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후보들을 젖히고 한국의 작가 한강!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 희랍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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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4-10-10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를 앞두고 길게 썼는데 알라딘 홀라당 삼켜 버리는 사이
한강이 수상했다!
만쉐!^^

햇살과함께 2024-10-10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scott 2024-10-10 20:59   좋아요 1 | URL
만쉐!^^

망고 2024-10-10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scott 2024-10-10 20:59   좋아요 2 | URL
만!만!쉐!^^

바람돌이 2024-10-10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길게 쓴 글 복원해주세요

scott 2024-10-10 21:00   좋아요 2 | URL
저장기능이 기능을 제대로 못합니다 ㅠ.ㅠ
알라딘 서재 기능은 20세기에 멈춘듯 ㅋㅋ

moonnight 2024-10-10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_@;;; 제 생에 이런 일이 있네요@_@;;;

2024-10-10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2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3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10-10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야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scott 2024-10-10 21:01   좋아요 3 | URL
중국 찬쉐 받을 까봐
은근히 조마 조마 했는뎅 ㅋㅋㅋ
대단한 일입니다
한글만세!
한강 만쉐!^^

coolcat329 2024-10-10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지금 북플 겨우 들어와서 글남깁니다 .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는 거겠죠?
독서인구도 늘 거 같아요. 한강 만세!

scott 2024-10-10 23:54   좋아요 1 | URL
발표 즉시 알라딘 사이트 먹통이 되었습니다
지금 광주시민들은 흥분의 기쁨을 ! ㅎㅎ
전혀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작가님 아드님과 저녁 식사 중에 놀라셨다공 !
외신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스웨덴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 많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
만쉐!

희선 2024-10-10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뉴스 제목에 한강 노벨문학상이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는군요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 받는 일... 한강 작가는 전에 부커상 받고 나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라오기도 했는데, 그 뒤에 큰 상 받았군요 이번엔 노벨문학상이라니 대단합니다 멋집니다 한강 작가 소설 그렇게 잘 못 봤지만, 노벨문학상 받아서 기쁩니다 세계 사람이 한강을 알겠습니다


희선

2024-10-10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3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4-10-14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스콧님! 채식주의자 날개 표지 원서가 마음에 쏙 드는데 구매할 수 없나 봅니다.
장바구니에 넣으니 표지가 바뀌어버린!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와...^^

scott 2024-10-15 02:18   좋아요 1 | URL
채식주의자 현재 영어판도 인쇄 중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노벨문학상 작품이 품절 대란에 돌입해서 더더욱 애가 타능 ㅋㅋㅋ

- 2024-10-14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자랑스러운 한강작가님 언제나 당신을 자랑스러워 할겁니다

scott 2024-10-15 02:17   좋아요 0 | URL
대단하죠!
겸손함까지 인격도 쵝오!^^

pkkl098 2024-10-15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cott 2024-10-15 22: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섬
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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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이 흩어진 섬의 해변에 파도에 씻긴 석유 드럼통이 떠 밀려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세월 간간이 이런 저런 물건들이 도착했다. 해진 셔츠며 밧줄 찌그러진 플라스틱 도시락 뚜껑, 인조 가발 등. 이따금 시신도 도착 했는데 오늘도 한 구가 있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어느 아침과 다름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흔 살의 등대지기 새뮤얼은 등대 내부 계단을 내려오다 파도에 떠밀려 온 드럼통을 발견한다.

서둘러서 해안가로 달려간 등대지기는 자신이 등대 창문으로 보았던 드럼통 바로 앞에 시신 한 구를 발견한다.

노동자들의 상징인 푸른색 작업복과 같은 색의 플라스틱 드럼통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등대지기는 이 드럼통을 자신이 거주하는 오두막으로 가져가 텃밭에 쓸 빗물을 저장 해두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드럼통 옆에 발견 된 시신은?

앝은 모래층 밑에 단단한 바위층으로 이루어진 섬의 지층에서 시신 한 구를 파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등대지기는 섬에 가장 많은 돌멩이들로 시신을 눌러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멩이들을 찾아 보지만 시신의 부피가 너무 커서 그 시신을 덮기 위한 돌멩이들을 찾아 다니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지난 23년 동안 등대지기로 섬에 거주 하는 동안 해일에 떠밀려 온 시신은 모두 서른 두 구로 그는 시신이 발견 될 때마다 당국에 신고를 했다.

오랫동안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다 새로 들어 선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은 등대지기의 신고를 받고 섬으로 찾아 와 독재 치하에서 고통 받다 행방 불명 된 이들을 찾아 주겠다는 신념으로 보디백까지 들고 와 섬 전체를 빗질하듯 샅샅이 뒤졌다.

