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학생들이 주도한 5월2일 첫 집회는 6월 10일 100만인의 촛불을 만들어낸 기폭제였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르쳐준 것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적 욕망과 대비되는 ‘먹거리 안전’이라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깊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특히 이들은 정치적인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통해서 '권리'를 어른들보다 먼저 더 깊이 이해하고 시민들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역사적인 촛불집회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모둠을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여학생 몇 명이 지하철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들자 학생들은 수줍은 듯 흩어졌습니다. 제가 학생들의 청소작업을 방해한 꼴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고맙다며 생수를 한통 건넸습니다. 학생들은 생수를 나눠먹고 다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시민들이 하나둘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웃으면서 격려도 하고 쓰레기통은 금세 가득 찼습니다. 주위도 쓰레기 하나 없이 환해졌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니 얼마 전 시사IN에서 효자동, 청운동, 통의동 등 6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김용휘(가명)씨와 인터뷰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경찰청장에게 쓰레기 벌금 고지서 보내겠다")
김용휘 씨는 “시민들은 분리수거도 잘 해주는데 경찰은 골목길마다 먹은 도시락을 버려두고 간다” 고 말했습니다. 특히 계급이 좀 있는 높은 분들은 좋은 밥 먹고 치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솔선수범이라는 말이 참 무색합니다. 권력이 높은 데로 올라갈수록 무책임이 커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만 무거워지는 세태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정치적 권리도 없어서 책임질 것도 없는 학생들이 나서서 권리와 책임이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참 할말이 없이 우두커니 서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학생은 시민의 선생님이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학생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해보면 알지만 무지 쑥스럽고 머쓱한 기분이 듭니다. 단지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거리의 큰 촛불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으로 읽혔습니다.



한 시민이 학생들에게 고맙다며 생수 한병을 건넸습니다. 저도 손에 무엇인가 있었다면 주었을 테지만, 그냥 생수 한 병에 몰래 고마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위가 금세 깨끗해지고 환해지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무거운 쓰레기 봉투를 외소한 몸으로 들고 낑낑대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하나둘 청소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이 거리에 쌓인 쓰레기가 우리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광화문역 안쪽으로까지 깊이 들어갑니다. 계단 맨 앞쪽에 있는 사람은 행인이 아니라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는 학생입니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자꾸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겠죠. 쓰레기줍기 하나로 '책임'을 이야기하기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시민들을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조그맣게 일으킨 촛불이 100만의 거대한 은하수 모양의 촛불행렬을 만들었으니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8-06-1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들~ 우리의 희망입니다! 눈물까지 돌며 감격했어요.
어제 광주도 학생들이 열심히 청소했어요. 작은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뻤어요!

승주나무 2008-06-12 10:02   좋아요 0 | URL
네~ 몇몇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어딜 가든 학생들이 저렇게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답니다. ^^

무스탕 2008-06-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쁜 마음, 이쁜 손들이네요.. ㅠ.ㅠb
이 아이들이 희망이에요.
부끄러운 어른들은 더 할 말이 없네요..

승주나무 2008-06-12 10:03   좋아요 0 | URL
네~ 그 앞에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대견하기도 하구요^^

마늘빵 2008-06-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런 학생들 가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어요. 나만 좋은건가? ( '')

승주나무 2008-06-12 10:03   좋아요 0 | URL
자꾸 뽀뽀할라구래~ 아프 님~
그러니까 제이드님한테 맨날 구박받는 거 아뇨 ㅋㅋ
 

공간과 유머가 어우러진 서울의 촛불광장

이문재 시인은 72시간 릴레이시위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시사IN 39호) "거대도시에서 도로는 법과 질서의 힘이 압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공적 영역이다. 중앙선, 차로, 표지판, 신호등, 규정 속도 등이 운전자를 규제한다. 그리고 도심의 대로는 보행자에게는 금지된 장소다. 촛불을 들고 중앙선을 걸어보면 안다. 시속 3km로 완보하다 보면, 신호등, 표지판, 주위의 건물이 전혀 달라 보인다." 2008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촛불 행렬은 권력과 규율의 상징인 10차선 대로를 광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광장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모자라 아예 커다란 스케치북으로 만들어버렸다. 유치원 때 붓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듯, 가로 두 줄 세로 두 줄 그려놓은 아홉 칸짜리 종이에 아버지, 어머니란 글자를 처음 새기듯 도로에 천천히 자신의 뜻과 소망을 적어놓았고 거기에는 유머가 흘러넘쳤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류승완 씨는 2008년 촛불문화제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유머'라고 규정했다.
누군가 길거리에 흰색과 노란색, 빨간색 분필을 놓았고, 시민들은 그 뜻을 알아채 하나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쥐'이거나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소년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길거리 스케치북에 생각을 옮겨놓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얻어먹는 쥐의 섭섭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쥐'박이라는 말이 몹시도 못마땅한 듯하다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그려 놓았다.





