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8월 31일.
8월의 마지막날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5년이 딱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2011년 9월 1일에 여기 입사했었다. 이렇게 오래 근무할 줄도 모르고.
십년 이십년씩 근무하는 사람도 많은데 고작 오년 해놓고 뭘 '오래' 라고까지 비장하게 이야기하느냐... 그럴 분들도 있겠지만서도, 이렇게 '오래' 다닌 직장이 나에겐 처음이라 감회가 깊다. 능력이 좋아서 이직을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처음 3년 정도는 업무나 회사에도 익숙해지느라, 사람들도 사귀고 그렇게 친한 사람들을 만드느라 금방 지나갔었다. 그 후 일년 정도는 관성적으로 다녔고.. 아 최근의 일년은... 좋지 않다. 버티기 신공 중.
어쨌거나 난 오늘을 정말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잠실야구장 테이블석에 자리를 하나 예약해두었더랬다. 그것도 혼자. 혼자 가서 맥주 한잔에 오짱(오징어 다리 튀긴 거) 씹어대며 지난 오년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이거다. 근데 날씨가 날 안 도와주는 거지. 어제부터 먹구름이 좌악 몰려오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비... 지금도 비... 날씨 보니 계속 비... 기상청을 아무리 안 믿는다고 해도 (세상에, 기상청장이 나와서 일기예보 못 맞혀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엔 없을 거야..) 이렇게 비가 뿌려대면 야구장은 축축할 거고 결국 경기를 한다고 해도 시베리아 벌판처럼 추울 것이다. 담요 한장 달랑 가져왔는데, 이거 가지고 견딜 수 있을까? 를 두고 오전 내내 고민하다가 .. 취소... 으흑.
집에서 방바닥에 모로 누워 물이나 마시며 오년을 마무리해야겠다. 요즘은 내 의도대로 되는 일이 정말 없어.. 라며 부정적인 강화가 일어나려 하는 걸, 꾸욱 누르고 어쩌다보니 비가 오고 어쩌다보니 기온이 낮은 것이니 천재지변에 내 인생을 대입하여 쓸데없는 자괴감을 양산하지 말자... 라고 애써 생각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시작될 나의 육년은 어떤 모습일까.
썩 좋은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조한혜정교수가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이다' 라고 했던데, (정말 한문장으로 이 사안을 이렇게 잘 정리하시다니!)
나의 회사생활 육년도 문제가 아니라 질문이 아닐까 싶다. 어떨까?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의 고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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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부터 읽고 있는 책은 이응준의 <내 연애의 모든 것> 이다. 알고 봤더니 2013년인가에 SBS에서 신하균, 이민정 주연으로 드라마화 되었던 작품이었다. 찾아보니 시청률 7.4%. 시청률적으로는 망했던 것 같은데 웰메이드라며 칭찬은 좀 있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이응준이라는 작가는 <Axt>라는 잡지에서 처음 만났고 지금 읽고 있는 <Littor>에도 글을 올렸음을 발견했다. 쓰는 작풍이 재미나서 책으로 한번 볼까 하고 산건데, 작금의 현실을 이렇게 여과없이 얘기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라 재미나다. (어차피 글쓰는 폼이 그럴 거라 예상하고 사긴 했다) 당 이름이나 뭐나 그냥 그대로 사용. 작가는 처음에 밝히길, 이건 창작의 산물이니 이런 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정신병원에나 가보시길.. 이라는 내용으로 화근의 싹을 싹둑 잘라 두었다. (이것도 재미났다) 사실 살 때는 표지가 뭐 이래? 연두색 바탕에 빨간색 능금 하나라니, 그것도 번쩍거리는 걸로다가. 들고 다니기 좀 그렇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소설 내용을 보면, 책 표지 만든 사람이 아예 생뚱맞은 걸 그려댄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과나무다 사과나무. 그게 아마 이 소설의 화두가 되는 거 맞는 듯.
엄청난 책이야. 라고 하기엔 2% 부족한 면이 있지만, 좀 통쾌해. 라는 측면에서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라는 것이, 현재 반 정도 읽은 나의 감상평이다. 용두사미가 될까봐 조금 불안한 감도 없지 않으나 일단 끝까지 가봐야지. 그나저나 드라마로 만들기엔 최적의 책인데, 시청률이 안 나온 건 좀 아쉽군. 이다. 드라마 몇 편 정도 한번 맛보기로 볼까? 싶기도 하고. (아이고. 시간 많다, 비연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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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늘 오년 되었습니다, 이 회사 입사한 지.
야구가 꽝 났으니 뭘로 자축, 그러니까 이 밀림 속에서 이 악물고 버텨냈음을 뭘로 자축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