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부터 감기에 척, 걸려버려서 병원 가서 약타오고 약먹으면 졸고 퇴근해도 졸고... 그러더니만 급기야 금요일부터는 상태가 매우 악화되어 집에서 계속 잠만... 어제 잠시 나갔다가 더 악화되어 집에서 쓰러지고... 그리고 또 잠잠... 어디 아프면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인 비연인지라 암튼 삼일간 30시간 넘게 잔 느낌. 오늘 일어나는데 허리에서 아야아야 소리가 날 정도. 아구구.

 

코감기와 두통이나 열감은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이제 배 쪽으로 갔는 지 먹은 게 소화가 안되는 찌뿌뚱한 상태가 지속되고... 이넘의 감기. 사람들이 한번 걸리면 좀체로 안 나간다고 하더니만, 아주 내 몸을 한바퀴 돌고 초토화시킨 후 나갈 모양인 것 같다. 아프면 그냥 서럽고 외롭고 그런 지라... 흑흑. 너무 자서 잠도 안 오던 어제 저녁에는 책이나 보자 하고 읽던 책 들고 한 권 뚝딱 한 후 다시 잠... 일요일 아침 10시 기상. 아. 이게 아침인가 낮인가. 

 

한 권 다 읽어치운 책은 이거. 존 하트의 <구원의 길>.

 

 

 

 

 

 

 

 

 

 

 

 

 

 

 

이야기는 세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의 축. 13년 전의 살인사건. 피해자인 줄리아라는 여자. 그리고 살인자로 지목되어 13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이제 막 출소하게 된 前경찰 애드리안. 출소를 하자마자 그에게 들이닥친 사람은, 바로 죽은 줄리아의 아들 기드온. 열네살짜리 아이. 총을 들고 다가서는 아이를, 바의 남자가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총을 먼저 쏘았고, 아이는 배에 치명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실려간다. 또 하나의 축. 엘리자베스 블랙이라는 경찰. 명문가의 딸 채닝이 납치되어 강간되는 그 장소에서 범인인 두 남자에게 열 여덟발의 총격을 가해 사살한 사람. 불행히도 그 두 남자는 흑인이었고 그래서 흑백 논쟁으로까지 번지게 된 사건의 중심에 있다. 그냥 죽인 게 아니라 고문을 하며 죽였다는 이유로 지금 정직상태에서 주립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 나머지 하나의 축. 엘리자베스와 애드리안을 둘러싼 사람들. 교도소장, 교도관들, 엘리자베스의 파트너 찰리 베켓과 서장 다이어.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블랙목사와 어머니.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법한 비밀을 속에 감춘 채 하나의 사건은 또 하나의 사건을 낳고 사소한 몇 가지 손짓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상처받게 된다.

 

내용은 참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그 안의 갈등은 상당한 소설이다. 결국 '상처'에 대한 이야기. 사람이 사람에게 가한 상처. 무엇보단 신뢰를 저버린 상처. 이런 것은 누구도 치유라는 걸 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 스스로 이겨낼 수 밖에 없지만, 결정적인 상처는 평생을 지배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것에 묶여 옴짝달싹 못한 채 자꾸만 실수를 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동안 그녀는 애드리안만 쳐다보며 지냈다. 그가 책상에서 일어나는 모습, 범죄 현장에서 일하거나 목격자나 관료들을 상대하는 방식을 지켜 보았다. 애드리안은 자신감이 넘쳤고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불빛만 쳐다보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낯설게 보였다. "우리 집에서 잠깐 지내실래요?"

애드리안은 눈을 감았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이 거절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아직 예전에 알았던 어린애일 뿐이었다. "와줘서 반가웠어."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만 가. 애드리안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다.

