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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야구에 열광하는 나에게 어느 한 형이 이렇게 말했었다. 스포츠는 정치를 정치가들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약이다. 국민들을 정치에 눈멀게 하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살기 힘들어 나라에 대한 원망을 감당해낼 수 없을 때 국민들의 분노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하려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때는 그 말들이 참으로 놀라운 진실처럼 들렸다. 정치가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불끈 솟아오르고, 야구 중계를 빠짐없이 보는 내가 스포츠라는 마약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놈인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이택광은 서문에서 문화비평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지만 문화비평이 무엇인지, 누가 문화비평가인지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좌파, 살롱좌파, 주례사 비평, 연예 칼럼 따위는 문화비평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영화비평가나 대중음악비평가도 문화비평가가 아니라고 한다. 문화비평가는 문화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뿌리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는 자이며, 문화비평은 주제의식을 다루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문화비평은 문화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개그콘서트>의 “마빡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관객은 왜 마빡이를 보고 웃었을까? 문화비평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슬랩스틱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외모를 가진 정종철 때문이다, 자학적이기 때문이다 라고들 그 인기 원인을 분석한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마빡이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여 마빡이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리”라고 분석한다. 후기 자본주의인 이 사회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신화를 먹고 살아간다. 신자유주의 신화는 무한경쟁을 설파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경쟁을 용인한다. 마빡이는 불평등한 경쟁구조를 드러낸다. 개그라는 행위는 더 높은 시청률을 위한 압박이다. 마빡이는 노동의 압박에 대한 비판이며 노동의 구조를 드러낸다. 우리를 웃기는 것은 이렇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노동의 구조에 대처하지 못하는 출연자의 무기력이다. 근면 성실이라는 근대적 노동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이유 없이 이마를 열심히 치기만 하는 마빡이를 조롱하며 웃고 있다. 근대적 노동과 대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창조성이다.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시장의 구조는 대중에 항상 변화에 대한 강박을 강제한다. 이런 강박의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대중의 무의식적 노력이 문화적 형식으로 표출되었고, 창조성의 시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 마빡이의 인기로 이어졌다.
마빡이에 대한 이택광의 분석을 정리해 보았는데 다른 대부분의 글들도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엄청난 진실을 알려주었던 그 형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보통 사람들이 흔히 즐기고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한 어투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재미와 단순한 지식 속에서 내 나름대로 비평하며 사는 내 모습을 들킨 듯한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택광의 비평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의 말들이 참으로 흥미롭게 들렸다. 이런 식으로 문화와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러나 책을 내려놓으면서 스쳤던 물음 하나, “그래서?” 문화비평이라는 것이 분석이라고 했으니 그래서 라는 내 물음에 이택광이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대답은 내 몫인가. 그러고 보고 어릴 적 그 형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주지는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