식이 목사님. 맹꽁이 목사님. 꽉 막힌 목사님... (하하, 실례의 어휘는 아니랍니다)

54년생 권사님들, 향편님 결혼 당시에는 쉰도 안되셨을 젊디 젊은 여사님들의 꾀꼬리 같은 축가를.
내가 공연히 군시렁댑니다,허허



차좋아 2011-08-17 12:33   좋아요 0 | URL
직업적 종교인들이 집안에 몇 분 계셔서 그런지 제가 좀 무례한 면이 있어요.(마음의 문제인데 성직자를 존경하지 않아요.) 물론 보는데선 안 그럽니다. 엄마한테 혼나거든요 ㅎㅎㅎ
엄마는 본인 동생이 목사님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시고 누나인데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동생보고 목사님이라고 불러요.

사실 저 만큼이나 권사님들도 섭섭했을 텐데 아무도 목사님 흉보거나 내 놓고 이야기 하지 않더라고요. 이유불문 순종하는 모습 보며 참 대단하다, 생각했었습니다.

간혹 교회 다니는 가정이 아니라 절이나 무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언젠가 아는 스님이랑 차 마시면서 놀고 있었는데 스님이 빨리 예불 보고 올게 기다려, 하고는 법당으로 갔어요. 혼자 조용한 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스님이 독경 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때 참 좋았어요. 예불 보는데 가보고 싶고 부처님(불상)도 보고 싶고... 저는 법당을 안 들어가봤거든요. 오라, 소리를 안하니까.. ㅋㅋ


2011-08-17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축구 좋아해?, 라고 묻는다면 '좋아해'라고 대답하긴 하는데 주변에 광적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의 축구 사랑은 아마도 보통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대표선수들 이름정도는 알고 있고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선수들 이름은 알고 있으니 누군가 다시 축구 좋아해?, 하고 묻는다면 선듯 응 좋아해, 하고 대답할 것이다.

"축구 좋아해요?"
"?..(^^) 네 좋아해요~"
그 친구는 자기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내게 축구 셔츠 하나를 건넸다. 웨스 브라운이라는 선수의 싸인이 있는 맨유의 빨간 티. '와우!! 맨유 선수의 싸인 티셔츠라니 축구 좋아해요 완전 좋아요 ㅎㅎㅎㅎㅎ' 근데 웨스 브라운이 누구지??  

나 축구가 더 좋아졌다. ㅋㅋㅋㅋ 이참에 축구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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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7-2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가 결혼했다'가 생각나는 페이퍼인걸요~^^
전 축구보다는 야구가, 야구보다는 농구가(보는 것만) 좋아요~^^

차좋아 2011-08-02 08:26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보는 게 좋아요. 특히 야구 보는 걸 좋아하는데 올 해는 야구장에 한 번 밖에 못 갔네요 ㅎㅎ
아내가 결혼했다는 못 봤어요. 영화로라도 봐야겠어요 ㅋㅋㅋ

風流男兒 2011-08-0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조심혀

차좋아 2011-08-04 11:53   좋아요 0 | URL
응 많이 좋아졌어 오늘내일 테스트 삼아 뛰어 보려고 ㅎㅎㅎ

동우 2011-08-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
웨스 브라운이 누구래요?

소싯적부터 스포츠스타를 도통 모르니 한때 왕따도 당하였습니다만.
낫살 덕, 귀에 익어 이제 좀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끄집어내려니 까맣습니다그려.
'내 아내가 결혼했다'
김주혁과 손예진과의 유럽축구팀에 관한 얘기들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영화 보는 그때 뿐.




차좋아 2011-08-07 23:02   좋아요 0 | URL
잉글랜드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스티드의 (한때)주전 수비수였던, 오 시즌을 앞두고 선덜랜드로 이적된 괘나 실력있는 축구선수랍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잉글랜드 대표 선수였구요. 이상 검색해서 알아낸 정보입니다.ㅋㅋㅋㅋㅋ

내 아내가 결혼했다. 그거 한 번 봐야겠는걸요 ㅎㅎㅎ
 

최근 주말마다 산엘 다녔다. 불암산. 해발 500미터 남짓 작은 산, 능선따라 두시간 코스도 있고 가파른 계곡코스는 40분 코스도 있다. 능선 + 계곡 코스조합도 가능하다. 서울에 흔하디흔한 전형적 巖山이라 짧지만 결코 만만한 뒷산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불암산의 (명예)산주는 최불암이다.

