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다락방님 페이퍼를 보자니, 갑자기 옛 경험들이 떠올라 속이 쓰리다.

 

중학교 1학년 자율학습인가? 무슨 시간이었지? 암튼 어느 시간의 일이다. 남자 선생님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50대는 됨직한, 변태스럽게 생긴 사람이었다. 들어올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냥 고개를 쳐박고 딴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앞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제일 앞 구석에 있는 여자아이 앞에 섰다. 하얀 얼굴에 키가 자그마하고 얌전하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이름은 어느 시인의 이름과 같았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선생님은 태연히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아이가 엎드려서 막 울기 시작하는 거다. 흠? 뭔일이지? 그 당시 우린 남녀공학이어서, 남자짝꿍이랑 앉았었는데 그 아이의 짝꿍에게 애들이 다가가 물으니... 대답이. "그 선생님이, 얘 가슴을 만졌어."

 

허억. 우린 아무 말도 못하고 정말 수치스러울까봐 그 아이에게 말도 못하고 울지마.. 하고는 집에 와야 했고, 난 그 이후로 3년 내내 그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봐, 복도에서 마주칠까봐, 그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을 듣게 될까봐 겁에 질렸었다. 우린 너무 어렸고,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 따질 정도의 용기도 없었다. 그 아이도 며칠 정말 우울하게 지내다가... 잊은 듯 하며 지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사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는가! 그 마음의 상처는 아마 지금까지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고등학교 때는, 젊은 남자 선생님들이 많았다. 여고였고, 그래서 총각 선생님들을 좋아라 하며 서로 팬클럽 비슷하게 만들어서는 좇아다니고는 했다. 나? 시시했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흠모하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냥 잘 가르쳐주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못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죄송...) 수업시간마다 자느라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30대 초중반의 남자 선생님들과 여고생. 당연히 예쁜 친구들에게 눈길을 주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서는 말을 걸고 그랬다. 저 사람이 돌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비웃었지. 그런 선생님 중에 꼭 얘기를 할 때 귓볼을 만지는 사람이 있었다. 아... 가슴이나 엉덩이도 징그럽지만 귓볼.. 이상하게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대목 아닌가. 수업시간에 귓볼을 만지는 선생님. 뒤에서 쑥덕거리며 욕은 했지만 그 때도 말을 못했다. 선생님이라는 권위에 굴복한 거였을까.

 

직장에 들어갔더니, 부장이라는 사람이 날 불러 그럤다. 여자라 힘들면 관둬. 난 귀를 의심했고... 이제까지 지내면서 여자라서 내가 안 한 것도 못 한 것도 없는데, 이 사람이 나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얘기한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해서 자리에 앉았고... 며칠 뒤 나를 위한 환영회가 열렸다. 술자리가 질펀하게 벌어졌고, 나도 취했고 (엄청 먹였다) 그러더니 2차를 가자면서, 노래방에를 갔다. (이 얘기 한번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노래방? 전 집에 갈래요. 그랬더니 부장이 그랬다. 이제 사회인이 되었으니 이런 데도 가야지. 흠? 노래방이 왜 '이런 데'일까? 라고 술취한 머리로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뒤따라 갔다. 아. 그 곳은 난생 처음 가본 도우미가 들어오는 노래방이었다. 들어가 앉아 있는데, 여자들이 들어왔고 그 중 하나를 부장이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고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난 몽롱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고 갑자기 속에서 뭐가 한웅큼 올라오더니 바로 다 게워내버렸다. 그 때 부장의 무릎에 앉혀졌던 그 여자분은 많이 먹어도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다음 날, 회사에 갔는데, 부장이 날 불렀다. 누가 말했나 보지. 내가 충격을 받은 것 같더라. 왜 그러셨냐... 날 불러서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았다. 술먹어 실수했다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잘 나가는 여자들은 그런 데 가서 남자를 불러서 같이 그러고 논다. 앞으로 사회생활 하려면 알아둬야 할 거였어." 내 평생에 그런 궤변은 처음 들었고 그야말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물러났다. 그 때 왜 한마디 못해줬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그 부장, 딸이 둘이다. 나쁜 넘 같으니.

 

그 회사는 그런 넘들이 많았다. 우리 부서에 결혼하고 신혼에 남편이 쓰러진 여자 직원이 있었다. 30대 초반이었는데 늘씬하고 정말 서구적으로 예쁘게 생긴 직원이었다. 그 회사는 고졸 여직원들은 따로 뽑아서 타이핑을 시켰었는데 그 직급이었다. (난 이런 직급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그런 직급 다 없앴다고 들었다) 남편이 쓰러져서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터라 정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시기였다. 연애를 10년도 넘게 한 커플이었고. 어느날, 원장이란 넘이 그 여직원을 불렀다. 둘만 있는 방에서, 물었다. "남편이 쓰러지니 외롭지 않아?" "아뇨." "외로울텐데.." "아닙니다" "외로우면 나한테 말해. 우리 보트나 타러가자. 좋은 데를 내가 알고 있거든.." ... 나와서 펑펑 울더라. 그걸 왜 들어가서 박살을 못 냈을까... 후회스럽다.

 

아 말하다보니 쏠리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케이스들이 있어서 지면에 옮기기도 뭣하다. 이게 참으로 오래 전일인데, 지금은 그런 일이 없느냐... 왜 없겠는가. 도대체 남자들이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여성 동료를 뭘로 생각하는 건지 가끔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매우 일부 남자들이긴 하지만. 여전히 블루스를 추자고 하고 그러면서 쓰다듬고 술먹고 데려다주면서 만지고... (아 토나온다) .... 이젠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내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단옆차기를 날릴텐데. 늘 준비 중이다. 눈에만 보여봐. 바로 이단옆차기 날아간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성에 대한 인식과 관념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 분야의 진보는 이제 시작이 아닌가. 여성도 인간이고 남성도 인간이고 그래서 생물학적 차이 이외에 누가 누구를 폄하한다거나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거나 마음대로 취급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건 그냥 상식이다. 이론을 갖다붙일 것도 없이.

 

.... 흥분해서 말이 길어졌다. 안 그래도 내일 11시가 초조한 판인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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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남자, 한남으로부터 온다.
    from 마지막 키스 2017-03-10 08:10 
    오늘 아침 비연님 페이퍼를 읽으니, 어제 제가 읽은 잡지 《GQ》의 한남에 대한 칼럼이 생각나네요. 저 역시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비연님의 글을 읽으며 떠올린 부분은 이런 거였어요. '프리랜스 에디터' 인 '정미환' 님의 글중 일부입니다.너무 자주, 무심코 일어나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고 살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태우스 2017-04-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남이라 부끄럽습니다 ㅜ

비연 2017-04-19 08:55   좋아요 0 | URL
아아. 마태우스님은 여기 얘기한... ‘한남‘에 속하지 않으시리라 믿는...;;;
근데 정말 이해불가인 사람들도 많아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