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창간 선포식 시사IN의 전신인 참언론시사기자단은 2007년 8월11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시사IN’ 창간선포식을 열고 새 매체 창간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시사인 1년사와 2년사의 차이

2007년 9월25일 시사IN 추석합본 신간호가 나오고 꼭 1년이 지나 두 번째 추석합본호가 나왔다.
시사IN은 9월 11일(목요일)에는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창간 1주년 기념회를 성대히 치를 예정이다.
작년의 창간 선포식과 멤버는 다르지 않다.
최광기 권해효가 사회를 맡고, 손병휘(가수), 연영석(가수), 정태춘(가수) 허클베리핀(록밴드) 등 시사IN 홍보대사들이 출연한다.
금요일에는 이에 대한 기사가 몇몇 매체에 뜰 텐데, 언론식으로 표현하면 "시사IN 1년만에 착근에 성공"이라거나 "시사인의 다사다난했던 1년사" 같이 1년이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언제나와 같이 나는 언론과 생각이 다른데, 1년사가 아니라 2년사로 보아야 한다. 창간 후 1년은 사실 창간 전 1년의 결과물일 뿐이다.



왜 2년사가 중요한가를 보려면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된다. 오버마와 힐러리의 경선과 오버마와 맥케인의 대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실상 1년 전에 대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시사IN은 1년 동안 독자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언론노조사무소에서,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끝에 지금의 교북동 보금자리에 입주할 수 있었다.

시사인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PD수첩 방영 이후 독자들이 시사인을 열렬히 구독하기 시작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PD수첩 방영은 1년 동안 싸워왔던 결실의 마침표일 뿐이다.


▲ 거리편집국에서 기사를 쓰던 당시.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은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거뉴스를 전전하면서도 특종을 터뜨렸다. JU그룹의 다단계 비리나 JMS 비리 등이 그것이다. (사진 : 한겨레21) 


인식공유의 3단계로 본 시사IN 2년

인식의 공유(shared awareness)란 각기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나 그룹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인식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행동'에 도달하게 된다. 행동에 도달하기까지는 3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는 인식의 1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방역권 포기 방침은 인식의 2단계를 넘어서 3단계로 도달했다. PD수첩이 고발하고, 청계광장/여의도에서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위험을 알렸기 때문에 3단계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6월10일의 촛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IN에도 인식의 3단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의 사장이 부당하게 기사를 도려냈다. 편집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이 편집권을 먹어버렸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식의 1단계이다.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는 중징계와 고소 폭탄을 던졌다. 독자들이 가세헤 힘을 보태 주었고, 시사저널의 부당성을 꾸준히 알렸다. 인식의 2단계이다. 인식의 2단계에서 인식의 3단계는 사실 뚜렷한 구분이 없지만, 직접행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식의 3단계로 갈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은 꾸준히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이와 관련된 보도를 분석해 보면, 대학신문 포함 총 73개의 매체에서 821개의 기사를 쏟아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 시사저널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독자들의 눈물겨운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시사저널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시사모, 후에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으로 개칭/해단)이 결성돼 기자들과 투쟁을 함께 했고 검찰에 조사까지 당했다.
진품시사저널구독운동과 문화제, 일일호프, 시사IN 창간과정에는 전국적으로 '자발적 구독운동'을 추진해 전국 20곳에 6,000여 부의 '독자판' 시사IN과 기념물을 뿌렸다. 6천부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충남에 사는 아이디 빛의 잉칼님이 두 공주님과 함께 아파트 곳곳을 돌며 창간호를 배달하는 등 전국적인 배포 활동을 벌였고 이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였다. 뿐만 아니라 충남의 고등학생은 학교와 백화점 등 대전시 곳곳에서 배포활동을 벌였으며, 특히 선생님의 배려로 친구들 앞에서 시사저널 사태와 언론자유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의를 했던 일은 흐뭇한 화제로 남아 있다.

배포 부수는 수천부이지만, 배포활동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이 일을 알게 된 사람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한다. 시사IN은 이미 인식의 3단계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창간선포식과 PD수첩 방영이 있었다.
방영 다음날 서포터스로 시사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매우 역사적인 순간에 그곳에 있게 된 것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는 중국집에 요리를 시켜 놓고 전화기 옆에서 식사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에 갈 짬도 못 내고 전화를 받았다. 후원계좌번호와 정기구독 예약을 받았다.

