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순간>을 읽고 있는데 주인공에 이입이 심하게 된다. 나도 그래, 내 상황을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싶어. 정.확.하.게. 
토마스는 진실보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 한다. 나도 그러는데...
솔직하자면 그 사실이라는게 내 자리의, 내 편리의 사실이니까 나만의 진실 되겠구나, 객관이 담보되지 않은 나의 사실... 
진실, 각자의 진실이라는 것. 별로 신뢰하지 않으니까. 나는 사실에 입각해서 진실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토마스의 모습에서 자꾸 보여...   세상 시선따위 개의치 않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변명하고 싶은거지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에 귀 기울여 주는 친구 있어서 다행이야. 토마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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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8-26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님이 지금 포기의순간을 읽고 계시구나...어쩐지 좋다.
:)

차좋아 2011-08-26 17:29   좋아요 0 | URL
결국 어제 다 읽고 잤어요. 이거 읽고 막걸리 한 병 마시고 뭔가 생각도 많이하고...ㅎㅎ

동우 2011-08-29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할게 많은 책인가 보지요?
독후 막걸리 한병 하신걸 보니.

향편님.
추장님 공지 보시기를.
책부족의 내년도 책 선정에 관하여.

차좋아 2011-08-29 11:55   좋아요 0 | URL
그럴듯한 소설, 그럴법한 마음. 나라면(나라도) 저런 마음이었을거야, 뭐 이런 생각들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막걸리는 우선 처치 해야하는 주종이잖아요 ㅎㅎㅎ 맥주 소주에 과실주도 좀 있지만 막걸리 먼저 먹어야죠 ㅋ

공지 보고왔습니다 생각 정리하고 댓글 달게요~

風流男兒 2011-08-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좋드나, 나도 한번 읽어봐야 쓰겄다.

차좋아 2011-08-29 17:53   좋아요 0 | URL
막 좋았던 책은 아니고...ㅋㅋㅋ 어쩐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구석에 공감을 좀 했어. 나랑 어떤 상황이 비슷해서는 아니야 ㅋ
외로움에 대해서랄까?
재미는 뭐 그저 그래.
근데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자구 드네.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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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릴 적 야구에 열광하는 나에게 어느 한 형이 이렇게 말했었다. 스포츠는 정치를 정치가들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약이다. 국민들을 정치에 눈멀게 하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살기 힘들어 나라에 대한 원망을 감당해낼 수 없을 때 국민들의 분노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하려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때는 그 말들이 참으로 놀라운 진실처럼 들렸다. 정치가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불끈 솟아오르고, 야구 중계를 빠짐없이 보는 내가 스포츠라는 마약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놈인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이택광은 서문에서 문화비평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지만 문화비평이 무엇인지, 누가 문화비평가인지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좌파, 살롱좌파, 주례사 비평, 연예 칼럼 따위는 문화비평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영화비평가나 대중음악비평가도 문화비평가가 아니라고 한다. 문화비평가는 문화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뿌리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는 자이며, 문화비평은 주제의식을 다루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문화비평은 문화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개그콘서트>의 “마빡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관객은 왜 마빡이를 보고 웃었을까? 문화비평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슬랩스틱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외모를 가진 정종철 때문이다, 자학적이기 때문이다 라고들 그 인기 원인을 분석한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마빡이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여 마빡이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리”라고 분석한다. 후기 자본주의인 이 사회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신화를 먹고 살아간다. 신자유주의 신화는 무한경쟁을 설파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경쟁을 용인한다. 마빡이는 불평등한 경쟁구조를 드러낸다. 개그라는 행위는 더 높은 시청률을 위한 압박이다. 마빡이는 노동의 압박에 대한 비판이며 노동의 구조를 드러낸다. 우리를 웃기는 것은 이렇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노동의 구조에 대처하지 못하는 출연자의 무기력이다. 근면 성실이라는 근대적 노동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이유 없이 이마를 열심히 치기만 하는 마빡이를 조롱하며 웃고 있다. 근대적 노동과 대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창조성이다.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시장의 구조는 대중에 항상 변화에 대한 강박을 강제한다. 이런 강박의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대중의 무의식적 노력이 문화적 형식으로 표출되었고, 창조성의 시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 마빡이의 인기로 이어졌다.