밀물과 썰물이 강하게 밀려 들어 올 때마다 시신이 한 두 구 휩쓸려 섬에서 발견되고 등대지기가 무전으로 연락을 하면 담당 공무원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들은 무슨 색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무슨 색이냐고요? 시신들, 색이 어때요? 그러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가 하는 걸 묻는 겁니다. 당신이나 내 피부색 보다 짙습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얼굴은 요? 우리보다 긴 편인가요? 광대뼈는 어떻게 생겼죠?'

'그냥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시신입니다.'

'잘 들어요. 우린 바쁜 사람들입니다. 다뤄야 할 진짜 범죄들이 산적해 있었요. 실제 잔혹 행위 말이죠. 다른 나라 난민들이 도망치다 물에 빠져 죽을 때마다 섬으로 가서 시신을 끌고 와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

'그럼 저 시신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난민 시신은 필요 없으니까.'

섬에 시신이 발견 되어도 더 이상 당국에서 처리 해주지 않게 되자 등대지기는 텃밭을 일구고 돌담을 쌓아서 섬 이곳 저곳에서 벽돌만 한 돌을 주워 모은 뒤 적당한 높이와 길이가 될 때까지 하나씩 맟추며 쌓아간다.

등대지기가 돌을 쌓아 올릴 때마다 작은 만이 조금씩 넓어지고 톱니 같이 생긴 모서리들이 둥그스름해지면서 섬 모양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공사를 계속 해나갔던 등대지기는 해안가에서 시신이 발견 될 때마다 돌담 외벽 안 쪽에 파 묻어 버린다.

드럼통과 함께 발견된 그 시신도 텃 밭 돌담 외벽에 묻어버리려고 살짝 건드리자 팔과 다리가 움직이면서 시신의 목구멍에서 으르렁 소리가 났다.

50,200,350,500.....

시신의 맥박이 파도 소리에 맞춰 뛰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모래 밭 위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는 등대지기 새뮤얼이 내 준 옷을 입고 홀로 살고 있는 등대지기가 먹고 자는 공간을 차지 하면서 지난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 꺼번에 밀려 들고 서서히 낯선 이방인의 존재를 두려워 하게 된다.


나라가 독립했을 때 아버지는 심각한 신체 장애를 입었음에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들고 갈 수 없는 책상이며 의자, 전구,의약품, 전화까지 식민주의자들이 남김없이 파괴했는데도 아버지는 이 파괴를 옹졸한 행위나 폭력으로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뮤얼이 거리로 옮겨둔 의자에 큰 머리와 앙상한 몸을 힘없이 기대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어린 시절 새뮤얼의 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식민지가 되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가족과 함께 쫓겨났나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면서 구걸 하는 동안에 국가는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군부 독재로 국민을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군사 정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장애를 갖게 됐다.

청년이 된 새뮤얼은 자유를 위해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고 아버지 처럼 끌려가 감옥에 갇혀서 짐승 취급을 당하며 노동형에 처해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좋은 시절은 찾아 오지 않았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손에 넘어간 정부의 무능한 정책에 이웃나라에서 밀려 들어온 난민들까지 나라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결국 나라는 무정부 상태가 되고 어디에도 살 곳이 없었던 새뮤얼은 등대지기에 자원에서 홀로 섬에서 살아간다.

파도가 밀려 드는 바다는 사납고 무서웠지만 무정부 상태의 육지보다 등대 불빛만 비추는 이 곳 섬의 삶은 자유로운 낙원이였다.



'이것은 땅이다. 나는 땅을 맛보았다. 땅은 내 핏속에 들어 있다. 땅이 내 몸이고 내 몸이 땅이다. 두려움 없이 땅에 맹세한다. 나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피와 불로 맹세하나니, 땅은 나의 것이고 내가 땅이다.'

​

새뮤얼은 오두막 돌담 외벽사이 떠밀려 온 시신을 매장 시키는 동안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과거의 기억 속에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젠 그의 삶의 영역이자 유일한 '땅'에 낯선 남자가 그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도망가지 말아야 했어.'

'난 늙은이야. 내가 누구를 다치게 한 적이 있겠나?'


거대한 석상이 사라진 육지에서 새뮤얼이 군인의 목을 끝까지 졸라서 독립의 깃발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흔들며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그는 자유롭게 육지에서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2021년 부커상 후보에 올라갔던 캐런 제닝스의 <섬>은 영국의 마일스 몰런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면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였지만 정작 작가의 고향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떤 출판사도 선뜻 출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캐런 제닝스의 세번째 소설 <섬>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식민지 역사의 상흔과 백인 독재 정권의 악랄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여러 해 동안 외면 받았다.

​

'우리는 빼앗김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캐런 제닝스

폭력은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을 낳는가?억압된 자유에서 해방되어 또 다른 억압은 누구를 향하는가?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갖은 낯선 이방인들은 사회의 안전망에서 어떤 보호를 받아 삶을 살아 갈 수 있는가?