소액후원금, 벌써 2억원이 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거액의 후원금과 투자금을 제외한 순수 소액후원금만 이틀 만에 1억이 모이더니, 하루만에 또 1억원이 찼다. 지방의 유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선친이 남긴 유산 20억을 기증할 용의가 있다며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1대 주주의 지분은 17%로 제한한 상황이다. 창간기금 30억원이 모이는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앞으로 1년이 더 중대한 고비가 될 것

창간 이후에 대해서 평가하라면 한마디로 "결호 안 내르라 수고 많았습니다"이다.
시사인은 특종과 함께 화려하게 창간했는데, 이른바 신정아 단독 인터뷰다. 이 건은 뉴스데스크에서 다뤄지기도 헀다. 그 이후에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고발 건이라든지 김경준 씨의 메모 단독 보도와 에리카 김 인터뷰 등 1년 사이에 3번이나 특종을 터뜨렸다. 물론 이것은 언론에서 더 자세히 다뤄질 사안이다.

  • 인식의 3단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명박의 언론장악 시도에 방송사가 모두 쓰러진 상황에서 언론사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 중에서 시사IN이 가장 든든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사인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도, 혹은 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시사IN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된다면 이미 시사IN은 두 번째 인식공유의 3단계로 이어질 것이며, 그 행동은 시사인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서의 시사IN이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식공유의 3단계 이론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를 참조했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주권운동 등 현재의 시민운동 일련의 흐름과 현상을 가장 정확히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고착화된 현재의 상황에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키려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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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호에 승주나무님 사진이 실렸더만요. 혼자는 아니고 단체사진이지만서도... ㅎㅎ

승주나무 2008-09-17 13:19   좋아요 0 | URL
네~! 개인사진이나 기사는 다음 기회에 ㅎㅎ
 

저는 여행과는 담을 쌓은 사람입니다.
누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집에 꼼짝 않고 앉아서 책을 파든지 글을 쓰든지 하는 전형적인 간서치라고나 할까요?
그런 제가 작년과 올해만 3번의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세 번의 여행이 모두 뜨겁고 지친 순간에 도망가듯 훌쩍 날아갔습니다.
마녀의 빗자루라도 떨어진 걸까요? 의도하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의 힘으로 시사저널 독자소비자운동 마무리 지어

작년에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회사와 결별하고 창간작업에 매진하고 있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사모는 참언론시사독자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년 동안 기자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1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고 평가도 좋게 받았던 '자발적 구독운동'은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고, 소박한 독자로서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던 찰나 예스24 문학기행이 저를 불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도여행을 2박3일 동안 하고 와서 온몸이 충전된 상태로 거뜬히 한달의 고단한 일정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자발적 구독운동은 전국 20여곳에서 6,000부 이상의 독자판(시사인 호외)을 배포하며 독자소비자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이 공로로 민주시민언론연합에서 2007년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여하였습니다.


▲ 예스24 문학기행 때 황석영 작가와 은희경 작가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작가 투어'가 시작됐습니다. (맨 왼쪽에 다리털 많이 난 사람이 승주나무 ㅋㅋ)





촛불에 길을 잃었을 때 나를 불러준 일본

촛불문화제가 있는 날이면 줄기차게 따라나섰습니다. 처음에는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퍼나르는 데 주력하다가 직접 목소리를 외치며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처음에는 신이 나지만, 나중에는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게으른 성격이기도 하지만, 촛불의 지속성과 '분화'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물리적인 의미의 촛불은 심지가 다 말라가니 이것이 에너지변환의 법칙에 의해서 고스란히 다른 형식의 에너지로 전환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답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경찰이 강공으로 나가고 대통령과 장관,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측면지원을 해주면서 촛불은 황급히 꺼졌습니다.
현장에 있는다는 것이 괴롭고 무기력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사용해서 스크럼을 넘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 때 일본이 나를 불렀습니다.
일본인 손윗동서에게 시집간 처형의 초대로 가족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사카성을 비롯해 오사카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이 맛난 것 많이 먹고 신기한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에 남는 것은 NHK 건물 1층에 있는 시립박물관 로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공작하는 법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준 일입니다. 세대를 건너뛴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함께 갔던 조카 둘은 일본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신나게 종이접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 일본 할머니와 한국 손자/손녀들이 함께 모여 공작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조카들이 할머니들과 놀 때 저는 동서 형님과 저만치 벤치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 이후에 별다른 해법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거리에서의 고통을 치유해준 것은 오히려 기형도라는 시인이었습니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 기형도, 시작 메모