사뭇 성찰적인 메시지도 오간다. 광우병은 소를 공장의 부품 다루듯 대형생산하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생긴 질병이므로 순수하게 인간이 창조해낸 병중의 하나이다.





시민들이 길거리에 한창 글과 그림을 새겨넣고 있다. 이 밤이 지나면 길거리는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



누가 시작했는지 중앙선 한가운데 촛불들이 띠를 이루고 있다. 촛불은 시민들의 염원이 높이 날아갈 수 있도록 놓인 활주로를 연상케 한다.


꺼지지 않는 촛불


광화문 일대와 경복궁 등 주요 도로에는 모두 컨테이너 박스가 2층으로 지키고 섰다. 거기다가 그리스(윤활제)를 발라 침범을 막고 있다.
시사IN에 따르면 컨테이너 박스 아이디어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청장은 부산경찰청장 시절이던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최초로 컨테이너를 들고 나왔다. 1차 정상회의가 열렸던 11월18일 벡스코 회의장으로 진입하는 수영강 3호교에 경찰은 컨테이너박스 10여 개를 이중으로 쌓아 시위대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뿐만 아니라 시청광장을 점유한 보수단체의 집회는 경찰청이 허가한 것인데 2005년 APEC 정상회담 때도 보수단체의 집회가 있었다. 보수단체 집회와 컨테이너 박스라는 두 가지 복병으로 시위대의 동선을 원천봉쇄하자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할 생각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자 집권자의 '공포'를 상징한다. 시민들은 이 우중충한 조형물을 마음껏 조롱을 해주었다.




시민들이 컨테이너 장벽에 피켓을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장벽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붙여놓은 게시물을 시민들이 사진과 영상에 담고 있다.






유치장에 갇힌 이명박 대통령의 형상 밑에 '민주경찰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애먼 국민들이 유치장에서 겪었을 서러움과 좌절감, 고통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기에 분주하고 기자들은 사진에 담기에 분주하다. 이래저래 6월 10일은 바쁜 하루였다.



아예 종이를 앞에 세워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절대왕조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자후를 보내고 있다.


이 흉물스러운 조형물에도 시민들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름하야 '명박산성'이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꺼지지 않는 초를 만들었다. 이 컨테이너는 밤이고 낮이고 타오를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두었으면 좋겠다.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10일의 서울은 '촛불'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진면모를 보여준 날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시민들의 해학은 멈추지 않는다. 광화문역에 놓여 있는 광고판이 기가 막히게 현재의 세태를 잘 압축해 놓았고, 한 재기발랄한 시민이 이를 발견해 그 앞에 '이명박'이라는 글자를 써놓았다. 길을 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크게 웃으면서 사진을 또 담았다.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8-06-11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백일 됐는데,,, 지겹게 오래 간다니... 헛, 그넘도 참 불쌍허이... ㅎㅎㅎ
잘 다녀 오셨나요?
어젠 부산에서도 아이들이 분필로 대로에 낙서를 하더이다.
전부 쥐박이 밉단 말이지, 뭐.

마늘빵 2008-06-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낙서는 못 봤어요. 아래를 안 보고 다녀서 그랬나. 아래를 볼 수도 없는게 다들 꽉 들어차서. 일찍 와서 보셨나봐요.

순오기 2008-06-1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선조들의 정신을 대물림한 후손인데~~~ 명바기만 모르는거죠!ㅋㅋ 정말 대단한 시민이고 국민들이에요!!

L.SHIN 2008-06-1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역사의 한 면으로 기억될만한 명(?)장면들입니다.
 

