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각자 만의 불을 품고 모였다. 나는 이들의 손에 들려진 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임을 믿는다. 신은 알 것이다. 나의 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노라고.'
-1970,11.27 빌리지 보이스, 비비언 고닉
1970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시위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던 인물은 '빌리지 보이스' 소속 기자 비비언 고닉으로 그녀가 취재한 티그레이스 앳킨슨,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필리스 체슬러, 엘런 윌리스, 앨릭스 케이츠 슐먼 운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뉴욕 래디컬페미니스트 창설에 불씨를 싹트게 만들었다.
[독자가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도록, 허구를 창작하듯 서사를 설정했는데 그렇게 나 자신을 참여적 서술자로 활용하니 독자로 하여금 그날 밤 사건을 겪은 그대로 경험하고 내가 느낀 날 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끔 할 수 있었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나는 이미 '일인칭 저널리 즘(독자가 화자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게 만드는 새로운 논픽션 저널리즘 양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비언 고닉
1980년대 미디어 홍수의 시대 속에서 비비언 고닉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리한 비판으로 우파와 좌파 지지층으로 부터 맹 공격을 받았지만 그녀가 개척한 일인칭 비평은 SNS시대의 1인 미디어 체제가 도입 되기 반 세기 전부터 독보적인 서사로 비평계에 새로운 물결을 선도 했다.
1970년대 세상을 뒤흔들며 강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페미니즘은 1980년대 부터 와해 되고 느슨해지면서 연대의 공감대가 무너졌고 비비언 고닉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사이에서 갈등하며 좌절을 거듭한 끝에 그동안 몸담았던 빌리지 보이스를 떠난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고나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서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분야를 찾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마흔다섯 살의 딸과 일흔 일곱 살의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 <사나운 애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앞의 소재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귀중한 이야기를 찾아 다니는 진정한 글쟁이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그래야만 우리의 한계를 알고 연민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다.'
-비비언 고닉
1990년대 부터 프린래서 작가가 된 비비언 고닉은 회고록과 에세이, 대학 강연과 각종 일간지 서평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녀가 출간 한 책들은 2000년대 들어서 절판을 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다.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성폭력, 언어 폭력,감금, 폭행등의 피해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추가 발생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운동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촉발된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전 페미니즘 물결의 선봉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취재 했던 기자 '비비언 고닉'의 이름이 언론과 출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지난 시절에 출간 되었던 그녀의 책들이 새로운 표지로 출간 되면서 페미니즘과 저널리즘을 강의 하는 강의 시간에 화자 되어 참고 도서로 읽혀지게 되었고 1987년에 발표한 자전적 회고록인 <사나운 애착>이 2015년에 재 출간 되면서 주요 신문의 서평란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2015년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미국 문단에서 지난 50년간 출간된 회고록 중에 최고의 회고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100대 논픽션 라이브러리에 이름을 올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뭔가를 소유하는 데 무관심한 인간으로 통한다.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다고들웃는다. 나는 뭐든 이름도 잘 모르겠고 가짜와 진짜, 고급스러운 것과 평범한 것도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80세에 비로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비비언 고닉은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이젠 더이상 한 달 렌트비와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며 서서히 주변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에 들어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 한 때는 잘 알았지만 한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책의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몇 장 넘기다 보면 기억나지 않은 그 정보를 금세 찾을 거라 생각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중에서
세상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이 기억에 없었을 정도로 스스로 태어날 때 부터 책을 읽었다고 생각 했을 정도로 독서광이였던 비비언 고닉은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책장 속에 꽂혀진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비비언 고닉
지난 시절에 읽은 책들을 하나 씩 다시 읽으면서 사회 경험이 별로 없고 세상 물정을 몰랐던 시기에 어떻게 '빌리지 보이스'에 기사 원고를 투고 했는지, 사회 깊숙이 스며있는 성차별과 어떻게 맞섰는지 날 것의 잔혹하고도 범상하고도 내밀한 비비언 고닉의 독특한 1인칭 자기 고백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 나는 몇 편의 기사를 써낸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혼한 서른다섯 살 ‘여자‘가 되어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허세 아래 혼란은 깊었고, 막막함 역시 엄청났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날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
서른을 앞두고 결혼을 한 비비언 고닉은 1년 만에 이혼하고 뒤 이어 또 한번 결혼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두 번째 이혼을 한다.