나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의 소음과 구호 소리, 음악 소리는 모두 하나의 시어로 나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신호에 응답하는 근사한 시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나는 최소한 거리의 촛불에너지를 시 에너지로 변환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일본여행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큰무덤

부덤보다 차가운 길바닥에 매달려 있던
촛불의 주인이 사라졌다.
그가 죽었다
새로운 촛불의 주인이 나타나 또다시
곤봉과 방패에 살해됐을 때도
사람들은 자꾸 나타나 기꺼이 죽었다
내가 기꺼이 죽을 테니
촛불을 더 달라고 성화다

무덤에는 사연이 많다.
더러는 너와 몸을 섞었던
치욕스러운 겨울밤을 잊고 싶어
죽음을 자청하기도 했고
물론 그보다 사소한 죽음도 있었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무덤이 하나씩 세워졌는데
금세 사연 많은 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큰무덤 위에 누가 초를 꽂았다
촛불에도 사연이 많다
불나방처럼 촛불을 품에 안으려다 날개가 다 타버렸다
사람들이 촛불 앞에서 쓰러질 때마다
빛은 사연을 더해 갔다.
만 가지 사연을 가지고 애타게 타고 있는 촛불이
곧 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서 촛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2008년 6월 27일. 거리에서





나의 빈 '상상력 그릇'을 채워준 지리산 여행

지리산 노고단은 나에게 '체력장'이자 詩의 스승이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아무런 글을 쓰지 않았고, 몸으로 남도 땅을 맞았습니다.
남도의 바람과 땡볕과 기후를 받아먹으며 서울촌놈의 땟국물을 남김없이 털어내려 노력하였습니다.
최대한 서울의 사연들이 틈입하지 않는 시적이고 신성한 여행을 그려나갔습니다.


▲ 노고단은 나에게 '술 좀 그만 처먹어라'거나 '젊은 놈이 저질체력이기는' 같은 조롱을 한껏 내뱉었습니다. 땀이 버범이 되고 찜찜한 습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도 바람 한점 보내주지 않다가 정상에 올라가서야 이슬과 바람을 뿌려주었습니다. 나는 노고단에게 한껏 욕을 해주고는 마음속으로 절을 수십 번도 더 했습니다. 서울촌놈으로서는 몹시도 귀한 대접을 받은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 술냄새를 따라 섬진강변을 흘러가다가 인적이 드문 식당 평상에 엉덩이를 깔고 일단 지역 토속 술인 잎새주에 전어회를 곁들였습니다. 전어회는 정해지지 않은 메뉴였는데, 누군가 반드시 질러야 하는 상황에서 정의의 용사 한 분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주었습니다. 메기와 참게로 끓인 매운탕에 노곤함을 잊고 운전사 둘은 대리운전을 부를 요량으로 술잔을 거푸 집어들었고, 나머지 장롱면허를 소지한 사람들은 '뜬금운전'(뜬금없이 운전을 하게 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오버액션을 취했습니다. 건배의 이름이 '운전해'였습니다. 잔을 비우지 않으면 운전을 하게 되니 알아서 먹으라는 거지요. 누가 보면 유치찬란하다고 하겠지만, 지역에서는 원래 이렇게 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도 뒷이야기는 할 것이 너무 많지만 대부분 자랑질에 머무르기 때문에 승주나무 개인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남겨 보았습니다. 아 참, 여행마다 함께 했던 꼬맹이 혹은 어린이 선물 이야기를 깜빡 했습니다.




섬진강변 주막에서 아이들과 셀카 한컨 찍었습니다. 쌍둥이 녀석들이 자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사진 몇 장 더 찍으면서 놀았는데, 가려고 하니 무척이나 섭섭해 하더군요^^

공교롭게도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 초대형 스펙터클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의 산시령(山詩靈)께서 보살펴 주셔서 상상력 그릇을 조금 채웠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제가 남도 출신(제주도)인 관계로 남도에만 가면 큰 힘을 얻고 오는 것 같습니다. 세 번의 여행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청량제처럼 뿌려진 기회였습니다.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할 텐데,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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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비우는 일, 여행은 바로 그런 걸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재충전의 기운을 넣어 준 여행으로 승주나무님의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바랍니다.^^

승주나무 2008-09-07 20:22   좋아요 0 | URL
네~ 여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은 대체로 신선한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는 꼭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울보 2008-09-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다 멋진 여행을 하셧네요,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행운을 얻었지요^^

하늘바람 2008-09-06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럽네요 이런 여행이어야 하는데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은 새로운 종류의 깨달음인 것 같아요~

2008-09-06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9-07 20: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Koni 2008-09-0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여행입니다. 새로운 힘을 얻는 여행이란 그야말로 로망.

