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기의 달이 뜨면 - 1940 런던 공습, 전격하는 히틀러와 처칠의 도전
에릭 라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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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독일이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군대를 앞세우고 들어가 2년 만에 오스트리아의 주요 도시와 체코 수데텐란트를 차례 차례 점령해 나갈 때도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조차 '독일은 더 이상 다른 국가의 영토를 침범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히틀러의 발언을 굳게 믿고 있었다.


1938년 9월 30일,영국, 프랑스, 나치 독일, 이탈리아 4개국은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중 독일인의 인구가 많은 수데텐란트를 나치 독일에게 양도한다는 협정을 체결한다.


1939년 3월 히틀러는 체코 전역을 집어 삼켜 버리며 뮌헨 협정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39년 5월 10일 금요일, 히틀러는 유럽 저지대 국가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을 상대로 전격전에 돌입한다.

독일 나치 정부에게 약간의 양보로 평화를 얻었다고 자부했던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영국 땅까지 나치 군이 진격 하지 않으리 라는 희망을 가졌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집에 돌아가서셔 평안히 주무십시오.'

히틀러의 속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체임벌린을 향해 의원들 중 상당수가 타고난 달변가이자 웅변가인 정치계의 '포악한 코끼리' 처칠을 체임벌린 후임자로 뛰우기 시작한다.

긴급 소집된 의회에서 체임벌린 총리는 전쟁 준비에 대한 어떤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치과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의장실을 떠난다.

이제 남은 건 국왕의 새로운 총리 임명 결정 뿐이였다.

국왕은 체임벌린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안정적인 성품에 핼리팩스경을 추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체임벌린 총리는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낼 인물로 '윈스턴 처칠'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갑작스런 국왕의 호출을 받은 처칠은 국왕과 껄끄러운 사이였다.

1936년 처칠은 국왕의 형 에드워드 8세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왕실과 커다란 마찰을 빚었었다.

국왕은 체임벌린 총리의 국가 정책 마다 온갖 비판을 쏟아내는 처칠의 행보를 크게 불신하고 있었다.

'당신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여기 너무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어서 물러나세요! 이제 그만 끝내시라고요! 분명히 말하는데 사라지세요.'

젊은 의원들로 부터 '낡아 빠진 우산' 으로 불렸던 71세 총리 체임벌린은 직접 처칠을 찾아가 사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처칠은 국왕과 함께 한 자리에서 자신을 총리로 추천한 체임벌린의 사임을 만류 하며 태연하게 의리 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을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었던 의원들이 왕실로 몰려 가고 5월 10일 아침 독일 히틀러가 유럽 저지대를 점령 하는 순간 ,총리로 임명된 처칠은 '몹시 두렵지만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다 바치겠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지 안다고 생각하는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잡은 권력은 하나의 축복이다.'


처칠은 다우닝 10번지에 도착 하는 순간 부터 '영국은 반드시 승리 할 것이다.' 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독일 히틀러의 침공에 맞서려면 영국 국민들, 지휘관들, 각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참전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없다는 것, 독일에 맞서고 버틴다 해도 히틀러의 막강한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의 병력이 영국으로 몰려 오는 걸 완전히 막을 수 있는건 오로지 미국의 산업 역량과 군비력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1940년 5월 14일 독일 공군 루프트 바페 폭격기는 로테르담 상공 600미터 높이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과 동시에 독일 기갑부대는 벨기에와 프랑스 연합군을 무력화 시키며 영국 원정군을 포위 해버린다.

이날 오후 프랑스 총리는 처칠에게 전화해 약속한 RAF전투기 4대와 10개 편대를 오늘 내로 보내 달라며 사정 한다.

독일군이 유럽 저지대 지역을 차례 차례 진격 하는 순간 베를린 주둔 미국 특파원은 이미 독일 승전 선언을 반복하는 뉴스를 발송한다.

프랑스 국경 근처 아르덴 숲에 주둔 하고 있던 프랑스 군은 독일의 탱크와 장갑차 부대들이 거세게 몰려 오는 순간 이미 패했다며 도망가버린다.

영국 보다 규모가 큰 군부대와 프랑스 전역 마다 촘촘하게 설계된 전략 요새를 갖고 있었던 프랑스가 한 순간에 독일 나치군에 무너지자 처칠은 즉각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비밀 전보를 친다.


'독일은 곧 영국을 공격 할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없이 혼자서 라도 독일과 전쟁을 계속 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각하, 미국의 목소리와 힘을 너무 오랫동안 눌러두고 있으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 갈지 모른다는 것을 각하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놀라우리 만치 빠른 시간에 나치에게 완전히 예속된 유럽이 자리를 잡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중압감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정도 이상일 것입니다.'