'어느 영문학 교수가 손에 <아들과 연인>을 쥐어 주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스무 살에 처음 읽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은 이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후에 다시 펼쳐 들고 팔십세를 넘기고 나서 세 번째로 펼쳐 든다.
'앞 날을 바라보고 삶을 조망하면 산 채로 매장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중에서
성애 소설인가? 성장 소설인가? 마마보이의 성장기 인가? 라는 의문을 품으며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당시에 비비언 고닉은 두 번째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거나, 언론사를 그만두고 떠돌이처럼 기사를 썼거나, 두 번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거나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다.
그녀가 인생의 매 순간 마다 펼쳐 보았던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에서 이상적인 삶, 교육받은 삶, 용감한 삶,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사랑만 추구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에 이르기 까지 5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언 고닉
여든 넷의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마그리뜨 뒤라스,엘리자베스 보엔,델모어 슈워츠,나탈리아 긴츠부르크,J.L카, 팻 바커,도리스 레싱,토머스 하디까지 40년 전에 읽었던 책들로 오랜 세월 책장 속에 잠들어서 종이색이 바래지고 활자들까지 희미해진 책들이다.
[갑자기 40여년 전 쯤 내가 그은 게 틀림없는 밑줄이 주의를 붙들더니 다음에는 내가 동그라미 쳐둔 문단이 여백에 나란히 적힌 두 개의 느낌표가 눈에 띄었다. ]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 동그라미를 친 구절을 읽어나가던 고닉은 '뻔한 문장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이거 정말 흥미로운 대목인데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마치 고고학자들이 흩어져 있는 파편의 조각을 맞추듯이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본다.
(c) vivian gornik house, lux magazine
그녀가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총 아홉권(미국판에 있는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작품에 대한 내용은 한국어판에서 빠짐, 미국판은 총 열권의 책이 언급됨)으로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그녀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책들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유대계 역사나 작가에 관해 큰 흥미가 없거나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은 전에 출간 된 책들 보다 그리 큰 감동이나 인상을 주지 못 할지 모른다.
이 책의 맨 첫장에 적혀 있는 작가 노트에서 비비언 고닉은 앞서 출간 된 책들 중에 문장과 문단을 인용 하거나 한 대목을 통쨰로 옮겨다 적어서 자기 표절을 서슴지 않게 했다고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80세를 넘긴 자기 자신이 다시 읽고 썼으니 독자들도 앞서 출간 된 책에서 언급했던 대목을 다시 읽는 것도 꽤 쓸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비비언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 중에서 나의 인생의 책은 딱 한 권으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다시 읽고 또 읽는 작가, 출간된 모든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고 있으며 읽을 때 마다 필 사하며 새기는 작가는 단 한 명이다.
'나 한테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작품들을 자주 써준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다.'
-비비언 고닉
나는 이탈리아 사실주의 문학과 네오리얼리즘 시대와 나온 영화와 예술을 사랑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와 지독할 정도로 카톨릭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폭력이 들불 처럼 일어 났을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 중에서 목숨 걸고 자유를 울부짖었던 남성작가들이 있다.
반면에 피난 도중에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에 먹을 것을 구하고 와서 내일 먹을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된 날에 총성 소리가 멎은 날에 배고픔에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틈틈이 조각 조각 파편화 된 글을 쓴 작가 나탈리 긴츠부르그가 있다.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수 많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집에 있어도 예전처럼 편안하거나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인간의 자식' 중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태어나서 세살 무렵부터 토리노에 살았던 나탈리아 레비(결혼전 성)는 토리노 대학 생물학 교수 였던 아버지가 온갖 병균이 창궐한다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트리에스테 출신의 유대계 아버지는 완고한 성격으로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장성한 아이들이 있었고 나탈리아의 어머니는 밀라노 태생의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성장해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몽상가적인 사람이였다.
