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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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일시 정지 되었다.

동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지역 하청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 했던 다쓰로는 원자력 규제 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제 기준을 통과 시키며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이 재 가동이 되었다.

다쓰로는 원자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이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시기에 더구나 폐원전 처리 문제도 해결 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원자력을 재 가동 시키는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원자로 일을 하겠다며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해서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후쿠시마를 찾아간다.

지진 발생이 후 단 한번도 후쿠시마 땅을 가본 적이 없었던 다쓰로는 해변에 날아드는 연의 방향에 이끌려서 차에서 내리고 연이 날리는 방향을 쫓아간다.

[100미터 정도 앞에서 나이 든 남자가 연줄을 당기고 있다. 몇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달랑 한 사람뿐이었다. 연은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으며 바다 위에 떠 있다. 겨울의 전조처럼 서늘한, 북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서풍이다.]

-10만년 뒤의 서풍 중에서


연이 날리는 방향으로 따라간 다쓰로는 연을 날리는 남자를 만나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렸던 미국산 '게일러 카이트'연이라는 걸 알고 친근감을 보인다.

후쿠시마 해변가에서 연을 날리는 남자의 이름은 다키구치, 그는 쓰쿠바 기상청 기상 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취미로 연을 날리면서 습관처럼 기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다키구치는 기상청 근무 당시 고층 기상 관측 전문가로 라디오존데라는 관측 장치를 기구에 달아서 상공으로 띄워 넣고 예보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했었다.

기상 관측 연구가인 다키구치는 1930년대에는 연에 온도계를 달고 기상을 예측하는데 이용했다며 다쓰로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인다.

그는 매일 해변에서 연을 날리며 레이더도 기구도 드론 같은 최첨단 기상 관측 기기가 아닌 연 줄을 타고 손으로 느껴지는 상공 공기의 감촉과 온도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예측하고 습관처럼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

다쓰로는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연을 날리며 기상을 관측하는 다키구치가 동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원전이 있었던 도미오카마치를 갈 예정이라는 말에 원전 회사에 다녔었다는 말을 꺼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다쓰로는 보수관리과 과장으로 승진해서 9월 말에 발생 했던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격납시설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을 나섰다.

진도 4지진 발생으로 원자로의 안전 장치 역할을 하는 필터 벨트에 뒤틀림을 발견한 다쓰로 팀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부장은 새로운 규제 기준에 근거해서 진도 4정도로 배관이 손상되었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니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고 문제가 발생했던 원자로의 일시 가동 중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원자로 전력회사의 하청 회사에 소속된 다쓰로는 상사의 지시로 보고서를 수정한다.

그렇게 보고서를 수정하고 나서 리히터 규모 7.3 의 지진과 지진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뒤바뀐 치명적인 인재 사고 였다.

다쓰로는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2호기 필터벨트의 뒤틀림 보고서를 수정한 직원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족이 사회로 부터 받을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원전 사고 이후 폐원자로 처리 시설회사 일을 시작한 다쓰로는 원전 사고 유출 발생 지점 근처에서 날리던 연을 따라 서풍으로 이동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대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 전선에 날릴 계획을 세웠던 풍선 폭탄의 이야기까지 흘러 간다.

수소 가스를 채운 직경 10미터 짜리 기구에 소이탄과 폭탄을 매달아 지상의 기지에 띄워서 기구가 상공에 강한 편서풍을 타고 이틀 밤 낮으로 날아 미국 본토 서해안에 자동적으로 폭탄을 투하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3년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는 300여명이 매달려서 기압계를 탑재한 정밀한 고도 유지 장치, 영하 50도에 달하는 상층 공기를 견딜 수 있는 내한 전지를 풍선 기구에 설치 해서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과 극장, 학교에서 학생들을 끌어다 놓고 풍선 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1944년 11월 편서풍이 불기 시작했던 날 일본 군부대는 풍선 폭탄을 날려 버릴 기지를 태평양에 면한 해안 세 곳에 설치한다.

후쿠시마현의 나코소, 지바현의 이치노미야 그리고 이바라키 현의 오쓰에서 1945년 4월까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풍선 폭탄 기구를 발사한다.

