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읽고 나서의 기분. 설명하기 힘들다. 분명 잘된 추리소설(이걸 추리소설이라는 범주 안에 넣는다면 말이다)이긴 한데 뭐랄까. 그냥 복잡하고 난해하고 그러면서도 뒷끝이 개운치 않은 맛이다. 장장 633페이지(아무리 '손안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나 되는 데다가 역자의 말 한마디조차 없는 불친절한 책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뭐라고 리뷰를 써야 할 지 사실 막막하면서도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을 부여한다.

일단 이 책의 장광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다인의 책에서 잘난척 현학적으로 말하던 탐정은 비길 바가 아니다. 교코구도(본명은 추젠지 아키히코)라는 고서점 주인의 길고도 긴 말들은 작가의 세계관과 나름의 철학들이 범벅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끊어지질 않고 상대의 말은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소설을 읽는 건지, 철학책을 알기쉽게 대화형으로 풀어놓은 건 지 헷갈릴 정도다. 하긴, 그렇다고 그 말들이 다 이상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너무 길고 너무 자주 등장해서 좀 지루하다는 것일 뿐.

선전에 나온 것처럼 이야기는 1950년대, 전후 일본이 이제 막 부흥하려고 하는 찰나, 유서깊다고는 하나 이제는 쇠락의 길에 접어든 산부인과 가문의 사위가 실종되고 그 부인은 임신 20개월이 넘어도 출산을 하지 못한다는 정보를 접한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여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 괴이한 탐정 에노키즈와 형사 기바 등이 관여를 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는데...

얼핏 보면 매우 평범(물론 사건 자체는 평범하지 않다. 20개월의 임신이라니...)한 추리소설의 구도를 가진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건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고 믿기가 어렵다. 일본의 고대 설화 등에서 등장하는 우부메와 고획조 등의 요괴(혹은 귀신?)담이 적절히 가미되면서 전쟁과 망상과 집착과 광란이 교차되고 거기에 결코 유쾌하지 않은 한 집안의 역사와 왜곡된 인간상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파국에 치닫게 된다. 그냥 잘못된 역사의 반복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했더라면 그렇지 않았을테지만, 요괴라느니 영혼이라느니 하는, 밤에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일본의 정서들 덕분에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로 이끌어가는 추리소설이라고 보여진다.

일본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그들의 정서에 반감이 들면서도 추리소설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색채가 강하게 들어가 어떠한 흐름을 형성했다는 자체에는 부러움이 든다. 추리소설 하나에도 자신들의 역사(그것이 괴기스럽든 요괴스럽든 간에 말이다)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실을 수 있는 작가들의 정신이 때론 무섭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거나 유럽이나 미국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쟝르의 추리소설을 만들어낸 점은 높이 사고 싶다는 거다.

처녀작이라고 하기에는 그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이름을 다시한번 들춰보게 된다. 솔직히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 하에 별을 하나 제외시키긴 했지만, 억지스러운 장광설만 좀 자제했더라면 흠을 찾을 수 없으리만치 잘 만들어진 추리물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다음엔 낮에 읽을 것을 결심하고(밤엔 정말 무서웠음을 고백한다)  '망량의 상자'를 읽어보아야겠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서 오싹함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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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고 싶게 만드는구랴..(낮에 읽는다는 조건으로^^)

물만두 2006-03-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성님 이거 무서운거 아니라 밤에 읽으셔도 상관없어요^^

비연 2006-03-1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ㅋㅋㅋ 꼬옥 읽어보세요^^

비연 2006-03-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전..무지하게 무섭던데요? 웅~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상복의랑데뷰 2006-03-2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다기 보다는 징그럽다는 표현이 ^^;;

비연 2006-03-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복의 랑데뷰님) 아...좀 그렇죠? 엽기적이라는..근데 그 장면은 상상만 해도 좀 무서워서요. 그 방의 장면..(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우히히~)

jedai2000 2006-03-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량의 상자>는 엽기성도 두 배, 재미도 두 배, 완성도도 두 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지만요..^^;;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비연 2006-03-2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엽기성이 두 배라...흠. 그래도 재미와 완성도도 두 배씩이니 읽어봐야겠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망량을 읽었는데, 저는 망량에게 올인을...

비연 2006-04-2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지금 상/하권 고스란히 제 책장에 놓여있습니당.
상복의 랑데뷰님 말씀을 들으니 바로 개시해야겠군요!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