휘모리님과의 약속을 세 시간 남겨두고 나는 산 생각이 났고 돌발적인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반바지에 트래킹화 꿰어신고 달리다시피 산을 오르는데, 신났다. 마치 모 아웃도어 광고마냥 나는 바위와 바위를 뛰었고 자갈과 흙길을 밟았고 자박하게 고인 물 정도는 피하지도 않고 앞만 보고 산을 탔다.
 
예상시간은 오르는데 40분 내려오는 시간 30분. 샤워하고 준비하는 걸 생각해도 충분했다. 

20분쯤 허떡이며 산을 오르는데 잠시 만난 내리막 길에서 속도를 내다 그만 나무에 무릅을 박고 말았다. 빡! 
자주 지나는 길이었는데 소나무가 길가로 굽어져 있는걸 미처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길가로 넘어온 (딱 무릅 높이) 건방진 소나무 때문에 다쳤고 화도 났다. 마음 같아서는 톱으로 배어내고 싶었지만 톱은 없었고 일단은 발로 걷어차려 했으나 걷어찰 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커서 양 손으로 왼 무릅은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그광경을 처음부터 보셨는지 아니면 추측하셨는지, "산에서 조심히 다녀야지....(쯧쯧)" 하고 한마디 하고 가시는데 그것도 야속하고 무릅은 심상찮고, 즐거움도 사라지고 짜증이 밀려왔다. 

미운 나무를 쳐다보며 잠깐 쉬고 나는 다시 산을 탔다. 아픈 건 아픈거고 일단 가려던 길은 가고 싶었다.  
산 꼭대기에 가서 생각해보니 나무는 제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바보같이 내가 들이 받아 놓고는 나무한테 화를 냈다는게 우스웠다.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고 무릅을 주무르고는 산을 조심히 내려왔다. 조심히...

예상보다 시간은 훨씬 더 오래걸렸다. 결국 휘모리님과의 약속시간은 못 지켰다. 8분 지각.
산에서 내려오는 걸음이 얼마나 더뎠었는지 아픈 것보다 답답해서 화가 치밀었다. (생각해보니 이 화도 슬데 없는 화였네...) 붓기는 산을 내려오면서 더 심해졌는데 도저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옆 걸음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지루했다.  

그 무릅은 결국 고장이 났다. 부딛혔을 때, 그 때라도 내려왔어야 했는데 무리해서 정상에 올라간게 문제였지 싶다. 당분간 산행은 쉬어야지. 저녁 달리기도 못하고 있다.  

당장 아픈건 참겠는데(참아야지 울어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다) 앞으로 운동을 못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심장이 터지게 산 길을 달리고, 종아리에 쥐가 나도록 뛰는 일이 그토록 감사한 일인 줄 새삼 깨닫는다. 

등산에 재미 붙어서 등산 배낭도 이쁜 거 샀는데... 
 
이번주에 산에 가면 그 나무 한테 사과해야지 ㅎㅎㅎ  등산배낭 매고 싶어서 아무래도 기어이 산에 가지 싶다.ㅋ 살살 걸으면 괜찮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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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7-2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등산 배낭 저도 샀는데 그리 안 이쁜 듯해서리 또 사고 싶어져요
음 무릎이 아프시면 많이 속상한데 스틱 짚으면 좀 괜찮다고 해요

차좋아 2011-07-29 12:14   좋아요 0 | URL
또 사세요 ㅋㅋㅋㅋ 근데 그 가방 가지고 산에 가보셨어요? 편하다면 그래도 다행인데 말이죠. 편하면 그냥 좀 예뻐해 주세요 ㅎㅎㅎ 아깝잖아요^^
스틱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스틱은 아저시들이나 하는 거 같은데 벌서 스틱을 써야하는구나. ㅜㅜ
참 저도 아저씨입니다만,ㅎㅎㅎ
스틱은 생각 못해봤는데 무릅에 도움이 된다면 고려해 봐야지요 ㅎㅎ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7-2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비에 그동네 산들은 괜찮은가 모르겠어요.

조심하셨어야죠.
차좋아님 무릎은 제가 '호오~'해 드릴게요.
무릎 그냥 놔두면 성날 수도 있어요.
계속 아프면 치료를 받아 보심이~^^

차좋아 2011-08-02 08:28   좋아요 0 | URL
무릎 많이 좋아졌어요 ^^ 푹 쉬고 쉬었더니 좋아진거 같아요. 지난주에는
오래 걸었는데도 괜찮더라고요. 호오~ 덕분입니다.^^ 감사드려요 ㅎㅎㅎㅎ

우리동네 산들은 괜찮아요 ^^

동우 2011-08-0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금정산, 백양산, 승학산.
부산의 산은 안온하지요.
가로 누운 등걸 따위 없을겝니다.
(있으면 어쩔겨?)
한켠으로 바다가 내려보이는, 산행치고는 최고일터.
내 옛같았으면 부산 불러들여 향편님은 내 밥일터인데. ㅎㅎㅎ

차좋아 2011-08-07 23:13   좋아요 0 | URL
몸 좀 사리다가 오늘 드디어 등산을 했습니다. 지난주에 산 언저리를 걸었으나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둘레길이었고 오늘은 좀 격한 코스로..ㅎㅎ
무릎이 좀 나아진 것 같아서 테스트 삼아서 두시간 코스로 갔다왔어요.