어머니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성이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세상과도 단절되어 어른들의 삶을 관찰 하는 고독한 아이였다.
[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썼다. 그래서 시대를 기록한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공백이 너무 많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 책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파시즘과 전쟁의 상흔이 사라졌던 시기인 1963년에 발표한 <가족어 사전>은 1930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실존 했던 인물이고 나이도 이름도 모두 허구가 아닌 실제 이름을 차용 했다고 소설 맨 앞장 서문을 통해 '기억'에 의지해 문학적 양식으로 쓴 회고록 이라고 밝혔다.
'가족어 사전'의 첫 장을 열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고함쳤다.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우리가 빵을 소스에 적셔 먹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빵으로 접시 닦지 마라!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추잡스러운 짓 하지 마라!'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명망 있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가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했고 파시즘이 거세 질 수록 가족을 옭아맸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던 어린 나탈리아는 집안의 공기의 기류를 바꾸며 끝도 없이 치닫는 감정적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멍든 가족의 모습을 기록한다.
[아버지의 다른 행동이 다 그렇듯이 중재 역시 폭력적이었다. 아버지는 달라붙어 상대를 두들겨 패고 있는 두 오빠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그들의 따귀를 때렸다. ]
나탈리아는 돈은 없지만 놀랍게도 가난하지도 않았던 집에서 벗어나서 겨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지만 낙제를 하고 이 상처와 굴욕감을 글쓰기로 극복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첫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오데사 출신의 유대인 레오네 긴츠부르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십대 후반의 나탈리아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은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토리노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며 작가로 활동하다 당국에 의해 반파시스트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투옥 된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 했던 형제들은 막내 나탈리아를 보호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도와 주고 나탈리아는 레오네가 감옥에서 출소 한 후 결혼을 한다.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 했을 때 나탈리아는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아브루초 지방으로 추방 당하고 온 세상이 얼어 붙어 버린 한 겨울 추위 속에 남편은 비밀 경찰에게 끌려간다.
[내가 말하고 있는 마을에 왔을 때 처음에는 모든 얼굴이 다 똑같아 보였다. 여자들은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생김새가 다 비슷했다. 대부분 이가 없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아부르초의 겨울' 중에서
두 아이들과 낯선 곳에 고립된 그녀는 이 시절 집중적으로 글을 쓰면서 언제 어떤 식으로 죽거나 끌려갈지 모른 상황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먼저 로마로 돌아가고 나탈리아는 갓 태어난 셋째 아이와 두 아이와 함께 유배지인 아브루초에 남지만 독일군의 침공으로 마을 전체가 폭격을 당한다.
그녀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로마로 돌아 오지만 만난지 28일 만에 남편은 독일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처형 당한다.
[남편은 우리가 그 마을을 떠난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로마의 레지나 코엘리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독한 그의 죽음이 가져온 공포에 직면해서 그의 죽음에 앞선 고통 스러운 선택들 앞에서 이것이 지로네 가게에서 오렌지를 사서 눈 속을 산책하던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맞는지 자문해보곤 한다. 그때 나는 바라는 게 다 충족되고 다양한 경험과 함께 하는 모험들이 가득한 평탄하고 행복한 미래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영원히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자신에게 찾아 온 불행을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나탈리아는 남편을 감옥에 보내 놓고 아이들과 유형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비로소 결혼과 육아로 중단했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겨난다.
남편이 감옥에 투옥 되어 있는 동안 홀로 셋째 아이를 낳은 나탈리아에게 매일 매일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였지만 유형지에서 3년 동안의 시간은 그녀를 작가로 살아 갈 수 있게 만든 시간이 되고 남편이 처형 당하고 나서는 행복했던 시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나탈리아아는 세 아이와 함께 로마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며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이 출판사는 남편이 살아 생전 동료 교수와 함께 토리노에 차렸던 출판사 지사로 나탈리아는 이 출판사에서 유대계 출신의 작가 체사레 파베세, 이탈로 칼비노, 그리고 토리노 출신의 유대계 작가이자 홀로코스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출간하며 전후 이탈리아 문학의 황금시기를 맞이 하게 만드는 작품을 출간한다.