고통을 느낄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 둬. (p119)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 피폐해진 자신의 인생을 현실감있게 느끼기 위해 스스로에게 시간이 필요한 남자. 아마도 억울한 누명이었을 것 같은데... 13년동안 교도소에서 수없는 고초를 당한 후 나와 보니 아내는 사라졌고 오래된 집은 불타 버렸고, 아무도 주변에 안 남은 상황. 그리고 여전히 위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속에서 남자는 뭘 해야 할까. 그저 느낄 뿐. 고통을. 나만의 고통을... 순간 그 고통이 전달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저번에 우리가 사막으로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게 좀 이상해서. 왜냐하면 그 직전에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거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난 이제껏 사막에 대해 생각했던 적도 없고, 그곳에서 살고 싶었던 적도 없었어. 심지어 한 번 가본 적도 업었는데. 난 평생 여기서 살았고, 사막애 데헤선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오븐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은 바람이 떠올랐어. 붉은 돌과 모래 갈색 언덕의 장관과 함께 말이야." 엘리자베스가 소녀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것 같니?"

"그거야 단순하잖아요."

"나한텐 안 그래."

"곰팡이가 없으니까." 채닝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태양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막에선 지하실 같은 냄새가 나지 않잖아요." (p287)

 

 

지하실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한 소녀의 인생을 망치고 이제 한 경찰관의 인생까지도 망치게 될 지 모르는. 책을 읽다 보면 그 발단은 좀더 깊은 의미가 있었고, 이게 다 뭔가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 둘의 정신을 영원히 지배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갈구하게 되는 지도. 그것이 사막.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고 축축하지 않은 사막. 결국 이들은 그곳에 가게 될 것이다.

 

 

"같이 갈래?"

"네?"

"네가 말했잖아. 여길 떠나야 한다고."

"어디로 갈 건데요?"

"그건 비밀." 애드리안이 말했다 리즈는 어두워진 도로를 쳐다보았다. 비밀은 위험하다.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드리안은 지금 그녀가 상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인생 역시 교차로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탁이야." 그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애드리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혼자 있는 데 지쳤어." (p389)

 

 

가끔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의 상처라는 걸 치유는 못하지만, 그 옆에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고 그걸 말로 내뱉거나 내뱉지 못하거나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채 주저주저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 때 혼자라는 느낌은... 그게 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싶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상처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을 찾는다. 버팀목이 되는 존재. 혼자 남기 싫어하는 마음. 이해를 구하는 심정.

 

존 하트의 작품은 늘 그렇듯이, 서스펜스 가득하기만 소설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안겨 준다. 뭔가 정화되는 느낌. 이랄까. 결말이 완벽하게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게 가장 나은 결말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고. 감기 걸려 골골 거리는 서러운 마음에 읽기에 딱 좋은 책이었다. 물론 그냥 건강한 상태에서 읽어도 좋은 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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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1-07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픈 와중에도 비연님의 불굴의 책읽기 대단합니다~ 얼른 나으시기 바래요~~*^^*

비연 2018-01-07 13:32   좋아요 0 | URL
그냥 뒹굴거리려니 시간도 아깝고...ㅎㅎ 넘 자서 잠도 안 오고...
오늘 좀 낫긴 한데.. 여전히 붕 뜬 느낌이네요. 언넝 나아야죠. 감사~^^

2018-01-0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8-01-07 1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기, 얼른 나으셔야할텐데요.
저도 독감으로 고생했었는데 무섭더라구요.
얼른 건강회복하시길요.^^

비연 2018-01-07 20:18   좋아요 0 | URL
꿈섬님.. 감사요... 독감! 그건 더 지독했을텐데 우째 견디셨어요 ㅜㅜ
얼렁 기운차려야죠. 으쌰.

서니데이 2018-01-07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감기 빨리 나으세요. ^^

비연 2018-01-07 20:1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이넘의 감기가 절 안 떠나네요. 잘 쉬고 있으니 곧 멀리 보낼 수 있으리라.. (믿음)

카스피 2018-01-08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독감에 걸리셨네요.몸조리 잘하시고 얼른 쾌차하셔요^^

비연 2018-01-09 08:1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흑흑. 독감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힘들었네요. 이제 좀 나아지는 듯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