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말마다 산엘 다녔다. 불암산. 해발 500미터 남짓 작은 산, 능선따라 두시간 코스도 있고 가파른 계곡코스는 40분 코스도 있다. 능선 + 계곡 코스조합도 가능하다. 서울에 흔하디흔한 전형적 巖山이라 짧지만 결코 만만한 뒷산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불암산의 (명예)산주는 최불암이다.
휘모리님과의 약속을 세 시간 남겨두고 나는 산 생각이 났고 돌발적인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반바지에 트래킹화 꿰어신고 달리다시피 산을 오르는데, 신났다. 마치 모 아웃도어 광고마냥 나는 바위와 바위를 뛰었고 자갈과 흙길을 밟았고 자박하게 고인 물 정도는 피하지도 않고 앞만 보고 산을 탔다.
예상시간은 오르는데 40분 내려오는 시간 30분. 샤워하고 준비하는 걸 생각해도 충분했다.
20분쯤 허떡이며 산을 오르는데 잠시 만난 내리막 길에서 속도를 내다 그만 나무에 무릅을 박고 말았다. 빡!
자주 지나는 길이었는데 소나무가 길가로 굽어져 있는걸 미처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길가로 넘어온 (딱 무릅 높이) 건방진 소나무 때문에 다쳤고 화도 났다. 마음 같아서는 톱으로 배어내고 싶었지만 톱은 없었고 일단은 발로 걷어차려 했으나 걷어찰 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커서 양 손으로 왼 무릅은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그광경을 처음부터 보셨는지 아니면 추측하셨는지, "산에서 조심히 다녀야지....(쯧쯧)" 하고 한마디 하고 가시는데 그것도 야속하고 무릅은 심상찮고, 즐거움도 사라지고 짜증이 밀려왔다.
미운 나무를 쳐다보며 잠깐 쉬고 나는 다시 산을 탔다. 아픈 건 아픈거고 일단 가려던 길은 가고 싶었다.
산 꼭대기에 가서 생각해보니 나무는 제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바보같이 내가 들이 받아 놓고는 나무한테 화를 냈다는게 우스웠다.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고 무릅을 주무르고는 산을 조심히 내려왔다. 조심히...
예상보다 시간은 훨씬 더 오래걸렸다. 결국 휘모리님과의 약속시간은 못 지켰다. 8분 지각.
산에서 내려오는 걸음이 얼마나 더뎠었는지 아픈 것보다 답답해서 화가 치밀었다. (생각해보니 이 화도 슬데 없는 화였네...) 붓기는 산을 내려오면서 더 심해졌는데 도저히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옆 걸음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지루했다.
그 무릅은 결국 고장이 났다. 부딛혔을 때, 그 때라도 내려왔어야 했는데 무리해서 정상에 올라간게 문제였지 싶다. 당분간 산행은 쉬어야지. 저녁 달리기도 못하고 있다.
당장 아픈건 참겠는데(참아야지 울어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다) 앞으로 운동을 못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심장이 터지게 산 길을 달리고, 종아리에 쥐가 나도록 뛰는 일이 그토록 감사한 일인 줄 새삼 깨닫는다.
등산에 재미 붙어서 등산 배낭도 이쁜 거 샀는데...
이번주에 산에 가면 그 나무 한테 사과해야지 ㅎㅎㅎ 등산배낭 매고 싶어서 아무래도 기어이 산에 가지 싶다.ㅋ 살살 걸으면 괜찮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