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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
한재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명사초청특강을 진행하면서 설문지를 받았다. 많은 학생들의 관심 분야가 문학, 과학, 역사가 아닌 공부였다.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단다. 다소 의외의 결과였지만 학생들의 욕구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금년에는 진로 인문 독서특강으로 명칭을 바꿔 진행한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 전화했다. 편집자는 한재우강사의 강의 스킬을 높이 평가했고,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친절한 직원에 힘 입어 빨간 책방의 '이동진' 작가 섭외도 시도 했지만 "워낙 바쁘셔서 학생들 강의는 안해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래 내 욕심이지.
강사는 낮에는 독서, 교육 관련 교재 만드는 회사의 과장으로 일하고, 퇴근후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밤에 글도 열심히 쓴단다. 강사에게 직접 섭외 요청 전화를 했더니 강사료도 묻지 않고 오케이를 한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며 중.고등학생에 특화된 맞춤 강사였다. 학생 및 학부모 대상 강연을 즐기고, 책을 좋아하는 그는 도서관 맞춤 강사였다. 아쉬운 점은 평일 낮에는 직장인이라 강의를 할 수 없고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만 가능한 점이다. 우리도서관은 토요일 오후에 이루어지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생소한 강사일수도 있어 참여가 저조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신청 첫날 250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200석 규모의 강의실이라 서둘러 마감했다. 다행히 당일 참석 학생은 210명이었다.
강연 주제도 '혼공! 최고의 학생들은 혼자하는 공부가 다르다' 였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들려 주었다. 혼자 공부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강사는 특이하게도 운동을 꼽았다. 공부의 시작은 운동임을 강조했다. 시간이 소요되는 거창한 운동이 아닌 맨손체조, 줄넘기 15분, 걷기, 뛰기, 스쿼트 100번, 계단 오르내리기 등을 말한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내 고딩땐 무용반에서 주 2시간 정도 무용도 했고, 체육, 교련 수업도 했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운동한 기억이 없네.
그즈음 내가 담임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야간 자율 학습 중인 밤9시에 학교 운동장을 20바퀴씩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공부가 잘됐다. 나는 단지 내가 그렇게 땀을 흘려야 공부가 잘되는 특별한 체질인줄 알았다. 진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진이린 줄 몰랐던 셈이다.
'서울대 학생들은 공부만 잘하는 샌님'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착각인지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 바로 깨달았다. 막상 대학을 와보니 나의 운동 실력은 동기들 사이에서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샌님은 커녕 운동을 잘하고, 즐기고, 챙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수능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선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헬스클럽을 다녀 몸이 액션 영화배우 같았고, 재학중에 공인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다른 선배는 아예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으며, 어린 시절 수영 선수까지 했던 동기는 스포츠 댄스나 발레 같은 춤을 끊임없이 배우러 다녔다. p.152
공부의 원칙은 뭘까? 저자는 의외로 원론적인 말을 한다. 첫째,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것. 둘째,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할 것. 무언가 근사한 답을 기대했는데 평범하다. 마치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인터뷰때 "저는 교과서로 공부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요." 물론 해답이 있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선생님 말씀을 듣는지, 복습은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학생 대상 과외를 하면서 꼴찌에서 3등을 앞에서 3등으로 끌어 올린 공부 비법이란다. 문득 학창시절에 누군가 나에게 이런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알려 주었더라면 공부를 더 잘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열심히 알려주긴 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필기도 빠짐없이 다 하고, 밑줄을 그으라고 하시든, 별표를 치시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완전히 다 따라하는 거지. 수학이나 영어처럼 잘 모르는 과목일지라도, 혹시 네가 싫어하는 과목일지라도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아서는 안돼. 이해가 가지 않아도 다 듣고, 다 적고, 다 보는 것.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그런 뜻이야.