지도 상 어디에도 없는 섬에 살고 있는 어느 등대지기와 파도에 휩쓸려 온 어느 낯선 남자의 이야기가 모습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 두 발을 안전하게 딛고 걷고 뛸 수 없는 땅 한 평 없는 유랑자이자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 섬에 들어 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건 마구 구르고 뒤채고 휘도는 파도였다. 고립보다도 길들지 않는 땅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그럼에도 새뮤얼은 싫은 내색 없이 파도를, 그리고 섬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를 경외하려 애썼다. 그가 계속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돌담을 쌓은 건 아마도 물살의 공격에서 땅과 자신을 지켜내려는 시도 였을 것이다.

2주에 한 번 오는 보급선이 세상과 유일하게 연결 되는 순간으로 등대지기 새뮤얼에게 섬은 온전히 그의 것, 그의 전부 였다.

파도에 떠밀려 온 낯선 그 남자가 섬 전체를 누비는 동안 등대지기의 고립과 평화가 동시에 깨져 버리고 사람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폭력으로 돌변해버린다.

'외국인이 이 땅에서 우리 걸 갈취하고 우리가 힘들게 쟁취한 것을 훔치게 둘 순 없습니다. 이 땅은 우리 땅이며, 우리 말고는 그 누구도 이 나라에 대한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 말고는 누구도 여기 있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 오직 우리만의 나라입니다. 이제 외국인은 더는 환영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줍시다. 그들을 내쫓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캐런 재닝스의 <섬>이 2021년 부커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영국 가디언지와 미국 뉴욕타임스는 고립된 섬에서 단 4일 동안에 발생하는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의 잔혹한 식민지 역사와 어느 날 난민이 되어 바다 위를 표류 하게 된 현 세계의 비참한 삶이 압축적으로 묘사된 수작이라 평가했다.

낯선 작가의 얇팍한 분량의 이 책<섬>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외로운 섬과 바다 사이를 비추는 등대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면서 육지와 맞닿은 항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 십만개의 번쩍이는 불빛들이 어디에도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한 채 끊임없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망연히 지켜보던 새뮤얼은 문득 게들이 나타난 그곳, 햇빛이 닿지 않는 해저 깊은 곳, 그들이 수세기 동안 섬으로 길을 내며 온 그 침몰한 외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대하고 육중한 몸으로 바위와 다시마와 해안에 밀려온 다양한 표류물과 배에서 버린 해양폐기물을 꾸준히 헤치고 수세기 동안 항상 같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한결같은 마음. (…) 이듬해, 그는 두려움 없이 혼자 게를 잡았다. 그리고 14년 동안 한 번에 한 마리 원칙을 고수하며 같은 방식으로 게를 잡았다. 그런데도 게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섬으로 돌아오는 게는 점점 줄다가 결국 어느 해, 돌아오기를 멈추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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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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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은 꿈을 꾼 화자가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말을 시작하면서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 바라보는 현실의 이야기를 열흘 동안 하나씩 들려준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열흘 밤의 꿈>을 가장 좋아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잠을 통 이루지 못한 상태에 멍하게 앉아 있던 중에 문득 소세키의 이 작품이 떠올랐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

'잠을 못 잔 지 벌써 십칠 일 째다.'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화자는 이렇다 할 불편을 느끼지 못해서 병원도 찾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조차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치과 의사인 남편을 내조 하며 외동아들을 키우며 일상 생활에 어떤 균열이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녀의 불면증은 대학 시절 부터 시작되었지만 제때 치료나 상담을 받지 않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은 채 일상 생활에서 불완전한 수면 패턴을 이어 나갔다.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졸음은 전철 좌석이나 교실 책상이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풋잠을 자듯 꾸벅 꾸벅 조는 동안 기묘할 정도로 자신의 의식에서 분리된 그림자 같은 존재를 느낄 정도로 온전하게 푹 잠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꾸벅 꾸벅 조는 동안 걷고,마시고, 먹고 자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이런 상태를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그녀는 자는 동안 모든 일을 정상적으로 하는 램 수면 상태의 인간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신체의 각 기관이 둔해지고 탁해지면서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계의 끝에 있는, 듣도 보도 못한 땅으로 그리고 내 육체는 내 의식과 영영 헤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단단히 매달리고 싶었다.]


모든 가족들이 깊이 잠든 밤마다 그녀의 정신은 또렷해져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째깍 째깍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또렷한 정신으로 날이 샐 때까지 들었던 그녀에게 어느 날 아무 전조 없이 느닷없이 까무러칠 정도로 잠이 쏟아져 버린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넘기고 죽은 듯이 잠을 잤던 그녀는 결혼 후 어떤 이유에서 인지 다시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현실 생활에 아무런 문제도 불편을 겪지 않았다.