며칠만에 촛불집회에 복귀했다.
6월 10일 이른바 '100만대행진' 전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산하다.
서울시청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에 설치됐던 자유발언대 중 청계광장 쪽의 자유발언대가 사라졌다. 그곳에 일주일째 눌러앉아 있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청계광장 물머리에서 단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것은 집회참여인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회사 중견간부라고 소개한 한철옥 씨(57)는 이에 대해서 "시민들이 너무 오랫동안 달려왔기 때문에 숨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 나온 사람들은 전위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한철옥 씨(57)는 신문이 너무 촛불정국에 매달려 민생 등 본위의 역할을 망각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이왕이면 경찰 앞에서 찍자고 하는 바람에 경찰들이 도망쳤다.



누가 촛불의 민심을 제도화할 것인가?

촛불집회는 이번 주로 중대한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촛불이 꺼지지는 않겠지만, 촛불의 색깔이 달라질 수는 있다는 거다. 촛불의 민심은 어떻게 해서든 표현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면 제도화ㆍ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할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6워5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지금 야당은 있는가"에서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로서 야당이라는 길잡이 없이 청와대 결단만 바라보는 지금의 한국정치는 분명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박상훈 대표에 의하면 단순히 수적인 열세가 문제가 아니라 "사태의 핵심을 힘 있게 규정하고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열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시민들이 공감하는 문제점이다. 소프트웨어개발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는 이명호 씨(39)는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 하지만 야당은 집회 목소리를 바탕으로 힘을 내야 한다"며 야당에게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등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집회 참여자 역시 "18대 국회가 개원돼 어떻게든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는 등 구심점을 잃은 이후 힘을 못 내고 있지만, 야당이 지금이라도 민심으로 들어가 시민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한다면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야당의 분발을 촉구했다.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힘을 잃은 야당에게 국민이 연일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니 이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촛불행렬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야당 역할론'이었다.
6월 10일, 신문을 펼쳐드니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민주당, 촛불 정국에 ‘밥그릇 싸움’ 몰입" 누가 외로운 시민들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디자이너 김영복 씨(40)는 정론 매체가 살살 눈치를 보지 말고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직도 진실보도로서 부족한 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경향, 한겨레 등 정론매체들.. 꽁무니 좇기, 촛불찬양, 눈치보기 하지마라!!


반면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언론이 정부에 맞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지면에 반영해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간을 벌다가 방송사를 장악해 여론을 바꾼 뒤 다시 기존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이른바 '일보후퇴 이본전진' 꽁수를 부릴 정황이 농후하다. 정부 출범 한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선 때 한나라당 선대위 방송특보를 맡았던 이몽룡 전 한국방송 부산방송 총국장이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지난달 29일과 지난 5일엔 역시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 전 문화방송 보도본부장과 정국록 전 진주 문화방송 사장이 뉴스 전문채널 YTN(와이티엔)과 아리랑 티브이 사장에 각각 내정됐고, 역시 6월 5일에는 KBS 이사회의 선출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친한나라당 성향의 한림대 유재천 특임교수가 이사장으로 발탁됐다면 그 다음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다. 이럴 때일수록 제 목소리를 내는 언론매체가 영향력을 키우고 시민들과 소통의 구조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요청이다.
촛불광장이나 온라인 등에서 의제를 주도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매체는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시사IN, 블로거뉴스 등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매체의 영향력은 부자 신문에 비해서 미미한 실정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시사IN 39호에 기고한 "조ㆍ중ㆍ동 흥망성쇠 이명박 정부 손에"라는 칼럼에서 "5월 마지막 주에 수직상승을 하며 꼭짓점을 기록했던 한겨레의 페이지뷰가 1200만 회였던 반면 조중동 가운데 가장 실적이 떨어지는 동아일보의 5월 최저 페이지뷰는 3000~4000만 회를 상회했다"며 이 현상을 '움이 싹트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질적인 영역인 의제 선점과 설정 능력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거리에서는 신문사에 대한 호오가 워낙 분명히 정해져 있어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거리의 1등 매체들에게 '쓴소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명호 씨는 오마이뉴스를 가장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로 '신속하고 구체적인 보도'를 들었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기사를 게재하다 보니 오탈자나 정제되지 못한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고 말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매체도 덩달아 흥분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복 씨는 경향과 한겨레에 점수를 주었지만 진실보도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촉발된 삼성비자금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언론사들이 눈치만 살피다가 시사IN에서 특종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기사를 내보냈던 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아고라나 아프리카 등에서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분명히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며 "MBC에서 보도하면 KBS-SBS 식으로 속보가 전이되는 행태는 가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고 비판했다. 시청역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정론매체들이 촛불시위대 꽁무늬만 쫓아다니지 말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심층보도와 대안을 내놔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30대의 한 시민은 "촛불찬양에만 매달리지 말고 찬반을 아우르는 공정한 보도를 해달라"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신문을 펼치면 중간까지는 모두 촛불 이야기다. 촛불정국을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있다. 촛불이 타올라도 서민들의 민생은 여전히 고단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슈에만 몰입하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그의 반문은 이 시대의 기록자인 언론매체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집회연애, 꼭 해보고 싶었다