마빡이에 대한 이택광의 분석을 정리해 보았는데 다른 대부분의 글들도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엄청난 진실을 알려주었던 그 형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보통 사람들이 흔히 즐기고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한 어투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재미와 단순한 지식 속에서 내 나름대로 비평하며 사는 내 모습을 들킨 듯한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택광의 비평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의 말들이 참으로 흥미롭게 들렸다. 이런 식으로 문화와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러나 책을 내려놓으면서 스쳤던 물음 하나, “그래서?” 문화비평이라는 것이 분석이라고 했으니 그래서 라는 내 물음에 이택광이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대답은 내 몫인가. 그러고 보고 어릴 적 그 형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주지는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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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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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서사의 지루함과 현실감 없는 연극조의 대화가 그것이다.
<분노의 포도>를 읽기 전,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걱정했던 류의 어려움은 없이 책을 읽었다.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의 이야기임에도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과 모습들이 펼쳐진다. 어느 미국인 가족의 생활기는 때와 곳을 달리한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인물들간의 대화도 현실의 내가 말함직한 직설화법이었고 생활언어였다. 분량이 만만치 않았지만 수월수월 읽을 수 있었다. 간혹 띄엄띄엄 읽기도 했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쓸 것이 없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장들이었다. 이야기하는 그대로 사실이었음이 분명한 한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 가족의 생존기.

대공황 시절의 미국 농촌은 그렇게 피폐했었고 사람들은 잔인하게 가난했었구나. 들어서 알고 있다, 보릿고개가 어땠으며 육이오가 얼마나 비참했었는지.
배워서 알고 있는 이야기들. 인간성 상실의 시대, 자본에 의한 인간의 도구화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를 잃는 상황들. 
자본에 의해 땅을 빼앗긴 사람들. 자연에 의지해서 이웃과 조화하며 살던 아메리카 땅의 농부들은 일거리를 찾아 온 식구가 트럭을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 동부에서 서부로 66번 국도 따라 '고 웨스트'. 금광이 발견된 그 땅에 일자리도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캘리포니아. 자본과 기업에 땅을 빼앗긴 동부의 사람들이 노숙을 해가며 광야를 건넌다.    
광야를 건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러진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부로 간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욕심. 생존에의 욕구는 동물적이었다. 동물은 단순하다.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그게 다다. 죽지 않기 위해 동물들은 향기로운 복숭아가 열리고 영근 포도송이가 주렁주렁한 캘리포니아로 간다. 

거대한 농장은 주인이 있다. 농장은 거대해서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수천, 수만 에이커의 땅에 복숭아가 열리면 농장주는 일손을 구해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들고 금방 일손을 구할 수 있었다. 배고픈 사람들이 계속 농장으로 밀려오고 일당은 내려간다. 그나마도 복숭아 수확이 끝나면 다시 다른 농장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은 농장주를 위한 소모품이었다. 수확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섬세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도구는 다른 기계와 달랐다.
사용가치를 다한 인간은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땅의 노숙자였다. 농장주는 그들이 싫었고 두려웠다. 
희망이 없는 가난한 이주민들로부터 절망과 분노의 기운을 감지한 농장주는 그 웅성거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누어 줄 것은 없다. 과실이 남아도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농장주는 계곡과 바다에 버려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이 혹여 주워라도 먹을까 석회를 뿌리고 기름을 부어 태워버린다. 돼지도 마찬가지, 팔리지 못한 돼지는 가격안정을 위해 땅에 묻어 버린다. 오키들(오클라호마 사람), 동부의 촌놈들은 버려지는 과실과 돼지를 주워도 못 먹는다. 사 먹을래야 사 먹을 돈도 없다. 일자리가 없고 노동력이 가치가 없어진 마당에 일을 한다해도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 배곯은 길 위의 사람들이 분노한다. 동물에게 먹히지 못하고 썩어나는 포도들이 분노한다. 무엇때문에 태어나고 길러졌는지 모르는 돼지들이 땅에 묻히면서 대지가 분노한다.
더럽고 약한 떠돌이 농부들간의 작은 연대도 농장주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가난한 강도들이 자기 것을 빼앗을까 전전긍긍. 두려움에 떨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산업 자본주의의 단면, 친미 반미 양단의 관점들과 구호에 익숙한 나는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았다. 불과 백 년 전 모습에서 아마 지금도 그러할 것이겠지만 그곳도 자본에 의해 억압당하는 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느 걸. 국가니, 자본이니 거창하다. 나와 같은 소심한 욕심 가진 사람들이 희노애락, 아둥바둥 살고 있는 사람 사는 땅 아메리카. 사람끼리 연대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만 찰나의 자각. 내일이면 나는 미국놈 욕할 테고 오늘도 일본놈 욕하고 있다.
무엇엔가 내 정신을 빼앗긴 건 아닐까. 돈과 직업, 종교와 사상 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가치, 이웃 사랑과 모두 함께 따뜻하게 잘 먹고 조화롭게 사는 것. 이웃과 대지와 나무와 새들까지도...


