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세계의 지도자들의 경쟁상대가 되고자 한다면

“국내에 더 이상 경쟁자는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사가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이 말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주도권 경쟁과 관련해서 떠오른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경선과 대선을 통해서 정권을 획득했으니 이제 더 넓은 경기장에서 더 센 상대를 대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 말이 논란이 된 이유 역시 분명하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말만 세계 지도자의 경쟁상대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의 정치 지도자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몸소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토사구팽하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측근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통려으로 만들어준 토건CEO의 이미지와 이제까지'고만고만한 정치지도자'로서 보였던 정치 스타일을 혁파하고 국가 원수의 면모를 찾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상징적인 단면은 바로 '위원회 정치'다. 수많은 위원회를 신설하고 예산을 배정하면서 비효율을 자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위원회를 만든 것은 당시의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공신(功臣)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의 최근의 정치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대통령 전후를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토사구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토사구팽은 정권을 획득한 지도자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는 환골탈태의 교훈을 말해주는 고사다.

 

 

 

 


토사구팽은 다름아닌 지도자의 환골탈태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토사구팽은 한(漢)나라의 건국의 일등공신 한신이 한고조 유방에게 처결되면서 남긴 말이다. 유방은 초나라와의 팽성 싸움에서 져 달아났지만, 한신의 공으로 큰 승리를 거두어 승기를 잡게 된다. 나아가 한신은 군사를 이끌고 위, 조, 연, 제나라를 모두 평정하여 항우를 포위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유방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유방의 측근세력에 의해서 숙청되고 만다. 어찌 보면 권력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토사구팽을 감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통일 이후의 한나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토사구팽은 개인적 차원의 배신이 아니라, 필연적인 역사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말이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나, 어찌 말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인데, 이것은 탁월한 이론가요 달변가로서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육가(陸賈)가 유방에게 제시한 충고다. 육가에 의하면 말을 타고 국가를 얻는 방법과 말에서 내려 국가를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수성(守城)이며 문치(文治)이다. (《사기열전》 <육고열전>) 이것을 우리나라의 실정에 대입해 보면 이명박 정부는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지만, 말을 타고 국가를 얻는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자꾸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의 최측근을 방통위원장에 앉히는가 하면 최근에는 후보 시절 언론특보를 지냈던 구본홍 씨를 뉴스전문채널 YTN의 사장으로 앉히는 등 흥청망청 인사를 낭비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여명기에 한신과 같이 주군을 원망하는 곡소리가 울려퍼져야 하는데 그런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으니 대한민국 국민은 불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토건CEO는 후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라

경향신문 6월 4일자 경제칼럼에서 단국대 조명래 교수(사회학)는 토건 CEO 출신인 미국의 31대 후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경제대통령의 맹점을 지적했다.
후버 전 대통령은 토목업과 광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CEO로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지나친 도그마에 빠져 현실경제를 제대로 진단,처방하지 못했고 결국 증시 폭락과 경기 악화, 유럽 발 보복관세 역풍,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책실패로 갈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으며, 그것들을 제거하지 못한 상태다. 자신의 성공신화에 지나치게 빠져서 회사의 CEO와 국가의 대통령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회사의 경영 철학을 국가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국민을 직원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기회비용을 외부화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아 왔던 기업의 고질적인 마인드는 국가경영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는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온 국민이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회사의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는 것이 있는데, 예컨대 기회비용 같은 것이다. 회사가 벌목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지만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며,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회사의 재무제표는 개선될지 모르지만 직업불안정성이 높아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 광우병도 동일한 이치다. 쇠고기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광우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무시해도 될 수준이며, 실제로 이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수입업자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국가경영은 비용을 외부화할 수 없고 여러 가지 기회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CEO의 마인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재단하려는 위험한 사고도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방송사 토론회를 가급적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죽했으면 "최고의 방송토론 전략은 방송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는 토론을 통해서 최고의 방법에 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뜻을 정해 두고 이에 맞추라는 입장이다.
이것은 한정된 인원으로 구성된 회사의 CEO나 서울시장 정도의 위치에서는 가능하겠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다. 민주주의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전 국민이 구성원이 되었을 때는 민주주의 외에 좋은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논란꺼리만 있으면 '토론하자'며 달려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왜 이렇게 오버랩이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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