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학생 수가 60명이 넘었더랬다. 진학할수록 학생 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50명은 훨씬 넘겼었는데, 언제나, 항상, 남자 아이들의 수가 많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복도에 키순으로 일렬로 세워 짝을 정했는데, 그러니까 가장 작은 남자아이와 가장 작은 여자아이가 짝이 되어 맨 앞자리에 앉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면 키가 큰 남자아이들은 늘 남자아이와 짝이 되어야 했는데, 맨 뒷자리에 앉는 남자아이들 몇 명쯤은 그렇게 남자아이들끼리 앉아야만 했다. 그 애들은 집에 가서 엄마한테 '나도 여자아이랑 짝하고 싶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그렇게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많았다.
나는 여중-여고-여대를 다녔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교복을 입었는데, 중학교시절 하복을 입고 다니노라면,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이 소매 속으로 손을 넣어서 팔 안쪽을 만지며 말을 걸곤 했다. 아 쓰면서 토할 것 같아.. 어떤 선생님은 가슴 부분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명찰을 자기가 빼준다면서 가지고 다니는 몽둥이로 가슴을 눌러가며 명찰을 빼줬더랬다. '제가 뺄게요' 해도 '가만있어' 이러면서 자기가 빼줬지. 우리는 그때 선생님한테 뭔가 제대로된 반항을 하지도 못한채로 더러운 기분을 참아가며 그저 우리끼리 있을 때만 '저새끼 변태새끼' 라고 말하곤 했다. 아 쓰면서 토나와...
체육선생님은 남자였는데 백미터 달리기를 시키면 초를 잰다고 도착지점에 서있었고 가슴이 큰 아이들은 출렁거리는 가슴을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팔을 안쪽으로 모으고 천천히 달렸더랬다. 나는 국민학교때 학급 대표로 달리기 선수로 나갈 정도로 잘 뛰는 아이었는데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백미터를 이십초 안에도 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게 이 무거운 가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릴 때부터 브래지어를 차지 않았다면, 큰 가슴이 감춰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내 가슴이 가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 어릴 때는 나를 비롯해서 가슴 큰 친구들은 등이 굽었더랬다. 어떻게든 이 가슴을 가리고 싶어서, 크다는 걸 누가 알지 못하게 하려고. 아, 나의 어린 시절에 위로의 건배를!
회사에 한 여직원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온 적이 있다. 남자부장이 그 찢어진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더라. 말로는 '이게 뭐냐, 돈이 없냐' 하고 장난치는 식이었지만, 그 구멍에 손가락을 왜넣나. 이러지마세요, 라고 해도 재밌어서 그래~ 라고 퉁쳤고, 고개 숙인 다른 여직원에게는 다가가서 목을 쓰다듬었다. 너는 목에 잔털이 있네, 하면서. 이러지마세요, 라고 여직원이 싫어하자 어휴 가만있어봐, 하더라. 나는 그 사람에게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 성희롱으로 고발당합니다' 라고 말했더랬다. 여직원들은 '네가 그렇게 말하고난 뒤에는 안그러더라' 라고 말하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자리를 비울 때 그런다고 하더라. 여러가지 문제가 섞여서 그는 잘렸다. 그 뒤에는 다른 남자 부장이 들어와서 여직원들에게 성희롱을 했고, 나는 다른 임원 앞에서 그 부장을 부르고 또 과장급또 불러 모아서, '당신이 당장 그 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는 직접 보쓰에게 말하겠다, 한 번만 더 다른 여직원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 라고 말했다. 그 뒤로 부장은 그 짓을 멈췄다. 지방에 있는 공장의 공장장도 성희롱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른 임원에게 가서, 그 사람이 그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걸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당신이 그걸 말리지 못하겠다면, 내가 보쓰한테 들어가서 직접 말하겠다고 했고, 공장장은 그 뒤로 짤렸다. 그 문제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더 있긴 했지만.
