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서로써 가장 흐뭇할때는 주부독서회 회원들과 함께할 때이다. 다들 주부라는 동질감이 좋고, 책도 읽고, 주축이 되어 토론도 하고, 봄에 문학기행도 가고, 9월에 작가초청강연회도 하고 6월, 11월엔 이렇게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가고. 12월엔 '상당의 글향기'라는 문집도 발간한다.
어제는 충주에 있는 탄금대로 야외독서토론회를 다녀왔다. 많은 분들이 불참하여 아쉬웠지만 간 사람은 그저 즐거울뿐~~~
올 9월에 충주로 이사간 회원 집에 놀러가는 것도 일정에 넣었다. 점심은 관장님의 업무추진비로 하기로 계획하고 카드까지 준비해 갔는데 회원이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다. 육계장이랑, 호박떡이랑, 다양한 밑반찬들~~ 덕분에 공금 절약했다.
탄금대는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 전한다.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작은 산으로 밑으로 남한강과 접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우륵은 가실왕(嘉悉王) 당시의 가야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 (階古)·만덕(萬德)을 뽑아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는 이곳을 우거지(寓居地)로 삼고 풍치를 상미하며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8,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한을 품고 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열두대라고 하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이 있는데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기 위해 군수 김용은(金容殷)이 건립하고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찬한 탄금대비가 있다. 또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유서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에 대한 독서토론도 했다. 다들 한비야의 도전정신, 봉사정신에 그저 부러워할뿐~~~ 결론은 우리도 안이한 삶에 만족하지 말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봉사에도 관심을 기울이자, 열심히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