단지 잠을 자지 못할 뿐이였다.

남편도 아이도 그녀가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친구와 동업으로 치과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남편은 점심시간인 12시면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아침을 준비하고 차리고 남편과 아이가 출근하고 나면 집안을 정리를 마치면 곧 남편이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오는 시간이 된다.

남편이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녀는 오후 시간동안 장을 보러 나가고 집으로 돌아 오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 외동 아들의 저녁 밥을 차려 준다.

늦은 밤 남편이 퇴근하고 마지막 저녁을 차려 주고 설거지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면 자정이 가까워진다.

빈틈없이 가족의 생활 패턴에 맞추고 나면 어느덧 늦은밤, 자정을 알리는 시계종이 울리면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하고 어느 날 깜짝 잠이 들었을 때 악몽에 시달리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시 잠을 청하면 악몽을 꾸게 될 것 같은 두려움사로잡히자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고

가능한 긴 소설을 읽어보자고 마음 먹은 그녀는 톨스토이의 대장편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한다.

오래전 학창 시절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의 스토리를 대충 알고 있었던 그녀는 날이 밝을 때까지 온 신경을 그 책 속에 파묻고 나서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매일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집안일을 재빨리 해치우고 오전 내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면 책을 내려놓고 남편을 위해 점심을 만들었다.]


그녀는 결혼 생활 동안 눈을 감고 무감동적이게 기계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의무적으로 장을 보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았지만 밤 10시 부터 아침 6시까지 책을 읽고 나서 부터 집 안에 갇혀 있기만 했던 생활 반경을 차츰 넓혀나간다.

​

차를 몰고 나가 사는 곳 너머 지역을 돌아 당기기도 하며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모습을 그녀의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는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처음 잠을 못 잔 것이 지지난 주 화요일, 그러니까 오늘로 딱 십칠 일 째다. 처음 잠을 못 잔 것이 지지난 주 화요일, 그러니까 오늘로 딱 십칠 일째다. 이로써 십칠일동안 한숨도 못잤다].


그렇게 열일곱 번의 낮과 열일 곱 번의 밤 동안 잠을 자지 않은 그녀는 문득 죽음을 떠올리며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일상의 잍탈은 점점 대담해진다.


[눈을 감아보았다. 그리고 잠의 감각을 불러 일으키려 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각성한 어둠이 존재할 뿐이었다. 각성한 어둠...]

​

​

시간별 레인을 따라 맹목적으로 가족들의 삶의 패턴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았던 엄마, 아내, 그리고 한 여자는 이런 삶을 어디에도 소비 되지 않은 무의미한 삶이라 생각했다.

숨을 쉬고 있어도 온전한 정신 상태로 살아 있지 않는 자신을 위한 시간조차 없이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누군가의 삶을 챙겨주고 보듬어 주기 위해서 24시간 깨어 있어야 했던 그녀의 삶에서 한 권의 책은 텅비어 버린 머릿 속에 어디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각성 시키며 기억의 회로선을 움직이게 만든다.

​

사는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악몽이나 가위 눌림 같은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문득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면 어떤 알람도 도착 하지 않았는데 하염없이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 폰을 만지작 거리고 수면을 취하는 동안에도 머리 속 한 구역엔 폰이 보여주는 세상이 자리 잡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을 열흘 동안 쓰고 나서 서랍에 넣어두고 몇 달 후 다시 꺼내 읽으면서 문장을 다듬어 나갔다.

작가들 중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하루키는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취침하고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지속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0년 어느 겨울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방으로 한기가 파고 들었던 어느 날 불면증이 갑자기 찾아온다.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며 쓰기 이야기는 원고지로 총 12매로 완성하고 그렇게 탄생한 단편들은 전 세계로 번역 되고 단편과 장편을 종횡무진 창작 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

잠을 못 잔다고 일상이 엉망이 되지도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틈틈이 노트에 끄적이거나 책을 읽거나 오전 오후 시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

인간은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신체의 모든 기관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맞춰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조금씩 매일 무언가 하고 있다면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어제 보다 앞으로 더 나가며 먼 훗날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그렇게 쓴 시간들은 온전히 내 삶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소설을 발표한 이후 부터 하루키는 2024년 지금까지 총 15편의 장편 소설과 16편의 단편집을 출간 했다.

소설을 발표하지 않는 해에는 에세이나 논픽션, 번역서, 여행기 회문집, 그림책, 소설 안내집, 대담집까지 출간 해서 한 개인이 출간한 작품의 수는 벽 한 면을 차지 하고 있는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다.

