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촛불집회에 복귀했다.
6월 10일 이른바 '100만대행진' 전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산하다.
서울시청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에 설치됐던 자유발언대 중 청계광장 쪽의 자유발언대가 사라졌다. 그곳에 일주일째 눌러앉아 있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청계광장 물머리에서 단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것은 집회참여인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회사 중견간부라고 소개한 한철옥 씨(57)는 이에 대해서 "시민들이 너무 오랫동안 달려왔기 때문에 숨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 나온 사람들은 전위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한철옥 씨(57)는 신문이 너무 촛불정국에 매달려 민생 등 본위의 역할을 망각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이왕이면 경찰 앞에서 찍자고 하는 바람에 경찰들이 도망쳤다.



누가 촛불의 민심을 제도화할 것인가?

촛불집회는 이번 주로 중대한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촛불이 꺼지지는 않겠지만, 촛불의 색깔이 달라질 수는 있다는 거다. 촛불의 민심은 어떻게 해서든 표현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면 제도화ㆍ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할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6워5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지금 야당은 있는가"에서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로서 야당이라는 길잡이 없이 청와대 결단만 바라보는 지금의 한국정치는 분명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박상훈 대표에 의하면 단순히 수적인 열세가 문제가 아니라 "사태의 핵심을 힘 있게 규정하고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열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시민들이 공감하는 문제점이다. 소프트웨어개발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는 이명호 씨(39)는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 하지만 야당은 집회 목소리를 바탕으로 힘을 내야 한다"며 야당에게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등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집회 참여자 역시 "18대 국회가 개원돼 어떻게든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는 등 구심점을 잃은 이후 힘을 못 내고 있지만, 야당이 지금이라도 민심으로 들어가 시민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한다면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야당의 분발을 촉구했다.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힘을 잃은 야당에게 국민이 연일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니 이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촛불행렬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야당 역할론'이었다.
6월 10일, 신문을 펼쳐드니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민주당, 촛불 정국에 ‘밥그릇 싸움’ 몰입" 누가 외로운 시민들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디자이너 김영복 씨(40)는 정론 매체가 살살 눈치를 보지 말고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직도 진실보도로서 부족한 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경향, 한겨레 등 정론매체들.. 꽁무니 좇기, 촛불찬양, 눈치보기 하지마라!!


반면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언론이 정부에 맞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지면에 반영해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간을 벌다가 방송사를 장악해 여론을 바꾼 뒤 다시 기존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이른바 '일보후퇴 이본전진' 꽁수를 부릴 정황이 농후하다. 정부 출범 한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선 때 한나라당 선대위 방송특보를 맡았던 이몽룡 전 한국방송 부산방송 총국장이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지난달 29일과 지난 5일엔 역시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 전 문화방송 보도본부장과 정국록 전 진주 문화방송 사장이 뉴스 전문채널 YTN(와이티엔)과 아리랑 티브이 사장에 각각 내정됐고, 역시 6월 5일에는 KBS 이사회의 선출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친한나라당 성향의 한림대 유재천 특임교수가 이사장으로 발탁됐다면 그 다음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다. 이럴 때일수록 제 목소리를 내는 언론매체가 영향력을 키우고 시민들과 소통의 구조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요청이다.
촛불광장이나 온라인 등에서 의제를 주도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매체는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시사IN, 블로거뉴스 등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매체의 영향력은 부자 신문에 비해서 미미한 실정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시사IN 39호에 기고한 "조ㆍ중ㆍ동 흥망성쇠 이명박 정부 손에"라는 칼럼에서 "5월 마지막 주에 수직상승을 하며 꼭짓점을 기록했던 한겨레의 페이지뷰가 1200만 회였던 반면 조중동 가운데 가장 실적이 떨어지는 동아일보의 5월 최저 페이지뷰는 3000~4000만 회를 상회했다"며 이 현상을 '움이 싹트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질적인 영역인 의제 선점과 설정 능력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거리에서는 신문사에 대한 호오가 워낙 분명히 정해져 있어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거리의 1등 매체들에게 '쓴소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명호 씨는 오마이뉴스를 가장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로 '신속하고 구체적인 보도'를 들었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기사를 게재하다 보니 오탈자나 정제되지 못한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고 말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매체도 덩달아 흥분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복 씨는 경향과 한겨레에 점수를 주었지만 진실보도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촉발된 삼성비자금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언론사들이 눈치만 살피다가 시사IN에서 특종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기사를 내보냈던 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아고라나 아프리카 등에서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분명히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며 "MBC에서 보도하면 KBS-SBS 식으로 속보가 전이되는 행태는 가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고 비판했다. 시청역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정론매체들이 촛불시위대 꽁무늬만 쫓아다니지 말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심층보도와 대안을 내놔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30대의 한 시민은 "촛불찬양에만 매달리지 말고 찬반을 아우르는 공정한 보도를 해달라"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신문을 펼치면 중간까지는 모두 촛불 이야기다. 촛불정국을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있다. 촛불이 타올라도 서민들의 민생은 여전히 고단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슈에만 몰입하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그의 반문은 이 시대의 기록자인 언론매체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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