당시 발사된 풍선 기구는 총 1만 발로 약 천 개의 풍선 기구가 미국 본토까지 다다랐다.

일본 군이 날린 풍선 폭탄은 미국 오리건주 마을의 숲과 공원에 떨어져서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의 생물 병기 부서에서는 탄저균과 적리균, 우역 바이러스를 풍선 기구에 매달아서 미국 본토로 날려 버린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기상학자 아라카와 히데토시는 기구를 발사하는 고도와 적절한 계절과 바람 ,발사 지역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시간과 확률을 계산한다.

1944년 10월 말 오전 3시 풍선 폭탄에 세균을 장착한 기구를 날릴 준비를 갖추고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난 오전 5시 소대장이 '발사' 명령을 내리는 순간 풍선 폭탄은 날아 오르지 못하고 지면에서 폭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풍선 폭탄 사고로 고층 기상대 데이터를 계산하는 중앙 기상대 기수들이 사망한다.

풍선 희생자들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서 다쓰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 지난 시절 아버지와 함께 날렸던 연 세트(게일러 카르트)를 구매 했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 폐기물은 지하 500미터까지 갱도를 파서 사용 완료된 핵원료를 특수한 재료로 덮어 묻는다. 이런 핵폐기물 처리는 인간이 고안해 낸 방법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10만년 동안 폐기물이 지상으로 올라 올 경우가 없다며 원자로 가동에서 나오는 모든 핵 폐기물 처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후 이상 변화로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 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서 바닷물 수위는 올라가고 있다.

열을 감지한 지변이 흔들리고 계절의 순환은 뜨거운 여름이 지속 되어 강렬한 햇볕과 장기간 무서운 양으로 내리는 비의 양으로 인간들이 파 묻어 놓은 핵폐기물 시설이 10만년을 버텨 낼 것 같지 않다.


고베 대학에서 지구 과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에서 지구 행성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은 1998년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한 컴퓨터 전문가 테드 창의 작품을 읽고 대중들의 시선에 맞는 픽션같은 과학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2003년 부터 도야마 대학 이학부 조교로 근무하면서 안정적인 일을 하게 된 이요하라 신은 2008년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1년 만에 완성한 첫 번째 소설< 두번째 보름달>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 마다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고 마주 할 수 있는 과학적 현상과 기술을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과 연결 시키며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서점 직원들의 추천서에 이름을 올리는 인기 작가가 된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치 과학자가 일련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가이드처럼 대화로 묘사로 풀어나가는 이요하라 신의 작품들은 SF장르에 속하지 않고 미스터리로 분류 된다.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은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과학적인 현상과 자연의 변화를 정확한 명칭과 장소를 제시 하며 마치 과학 잡지에 실리는 개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듯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다.

과학자인 이요하라 신은 소설을 쓸 때면 '과학자가 보고 있는 풍경 그리고 세계의 모습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들여다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화두를 던져 놓고 글을 쓴다.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에 맨 마지막 장에는 이요하라 신이 작품 집필에 참고한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빼곡하게 수록되어서 작가의 소설적 상상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 실제 우리 눈 앞에서 발생했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요하라 신은 <팔월의 은빛 눈>에서 팔월에 은빛 눈이 내릴 수 있다는 가설을 이렇게 정의 했다.


[내핵은 지구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별로 크기는 달의 3분의 2 정도로 열방사 빛을 제거하면 은색으로 빛나는 별이다. 그것이 액체의 외핵에 싸여서 떠 있는데 그 별 표면은 전부 빽빽한 은빛 숲으로 높이 100미터나 되는 철로 된 나무 숲이다. 실제 그 정체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은 철 결정으로 외핵 밑 부분에서 액체 철이 얼면 내핵 표면으로 은빛 가루가 천천히 눈가루 처럼 흩날린다.]

-8월의 은빛 눈 중에서


은빛 숲에서 내리는 은빛 눈의 소리, 무덥고 습한 7월의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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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6-3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작가인데 너무 매력적인 리뷰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scott 2024-06-30 12:39   좋아요 2 | URL
이 단편집 정말 좋습니다
과학적 현상을 이토록 현실감 넘치게 묘사한 작가의 문체가 너무 유연하고 탄탄해서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