(음... 결론이 <분노의 포도> 결말을 따라가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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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2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후레시맨 시절 영어 원서로 보다가 지루해서 때려친 작품이에요...영문과 수업시간에 다시 봤는데요...역시 지루하더고요~ 아마도 제대로 못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아니면 영어라는 문장에 휘둘려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거 존스타인백의 작품을 흠모하는 후배에게 존스타인백의 작품은 제미 없다고 하니...어떤 작품이 재미없냐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 친구가 떠오르네요..^^

차좋아 2011-08-23 23:25   좋아요 0 | URL
후레시맨 시절이라길래(오후에 덧글을 처음 읽었을 때) 후레쉬맨 티브이 플그램 하던 시절을 말한는줄 알았어요. ㅎㅎ 제 수준이 이래요 ㅋ
다시 보고 알았습니다.ㅎㅎㅎㅎ

저도 지루했어요. 여타 소설에서 느끼던 긴장감이 없으니 책 여러번 들었다 놨어요. 문장이 쉬워 술술 읽히기는 했는데 쉽게 놓게도 되더라고요. 분량이 상당하니 읽는데 오래 걸릴 밖에요.ㅎㅎ


pjy 2011-08-2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내용이 현실과 너무 정확하게 맞아들어가는게 무섭습니다-_-; 일단 결말을 제가 읽고 급! 정치권의 필독도서로 권장해드리고 싶네요

차좋아 2011-08-23 23:31   좋아요 0 | URL
일반의 정서로써 이 책을 이 이야기를 접한다면 분명 이 세상이 문제가 있구나라는걸 깨닫거나, 다시 느끼거나 할꺼에요. 분명히.
근데 그건 오키들을 전제 했을 때구요. 이미 자본의 노예가 된 자본가들 정치인들 종교 지도자들이 본다면 글세요~ 뻔한 이야기에 귀기울일 인종들이 아닐꺼에요. 그치들에게서 기대 버려야지요. 우리끼리라도 연대하고 이해하면 다행입니다.
무상급식 투표 따위, 찬반 양분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는 거 보면 속상해서... 에휴~~

동우 2011-08-24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향편님.
나는 사회적 혹은 계충적 연대의식보다는 인간의 연대의식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성을 그린 것으로 읽히는바 있었습니다.
진부한 휴머니즘쯤으로 이 소설을 폄훼할수 있으나.
존 스타인벡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계층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
동류의식 가득한 순정한 집단 속에서도 계층은 있습니다.
인간성이란 일반화하여 집단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신비한 그 무엇입니다.
우리의 조르바가 통찰하듯 말입니다. 하하하

차좋아 2011-08-24 09: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계층적 연대의식의 다른 표현이 집단 이기주의 일수도 있으니까요.
소수의 압제자도 어찌보면 불행한 인종들. 수억 수천억 돈을 가지고도 계량될뿐 도대체 얼마만큼인지도 모를 그 부. 그 부 때문에 외롭게 사는 사람들 보면 자본의 숙주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견해 또한 열등감에 의한 감상적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 결말을 폄훼하지는 않아요.

다소 어쩡쩡하지만 분명한 거 보단 신뢰가 갑니다. 케이시 목사도 어정쩡...
저도 그래요.ㅋㅋㅋ
 
잘 달린다 - 지식공작소 마라톤 1
이안 맥닐 외 지음, 엄진현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성에 안차지만  다시 꼼곰히 읽어보니 좋은 책이 분명하다.
달리기를 처음 하려는 사람, 5분 이상 달리기가 자신 없는 사람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듯.
뭐든 그렇지만 기초가 중요한 법. 조금 더딘 일정이지만 13주 프로그램으로 달리기를 한 시간 이상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건방진 소리 하나 하자면,
'젠장, 한 시간 달리기 목표 프로그램을 돈주고 사다니....'