음... 아직 안 나았네요 ㅎㅎㅎ 하지만 좀 더 쉬면 다 나을 것 같아요. 아직 젋기에 자연 치유를 바라고 있습니다. 병원가면 당연히 치료들어가겠지만 그리 안해도 나을거 알고 있거든요.

부산이 산이 많아서 부산이라면서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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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데리다는 조심스럽게 사유하였다.
책들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내가 곧 진리요 길이다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오리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정신 차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데리다에게서 새삼 배웠다. 데리다는 니체를 읽을 때 맹목적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그리고 섣불리 판단하고 옳다 그르다 결론짓지 않았다. 빠짐없이 읽고 오랜 시간 동안 읽고 열심히 읽고 끊임없이 파헤치며 읽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읽고, 니체의 말로 니체의 모순을 발견하고 니체를 해체시켰다. 니체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마르크스, 프로이드 따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앞 다투어 갑론을박하는 요즘과 사뭇 달랐다. (물론 데리다의 사유가 무르익은 뒤에는 용감하게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데리다는 치열하게 꿈꾸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데리다 훨씬 전부터 회자되었던 말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생겨난 후 변화하다가 결국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 속에 현재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의식 속에 현재, 존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를 꿈꾸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존재는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니체와 하이데거에 이은 데리다의 사유다. 다만 데리다는 절대적인 존재의 도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했다. 이것은 니체와 하이데거에서 벗어난 데리다의 사유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리라고 희망한다는 것은 오리혀 절망이겠지만,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올 때까지 치열하게 행동하게끔 하는 채찍질이지 않을까 싶다.


데리다는 죽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나에게 “눈멂”을 남겼다.
데리다는 2004년에 죽었다. 그러나 <데리다 평전> 속에 나오는 수많은 저서들, 수많은 철학자들, 수많은 개념과 정의들은 앞으로도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며, 그 수많은 것들 속에서 유독 나에게 반짝였던 데리다의 “눈멂”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다. “타자는 볼 테지만 나는 볼 수 없는 것, 나 자신에 대해 놓치는 것을, 타자에서 본다. 이 눈멂은 개인들에게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눈은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울고 눈물 흘리기 위한 것이다. 나를 나 자신에 대해 눈멀게 하는 그 눈물은 타자에로의 시선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데리다가 과거의 사람들을 사유하고 절대적인 존재의 도래를 꿈꾸었던 것처럼 나는 데리다를 사유하고 얻은 공동체를 위한 눈물 흘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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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7-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 님, 소설 분야 신간 평가단 아니셨어요?^^

전 인문은...특히 데리다 따위(?)는 마냥 어려웠었는데,
머리에 쏙 정리되는 멋진 리뷰예요~^^

차좋아 2011-07-20 00:47   좋아요 0 | URL
멋진 리뷰라니... ㅎㅎㅎ 읽느라 정리하느라 고생 좀 한 책이었는데 진짜 고마운걸요^^
데리다 따위(!) 다시 안 읽을 거예요.ㅋㅋㅋㅋ

인문 분야 평가단이지만 저는 소설이 훨씬 좋아요^^

동우 2011-07-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의 절창입니다.
"데리다는 죽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나에게 눈멂을 남겼다."

향편님.
우리, 사조에 현혹되지 말고 지식에 압도되지 맙시다.
세상 책들 구름처럼 읽읍시다.
조르바스럽게 삽시다그려.

새로이 접하는 것들 모두 조르바스럽게 감탄으로 맞으면 되지요. ㅎㅎㅎ

차좋아 2011-07-24 00:28   좋아요 0 | URL
조르바 읽으며 동우님 생각을 했었어요. 동우님이 조르바라면 제가 그 친구(카잔차키스)라도 될테니 말이죠.
부산에서의 조우, 해변, 한밤의 흥청거림. ㅎㅎㅎ 크레타의 바닷가만 할지 못 할지 그건 모르지만 그날 광한리의 바닷내도 좋았습니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