승주나무 2008-09-07 20:24   좋아요 0 | URL
네~ 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로망 그 자체죠^^

2008-09-11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본 나라시의 나라국립공원은 사슴공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슴이 많다는 이야기죠.


왼쪽에도 사슴


오른쪽에도 사슴


버스에도 사슴입니다.





텃새도 굉장히 심한 편이고 짜증도 잘 냅니다.
특히 사슴과자를 주지 않으면 아무거나 먹어치워 버려 무섭기까지 합니다.
위의 사진은 자동으로 사진을 걸어놨는데 갑자기 사슴이 다가와 조카의 숙제로 쓸 팜플렛을 먹어치우는 장면입니다. ㅋ


사슴을 좋아하는(사슴고기가 아니라-_-;) 우리 조카 민경이도 깡패 사슴의 공격을 받았네요.



처음에는 서로 잘 노는가 싶더니, 어디서 수가 틀렸는지 으르렁 대더라는 겁니다.
조카가 사슴공포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귀여운 삐끼사슴 한마리가 사슴과자 가게 앞에서 손님들에게 앵벌이를 하고 있네요.
소문에 따르면 예쁘장하고 귀여운 녀석들로 구성된 삐끼사슴단이 당번으로 가게 앞을 지킨다는..
암튼 사슴공원에 가면 사슴과자를 사되 너무 많이는 주지 마세요.
여남은 개에 150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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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9-0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가 보고 싶다
 

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메인에 하루종일 전세를 진 포스트입니다.
자랑질은 아니지만, 요즘 다음 메인에서 제 블로그에 볼 일이 많이 있는가봅니다.
블로그에 자꾸 불이 납니다.
다음 블로그에서 만난 파비아니 님 반가웠어요^^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한때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습니다.
지브리에서 만든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했습니다.
일본에 놀러갔는데,
토토로 가게가 있더군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담아왔습니다.
감상하시죠~


우산을 쓰고 다니는 토토로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 딱 좋은 영화죠~


지브리의 다른 작품 <마녀 배달부 키키>에 나오는 고양이 '지지'라고 합니다.


쬐끄마한 빈대떡 같은 인형들입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인형이 일본 장난감을 상징하는 거 아닐까요~



가게 입구 모습입니다. 친척의 말로는 일본 전역에 있는 체인점이라고 하네요. 토토로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형체인점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네요^^





실용적인 상품입니다. 토토로 화분이죠.



토토로 게시판도 재밌었습니다. 여성분들이 많이 사실 것 같습니다~






역시 쿠션을 빼놓을 수 없겠죠~
배고 자면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참 치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인형이나 각종 상품들을 기획하고 이를 추진해 시장을 만들어내는 거 보면요.
우리는 콘텐츠와 상품화라는 말만 부르짖을 뿐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만들 기반이 언제쯤 찾아올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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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05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토로 게시판 사고 싶어요. ㅎㅎ 하지만 참을래요. 무지 비쌀걸요. ^^

승주나무 2008-09-05 10:33   좋아요 0 | URL
자세히 보면 저렴하며 값싼 것도 있습니다.
저는 지레 겁먹고 도망치고 말았다는...^^;

chika 2008-09-0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브리 박물관까지 갔다가.. 너무 비싸서 침만 꼴딱 삼키다 그냥 온 사람입니다.ㅋ (지금은 좀 후회돼요. 그냥 뭐 하나 집어올껄..하고;;;)
중고고서점에서 지브리 애니 송 시디를 건진 걸 그때의 대박으로 기념하고 있고, 제게는 토토로, 네꼬뻐스, 지지 인형있슴다. 토토로 손수건, 오르골도 있고요...저 한국판 포스터에 미야자키 할배 사인 들어간 포스터는 제 방에 붙어있슴다. (왠 자랑질? ㅡ,.ㅡ)
그래도 지금.. 라퓨타에 나오는 거신병 피규어를 못산것이 눈에 밟히고 있는 중이지요. 젤 맘에 드는 피규어였는데;;;;;
내가 벼락부자가 되지 않는 한... ............ (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한번은 질러대리란 예감이 듭니다.ㅋ)