처칠은 미국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보냈지만 그가 미국에게 실질적으로 원했던 건 물적 지원으로 미국에서 가장 노후화 된 구축함 50척과 최신형 항공기 수백대 그리고 대공무기와 탄약을 보내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해준다면 영국은 새로운 함정과 항공기를 제조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틀 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처칠에게 의회의 특별 승인 없이는 어떤 구축함도 항공기도 보낼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낸다.


3선 출마를 앞 둔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원들과 미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급해진 처칠은 프랑스 주요 지도자와 지휘관을 직접 만나 전시 상황을 파악하고 영국 공군기지와 주요 해군기지를 차례 차례 점검한 후 BBC라디오 방송국 마이크 앞에서 서서 대국민 연설을 한다.


'이번 전투로 프랑스의 기세가 꺾이고 나면 우리 섬을 노리는 전투가 코앞의 일로 닥칠 것입니다. 영국의 모든 것, 영국이 가진 모든 의미를 노리고 말입니다. 가장 우려했던 비상사태가 닥치는 순간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어떤 극단적인 조치도 사양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 국민으로 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방울, 마지막 한 치의 노력까지 끌어 낼 것입니다.'

1934년 하원 연설에서 처칠은 영국은 독일 나치 세력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몸집이 크고 살찐 표적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을 유인하기 위해 묶어 놓은 아주 값진 소'라고 말했다.

유럽 전역을 날아 다녔던 독일의 1만 4000대의 항공기는 히틀러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1940년 5월 24일 금요일, 히틀러는 신임 하는 어떤 장군의 조언에 따라 영국 원정 군의 뒤를 쫓는 기갑 사단에게 진격을 중지 하라고 명령한다.

히틀러와 주요 군 수뇌부들은 이미 서부 전선에서 2만 칠천 명이 넘는 병사가 사망하고 11만 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1만 팔 천 명의 군인들이 실종된 전력으로 지금 영국을 침공 하는 순간 독일은 치명적인 패배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5월 26일 처칠은 프랑스 해안에서 영국 원정군을 철수 시키라는 작전 개시(다이나모 작전)를 명령하지 히틀러는 즉각 기갑부대에게 영국 원정군을 향해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항구도시 덩케르크 해안에 집결한 영국 원정군은 독일군의 기세가 예상보다 더뎌졌고 해상의 악천후 까지 겹쳐 지면서 덩케르크 탈출 작전에 동원 된 선박 887척에 프랑스군 12만 5천명을 포함해 33만 8,226명이 무사히 탈출한다.(3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상공과 지상의 독일 협공을 뚫고 해협을 건넘)


6월 4일 철수 마지막 날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며,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싸울수록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며 공중에서 더욱 힘을 키울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외친다.


6월5일 수요일 독일은 항공기와 폭격기 몇 대와 수많은 전투기를 몰고 영국 본토 목표 지점을 밤새도록 공습 하며 영국 전역을 지독한 연기로 가득 채워버린다.


6월 12일 영국은 독일 항공기 접근을 사전에 정확하게 알려주는 레이더(체인 홈) 개발에 성공한다.

'체인 홈' 기지를 설치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몸집이 크고 살찐 표적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을 유인하기 위해 묶어 놓은 아주 값진 소' 처럼 독일 루프트 바페가 몰려 오기를 기다렸다.

처칠은 미국을 끌어들일 사건, 참전 명분이 터지기를 고대 했다.

6월 17일 월요일 독일 나치군에 프랑스가 완전히 함락되지만 처칠은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반가워했다.

6월 18일 영국 항공기 생산부는 매주 245대 항공기를 출고 하며 엔진 생산량을 4배 6배로 급증시켜 나갔다.

6월 22일 토요일 오후 프랑스는 히틀러와 휴전 협정을 맺었다.

이제 영국 홀로 독일과 싸워야 했다.

6월 23일 조국 승리의 선봉장에 선 요제프 괴벨스는 프랑스 항복 선언을 공식화 하며 섬 하나 정복을 위해 신중하고 체계적이면서 민첩한 전력을 짜기 시작한다.



'처칠은 절대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얼마 남지 않았다.'

7월 2일 화요일 베를린에서 히틀러는 육해공군 지휘관들에게 영국에 대한 전면 공격의 타당성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히틀러는 서부 전선의 마지막 장애물인 영국이 조만간 이 전쟁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꿈꿔 왔던 러시아 땅, 소련 침공에 전념 해야 했다.