집회현장을 누비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연인들이 적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집회와 데이트?" 이 부조화스러운 조합을 그냥 감수하고 나왔단 말인가? 그래서 한 커플에게 물어봤다. 하고 많은 데이트 장소 중에 집회장에 온 이유는? 데이트장소로서 집회장이란? 꼭 데이트하러 이곳에 오는 줄 아냐고 면박을 당했다. 같이 있으니 좋고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서 공부도 된다고 했다. 열혈 운동권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직장인은 이번 쇠고기국면에서 놀라운 점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조중동에 대한 광고주 압박운동이고, 나머지는 집회커플이다. 광고주는 조중동의 아킬레스건이며, 조중동이 자본과 정치권력에 편승할 수 있는 근거였는데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까지 구독거부나 자발적 구독 등의 캠페인은 있었으나 언론권력에 대해서 그 본질을 이해하고 가장 정밀하게 타격을 가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달라진 다른 점은 집회커플이다. 87년 민주화 항쟁 때만 해도 집회를 하면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인관계라는 것이 발각되면 즉시 모임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는 커플들이 집회장소에 나와서 같이 구호 외치고 촛불을 들고 하는 모습은 처음 보며,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부러워했다.





6월 4일 저녁 청계광장에는 적지 않은 연인들이 데이트와 집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갔다. 함께 구호도 외치고 자유발언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등 특별한 데이트를 즐겼다.



집회라는 위험하고 격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집회에 참여하면서 지인과 동행할 때도 있고 혼자 그냥 구호를 외칠 때도 있는데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애인이 옆에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애인과 집회는 잘 어울리지 않으니. 만약 옆에 애인이 없다면 연인들이 어떻게 집회에 참여하는지 관찰해 보라. 위험하고 어려운 순간에 옆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으니 더욱 사랑스럽고, 사랑과 정의와 젊음이 촛볼의 농도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5월 31일 가장 결렬했던 시위가 있었던 경복궁역 주변에서 한 연인이 현수막을 말아서 함께 몸을 감싸며 추위를 달래고 있다.



6월 1일 경찰이 분말소화기를 시민들의 얼굴에 대고 무차별적으로 살포하자 소화액에 괴로워하는 애인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양지영 씨는 기말고사 등으로 집회 참여를 못하다가 처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 남자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오기 싫다는 것을 자신이 데려왔다고 한다. 영화나 쇼핑 같은 걸 하면 좋을 텐데 집회장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양 씨는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현장에 와서 많은 것을 깨닫고 가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집회장에서는 데이트는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그는 연인이 만나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집회장에 오면 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오기 싫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 뻔한 물음이었을까? 남자친구는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라고 대답했다. 집회문화의 문법을 다시 쓰고 있는 2008년 대한민국. 마치 소풍이라도 되는냥 집에서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고 자신들의 뜻이 담긴 피켓을 손수 제작해 오기도 하는 가족들과 아이를 안고 온 엄마.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을 것 같았던 젊은 연인들. 평범한 이들이 움직였다면 상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세대 재학중인 양지영 씨(오른쪽)은 남자친구를 끌고 집회장으로 나와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지켜줘야 한다며 참가이유를 밝혔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승주나무 2008-06-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72시간 동안 일본에 있는 처형의 결혼식에 참여해야 하므로, 촛불집회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그 동안 푹 쉬었던 아프락사스 님이 후기를 올려주실 테니, 그 쪽으로 가서 온라인 촛불을 계속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마늘빵 2008-06-0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댓글에 왜 갑자기 제가... -_-

집회연애 저도 꼭 해보고픈데 당분간은 가능성이 없겠군요. 흐음.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행동력을 가진 여자라면, '이상형'이 될거 같습니다. :)

가시장미 2008-06-05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 저도 주말에 촛불시위하면서 데이뚜할꺼에요. 으흐흐 :)