이 정도의 분량을 쓰려면 매일 10매에서 20매 분량의 원고지를 채워야 가능 할 정도로 엄청난 창작력과 이를 뒷 받쳐 주는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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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단편집 <꿈에서 만나요>을 시작으로 2020년에 출간한 <일인칭 단수>까지 총 16편의 단편집을 출간한 하루키는 <TV피플>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종종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FM 무라카미 방송에서 <TV피플>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을 종종 읽어준다.

​


<TV피플>에 수록된 단편들은 총 6편으로 'TV피플'과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나'와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고도자본주의 전사' 그리고 '잠' 이 네 편은 작가 생활을 시작 한지 10년의 시간이 흐른 1989년에 완성했다.

단편 '잠'은 해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로 독일의 출판사 듀몬트가 무라카미 측에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쉬크가 그린 일러스트를 넣은 책으로 재 출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인 하루키는 독일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자신의 책 <잠>을 읽고 마음에 들어서 일본어 판으로 단독 출간 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단편 '잠'에 대한 애정이 깊다.


<TV피플>에 수록된 단편들 모두 삼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단편들이지만 하루키 초기작에서 맛볼 수 있는 생생한 묘사와 비유,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이 매 페이지 마다 살아 숨쉰다.

200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 첫 장을 펼쳐 들고 자정 시간을 넘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장까지 읽게 된다.

(c)Kat Menschik


["그렇게 해서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은 없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의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루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 시간은 지금까지 잠이라는 작업에―'쿨다운 하기 위한 치유 행위'라고 그들은 말한다―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나만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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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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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게 내리는 빗줄기로 무덥고 습한 공기로 가득 찰 때면 꺼내보는 영화가 있다.

눈부시도록 푸른 빛의 하늘, 뜨거운 햇살, 여름의 빛깔을 담은 영화 <call me by your name >

'이 모든 것이 올리버가 우리 집에 온 그해 여름에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에 유행한 곡과 그가 머무는 동안 그리고 떠난 후에 읽은 책들, 뜨거운 날의 로즈메리 냄새부터 오후의 요란한 매미 소리까지 모든 것에 새겨졌다.

여름, 익숙해진 냄새와 소리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 여름의 사건들로 영원히 다른 색조를 띠게 되었다.'

- 안드레 애치먼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중에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열 일곱살 엘리오 앞에 아버지(고고학자인 펄먼 교수)의 보조 연구원인 스물넷 대학원생 올리버가 나타난다.

이 영화는 눈이 부시도록 뜨거운 햇살과 푸른 바다 색깔의 하늘이 배경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욕망처럼 일렁이는 물결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 헐렁한 셔츠 그리고 핑크 빛이 맴도는 복숭아

​

여자친구가 있는 엘리오는 올리버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일부러 거만하게 말을 걸고 그의 약점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열병처럼 회오리치는 마음을 들켜버린다.

그리고 엘리오는 피아노를 치다 음표를 그렸던 연필로 올리버를 향한 마음을 휘갈기듯 써 내려간다.

"그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올리버. 올리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뜨거운 햇살 아래서 핑크 빛의 복숭아가 익어가는 과수원, 한적한 시골길, 인적이 드문 비밀스러운 강가는 두 남자의 사랑은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올리버 올리버 올리버."

영화는 줄곧 엘리오의 얼굴을 비추던 것에서 벗어나 잠시 올리버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깡마른 사지, 당당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엘리오와 다르게 차분하며 침착하던 엘리오는 올리버 앞에서 흔들린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푸른 빛이 사랑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름날 찾아온 손님은 언젠가 떠나버린다.

파란색 옷을 입은 두 남자는 광활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초록빛 들판을 휘젓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화면 속에 비친 엘리오의 파란색 옷은 올리버의 파란색보다 더 짙고 푸른빛으로 비쳐진다.

엘리오의 첫사랑, 올리버

올리버가 떠나고 뜨거웠던 여름도 끝나버린다.

시간은 흘러 한여름 뜨거웠던 태양 아래서 무르익었던 과일들 초록빛을 내뿜던 잎사귀들 모두 새 하얀색 눈으로 뒤덮혔다. 가족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올리버는 몇년 전 사귀었던 여자와 약혼을 한다는 말을 꺼낸다. 축하한다는 말을 내뱉은 엘리오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을 떨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모닥불 앞에 앉은 엘리오 시뻘건 불빛에 데어버린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든 엘리오

그제서야 깨닫는다, 겨울, 추운 겨울이 왔다는 것을.....

원작 소설에서는 한겨울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어느 날 대학교수가 된 올리버가 엘리오의 이탈리아 별장에 찾아온다.

세월이 흘러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올리버는 여전히 멋졌다.