노쇠한 영국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니 전쟁 승리를 자신 하며 영국으로 향했던 전력 중 국방군 40개 사단을 해산 시켜버린다.

이 사실을 절대로 놓칠리가 없었던 처칠은 스웨덴 왕실과 바티칸 교황청에게 넌지시 독일과 협상 할 것 처럼 행동하며 포스 H함대를 프랑스 지중해 바다 오랑으로 진격 시켰다.


영국은 프랑스 함대들이 독일 나치군의 지휘를 받아 영국 해협을 향해 달려 오는 걸 막기 위해 프랑스 함대를 향해 포격을 날린다.

영국 함대 포격 10분 만에 프랑스 함대들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

영국은 동맹국 프랑스의 함대에게만 발포 한 것이 아니라 독일을 향해 경고 한것으로 앞으로 어떤 협정도 맺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영국은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미국을 향한 영국의 승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 였고 독일에게는 확실한 전쟁 통고였다.

소련에 막대한 전력을 보내 버린 히틀러는 진정으로 영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주기를 원했지만 노쇠하고 포악한 처칠이 그런 의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7월 14일 영국은 독일 폭격기가 몰려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 했다.

이미 수주 전부터 구체적인 침공 위협에 대한 대비와 방위 대책을 세웠지만 이번 폭격은 1915년 1월 19일 밤에 기습적인 폭격을 맞았던 그 순간과 위력이 다를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방공호로 대피하는 연습을 하던 런던 시민들은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구상 어디에도 거리에서 폭격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폭격기는 언제나 제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피하는 명령을 절대로 흘려 듣지 마십시오 공격이 시작되면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굳건하게 살아 남아 버텨내야 합니다.'


런던 시민들은 공습 경보 소리에 맞춰 달의 위상을 유심히 관찰 하기 시작했다.

달빛에 의지해 목표물을 찾는 폭격기는 분명 밤에 공습 할 것이다.



런던 시민들은 7월 대낮 처럼 밝게 빛나는 달을 향해 '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라고 불렀다.

자신들의 함대를 무참하게 포격한 영국을 향해 독일과 연합해서 침공할지 프랑스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에 히틀러는 이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다.

괴벨스가 매일 매일 처칠과 영국 국민을 향해 조롱과 위협을 뒤섞은 연설을 했고 영국은 침착하게 침공에 대비 했다.

런던 곳곳은 모래 주머니를 잔뜩 쌓아서 기관총을 설치 했고 지하철의 모든 역마다 방공호가 설치 되었다.

침공을 대비해서 시민들은 매일 어떤 위험과 경고에 대비 할지 훈련했다.

독일 폭격기들이 수많은 전투기를 이끌고 영국 항공을 날아 다녔다.


영국 시민들은 매일 전쟁의 순간을 목격 했지만 대규모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일상적으로 출근했고 상점에 갔고 거리를 걸어 다녔다.

젊은이들은 밤마다 댄스 파티가 열리는 곳을 찾아 다녔고 농부들은 밭을 일구며 수확물을 거둬들였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8월 바다 사자 작전 계획 준비를 지시한다.

독일 군 수뇌부는 히틀러에게 몇개의 낡은 함대만 보유하고 있는 영국은 별다른 저항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고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루프트바페는 노후화 된 폭격기를 상대하기 위해 전투기를 호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신형 전투기를 보유했던 독일 전투기 부대는 영국 RAF조종사들이 몰고 있는 최신 허리케인과 스핏 파이어의 위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중무장과 기동성이 뛰어난 영국의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와 달리 독일의 메서 슈미트 Me109는 높은 고도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방어용 장갑이 튼튼했지만 8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영국의 스핏파이어와 달리 포탄을 발사하는 기관표가 2문 뿐이였다.

특히 독일의 메서 슈미트는 시속 500킬로미터까지만 속도를 낼 수 있는 단발엔진 항공기종이여서 런던까지 간신히 90분 정도만 떠있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영국의 항공기 종 역시 단발성 연료 탱크로 오로지 조종 능력이 뛰어난 조종사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평균 연령은 26세였고 영국 조종사들의 평균 연령은 20살이였다. 전투 경험이 많은 독일 전투기 부대는 영국 전투기를 종이장 처럼 찢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프랑스 해협 비행장에 모든 전투기를 집결 시켰다.

런던 중심부까지 150킬로를 남겨둔 독일군은 샴페인 한 병을 챙기며 승리를 자신했다.

