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학생들이 주도한 5월2일 첫 집회는 6월 10일 100만인의 촛불을 만들어낸 기폭제였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르쳐준 것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적 욕망과 대비되는 ‘먹거리 안전’이라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깊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특히 이들은 정치적인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통해서 '권리'를 어른들보다 먼저 더 깊이 이해하고 시민들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역사적인 촛불집회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모둠을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여학생 몇 명이 지하철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들자 학생들은 수줍은 듯 흩어졌습니다. 제가 학생들의 청소작업을 방해한 꼴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고맙다며 생수를 한통 건넸습니다. 학생들은 생수를 나눠먹고 다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시민들이 하나둘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웃으면서 격려도 하고 쓰레기통은 금세 가득 찼습니다. 주위도 쓰레기 하나 없이 환해졌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니 얼마 전 시사IN에서 효자동, 청운동, 통의동 등 6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김용휘(가명)씨와 인터뷰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경찰청장에게 쓰레기 벌금 고지서 보내겠다")
김용휘 씨는 “시민들은 분리수거도 잘 해주는데 경찰은 골목길마다 먹은 도시락을 버려두고 간다” 고 말했습니다. 특히 계급이 좀 있는 높은 분들은 좋은 밥 먹고 치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솔선수범이라는 말이 참 무색합니다. 권력이 높은 데로 올라갈수록 무책임이 커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만 무거워지는 세태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정치적 권리도 없어서 책임질 것도 없는 학생들이 나서서 권리와 책임이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참 할말이 없이 우두커니 서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학생은 시민의 선생님이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학생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해보면 알지만 무지 쑥스럽고 머쓱한 기분이 듭니다. 단지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거리의 큰 촛불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으로 읽혔습니다.



한 시민이 학생들에게 고맙다며 생수 한병을 건넸습니다. 저도 손에 무엇인가 있었다면 주었을 테지만, 그냥 생수 한 병에 몰래 고마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위가 금세 깨끗해지고 환해지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무거운 쓰레기 봉투를 외소한 몸으로 들고 낑낑대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하나둘 청소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이 거리에 쌓인 쓰레기가 우리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광화문역 안쪽으로까지 깊이 들어갑니다. 계단 맨 앞쪽에 있는 사람은 행인이 아니라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는 학생입니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자꾸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겠죠. 쓰레기줍기 하나로 '책임'을 이야기하기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시민들을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조그맣게 일으킨 촛불이 100만의 거대한 은하수 모양의 촛불행렬을 만들었으니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8-06-1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들~ 우리의 희망입니다! 눈물까지 돌며 감격했어요.
어제 광주도 학생들이 열심히 청소했어요. 작은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뻤어요!

승주나무 2008-06-12 10:02   좋아요 0 | URL
네~ 몇몇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어딜 가든 학생들이 저렇게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답니다. ^^

무스탕 2008-06-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쁜 마음, 이쁜 손들이네요.. ㅠ.ㅠb
이 아이들이 희망이에요.
부끄러운 어른들은 더 할 말이 없네요..

승주나무 2008-06-12 10:03   좋아요 0 | URL
네~ 그 앞에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대견하기도 하구요^^

마늘빵 2008-06-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런 학생들 가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어요. 나만 좋은건가? ( '')

승주나무 2008-06-12 10:03   좋아요 0 | URL
자꾸 뽀뽀할라구래~ 아프 님~
그러니까 제이드님한테 맨날 구박받는 거 아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