청명하게 빛나는 별 빛 아래 두 남자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을 그리워 하며 엘리오는 별장 곳곳에 남아있던 올리버의 흔적을 하나 씩 꺼낸다

그리고 엘리오는 그해 여름에 함께 했던 올리버의 이름을 부른다.

여기 있었고, 잠시 함께 살았고 그리고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올리버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그해 그 여름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내일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향해 너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말한다.

여전히 올리버의 마음은 엘리오 처럼 푸른 빛이 였을까?

'“사랑 받고 싶어. 우리의 세상에는 마법이 부족하니까.'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밤> 중에서

사랑의 마법스러운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작가 안드레 애치먼은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누구와도 말하기 싫어서 크리스마스 트리 뒤편으로 숨어버린 20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여덟 번의 밤의 시간으로 나눠서 두 남녀의 정신 세계를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 하듯 펼쳐 보인다.

'저녁이 반 쯤 흘렀을 때, 나는 저녁 전체를 역순으로 재생하게 될 것을 알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여덟 번의 밤>은 등장 인물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아닌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해서 첫 페이지부터 시작 되는 전체 문단의 길이는 다음과 같다.

버스,눈, 작은 비탈길을 올라가던 산책, 내 바로 앞에서 닥쳐오던 대성당, 엘리베이터 안의 낯선 사람, 복닥복닥한 커다란 거실에서 촛불에 밝혀진 얼굴들이 웃음과 예감으로 환히 빛나던 일, 피아노 음악, 걸걸한 목소리의 가수, 어디서나 나던 소나무 냄새, 내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아무래도 오늘 밤 훨씬 일찍 혹은 조금 늦게 도착해야 했다고, 아니면 아예 오질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던 일, 적갈색의 고전적 동판화들이 걸린 화장실, 그 옆 벽면의 스윙도어를 열면 이어지던 기다란 복도, 손님용이 아닌 사실로 이어지다가 현관 쪽으로 다시 한번 꺾으면 기적처럼 다시 나타나던 아까와 똑같은 거실, 그곳에 더 많이 모여 있던 사람들, 내가 조용한 구석이라고 생각했던 커다란 크리스마트리 뒤편의 창가, 그곳에서 누군가 내게 돌아서며 한 손을 불쑥 내밀고 말하던 일.

'나 클라라예요.'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번의 밤> 중에서

​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난 이 십대의 두 남녀 프린츠 오스카르와 클라라 브런슈바이크는 뉴욕 곳곳을 거닐며 함께 영화를 보며 서로 에릭 로메르 감독 작품을 좋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레오파르디의 시구절을 읊으며 일평생 한 번만 찾아 오는 그때의 그 순간의 사랑을 8일 밤에 걸쳐 쌓아 나간다.

차츰 무르익어 갈 것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은 얼룩진 곳이 서서히 희미해지듯 마법 같은 8일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치명적일 정도로 단호하고 도도할 정도로 상대의 말을 일축해버리며 각자의 지난 시절의 연인들을 향한 질투심에 활활 불타오른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던 프린츠 오스카르와 클라라 브런슈바이크는 온통 씁쓸함과 지루함으로 가득 찬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 누군가에게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새해 첫 축배'를 든다.

그래서 지금 나는 뭘 해야 하는가? 서서 기다려야 하나?

서서 궁금해 해야 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이 작품의 배경은 뉴욕으로 106번가에서 시작된 만남은 브로드웨이가의 길모퉁이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 블록 내려가 105번가에서 싹이 트고 이 길에서 꺾어지면 나오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를 통과 하는 동안 사랑은 무르익어가다 마지막 8일 째 되던 날 밤 106번가로 돌아가면서 끝이 난다.

여덟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두 남녀 사이에는 지고 지순한 사랑이 피어오르지도 않고 미쳐 버릴 정도로 절정에 다다르다 확 불살라 버리는 열정도 없다.

너무 이르고, 너무 급작스럽고, 너무 빠른 틱톡 시대의 사랑은 일상의 매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전쟁터 같은 도시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릴 뿐, 사랑에 시간도 감정도 허비 하지 않는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맨 첫 번째 밤부터 마지막 밤까지, 심술과 자존심으로 또 그 사이에는 상당량의 두려움과 경고로 지배 되었던 한편, 가장 중요해야 마땅했던 그 하나의 단어는 말없이 남아 있으라는 선고를 받은 단어였다가는 이윽고 그것 역시도 단단하고 빙하 같고 또 바위같이 되어버렸던 일을 생각했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된 이유에는 스마트 폰과 실시간 주고 받는 Sns 메신저 때문일 것이다.

클라라에 대한 사랑에 미련이 남은 남자 프린츠 오스카르는 마지막 이렇게 외친다.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 다가는 밤에 다가는, 공원의 동상에 다가는, 내 베게에 다가는 말했었다.

​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 이기 때문에...'