회사 직원 한 명은 장녀다.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데, 집에서 못난 과일은 이 장녀와 차녀가 먹는다고 했다. 남동생에게는 예쁜 과일을 두었다가 주고, 깎았다가 준다고 했다. 집안의 온갖 궂은일은 이 장녀의 차지라고 했다. 할머니의 입원이라든가 병원을 모시고 간다든가 손님을 접대한다든가 하는 모든 일은 이 장녀가 하는데, 남동생은 그런 일로부터는 자유롭고 예쁜 과일을 그냥 받아먹으면 되는 거였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여자들에게 가해졌던 폭력과 차별에 대한 얘기들. 그래서 이건
소.설.이.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이건 사실이고 현실이다. 이건 그간 여자가 살아왔던 삶을 그저 건조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곳곳에 '그건 잘못됐다'라고 말하고 고치려고 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럼에도 절망적인 건,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들조차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여자가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이 글은, 소설이 아니다. 손쉽게 한 눈에 이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건 소설로 써내지 않았어도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아니, 여자들만 알고 있는 일일테다. 구체적으로는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의 절반이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몰랐다'고 하겠지만, 그들에게 이 책으로 보여줄 수 있어 이 책은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새삼 우리 엄마는 우리를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감사한다.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도 기본적으로 딸이라서 뭔가 덜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아빠는 딸이 대학에 가지 않기를 바랐다. 상업고등학교를 가기를 바랐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기를 바랐다. 돈을 벌어 그 돈을 아빠 가져다주기를 그렇게나 바랐다. 아빠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빠 친구중에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돈 갖다주는 딸'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수능을 망쳤다고 우는 나에게 아빠는 엄마가 없는 데서 그랬다. '대학에 가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공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어와도 된다' 라고 했다. 딸들을 대학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부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가 그랬다. 지금은 아빠가 제일 잘한 일이 '자식들 다 대학 보낸 것'이라고 말씀하고 다니시지만, 그때 엄마가 그저 아빠에게 순응하고 아빠 말을 잘 듣는 아내였다면, 나는 고등학교 졸업해서 취업해 돈을 다 아빠에게 갖다 바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빨리 졸업하고 돈을 버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공부에 대한 기회를 여자라는 이유로 차단한거라면 그건 잘못이다. 어쨌든 나는 좋은 엄마를 만나서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자랐다. 공부에 대한 기회도 아들과 똑같이 가졌다. 그렇지만 내가 공부를 못했다는 게 함정..... Orz
새드니스...
슬픔.......
나는 여러 아이들과 또 학부모들이 말하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못하는' 그런 아이인줄로만 알았는데,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었어. 하아-
새드니스 어게인...
슬픔 또다시....
그건그렇고,
나의 여덟살 조카가! 시를 썼다! 할머니(엣헴, 우리 엄마다!)가 끓여준 삼계탕을 무척 좋아하는데, 울엄마가 끓여준 삼계탕은 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시가 더욱 반가웠다.
조카는 할머니가 해준 삼계탕과 미역국, 시래기 볶음과 취나물 볶음을 좋아한다. 이런 걸 잘 먹는 아이라니 무척 예쁘다. 제 누나가 이런걸 좋아하니 덩달아 다섯살 조카도 이런 것들을 맛있게 잘 먹는다. 하핫.
그나저나 조카가 이런 시를 썼다니, 후훗, 제이모 닮아서 시적 감각이 있군. 나중에 이모랑 콜라보로 시집을 내자꾸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전에 조카가 제 엄마에게 '엄마 타미 가슴이 따뜻해지게 유자차 한잔 끓여줄래?' 했다는데, 아니, 얘는 책도 많이 안읽으면서 뭘 이렇게 표현력이 좋지? 다섯살 때였나, '이모 하늘이 예쁘니까 우리 나가도 좋겠다' 고 했더랬다. 기가 막힌 아이다 진짜. 며칠전까지만 해도 태권도 쌤이 되고 싶다던 조카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서 피아노가 너무 좋다며, '태권도 잘하는 피아노쌤'이 되고싶다고 장래 희망을 바꿨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지다! 그래야 내 조카지! 사실 나는 조카에 대해서 '음악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미로 음악하고 과학으로 밥 먹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랐지만, 태권도 잘하는 피아노 선생님도 무척 좋다!! 아마도 자라면서 계속 장래희망은 바뀌겠지. 사실, 나로 말하자면, 나 역시...고등학교때는...... 장래희망이 뉴스 앵커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젠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지금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지내자, 가 나의 바람이다. 이거면 됐다. 더 바랄 것도 없어. 인생.....
어쨌든 조카야, 배우고 싶은 거 실컷 배우고 말하고 싶은 거 실컷 말하고 쓰고 싶은 것 실컷 쓰렴!!! 네 이모가 다락방이닷!!!!!
나는 진짜 세상에서 엄마랑, 여동생이랑, 남동생이랑, 조카들이 제일 좋다. 완전 짱이얏!
일전에 한 남자랑 데이트를 하면서, 그런 얘길 했더랬다. '나는 우리 엄마랑, 동생들이랑, 조카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나는 이 사랑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다른 사랑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라고. 정말 그렇다. 이 사랑만으로도 나는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누면 행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고 안보면 보고 싶은 이런 관계, 이렇게 맺어진 사람이 내게 이렇게나 많다니, 축복 받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음..줌파 라히리의 축복 받은 집이 읽고 싶어지는군.
아 조카 너무 보고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