영국 땅의 처칠은 50배 가까이 늘어난 전투기와 두 척의 신형 전함 비스마르크호와 티르피츠호에 큰 불안감을 느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간절한 심경과 상황을 담은 비밀 전보를 보낸다.

처칠은 미국에게는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지금 영국에게 가장 시급한 것들을 조목 조목 나열한다.

그는 전쟁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바꿀 중요한 순간을 바꾸려면 서부 진입로로 들어오는 독일의 U보트 공격을 막야 한다며 구축함 60척을 요구 했다.

미국은 영국령의 뉴펀들랜드와 버뮤다 지역의 여러섬에 퍼져 있는 영국 해군기지를 미군이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8월 11일 독일은 영국의 RAF에 대한 총력전의 시작을 알리는 독수리 날로 공표하고

8월13일 야간 작전 수행에 들어 갈 루프트바페는 새로운 시스템인 빔 항법 기술을 장착했지만 단 한번도 실전에 적용해보지 않아서 성공 여부를 짐작 할 수 없었다.

조종사들은 여전히 달빛이 지상을 환하게 비춰 주는 순간에 공격한다는 태세를 갖췄다.

8월 13일 화요일 200대의 폭격기가 프랑스 셰르부르 북쪽 채널에서 날라 올라 영국을 향했다.

독일군 측 괴링은 영국RAF공격이 시작되면 폭격기 949대 급강하 폭격기 336대 전투기 1002대까지 총 2300대의 공군력을 영국 땅으로 보낸다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이런 엄청난 전투력을 준비 하는데에 만 30여분을 소요 한 독일을 기다렸던 영국 조종사들은 꿀에 파리를 끌어들이듯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으로 독일 전투기들을 유인하며 느리게 천천히 활보 하다가 빠른 속도로 공중 속으로 튀어 올라가 벌침을 쏘듯 단 번에 독일 전투기들을 격추 시켜버렸다.

최신형 레이더를 능숙하게 작동 시키며 전투기를 조종했던 영국 조종사들은 독일 전투기를 격추시킬 때마다 단 한 명의 영국 국민의 생명을 살린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투에 임하며 500대 전투기들이 이 천대가 넘는 독일 전투기들과 맞붙었다.

때마침 미군 해군은 노후화 되어 폐기 처분 하기 일보 직전의 50척 전함을 영국으로 보내며 99년 동안 임대 해 준다는 조건을 단다.

3선을 앞 둔 루스벨트는 까다로운 의회의 승인 없이 우방국 영국에게 선심 쓰듯 50척을 준다는 것에 잔뜩 화가 난 처칠은 '미국이 전함 50척을 영국으로 넘긴 것은 결정적으로 중립조치를 위반한 행위'라며 이는 독일 정부가 미국에게 전쟁을 선포할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경고 한다.

영국 전투기에 격추 당하고 80대만 살아 돌아온 독일 전투기는 이제 도버 해협을 노리며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싸울 태세였다.

독일은 휘황찬란한 달, 보름에 뜨는 폭격기 달빛이 비춰준다면 영국 땅을 차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벨스는 영국 시민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외국어 서비스 방송을 시작하고 히틀러는 여전히 런던 중심 폭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8월 24일 토요일 밤 영국 항공에서 길을 잃은 독일 폭격기 한 대가 런던 중심가에 폭탄을 떨어뜨린다.

피해는 경미 했고 인명피해도 거의 없었지만 도시 전체는 공포에 휩싸였다.

절대로 런던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던 히틀러는 조종사의 실수로 폭탄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몰랐고 괴링도 폭격기와 어떻게 런던까지 날아 갈 수 있었는지 어떤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런던 공습에 격분한 처칠은 다음날 밤 폭격기 한 대를 독일 베를린으로 보낸다.

공습 피해는 경미 했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 하지 않았다.

처칠은 독일군이 때로 몰려 오기를 기다리며 히틀러의 보복 공격에 대비 했다.

8월 31일 토요일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나치군은 불같이 화내는 히틀러에게 목숨이 날아 가지 않으려면 처칠을 항복 시켜야 한다며 독일의 모든 전투기를 영국땅으로 몰고 가는 복수의 시나리오를 기획한다.

9월 2일 영국 해군 기지가 있는 뉴편들랜드와 버뮤다 기지에 도착한 미국 함대는 인디언들에게 24달러어치 물품과 술 한 병을 주고 맨해튼 섬을 받아 낸 것 처럼 낡은 구축함과 맞바꾼다.

영국 해군은 처참하게 낡고 해진 미국 구축함을 보고 망연자실 했지만 처칠은 이로 인해 미국은 영국과 독일 전쟁에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고 확신한다.