순오기 2008-06-0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스런 연인들이에요. 할 기회가 있는 분들은 부러워만 마시고 얼른 해보셔용! ^^

2008-06-07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정 세계의 지도자들의 경쟁상대가 되고자 한다면

“국내에 더 이상 경쟁자는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사가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이 말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주도권 경쟁과 관련해서 떠오른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경선과 대선을 통해서 정권을 획득했으니 이제 더 넓은 경기장에서 더 센 상대를 대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 말이 논란이 된 이유 역시 분명하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만 세계 지도자의 경쟁상대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의 정치 지도자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몸소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토사구팽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측근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통려으로 만들어준 토건CEO의 이미지와 이제까지'고만고만한 정치지도자'로서 보였던 정치 스타일을 혁파하고 국가 원수의 면모를 찾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상징적인 단면은 바로 '위원회 정치'다. 수많은 위원회를 신설하고 예산을 배정하면서 비효율을 자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위원회를 만든 것은 당시의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공신(功臣)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의 최근의 정치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대통령 전후를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토사구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토사구팽은 정권을 획득한 지도자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는 환골탈태의 교훈을 말해주는 고사다.

 

 

 

 


토사구팽은 다름아닌 지도자의 환골탈태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토사구팽은 한(漢)나라의 건국의 일등공신 한신이 한고조 유방에게 처결되면서 남긴 말이다. 유방은 초나라와의 팽성 싸움에서 져 달아났지만, 한신의 공으로 큰 승리를 거두어 승기를 잡게 된다. 나아가 한신은 군사를 이끌고 위, 조, 연, 제나라를 모두 평정하여 항우를 포위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유방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유방의 측근세력에 의해서 숙청되고 만다. 어찌 보면 권력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토사구팽을 감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통일 이후의 한나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토사구팽은 개인적 차원의 배신이 아니라, 필연적인 역사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나, 어찌 말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인데, 이것은 탁월한 이론가요 달변가로서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육가(陸賈)가 유방에게 제시한 충고다. 육가에 의하면 말을 타고 국가를 얻는 방법과 말에서 내려 국가를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수성(守城)이며 문치(文治)이다. (《사기열전》 <육고열전>) 이것을 우리나라의 실정에 대입해 보면 이명박 정부는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지만, 말을 타고 국가를 얻는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자꾸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최측근을 방통위원장에 앉히는가 하면 최근에는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냈던 구본홍 씨를 뉴스전문채널 YTN의 사장으로 앉히는 등 흥청망청 인사를 낭비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여명기에 한신과 같이 주군을 원망하는 곡소리가 울려퍼져야 하는데 그런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으니 대한민국 국민은 불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토건CEO는 후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라

경향신문 6월 4일자 경제칼럼에서 단국대 조명래 교수(사회학)는 토건 CEO 출신인 미국의 31대 후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경제대통령의 맹점을 지적했다.
후버 전 대통령은 토목업과 광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CEO로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지나친 도그마에 빠져 현실경제를 제대로 진단,처방하지 못했고 결국 증시 폭락과 경기 악화, 유럽 발 보복관세 역풍,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책실패로 갈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으며, 그것들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다. 자신의 성공신화에 지나치게 빠져서 회사의 CEO와 국가의 대통령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회사의 경영 철학을 국가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국민을 직원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기회비용을 외부화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아 왔던 기업의 고질적인 마인드는 국가경영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는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온 국민이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회사의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는 것이 있는데, 예컨대 기회비용 같은 것이다. 회사가 벌목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지만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회사의 재무제표는 개선될지 모르지만 직업불안정성이 높아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 광우병도 동일한 이치다. 쇠고기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광우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무시해도 될 수준이며, 실제로 이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수입업자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국가경영은 비용을 외부화할 수 없고 여러 가지 기회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CEO의 마인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재단하려는 위험한 사고도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방송사 토론회를 가급적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죽했으면 "최고의 방송토론 전략은 방송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는 토론을 통해서 최고의 방법에 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뜻을 정해 두고 이에 맞추라는 입장이다.
이것은 한정된 인원으로 구성된 회사의 CEO나 서울시장 정도의 위치에서는 가능하겠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다. 민주주의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구성원이 되었을 때는 민주주의 외에 좋은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논란꺼리만 있으면 '토론하자'며 달려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왜 이렇게 오버랩이 되는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