지난 세기의 연인들은 죽도록 싸우고 다음 날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죽도록 싸우고 잊어버리고 냉기로 가득 찬 얼음 바닥에 누워서도 서로를 향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았다.

사랑도 감정도 눈 녹듯이 녹아 버렸다 다시 얼어 붙는 사랑, 사랑, 사랑

세기 전의 이런 사랑은 이젠 전시장에 진열된 고미술 작품처럼 지난 시절의 영화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안녕, 나 오늘 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나 당신이랑 있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 친구들이랑. 당신 세상. 당신 집에서. 그리고 모두가 간 다음에도 머물고 싶어요. 당신처럼, 당신으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당신이 은신하고 있다고 할지언정, 내가 은신해 있듯이, 한스가 은신해 있듯이, 베릴과 롤로와 잉키와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이가 산 자든 죽은 자든 난파 된 채, 하자가 있는 채, 원하는 채 은신, 은신, 은신해 있듯이, 당신과 단둘이서만 있어서 끝내 내가 당신 냄새가 나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당신처럼 말하고, 당신처럼 숨 쉬게 되고 싶어요.

-안드레 애치먼의 《여덟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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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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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일시 정지 되었다.

동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지역 하청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 했던 다쓰로는 원자력 규제 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제 기준을 통과 시키며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이 재 가동이 되었다.

다쓰로는 원자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이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시기에 더구나 폐원전 처리 문제도 해결 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원자력을 재 가동 시키는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원자로 일을 하겠다며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해서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후쿠시마를 찾아간다.

지진 발생이 후 단 한번도 후쿠시마 땅을 가본 적이 없었던 다쓰로는 해변에 날아드는 연의 방향에 이끌려서 차에서 내리고 연이 날리는 방향을 쫓아간다.

​

[100미터 정도 앞에서 나이 든 남자가 연줄을 당기고 있다. 몇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달랑 한 사람뿐이었다. 연은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으며 바다 위에 떠 있다. 겨울의 전조처럼 서늘한, 북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서풍이다.]

-10만년 뒤의 서풍 중에서


연이 날리는 방향으로 따라간 다쓰로는 연을 날리는 남자를 만나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렸던 미국산 '게일러 카이트'연이라는 걸 알고 친근감을 보인다.

후쿠시마 해변가에서 연을 날리는 남자의 이름은 다키구치, 그는 쓰쿠바 기상청 기상 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취미로 연을 날리면서 습관처럼 기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다키구치는 기상청 근무 당시 고층 기상 관측 전문가로 라디오존데라는 관측 장치를 기구에 달아서 상공으로 띄워 넣고 예보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했었다.

기상 관측 연구가인 다키구치는 1930년대에는 연에 온도계를 달고 기상을 예측하는데 이용했다며 다쓰로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인다.

그는 매일 해변에서 연을 날리며 레이더도 기구도 드론 같은 최첨단 기상 관측 기기가 아닌 연 줄을 타고 손으로 느껴지는 상공 공기의 감촉과 온도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예측하고 습관처럼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

다쓰로는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연을 날리며 기상을 관측하는 다키구치가 동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원전이 있었던 도미오카마치를 갈 예정이라는 말에 원전 회사에 다녔었다는 말을 꺼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다쓰로는 보수관리과 과장으로 승진해서 9월 말에 발생 했던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격납시설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을 나섰다.

진도 4지진 발생으로 원자로의 안전 장치 역할을 하는 필터 벨트에 뒤틀림을 발견한 다쓰로 팀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부장은 새로운 규제 기준에 근거해서 진도 4정도로 배관이 손상되었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니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고 문제가 발생했던 원자로의 일시 가동 중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원자로 전력회사의 하청 회사에 소속된 다쓰로는 상사의 지시로 보고서를 수정한다.

그렇게 보고서를 수정하고 나서 리히터 규모 7.3 의 지진과 지진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뒤바뀐 치명적인 인재 사고 였다.

다쓰로는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2호기 필터벨트의 뒤틀림 보고서를 수정한 직원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족이 사회로 부터 받을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원전 사고 이후 폐원자로 처리 시설회사 일을 시작한 다쓰로는 원전 사고 유출 발생 지점 근처에서 날리던 연을 따라 서풍으로 이동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대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 전선에 날릴 계획을 세웠던 풍선 폭탄의 이야기까지 흘러 간다.

수소 가스를 채운 직경 10미터 짜리 기구에 소이탄과 폭탄을 매달아 지상의 기지에 띄워서 기구가 상공에 강한 편서풍을 타고 이틀 밤 낮으로 날아 미국 본토 서해안에 자동적으로 폭탄을 투하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3년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는 300여명이 매달려서 기압계를 탑재한 정밀한 고도 유지 장치, 영하 50도에 달하는 상층 공기를 견딜 수 있는 내한 전지를 풍선 기구에 설치 해서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과 극장, 학교에서 학생들을 끌어다 놓고 풍선 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

1944년 11월 편서풍이 불기 시작했던 날 일본 군부대는 풍선 폭탄을 날려 버릴 기지를 태평양에 면한 해안 세 곳에 설치한다.