공습의 선두에서 대형 화재를 일으키는 소이탄과 고폭탄을 혼합한 폭탄을 장착한 루프트 바페는 KGr100특수 기능을 장착하고 런던을 향했다.


9월 8일 루프트바페는 티타임에 왔다.

폭탄은 밤새도록 상공에서 비 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글거리는 불의 고리가 도시 곳곳으로 퍼져 붙어 활활 타올랐다.


이 날 밤 공습으로 400여명의 런던 시민들이 사망했고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잿더미에서 살아 남은 시민들은 잔해들을 치우고 부상자들을 실어 날랐고 처칠은 불에 타버린 런던을 둘러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흘 안에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있다고 장담 했던 괴링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고 싶었다.

4주 동안 밤마다 영국 땅을 공격했지만 영국 국민들은 전혀 동요 하지 않았고 처칠은 꿈쩍 하지 않았다.

선전 장관 괴벨스는 영국의 이런 모습에 당혹하며 아무리 두둘겨 때리고 퍼부어도 영국이 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영국의 투쟁 의지에 길어지는 전쟁에 골머리를 앓았다.

독일은 영국의 침공에 대한 어떤 대비 태세도 갖추지 못했다. 베를린 시 방공호에는 다른 나라에서 밀수 한 식량으로 가득 차 있어서 시민들이 대피할 곳이 없었다.

처칠을 굴복 시키지 못한 히틀러는 기약 없이 U보트 작전을 내세운 바다 사자 작전을 봄으로 연기 했다.

히틀러는 영국이 버티게 되면 결국 미국이 전쟁에 개입 할 것이고 처칠은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을 공격 할 것이다. 영국과 소련 미국이 연합하는 순간 독일은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양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위험성에 히틀러는 해협을 건너야 하는 영국 침공보다 광활한 대지의 소련 땅을 침략하는게 훨씬 쉬워 보였다.

독일 나치가 딱 6주 공격을 계획한 레닌그라드 함락 작전은 처칠이 일기장에 '할렐루야! 만세'라는 문장을 적게 만든다.

독일이 거세게 런던 공격을 때리자 런던은 독일 전투기가 목표물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도시 전체를 어둠으로 만드는 등화 관제를 실시한다.


안전한 지역에 살지 않은 시민들은 방공호로 모였고 그곳에서 방독면 마스크를 비롯해 정부의 지침을 라디오에 의지하며 어제와 다름없이 일터로 출근 했다.

상점들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이어갔고 어두워지면 굉음의 독일 전투기가 어둠의 공포를 증폭 시켰다.

음악가들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콘서트를 열어 죽음의 공포를 시민들과 함께 견뎌 냈다.

폭격으로 파괴된 런던 시 곳곳은 어디 하나 무너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처참한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

집안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옆집에 폭탄이 떨어진 광경을 보는 게 런던 시민들의 일상이였다,


폭탄 세례는 더욱 거세졌지만 런던 시민들의 두려움은 점점 줄어 들어 공습 중에도 강아지와 함께 공원 산책을 나갔다.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로 했고 부족한 물품을 교환 했다.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온갖 종류의 잡지와 차들이 시민들의 도움과 협조로 서로 함께 읽고 마셨다.

야간 공습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런던 영유아 출산율이 급증했고 클럽의 음악은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밤마다 런던을 두들겨 때려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처칠 때문에 괴벨스는 무척 당황했다.

영국이 투쟁 의지를 포기 하지 않았고 곧 혹독한 겨울이 다가 오면 소련으로 진출한 군대가 어떤 상황에 부딪칠지 모른다.

동시다발 전을 피하고 싶었던 히틀러에게 괴링은 영국의 강력한 저항을 부셔 버릴 작전인 '월광 소나타'를 계획한다.

작은 도시를 집중 파괴해서 아예 도시 자체를 없애는 목적인 '월광소나타'

처칠은 독일의 침공에 강력하게 저항하라며 프랑스 인들을 향해 용기와 투쟁의 의지를 호소하고 연합 작전으로 독일 도시를 폭격한다.

11월 4일 목요일 오후 5시 18분에 달이 뜨자 런던 도시 전체가 등화 관제에 들어간다.

독일군이 코번트리에 공격을 개시한다는 것을 영국 무선 대응팀이 비밀 암호를 해독한다.

이날 늦은 저녁에 떠오른 달빛은 신문을 읽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런던 시민들은 11월에 이토록 밝게 빛나는 달을 본 적이 없었다.

