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SF장르물의 거의 모든 상을 휩쓸고 있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1986년생으로 도쿄 대학에서 이과로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교양 학부로 옮기고 대학원에서 문화 연구를 전공했다.

박사과정 시절에 쓴 작품 <유트로니카의 이면>이 일본 장르 문학 출판사 하야카와가 주최 하는 SF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계로 뛰어들었다.

오가와 사토시는 약 2년에 한 번 주기로 장편과 단편을 발표하는 동안 요시카와 에이지상과 일본 SF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고 야마다후타로상을 받고 나서 마침내 <지도와 주먹>으로 나오키상까지 거머쥐었다.

2015년 부터 2022년까지 약 6년에 걸쳐 이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는 일본 내에서도 오가와 사토시가 유일무일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그의 작품 팬층은 굉장히 탄탄해서 출판 즉시 주요 문학상과 서점대상 후보로 줄줄이 올라간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너의 퀴즈>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까지 수상해서 SF물과 미스테리, 역사물까지 거의 모든 장르 분야의 상을 휩쓸었다.


2022년 나오키 상과 야마다 후타로 상까지 2관왕 수상작인 <지도와 주먹> 만주 땅으로 건너간 일본인 통역사와 만주 철도망을 러시아까지 확대 하려는 차르 정부에게 고급 정보를 넘겨 주기 위해서 파견된 러시아 국교회 소속 신부 그리고 삼촌에게 속아서 만주로 오게 된 손오공과 중국 동쪽 지방의 봉촌이라는 곳에서 온 <이가진>까지 지도에도 없는 어느 섬을 무대로 러일 전쟁 전야 부터 시작에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50년의 세월 동안 흔적 없이 사라져서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지략과 살육의 전쟁을 다룬 SF 공상 역사 소설이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특정 사건과 몇몇 인물들이 이런 선택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역사는 이런 식으로 흘러 가서 현 시대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 SF 공상 역사물인 <지도와 주먹> 작품에 앞서 출간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2022년 대망의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의 시놉시스 같은 작품이 있다.


[1844년 1월 9일 오전 10시 30분. 지금부터 워딩턴 공장 습격에 관련한 맨체스터 특별 순회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단편 <거짓과 정전>의 첫 장면은 사회주의 혁명과 마르크스 주의 핵심 사상을 응집 시켜서 공산주의 시대를 낳게 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 맨체스터 순회 법원 재판석 피고인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재판에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선 인물은 쿡 앤드 휘트스톤식 전신 기사인 새뮤얼 스톡스로 정전의 수호자인 앵커로서 법정 증인석에 앉아 있다.

독일 에르멘 앤드 엥겔스 방적공장의 경영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시니어의 아들이자 방직공장의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재판석에서 이런 변호를 시작한다.


[저는 이 법정에서 유럽에 존재하는 흉악한 인간이 아일랜드인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이미 아일랜드인 수십 명이 순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지만 독일인인 치고가 저지른 죄는 그저 날뛴 것 뿐인 아일랜드인들보다 더 악질적입니다. 피고인은 폭동을 빌미로 사업 경쟁 상대의 공장을 파괴함으로써 엥겔스 공장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올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공방이 오고 가고 나서 마지막 증인 발언 시간에 정전에서 기사 스톡스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는 지금 증인석 자리에 서있는 스톡스는 정전의 수호자의 중계자에게 메시지를 받고 나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 년 전 부터 기다리고 준비 해 왔다.

이 정전기사는 지난 육백 년에 세월에 걸쳐 활동하면서 1884년 1월 마침내 영국 맨체스터 법원 재판석에서 '역사 전쟁'을 종결 시키는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반 세기의 시간이 흘러 미국과 소련 스파이들이 모스크바 한 가운데서 주요 연락책과 긴밀하게 연결해서 서로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고 있던 중 한 소련인 과학자 안톤 페트로프가 미국 CIA에게 포섭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최신 기술을 넘기려고 하던 중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다.


'우르마노프형 정전 가속기로 전자를 고압 방출하면 특정 조건 아래 전자가 사차원 공간을 통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원리는 전자를 임의의 과거 일시, 장소로 방출할 수 있고 기술을 활용하면 초광속으로 과거와 통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온다.