후쿠시마현의 나코소, 지바현의 이치노미야 그리고 이바라키 현의 오쓰에서 1945년 4월까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풍선 폭탄 기구를 발사한다.

당시 발사된 풍선 기구는 총 1만 발로 약 천 개의 풍선 기구가 미국 본토까지 다다랐다.

일본 군이 날린 풍선 폭탄은 미국 오리건주 마을의 숲과 공원에 떨어져서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의 생물 병기 부서에서는 탄저균과 적리균, 우역 바이러스를 풍선 기구에 매달아서 미국 본토로 날려 버린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기상학자 아라카와 히데토시는 기구를 발사하는 고도와 적절한 계절과 바람 ,발사 지역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시간과 확률을 계산한다.

1944년 10월 말 오전 3시 풍선 폭탄에 세균을 장착한 기구를 날릴 준비를 갖추고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난 오전 5시 소대장이 '발사' 명령을 내리는 순간 풍선 폭탄은 날아 오르지 못하고 지면에서 폭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풍선 폭탄 사고로 고층 기상대 데이터를 계산하는 중앙 기상대 기수들이 사망한다.

풍선 희생자들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서 다쓰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 지난 시절 아버지와 함께 날렸던 연 세트(게일러 카르트)를 구매 했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 폐기물은 지하 500미터까지 갱도를 파서 사용 완료된 핵원료를 특수한 재료로 덮어 묻는다. 이런 핵폐기물 처리는 인간이 고안해 낸 방법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10만년 동안 폐기물이 지상으로 올라 올 경우가 없다며 원자로 가동에서 나오는 모든 핵 폐기물 처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후 이상 변화로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 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서 바닷물 수위는 올라가고 있다.

열을 감지한 지변이 흔들리고 계절의 순환은 뜨거운 여름이 지속 되어 강렬한 햇볕과 장기간 무서운 양으로 내리는 비의 양으로 인간들이 파 묻어 놓은 핵폐기물 시설이 10만년을 버텨 낼 것 같지 않다.


고베 대학에서 지구 과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에서 지구 행성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은 1998년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한 컴퓨터 전문가 테드 창의 작품을 읽고 대중들의 시선에 맞는 픽션같은 과학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2003년 부터 도야마 대학 이학부 조교로 근무하면서 안정적인 일을 하게 된 이요하라 신은 2008년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1년 만에 완성한 첫 번째 소설< 두번째 보름달>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 마다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고 마주 할 수 있는 과학적 현상과 기술을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과 연결 시키며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서점 직원들의 추천서에 이름을 올리는 인기 작가가 된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치 과학자가 일련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가이드처럼 대화로 묘사로 풀어나가는 이요하라 신의 작품들은 SF장르에 속하지 않고 미스터리로 분류 된다.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은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과학적인 현상과 자연의 변화를 정확한 명칭과 장소를 제시 하며 마치 과학 잡지에 실리는 개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듯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다.

과학자인 이요하라 신은 소설을 쓸 때면 '과학자가 보고 있는 풍경 그리고 세계의 모습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들여다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화두를 던져 놓고 글을 쓴다.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에 맨 마지막 장에는 이요하라 신이 작품 집필에 참고한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빼곡하게 수록되어서 작가의 소설적 상상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 실제 우리 눈 앞에서 발생했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요하라 신은 <팔월의 은빛 눈>에서 팔월에 은빛 눈이 내릴 수 있다는 가설을 이렇게 정의 했다.


[내핵은 지구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별로 크기는 달의 3분의 2 정도로 열방사 빛을 제거하면 은색으로 빛나는 별이다. 그것이 액체의 외핵에 싸여서 떠 있는데 그 별 표면은 전부 빽빽한 은빛 숲으로 높이 100미터나 되는 철로 된 나무 숲이다. 실제 그 정체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은 철 결정으로 외핵 밑 부분에서 액체 철이 얼면 내핵 표면으로 은빛 가루가 천천히 눈가루 처럼 흩날린다.]

-8월의 은빛 눈 중에서


은빛 숲에서 내리는 은빛 눈의 소리, 무덥고 습한 7월의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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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6-3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작가인데 너무 매력적인 리뷰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scott 2024-06-30 12:39   좋아요 2 | URL
이 단편집 정말 좋습니다
과학적 현상을 이토록 현실감 넘치게 묘사한 작가의 문체가 너무 유연하고 탄탄해서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