오후 7시 5분 지역 민방위 통제실에 런던 시민에게 '황색 공습 메시지' 사이렌을 울리고 뒤이어 '적색 공습 메시지'를 울린다.

전에도 여러 번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던 코번트리 시민들은 공습 대비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7시 20분 달빛처럼 하늘에서 환한 불꽃들이 낙하산에 매달린 채 땅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내는 소리를 내고는 폭발하면서 발화 물질을 사방에 뿌렸다.

사탄 5발이 뿌린 포탄은 비처럼 쏟아져서 코번트리의 모든 수도관을 파괴했고 대피소 까지 강타 했다.

도시 전체는 불에 탄 시신으로 넘쳐 났고 발화 된 불은 병원과 성당, 교회 소방소 경찰서를 차례 차례 잿더미로 만들었다.

11시간 동안 비처럼 내린 폭탄은 다음날 새벽 6시 까지 쏟아졌다.

121회나 출격한 영국 RAF는 독일 전투기를 단 한 대도 추락 시키지 못했고 코벤트리를 구하지 못했다.

괴링은 509대의 폭격기로 코번트리를 초토화 시켰다.

11월 8일 처칠은 눈물로 얼룩진 전보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다.

루스벨트는 3선 재임 성공으로 미 해군 순양함을 타고 카리브해에서 일광욕과 영화 관람을 하며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처칠은 미국에게 막대한 양의 선박과 항공기 ,총탄, 기계 부품, 식량 원조가 필요 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영국은 막대한 원조를 보상할 재정은 빠르게 고갈 되어 가고 있어서 설사 미국이 원조대금을 후에 청구 한다 해도 갚을 돈이 없었다.

12월 16일 카리브해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루스벨트는 '요근래 특별한 뉴스 거리가 없다.'는 말로 기자들과 간담회를 나누며 불이 난 이웃집에 정원용 호스를 빌려주듯 불이 난 집에 15달러짜리 호수를 빌려주고 불을 다 끄고 난 후 빌려준 호스만 제자리에 갖다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루스벨트는 ' 미국의 방위 및 기타 목적을 증진하기 위한 추가 법안'을 상정해서 영국이든 어떤 동맹국이든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고 없고 여부 없이 필요할 경우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일명 '무기대여법'이라는 법안을 제안한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미국 청년들을 땅에 묻어 버려야 하냐는 의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고 처칠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미국으로 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다.

12월 29일 일요일 밤 루스벨트는 '노변 담화(fireside chat)에서 영국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미국 국민에게 처음으로 '나치'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그는 미국을 '민주주의 병기창'이라고 지칭하며 '잔인한 상대에겐 어떤 유화 정책도 소용 없습니다. 만약 영국이 패배한다면 우리는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사악한 동맹의 총부리 끝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날 방송을 들었고 동시에 영국인들도 새벽 시간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1940년 12월 31일 자정을 기준으로 괴링은 단 한번의 화재 공습으로 런던을 날려 버리겠다고 전투력을 보강한다.

1941년 2월 6일 목요일 히틀러는 러시아 침공계획인 바르바로사 작전이 착착 진행될수록 영국의 끈질긴 저항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공군과 해군에 새로운 작전 지시를 발령해서 영국에 보다 더 높은 강도의 공격을 개시하라고 명령한다.

2월 8일 토요일 미국 하원에서 무기 대여법이 통과 되었다.


'히틀러는 프랑스가 항복 했으니 당연히 우리도 항복할 줄 알았겠지만 우리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가스 공격, 낙하산 공격, 글라이더 공격에 항상 대비하고 미리 생각 하고 기량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히틀러가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대영제국을 무너뜨려야 할 것입니다. 계속 항해하라, 오, 조국의 배여.'


영국 국민이 처칠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괴벨스도 듣고 있었다.

아프리카 전선에 이어서 그리스와 발칸 반도에서 영국군은 독일군 세력에 밀렸고 바다와 하늘에서는 U보트와 루프트바페의 위력에 영국 곳곳이 흔적 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괴벨스는 우리가 원했던 적의 모습을 이제서야 볼 수 있다며 활기 넘치게 선전술을 펼쳐나갔다.

4월 28일 월요일 미의회는 전쟁 개입 여부를 놓고 여전히 격론 중이였다. 독일은 몇 주만 집중 공격 하면 영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소련으로 전력을 집결 시킨다.

하지만 승기를 잡은 독일은 머뭇거리며 영국과의 평화 협정을 위해 서부 전선에서 군대 진격을 멈춰 놓고 전력의 25%에 해당하는 국방군 40개 사단도 해산하자 군 내부는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분열되기 시작한다.

