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쥐 만한 벌레 출몰
그제인가. 빨래 넌다고 베란다 문을 확 여는데 눈 앞에서 뭔가 시커멓고 큰 게 홱 지나갔다. 순간, 가슴이 철렁 하면서 쥐? 싶었다. 그런데 그 넘이 베란다 창틀에서 가만히 안착한 것이다. 그래서 뭔가 봤더니만...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가운데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그 곳에 살포시 있는 게 보였다. 아...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태어나서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처음 봤다 이거다.. 잠시 충격 받은 머리를 수습하고 난 후..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바퀴벌레를 (무거운가? ㅜ) 가만히 쳐다보다가 휴지를 대박으로 뜯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 움직인다, 안 움직인다... 엄청 두껍게 뭉친 휴지를 그넘 몸에 갖다 대었는데.. 그 두꺼움을 지나쳐 느낌이 왔다..는..ㅜㅜ 어쨌든 잡아서 꾸욱. 아. 소름. 계속 소름. 휴지통에 버리기도 싫어서 바깥 휴지통까지 나가서 버리고 왔다. 그 넘의 사체(ㅜ)가 내 집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라. 그 이후로 계속 머릿 속에서 그 형상이 떨어지질 않아 베란다 나갈 때도 무섭고 어디 문을 열기가 겁난다. 설마 부엌에서 나오진 않겠지... 아 약을 쳐야겠다. 근데 그 유명을 달리 하신 바퀴벌레. 뭘 먹고 그렇게 커진 거니. 거의 고대 시대의 삼엽충을 연상케 하는 그 자태 말이다 ㅜㅜㅜ
2. 마이너스의 손인가
원래 손이 야무지질 못해서 사고를 많이 치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릇 파손 횟수가 늘고 있다. 며칠 전에 삼겹살 먹는다고 그릇 내다가 소스 그릇을 손으로 쳐서 날려 - 도대체 이게 상상이 되는가. 멀쩡히 잘 있는 소스 그릇을 왜 손으로 쳐서 날리느냐 이 말이다 - 두 동강을 냈다. 나름 아끼던 광주요 제품이고 두 개가 쌍이었는데 하나가 그리 휴지통 신세가 되는 바람에 나머지 하나만 짝잃은 새 마냥 오롯이 찬장 안에 놓여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설겆이를 하다가 유리컵을 모퉁이에 날렸다.. 물론 세제땜에 미끄러워서라고 속으론 변명을 했지만 아니 그게 왜 날라가... 그래서 유리컵 입대는 부분이 파손. 지금 커피 찌꺼기 담는 용도로 탈바꿈하여 자리하고 있다. 휴지통으로 보내기 넘 아까운 나의 애장품이었는데. 이것도 네 개가 한 쌍이었는데 말이다. 전부 짝잃은 그릇들이 될려나 보다, 내 집에선. 아웅. 맴찢.
이건 좀 다른 류이긴 하지만, 어제는 야구도 개막했고 해서 마루에 삼겹살과 맥주를 대령하여 먹으면서 관람하고 있었다. 좋았는데, 두산이 선취점을 뺏기는 순간 넘 놀라서 (손도 미끄럽긴 했다) 맥주잔을 날렸다. 물론 그 안엔 맥주가 담겨져 있었고... 소파와 카페트와 내 소중한 쿠션 (거금 주고 작심 구입한 건데)에 맥주가 다 뿌려졌..;;;; 물티슈와 걸레를 가져와 닦고 또 닦고 말리고 했지만 그 맥주의 시큰한 향이 아직 남아 있다. 드라이를 맡겨야 하나. 지난 번엔 와인도 한번 날려서 카페트를 적신 일이 있어서 이제 카페트도 드라이를 줘야 하나 싶다. 와인과 맥주가 잔뜩 들어가 있는 카페트라니. 심지어 소파는 가죽인데... (패브릭이 아닌 걸 감사해야 할 지도) 물티슈로 닦아대니 이 가죽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불현듯 솟구쳐 너무나 서러웠다. 주인 잘못 만나 네가 고생이 많다... ㅜㅜ
3. 검진이 싫어
월요일에는 종합검진을 받았다. 종합검진이니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지. 체중을 잰 간호사가 말했다. "작년에 비해 4킬로그램 는 거 알고 계세요." .. 눼눼. 매일 체중 재서 잘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사살 받으니 속이 쓰렸다... 검진의 마지막은 위내시경. 십년 전까지는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비수면으로 잘도 받다가 한번은 어느 레지던트인지 뭔지한테 대박 걸려서 질식사 내지는 쇼크사 할 것 같은 공포의 10분을 보낸 후 10년 넘게 수면으로 유지해오고 있었다. 프로포폴의 맛을 느끼며 잘 자다 나오곤 했는데 이년 전부터 간호사들이 수면 시에 내가 요동을 친다는 거다. 자꾸 일어나려고 하고 자꾸 빼려고 하고.. 재작년까지는 그냥 좀 주의하세요 하더니 작년에는 다음부턴 비수면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최후 통첩을 받았다. 아.. 그래서 올해는 마음 단단히 먹고 비수면으로 하겠다고 나섰고.. 병원에 가서도 계속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수면 내시경이 너무 위험할 것 같다는 판단 하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시경실로 그냥 들어갔다 이거다...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누워있는데 그 괴물같은 내시경 장비를 들고 다가오는 의사를 보는 순간부터.. 내가 왜 그랬을까 미쳤지.. 라는 생각 밖엔 안 들었다.
그 에어리언 처럼 생긴 시커먼 튜브가 내 목구멍의 굴곡진 부분을 넘어가는데 우웩... 아 나 죽어... 그리고는 튜브를 더 깊이 더 깊어 넣고는 살짝씩 뺐다 넣었다 뺐다 넣었다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하는 동안 나는 켁켁 우웩우웩.. 하며 거의 죽을둥 살둥 하고 있었다 이거다. 그런 기구를 내 입을 통해 넣다니, 이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었던 거다! 뺄 때의 느낌도 매우 찝찝한.. 뭔가 스윽.. 벌레처럼 내 내장기관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끝나고 나니 정신 말짱한 상태라 의사가 결과를 바로 알려주는 건 좋았지만... 이게 몸에 크게 부담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살이 쪄서 몸 상태가 나빠져서인지 검진 받은 날 온종일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었다는 슬픈 결론. 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이런 거 안 집어넣고도 내장 속을 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는 대장 내시경도 비수면으로 한다던데... 상상도 하기 싫다. 으윽.
4. 그래서...
뭐 그래서는 그래서겠는가. 이렇게 일상의 자질구레함에 마음 쓰는 거 보니 내가 그런 대로 잘 지내나 보다 라고 생각할 밖에. 큰 일이 없으니 소소한 일에 속상해하고 마음 쓰고 그러는 것이지.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연휴 내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다지 많이 못한 것도 속상하네? 어제 아픈 마음으로 <이름없는 여자들>을 읽었고 (재미있다. 읽어볼 것을 추천은 한다)... 심심풀이로 다시 <일곱개의 회의>를 집어들었다. 오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도착할 거라 시작할 거란 말도 덧붙여 본다. 30일 전에 완독하는 게 목표인데 보니 520페이지. 페미니즘 이론 책은 넘 두꺼워.. 그냥 기본이 500페이지야. 그래서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려 한다. 몰아서 읽지 않기 위해. 아. 얼마 전 시작한 정희진 선생님의 책도 읽어야겠네.
세상은 넓고 시간은 없고 읽을 책은 많고 가끔 속상한 일도 있는,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