그런 다음에는 두번째 원칙. 복습을 할 차례야. 수업시간이 끝나면 보통 아이들은 종이 치자마자 책을 탁 덮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돼. 바로 그 자리에서 1차 복습을 하는거지. 보통 수업은 50분 남짓, 그 시간 동안 나간 진도는 기껏해야 교과서로 몇 페이지 정도 될 거야. 그 몇 페이지를 그냥 쭉 읽어. 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저 소설책 읽듯이 한번 읽어. 방금 설명을 들은 내용이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을거야. 이것을 마친 다음에 화장실에 가든, 수다를 떨든 해. 만약 어쩔수 없이 쉬는 시간에 못 하거든 점심시간이라도 꼭 해야 해. 1차 복습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하루가 끝나지? 그러면 그날 수업을 들었던 교과서와 노트를 모두 가져다가 옆에 쌓아.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 역시 부담은 가지지 말고 소설책 읽듯이 쭉 읽는거지. 이것이 2차 복습이야. 매일 저녁에 그날 들었던 수업을 복습하는거야.
마지막으로 주말이 되면 모든 교과서와 노트를 가져와서 그 주에 진도가 나간 페이지를 전부 다시 읽어. 이것이 3차 복습이지. 영어는 소리 내어 본문을 읽고, 수학은 그저 네가 이해할 수 잇는 만큼만 보고 풀면 돼. 단지 이렇게 3번의 복습을 빼먹지 않는 것이 두번째 원칙이야.
천재와 보통사람의 차이점도 쉽게 설명한다. 물론 개인마다 아이큐의 차이, 습득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건 집중력이다. 누군가 책을 쓸 때 중학생 수준에 맞추어 쓰면 좋은 책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이며 쉬운 예시는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아닌 작은 긴장을 줄듯하다. 나는 역시 보통사람이구나. 책 읽다 어느새 핸드폰 들여다보고 물 한번 마시고...집중에 대해 좋은 예시가 된다.
예를 들어 '압력솥으로 집 짓기'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보다. 천재나 보통 사람이나 밥을 짓는 과정은 똑같다. 쌀을 씻고, 물의 양을 맞춰서, 불에 올린 다음, 밥 냄새가 나면 불을 꺼서 뜸을 들인다. 천재들이라고 해서 쌀을 솥에 넣자마자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밥이 뚝딱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천재의 뇌에서 마술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 둘의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은 이렇다. 보통 사람은 쌀을 씻다가 딴생각에 빠지고, 불을 켜려다 말고 텔레비전을 보며, 밥 냄새가 나도 SNS를 하느라 뜸 들일 타이밍을 놓친다. 쉬엄쉬엄 대강대강 밥을 짓는 셈으로, 물의 양이나 불의 세기가 정확하지 않다. 반면 천재들은 밥 짓기에 집중한다. 누가 말을 걸거나, 텔레비전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거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려도 일단 밥에 집중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질거나 되거나 탄 밥을 짓는 동안, 천재는 윤기가 흐르는 고슬고슬한 밥에 구수한 누룽지까지, 그것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빨리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방에서의 이런 움직임은 모른 채 단지 차려 나온 밥상만 본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친다. "이 사람은 밥 짓기의 천재다."
이것은 질의 양이 아니라 양의 차이다. 시간을 더 확보하고, 더 많이 집중하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대충 만들지 않고, 적당한 기준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본적으로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라 태도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아인슈타인이 드문 이유는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처럼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p.57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울 때 조리법중에 '물 550ml를 끓인 후..."를 예시로 들며,
진짜 집중이란 '550ml'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의미를 더듬는 것, 그래서 사전 지식을 뒤져 500ml 생수병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부할 때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오히려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이 드물다. 제대로 집중하려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동시에 뇌 속에서 '이 부분은 지난번에 배운 내용과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이 내용은 저 내용과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하는 생각을 부지런히 해야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집중하는 만큼만 기억 저장 사이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앉아 있지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공부 못하는 아이를 예로 들며,
하루 12시간을 강의실에 앉아 있더라도 듣는 내내 성찰적 관찰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한마디로 우이독경,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드라마 OST 를 듣듯이 강의를 들으면 강의 내용이라는 청각적 정보가 기억 저장 사이클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성찰적으로 관찰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p.120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구는 대부분 있다. 그 욕구가 간절하지 않거나 막연할 때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뚜렷한 목표, 집중력, 몰입,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알때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오래 전 읽은 <연금술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을 믿는다. 무의식중에, 의식중에 구체적인 꿈을 그리고 노력할때 꿈은 이루어진다.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읽었지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때, 무슨 일이든 할때 집중과 몰입을 해야겠다. 점점 산만해지는 내 자신을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