1941년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 둔 12월 어느 일요일 저녁, 얼어붙은 소련 땅에 발이 묶여 버린 독일 기갑부대가 멈춰버린 순간 일본 항공기가 하와이 섬에 있는 미군 해군 기지인 진주만을 급습한다.


다음날 루스벨트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뒤이어 12월 11일 히틀러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 한다.

처칠은 이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거센 폭풍을 만날 수도 있지만 뒤집히거나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군은 500여 대의 폭격기와 62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최대 규모의 폭격에 나섰다. 영국 공군은 단 한 대의 예비 기체도 남기지 않고 모든 전투기를 출격 시켜 맞섰다. 체공 시간이 짧은 독일 전투기들은 고전했다.

밤낮으로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군은 29대의 전투기를 잃었고, 독일군은 80대가 넘는 폭격기와 전투기를 잃었다. 귀환 도중 연료가 바닥난 수십 대의 독일 전투기들이 도버 해협에 떨어지고 독일군의 기세는 꺾였다.

이제 독일이 공군력으로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제공권을 장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륙작전은 불가능했다. 피해가 누적되자 독일군은 야간 폭격으로 전환했다. 이듬해 초까지 독일군의 폭격이 이어졌으나 효과는 점차 떨어졌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독일 공군은 동부 전선으로 이동했다.


영국은 끝내 살아남았다.

영국이 본토 항공 전에서 승리하자 독일에 점령 된 국가들은 승리의 희망을 얻었다.

미국 정부도 영국에 지원을 늘리기 시작했다. 폭격에 시달리던 영국 항구들은 훗날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발진 기지가 됐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고, 방독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방독면에 미키 마우스를 그렸다. 부서진 건물 잔해를 치우며 사람들은 쾌활하게 농담을 내뱉었다.

처칠 총리는 한밤중에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독려했다.


부서진 도서관에서 시민들은 서가에 꽂힌 책을 읽었다. 날마다 누군가 죽어가는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연애하고, 산책하며 활기를 이어갔고 지하 대피소 에서는 즉흥적인 공연이 벌어졌다.


영국 국민들은 휘황찬란한 보름달‘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 뜰 때마다 “오늘 밤에 (전투기가) 더 많이 몰려오겠지”라며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아 남았고 이겨냈다.

자신을 간신히 비껴 간 폭탄을 보며 매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극한의 상황을 버텨낸 이들은 ' 침착하라.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 라는 구호를 외치며 끊이지 않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포성 속에서 견뎠고 살아 남았다.


'그날 밤은 구름 한 점 없고 별이 총총 했으며 달은 웨스트민스터 상공에 떠 있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정경도 없을 것이다. 지평선의 어딘가에서 엇갈리는 서치라이트 불빛, 포탄이 터지는 하늘에는 별 같은 섬광, 먼 곳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광채 등, 여러가지가 그 정경에 더해졌다. 웅장하면서도 끔찍했다. 머리 위로는 적기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포성이 멀리 때로는 가까이 들렸다. 평화로운 때 전동열차가 신호하는 조명처럼 대포가 발사될 때마다 빛이 번쩍였다. 하늘에서는 수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진짜 별도 있고 인위적인 별도 있었다. 자연의 찬란함과 인간의 사악함이 이렇게 두드러진 대조를 보인 적은 없었다.'- 처칠 개인비서 '존 콜빌' 일지 중에서

처칠은 영국과 프랑스군 약 34만명을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철수 시키는 데 성공한 후 항공기 생산부를 신설하고, 전투기 생산과 승무원 훈련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임박한 본토 공격에 대비하며 미국이 참전 하기 전까지 버텼다.

암울한 세계 권력 구도 속에 영국이 처한 냉혹한 상황을 영국의 어떤 지도자들 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현실주의자 처칠은 국민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다짐하며 독일에게 굴복 하지 않았다.


1940년 9월 7일 런던 중심부에 대규모 첫 공습 이후 1941년 5월 11일 영국 대 공습이 끝날 때까지 영국 전역에선 4만 465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5만2370명이 부상 당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소련 침공 전까지 집중적으로 이어진 영국 대 공습은 영국 전 국토와 국민의 심신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45년 5월 8일 전쟁 속에서 살아 남은 영국 국민들은 두 달 후 치루어진 선거에서 처칠을 총리로 선택하지 않는다.


