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 달동안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 술도 끊고 사람들 만남도 극도로 자제해서 조금 나았다 싶었다. 그 바람에 며칠 전 금요일에 너무 달렸고.. 사실 그날 기분은 정말 좋았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맥주와 맛난 안주로 1차를 하고, 사케와 맛난 안주로 2차도 하고. 아주 많이 먹지도 않았고 그냥 기분좋은 정도였는데, 귀가하는 길 몸에 무리가 왔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그래서 잘 타지 않는 택시로 귀가를 서둘렀고. 그 이후로 어제까지 근 이틀 반을 꼼짝없이 아파서 골골거렸...

 

토요일엔 피치 못할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비바람에 쇠한 몸에, 아주 쓰러지는 줄 알았다. 두통이 치솟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오바이트가 쏠리고... 걷기도 힘든 상황에 겨우 마치고 엄마집으로 직행. 온종일 드러누워 밥도 겨우 먹고 끙끙. 도대체 이게 왠 일이냔 말이다. 이틀 남짓에 30시간은 잔 것 같고 오늘 아침에 겨우 일어나 회사는 왔는데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열이 없어도 이런 증상이 독감 초기증상일 수 있다고 해서... 병원에 다시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하나 그러고 있다.

 

기초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이겠지.. 그런 것이다 라고 주위 사람들도 한마디씩 하고. 맨날 피곤해해도 감기몸살은 자주 걸리는 편은 아닌데 작년부터는 환절기마다 이런 것 같다. 당연히 한번 걸리면 한두달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고. 몸이 안 좋으니 의욕도 저하되고.. 그저 드러누워 넷플릭스나 만지작거리니 도대체가 무료한 생활이 이어지느라 더 의욕이 떨어지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이렇게 지루하게 살다가 그냥 늙고 그냥 그렇게 없어지겠구나.. 라는 괜한 좌절감마저 들었더랬다. 활개 한번 못 쳐보고 이대로 소멸되는건가.. 라는 슬픈 생각도 함께 들고 말이다. 봄날. 4월의 첫날에 생각할 대사로는 좀 진부하고 어둡다.

 

오늘은 만우절. 나이들어 사회생활하면서부터는 만우절을 챙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만우절을 챙긴다는 게 좀 웃기긴 한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만우절은 거의 행사일이었으니까. 학생 시절에는 그런 날들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며칠 전부터 선생님들 골탕먹일 계획에 분주했었다. 나는 그런 일에 늘 선동이었고...(ㅜ) 공부가 하기 싫으니 어떻게든 수업시간 빼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던 학생이었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어서 반을 바꾸는 게 매년 했던 만우절 행사였다. 여자와 남자를 바꾸거나, 여자끼리 남자끼리 바꾸고는 바꾼 애들은 선생님 들어올 때 뒷칠판을 보고 있다거나 그런 장난. 그렇게 장난을 치면 재밌다고 키득거리며 이제 그만 하라는 선생님들이 있던 반면에,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매를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웃자고 덤볐는데 화로 되돌아오면 우리도 적쟎이 당황해서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었다. 애들 장난치는 것에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화를 낼 필요 있었나.. 선생님들도 참. 그런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도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이니, 매일이 무료했을텐데.

 

고등학교는 여자고등학교였고 (아.. 정말 여고 별로였다) 노는 게 일인 학교였다. 선생님들은 허구헌날 자기 첫사랑 얘기 들려주고 대학교 때 들려주고... 그렇게 공부하고는 별로 연이 없는 스케줄로 움직이는 학교였어서 만우절날이라고 대단한 장난을 친 기억은 없다. 그냥 수업시간에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하고 졸라댄 기억만이 남아 있다. 그 때 우리학교에는 젊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사립고등학교라 지금도 여전히 다 남아계시던데 이젠 많이 늙으셨더라는. 어쨌든 그 당시는 미혼 남녀 선생님들이 많았고 결혼했어도 갓 결혼한 분들이 많아서 그런 얘기 들려주는 게 생동감이 났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보니 첫사랑 얘기도 한참 때 해야 흥이 돋지, 지금 하라고 하면 좀 시시한 기분이 들거든. (나.. 이제 늙은? ㅜㅜ)