안톤 페트로프는 직접 시현을 해보는데 전자를 이용해서 지난 시절에 살아있던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하던 중 미래에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되자 그는 마침내 자신과 비밀리에 접촉 중인 CIA요원 화이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기기 작동을 두루 살피며 시험 해 보는 동안 소련 과학자 페트로프의 주변 인물들이 KGB비밀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어 소식조차 알지 못한 상태가 되고 서서히 포위망이 페트로프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백년의 세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영국 맨체스터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선고형을 확 뒤집어 버릴 수 있다면 현 세상에 공산주의라는 사상도 국가도 전멸하게 될까?


[역사는 때로 중대한 양자 택일을 강요 당한다. 전쟁인가, 비전쟁인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정직인가, 거짓인가, 대통령이 아니어도 황제가 아니어도 판단을 그르칠 때가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엥겔스가 실제로 유배형에 상당 하는 행동을 했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는 유배형을 받았어야 했다. 그는 마르크스를 수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가와 사토시의 가상의 SF역사물의 시작은 만약에 이 인물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만약에 이 장소에 이런 사람이 살게 되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오키 수상작 <지도와 주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君は満洲という白紙の地図に、夢を書きこむ

너는 만주라는 백지 지도에 꿈을 써넣는다.

단편 <거짓과 정전> 역시 작가가 백지의 종이 위에 공산주의는 만유인력처럼 특정 인물(뉴턴)이 없었어도 존재했을까? 아니면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특정 인물(찰스 디킨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일 뉴턴이 없었더라도 만유인력은 발견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유인력은 이미 케플러 같은 앞선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찰스 디킨스가 없었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불후한 성장 서사가 없었기에 당대 영국 땅에서 어떤 작가도 어린 고아 어린이가 어른들의 불법적인 행위와 노동에 착취 당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다.

따라서 찰스 디킨스의 존재 자체가 <올리버 트위스트> 작품과 같은 의미이기에 ‘역사적 필연성’은 존재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헤겔의 사상을 계승한 무신론 철학자 마르크스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에 정통했던 엥겔스 이 두 인물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주의는 탄생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공장에서 일어난 폭동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엥겔스의 모습에서 시작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했던 냉전시대까지 조망한 <거짓과 정전>에는 역사에서 공산주의를 없애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그리고 현대 역사를 변형 시키려는 사람과 전송 수단 통신 기기인 ‘정전’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서로 대립하며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발상으로 마지막 장까지 긴박감을 향해 종횡무진 질주하는 SF 역사 스파이 스릴러 물이다.

장편으로 늘려 써도 좋을 만큼 재치 넘치는 설정과 기발한 전개, 여러 상황들이 역사적 시간대별로 절묘하게 들어 맞아 움직인다.

능숙한 조련사처럼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인물들끼리 주고 받는 대사 그리고 복잡한 과학 구조 원리와 기술적인 관계를 특정 상황에 대비 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상황이 발생 할 수도 있구나 라고 수긍 시킬 정도로 치밀할 정도로 논리적이다.

2019년에 발표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출간 즉시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뽑혔고 수록된 단편 <마술사>는 중국 최대 SF어워드인 은하상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한 줄기 빛

-시간의 문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마술사>와 <거짓과 정전> 두 단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들은 기발한 설정이나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 작품들은 아닌 그저 작가가 여분의 시간에 아이디어 구상처럼 쓴 것 처럼 밋밋한 맛이 느껴지지만 문장과 전개 방식은 뛰어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되고 뒷맛도 개운하다.

나는 매해 미국에서 출간 되는 《Asimov’s》나 《FSF(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같은 기나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고 있고 로커스상,필립 케이 딕 상,네뷸러와 휴고상 수상작들은 최신작품 부터 지난 시절 수상 작품들까지 전부 섭렵해서 읽었다.