어린 시절 영어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번역일도 하며 틈틈이 자신의 글을 쓰며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정치적인 주제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며 어떤 문학적 사조에 관여하거나 휩쓸리지 않았다.
1950년에 영문학과 교수인 가브리엘레 발디와 재혼한 나탈리아는 그가 영국의 이탈리아 문화원장으로 근무 할 때 함께 체류하며 개인의 기억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
1960년에 발표한 에세이 <나의 일>은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엘레나 페란테 , 데버라 리비등 현재 영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는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섰지만 허구만 섞어보려 하면 한 줄도 생동감 있게 안 나오는 마당에 어떻게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겠다는 건지 막막하고 깜깜하기만 했다. 그런데 때마침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에세이 '나의 일'을 읽었고 거기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비비언 고닉
지난 50년동안 가장 뛰어난 회고록으로 평가 받는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의 첫 문단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덟 살이다. 엄마와 나는 아파트에서 나와 2층 층계참에 서 있다. 옆집 드러커 아줌마가 자기네 집 문을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엄마가 우리 집 문을 닫으면서 그 아줌마에게 말한다. ˝거기 서서 뭐해?˝ 아줌마는고갯짓으로 집 안을 가리킨다. ˝저 남자가 하자고 해서.
나 건드리려면 샤워부터 하라고 했지.˝ 나는 ‘저 남자가아줌마의 남편이라는 걸 안다. ‘남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 중에서
1961년에 출간 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라는 작품을 펼치면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목구멍에 덩어리 같은 게 느껴져.'
-어머니가 말했다 ' (저 장군은) 어쩌면 머리숱이 저렇게 많니, 저 나이에!'
그분이 말했다. '개꼴이 얼마나 흉해졌는지 너 봤니?'
그래도 새 의사는 고혈압이 있는 걸 찾아냈지 뭐니? 난 항상 혈압이 낮았는데 항상..'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 중에서
이런 진부하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대화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왜 이런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한 페이지 넘기고 다음 장면 그 다음 장면을 이어서 읽어나가다 보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어온 살의와 두려움 그리고 전쟁의 무서움 보다 더 끔찍한 굶주림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글을 처음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부터 마치 자신 안에 잠재 된 가능성을 발견하며 스승이 직접 작가의 삶이란 이런 거다. 창작을 하는 건 이런거다라는 걸 시연해 보여 주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과 전율에 사로잡힌다.
2022년에 출간 한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소설 <All Our Yesterdays>의 서문을 21세기 샐린저로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샐리 루니가 썼다.
그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은 어떤 소설 보다 완벽한 작품, 완벽한 서사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마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듯, 삶을 엿본듯 표현해서 소름이 끼친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쟁이 발발하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들과 남편은 감옥에 투옥되고 홀로 아이를 낳는 동안에도 글을 썼던 나탈리아는 글을 쓰는 동안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쪼개지고 갈라지며 그칠 줄 모를 정도로 폭탄이 쏟아지는 지옥의 시절을 견뎌 냈다.
이런 삶을 견뎌 내며 글을 쓰고 살아 남아 문학역사에 이름을 새긴 작가들이 많고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마침내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들도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작가들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를 글쓰기 스승을 삼고 칭송 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탈리아 중등 과정 교과서에 실리는 <가족어 사전>에 이런 문단이 나온다.
[알베르토는 휴일을 맞아 학교에서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아 오믈렛을 먹으려 하면 종이 울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장이 방에 들어와 말했다.
'오믈렛은 나이프로 써는 게 아니라고 한 번 더 말해줘야 겠구나!'