아쉬운 건,
이책 10년전에 알았더라면 안 다치고 더 즐겁게 달리기 했을 거 같긴 하다.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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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은 어떠신갑요~?
치료 후 완쾌되었나요?^^

차좋아 2011-08-22 18:13   좋아요 0 | URL
무릎 통증엔 쉬는거 외엔 별다른 치료가 없는지라 한참 쉬었거든요. 2주는 운동 딱 끊고 그 이후에도 많이 안 뛰고요. 산에나 할랑하게 다니는데 아직 조심스러워서 달리기는 잘 안해요.

ㅋㅋㅋㅋㅋㅋㅋ 양철나무꾼님 제가요 몇 날을 고로워했어요. 부화내동ㅋㅋㅋ
오타라고 생각하셨음..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오타일리 없잖아요?
아.. 많이 쪽팔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동우 2011-08-23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미 달리기 수준에 오른 향편님이나 책부족 추장님 같은 이에게는 초보수준인 책인가 보지요?
달리기는 본능적인 움직임인줄 알았더니, 체계적 이론적으로 시작해야 하나 봅니다.

나는 향편님, 런닝 머쉰 벨트 위에서 시속 5.5km 정도에도 헥헥... ㅎㅎㅎ

차좋아 2011-08-23 11:58   좋아요 0 | URL
잘 달리자. 매력적인 제목이었어요. 잘 달리고 싶었거든요.
운동에 있어서 통증은 애인과같은 것. 이라는 잘못된 생각 이 책읽고 고쳤어요. 달려서 아프면 안된대요. 그 말이 맞아요. 아픈거 참고 망음이 앞서 달리면 앞으로 달리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알면서도 무리했던 제가 한심스럽더라고요.
앞으로 잘 달릴거에요^^

yamoo 2011-08-2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한 시간 달리기 목표를 돈주고 사다니...ㅋㅋㅋ 아, 차좋아님 때문에 한 바탕 웃고 갑니다..ㅎㅎ

차좋아 2011-08-23 23:34   좋아요 0 | URL
웃겼어요? ㅎㅎㅎㅎㅎㅎ 다행이다. 웃길 의도는 없었지만 다행이에요. 달리기 좀 한다고 한시간 달리기 우습게 이야기해서 건방져 보일까 쬐금 걱정은 했거든요. 게다가 즐거워까지 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이직을 위한 입사지원서를 집에 두고 온 서류 접수 마지막 날. 나는 다시 마음을 봐꿔 아내에게 원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이도 휴가중인 아내가 집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 어쩌면 다행이 아닐지도 모르는 결정이다. 각설하고,
아내는 서류를 챙기고 주민센터에서 초본을 떼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아 점심때 쯤 회사로 왔다.  
내가 일하는 거대한 건물 앞에서 나는 우리 가족을 만났다. 아내와 아이들. 방학중인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산이 다야도 왔네~"
아이들은 어딘가 신나보였고 나는 부끄러워 주변을 살폈다. 
"여기가 아빠 회사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데 아내가 무릎을 굽혀 다야를 바라보며 응 여기가 아빠 일하는 곳이야~, 라고 대답을 한다.
아이는 눈을 들어 가만히 그 큰 건물을 바라보고는 나를 바라보고 다시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아이가 그 건물을 보는게 싫었고 아이의 얼굴도 볼 수가 없어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목마를 태웠다.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자신없는 표정과 눈빛을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사진관에 간 다야는 여기가 아빠 회사야?,라고 물었단다.
동사무소에 간 다야는 여기가 아빠 회사야라고 물었단다.
매일 매일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 아빠가 일하는 곳이 왜 안 궁금하겠는가.

어색함은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다야는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빠가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웠으니 그것으로 대답이 됬을 수도... 다야가 내 어께 위에서 신이나서 들석이고 있을 때 다산이가 내 손을 잡았다.
다산이가 손만 잡지 않았으면 눈물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조심스레 다산이를 내려 봤지만 다산이는 앞을 보고 툴레툴레 걷고 있었다.
아내는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걸었다. 

헤헤 부실한 놈. 
산이는 아무래도 아는 것 같다. 아빠가 좀 부실한 걸.
나는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부실한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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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0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우 2011-08-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들 앞에 선 아버지라는 건, 향편님.
언제나 스스로 부실한 느낌이랍니다.

차좋아 2011-08-23 11:5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동우님 이해가 큰 위로가 됩니다. 매번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