 

사실 나는 첫사랑 얘기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수업시간 땡땡이 치는 맛에 열심히 졸라대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첫사랑 얘기 시작하면 창밖을 바라보며 무심해지기 일쑤였지만. 근데 우습게도 그 내용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는 거다. 아 어느 선생님이 그랬었지... 나이가 어려서 예민한 시절이라 그런 걸까. 수업시간에 뭐 배웠는 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다. 우리 학교는 좀 심했던 게 고3때 대입 보러가기 전까지 문제집 하나를 다 안 푼 과목도 있었다는... 시험을 본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재수 하기 싫어서 그냥 다녔는데, 주변에 재수한 애들은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애들이 많았다. 학원 가니까 이게 이런 거였구나 깨달음이 왔다나... 허허.

 

몸도 안 좋고 하니 괜히 일하기 싫어 아침부터 도닥거린다. 항상 옛 시절은 그립고 좋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정말 학창시절이란 건 늘 마음에 남는 그 무엇인 것 같다. 십대 이십대.. 뭘 해도 머리에 가슴에 깊게 각인되는 시기. 가급적 많은 일들을 하며 즐겁게 지내야 할 시절이구나 싶다. 요즘 애들 보면 학원 다니느라 공부 하느라 정말 불쌍하게 다니던데, 그렇게 하고 나서 얻어지는 게 뭘까. 남들이 다닌다는 대학 정도일까.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난 세계를 같이 다니며 유람시킬 것 같다..(라지만, 막상 그 입장 되면 막 공부하라고 쪼는 극성 엄마가 되었을 지도. 아멘.. 먼산..;;;)

 

아 병원에 다녀오자. 어지럽다.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이번 감기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리가 오네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다. 머리가 무거우니 어려운 책을 멀리하게 되고 스릴러를 찾게 되는데, 하도 읽어대서 이제 찾기도 힘들다. 이 책 겨우 찾아 읽고 있는데 첫 장 보다가 잠이 들어 아직 뭔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곧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소설이 새로 나온다는데, 그것만 턱 괴고 기다리는 중이고. 얼른 나오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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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1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4-01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많이 편찮으셔서 어떻게요?ㅠㅠ 병원 다녀오시고 얼른 완쾌하시길요~ 비연님 덕분에 학창시절 추억 소환이네요~^^

비연 2019-04-01 17:05   좋아요 0 | URL
병원 다녀오고 다행히 독감은 아니라 해서 수액 맞고는 쉬엄쉬엄 지내는 중요. 얼른 낫기 위해 무리하지 않으려구요 ㅜㅜ 학창시절 추억은 항상 참... 아련해서^^

카스피 2019-04-01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요즘 환절기라 그런지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으시더군요.건강에 유의하셔요^^

비연 2019-04-01 17:32   좋아요 0 | URL
병원에 독감환자가 잔뜩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사내병원 가봐도 평소와 다르게 사람이 많고...
날씨가 좀 구리구리해서 더 그런 듯. 조심해야 할 듯 싶어요. 카스피님도 건강 조심요! 감기 넘 독해요..ㅜ

jeje 2019-04-0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ㅠㅠ 얼른 회복하세요!!

비연 2019-04-01 17:55   좋아요 0 | URL
감사요 흑흑...

서니데이 2019-04-01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비연님의 이 페이퍼를 읽고 병원에 갔습니다. 증상이 저도 비슷해서요.
병원에서 감기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비연님, 감기 빨리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비연 2019-04-01 20:34   좋아요 1 | URL
앗 잘하셨어요~ 초반에 잡아야지 시기 놓치니 죽을 맛이에요. 감기 잘 치료하시구... 우리 힘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