그리고 다시 종이 울리면 교장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제 스키를 타러 가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산이라니! 위험천만한 곳이지!' 어머니는 스키를 탈 줄 몰랐고, 실내에만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이 스키를 타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워 했다.]
-나탈리아 긴츠버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죽 박죽인 시점 사이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초현실적이면서도 눈 앞에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묘사 했다.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후대에 모더니즘 적인 기법으로 1994년생 밀리니얼 세대 작가 샐리 루니가 <노멀 피플>에서 차용한 기법 중 하나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그걸 오래 전 부터 잘 알고 있다. 내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글을 쓰는 게 내 일이라는 사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편안함을 느끼며 내가 특히 잘 아는 것 같은 본래의 영역 안에서 움직인다. 내가 잘 알고 친숙한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그것들이 내 손에 딱 맞는 게 느껴진다. 다른 일을 한다면, 가령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역사나 지리나 속기를 배워보려 하거나 대중 앞에서 말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면 나는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 끊임없이 궁금해 했을 것이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나의 일> 중에서
비비언 고닉에게 스승 같은 글쓰기 교본이자 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에피파니 였던 이 에세이를 나는 안정된 환경을 보장해 주었던 런던을 떠나 북서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중세 시대 건물로 에워 싸인 대학의 도시에서 고군분투 하던 시절에 처음 읽었다.
[우리는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가 감동했던 것에 우리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다. 모두 사색 하고 공부하고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가꾸어나가길 기대했다. 그때는 다른 시대였고 아마 그 나름대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뇌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우리 운명에 만족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그동안 내가 읽은 어떤 작가도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고 이런 목소리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겪은 경험들과 목격한 것들에 대해 이토록 치열한 성찰과 인간 심리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으로 글을 남긴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유일하다.
최고의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독보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작가들로 칭송 받고 있는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 ,엘레나 페란테 그리고 데버라 리비의 작품들은 출간 되면 챙겨 읽지만 전 작품을 섭렵하며 수시로 들춰 보지 않는다.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가 넘쳐 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툽이나 OTT에 온갖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고 게임 세상에도 온통 이야기 천지고 예능과 웹툰까지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긴츠부르그는 고립된 외톨이 어린 시절부터 피와 폭력의 파시즘 시대에 유형 생활과 전쟁 중 피난 생활 그리고 종전 후 비로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지켜보며 인간이 한 시대를 통과 하며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 하는 과정을 글로 엮어 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는 대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내 뒤에서 침묵하는 죽은 사람의 존재를 느낄 때 미약 하나마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1935년생 비비언 고닉은 아흔 살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매일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쉼없이 걷고 읽고 쓰며 정신과 육체가 온전 할 때 더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84세부터 지난 시절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 비비언 고닉은 읽는 자는 영원히 늙지 않고 성장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회고록, 사회비평, 심층 심리 탐구와 문학 비평으로 글쓰기 영역을 넓혀 나가며 과거의 기억과 의식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끌어 안으면서 영원히 자신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다시 읽기 과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읽기 과정은 자신의 지난 시절에 고착된 기억과 생각을 되돌아 보고 뜯어 고치고 개혁하는 힘든 과정이다. 기존의 습관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듯이 다시 읽기 과정은 자아를 재 발견하게 되어 다시 읽기 시작하는 순간 부터 인간은 새로 태어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더 오래 살고 싶다며 세상이 변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절대 두려워 하지 말고 읽고 쓰는 통합된 자아를 갖춘 지식인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조언을 했다.
'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비비언 고닉
2024년 1월 부터 대대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며 곳곳에 쌓아 놓은 책탑에 책들 중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추려 내고 있다.
볼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다시 읽기에 시간을 할애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드라마 한 편은 빨리 돌려 보고 되감아 보면서 한 시리즈를 하루 몇 시간 만에 정주행 할 수 있지만 장편 소설을 다시 읽는 데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시 읽어 나가면서 전에는 이해해 보지 못했던 것들, 인간관계 그리고 이 세상의 한 부분을 이제는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또 다른 나의 자아를 들춰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