'적의 도발에 평화를 애걸하면 비극을 초래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찬란한 이들과 사악한 자들(The Splendid and the Vile)’로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1940년 5월 부터 1941년 5월까지 1년 동안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 지도자의 관점과 전략에 따라 전세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처칠 주변의 인물들과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추적하며 생과 사의 순간을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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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2022-03-01 11: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글 읽으니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장바구니에 쏙~ ㅎㅎ

scott 2022-03-01 11:59   좋아요 5 | URL
이 책 몰입감 👍👍👍

전 지유님이 읽으신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장바구니 속으로~@@@

휴일 평안하게 ^ㅅ^

새파랑 2022-03-01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방금 <서부 전선 이상없다> 책을 읽었는데 또 스콧님의 이런 전쟁 관련 리뷰를 보니 전쟁은 정말 비극인거 같아요 ㅜㅜ 특히 그 피해는 정치지도자가 아닌 군인들과 시민들만 받고..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ㅜㅜ

scott 2022-03-01 12:11   좋아요 6 | URL
레마르크
사랑할때 죽을 때,,,
강추 합니다 ^^

전쟁에 가장 큰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들
그리고 어린이들 ㅠ.ㅠ

대장정 2022-03-01 12: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전쟁관련 책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히틀러의 선동적인 저 얼굴보다 무표정한 푸틴의 얼굴이 더 무섭.

scott 2022-03-01 12:55   좋아요 5 | URL
칠순 푸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미미 2022-03-01 13: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에서 2차세계대전 다큐로(몇 부작짜리)본 내용들인데 하나의 페이지로 정리하신 스콧님 존경합니다!! 페이지 찜해두고 몇 번 더 읽어야겠어요👍 이당시 물밑에서 암호전쟁도 이루어지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더 치열하게 느껴집니다.

scott 2022-03-01 13:32   좋아요 4 | URL
정리한것이 아닌
이 책 넘 ㅎ
좋아서 몇 달동안
베개 옆에 🙈
암호 전쟁 해독한 영화
강추 합니다

미미 2022-03-01 13:41   좋아요 4 | URL
혹시 <이미테이션 게임>인가요? 이 영화는 봤는데 다른거면 제목을 알려주세요😁

scott 2022-03-01 13:44   좋아요 4 | URL
네^^
베니가 남주🤗

페넬로페 2022-03-01 13: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의 글을 읽으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의 긴박했던 스토리가 한 눈에 들어오네요. 아무튼 히틀러, 참 ㅠㅠ
결국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도자도 중요하고 힘도 있어야한다는 것이네요^^

scott 2022-03-01 15:25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푸틴 히틀러 스탈린
이들의 광기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 ㅠ.ㅠ

우크라이나 피투성이 된 아이들 ㅠ.ㅠ

이번 기회에 푸틴 완전히 사라졌으면,,,

coolcat329 2022-03-01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저 어제 이 책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사라는 계시같습니다.

scott 2022-03-01 16:34   좋아요 2 | URL
이 책 매력 여기에 전부 담지 못했습니다😆
쿨켓님 휴일 평안하게 ☺

거리의화가 2022-03-0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작년 말에 눈여겨보았던 책인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사진까지 함께 올려주셔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영국 땅을 보니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오버랩이 됩니다.

scott 2022-03-01 17:55   좋아요 3 | URL
소개한것이 아닌
저의 땀과 눈물로 쓴,,,,

우크라이나 국민 극심한 공포 죽음 앞에 놓여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

화가님 3월에도 알찬 독서!^^

mini74 2022-03-01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임벌린 동네 이장이나 할 인물이라고 악평이 엄청나더군요. ㅠㅠ팃포텟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는거 같아요. 스콧님이 소개하시면 무조건 사고싶어집니다. 정성어린 리뷰에 참 고맙습니다 스콧님 ~~

scott 2022-03-01 22:07   좋아요 2 | URL
동네 이장!ㅎㅎㅎ
이장이 훠얼씬 냉정한 현실주의자!로 동네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만반의 준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임벌린,,,,
영화 처칠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 했는데
진인짜 저 사진 속 인물과 똑같이!
연기를 ㅎㅎ

이 책 강추! 합니다
소설도 이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능!

팃포텐 전략!
전 미니님 소총 리뷰 읽으러
슈우!웅~@@@

그레이스 2022-03-01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으
이 길이 뭡니까!
저는 우크라이나 정리하다가 현대사로 오면서 지쳐서 줄였는데...
참 감탄하게 됩니다. ^^

scott 2022-03-01 23:17   좋아요 2 | URL
지도, 사진, 년도 필수 체크!ㅎㅎㅎ
현대사로 넘어가면
더더욱 길이 조절이 힘드러집니다

담주엔
조금 더 기일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