특히 전 세계 SF작가들이 출간하는 단편들 중 한 해동안 출판된 SF 단편 작품들 가운데 수작들만 모은 SFnal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편집자 조너선 스트라한이 발행하는 잡지)의 최근 출판된 것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일본 문학상 작품 중에 꾸준히 읽는 수상작들은 아쿠타가와와 나오키,일본 추리협회 대상 그리고 가끔씩 요시카와 에이지와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문고본으로 출간 되기 전 단행본부터 구입해서 읽고 있다.

일본은 최근 십 여년 동안 주요 문학상 작품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수상작들 대부분이 역사물이 대세로 메이지 시대 말기의 청춘 미스터리, 신기술을 차용한 미래 사회를 펼쳐 보이는 본격 미스터리,러 일 전쟁, 2차 세계 대전의 어느 유럽 도시,환상과 괴물이 날 뛰어다니는 미래의 가상 도시, 인구 소멸로 인간이 사라진 도시,이상 기후 변화로 강과 바다가 범람해서 지하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 1945년 종전 직전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오사카 어느 마을,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 소 전쟁터에 나서 소련 여성 스나이퍼 부대까지 현 시대가 아닌 지난 세기와 미래 시대를 넘나드는 대 서사 SF역사 공상 소설물들이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베스트 순위에 올라와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자신의 소설 원칙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SF의 재미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가치관이 붕괴되는 듯한 감각을 맛보는 데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마술을 선보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마술사 >단편에서 아버지에게 마법을 가르친 스승 맥스 월턴은 '마술사가 해선 안 되는 일 세 가지'를 반드시 잊지 말라고 당부 했다.


-마술을 선보이기 전에 설명해선 안된다.

-같은 마술을 반복해선 안된다.

-트릭을 밝혀선 안된다.


나 역시 단편 <마술사>의 마술 스승 맥스 월턴 처럼 오가와 사토시의 <거짓과 정전>에 담겨진 모든 단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2015년 이후 부터 활동한 오가와 사토시에게 일본의 메이저급 작가들은 입을 모아 '천재'라며 매번 발표하는 작품마다 달려들어 가장 먼저 읽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열렬한 책벌레로 주변 사람들 중에 자신만큼 책을 읽은 사람이 없다고 자부 할 정도로 독서광 중에 광인이였다.

그는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여분에 남은 시간 동안 소설을 끄적이다가 일단 시작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를 짖자 라고 결심하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그는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 하겠구나, 지금 시대에 이런 작품이 잘 팔리고 읽혀 지는 구나를 전혀 염두 해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파고 들어 쓰고 고치는 동안 스스로 재미가 붙어야 작품을 완성하는 성향으로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손바닥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집요하게 달려들어 시대 상황과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한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지도와 주먹>을 읽은 심사 위원들이 모두 제자리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칠 때 그는 이 정도 열심히 썼는데 라는 자신감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스스로 다져나간 창작 주먹이 단단하다.

그럼에도 매번 한 작품을 탈고 할 때마다 영혼의 밑바닥부터 창작의 샘까지 바싹 말라버려서 다음 작품을 집필할 때면 맨 땅에서 헤딩 하듯 맨 주먹으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정신 상태로 회귀하는 작가다.


[모모야마는 문화를 사랑했다. 영화도, 소설도, 음악도, 패션도, 미술도 모두 좋았다. 자신은 어째서 문화를 사랑하나. 모모야마는 ‘불필요해서’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없다고 굶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것’이 자신들의 생활에 색채를 부여하고 있었다.]

-오가와 사토시의 '무지카 문다나' 중에서


오가와 사토시의 <기억과 정전>은 2024년 상반기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지나온 시간의 흐름과 앞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우리 모두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고의 발상과 시간 여행이 주는 즐거운 감각을 일깨워 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 <거짓과 정전> 2014년 한계도 경계도 없이 폭발하는 상상력을 꼭 맛보길 바란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4-04-22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작가로군요 젊기도 하고 @_@;;; 작가도 작가지만 scott님 존경합니다. 뱅글뱅글 @_@;;;;

scott 2024-04-22 17: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문나잇님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뱅글뱅글 @_@

희선 2024-04-23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설이라는 것도 없어도 되는 거군요 그래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그저 살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이건 언제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음악 미술 여러 가지가 나타났겠지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