승주나무 2008-09-05 10:33   좋아요 0 | URL
우와~ 치카 님, 정말 디테일하네요.
한국에 지브리 박물관지부를 만들면 치카님이 단연 박물관장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치카 님과 흥정을 해봐야게따 ㅋㅋ
 


▲ 시사인이 한살이 된 기념으로 언론계에 발을 담그는 강호제현을 초대해 심포지엄을 열었다. 9월 2일 프레스센터 12층 교육센터 대강당



이명박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시사IN인 돌잔치를 열었다. 9월2일 프레스센터 12층 교육강당에서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사회자가 되었고, 문정우 시사인 편집국장, 이봉수 세명대학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규원 한겨레 지역팀장,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노조위원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이병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독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언론사들은 다 모였다고 해야겠다.
시사IN 문정우 편집국장은 독립언론 1주년을 기념한 심포지엄에서 창간 1주년을 소회했다. 문 국장에 의하면 새매체를 창간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뜯어말렸다. 파업을 했던 회사 역시 "쟤네들 3개월도 못 버틴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그 짓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들 역시 "차라리 해산하고 말지, 뭣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라거나 "지금 사이 좋을 대 헤어지는 게 낫지 나중에 회사 만들다 안 되면 서로 원망하다 웬수될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바닥민심을 확인한 결과 이는 피상적인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본이 세상을 모두 휘어잡아 황량해 보이는 언론환경이지만, 이 때가 오히려 독립언론에게는 기회라는 것이다.
문 국장은 "요즘 대통령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살 만하다. 경향이나 한겨레도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고 말했고, 경향신문의 이재국 기자와 한겨레의 김규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 국장이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얼굴 없고 힘 없고 풍족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일깨워 "괜찮은 언론이 죽어가선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연못으로 고기를 내모든 것은 수달이며 새떼를 숲으로 내모는 것은 새매이다."라는 맹자의 구절이 어울리는 대목이다. 일전에 기사를 쓰던 시사저널은 18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다시 18년을 유지할 동력을 얻었다고 자신했다. 문 국장은 창간당시 한 인터뷰에서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이번 촛불집회 때 <거리편집국>을 운영하면서 이를 다시 확인했다고 술회했다. <시사IN>은 바로 그 민심에서 길어올린 매체이며, 독립언론들은 이 대목을 매우 유의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 문정우 편집국장은 창간 즈음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고 시사저널 회사도 3개월 못 버틴다며 비웃던 모습을 회상하며 실제 '거기'에 가본 결과 뜨거운 밑바닥 민심을 확인했으며 주위의 우려는 모두 피상적인 생각이었음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독립언론 어떻게 만들까, 중지를 모아 봐

독립언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호흡하고 유지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강호제현들이 말을 보태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따끔한 지적은 한겨레 이병 이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한겨레 창간멤버이기도 한데, 한겨레 창간 당시 해직기자 출신의 홍보실 상사는 "경영이 쉽지는 않을 거다"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시사인 창간 당시 편집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편집은 경험이 출중한 기자들이 있어서 걱정이 안 되지만, 경영에 대한 부분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시사인은 1년 동안 잡지 만들기와 정기구독자 늘리기에 주력하였고 경영에는 다소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다. 시사인의 한 기자는 "시사인은 1년 동안 경영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겨레는 91년 공덕동으로 사옥을 옮기며 단행본 사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한겨레21을 창간해 주간지로서는 최초로 당해년도에 흑자를 기록한다. 95년에는 영화주간지 씨네21을 창간하며 젊은 독자들의 문화코드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그 외에도 초록마을 유통사업과 한겨레투어, 99년에는 인터넷 한겨레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겨레리빙' 부문이 1년간 1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낸 이후로 신사업 발굴작업은 위축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 이사는 매채 부문과 비매체 부문의 고른 확장이 독립언론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그는 '가디언'을 예로 들었는데, 가디언 본지는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가디언이 만들어낸 비매체 부문은 꾸준한 수익을 내주고 있기 때문에 자본에 의한 논조의 굴복 없이 지금껏 독립언론의 드높은 위상을 드날릴 수 있었다는 평가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노조위원장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오연호 기자는 모두가 하나의 모델을 만들 필요는 없으며 각자 만들어낸 모델을 공유하면 좋은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립언론'을 절대가치화하려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도 수명이 있듯이 독립언론 역시 나이가 들어서 늙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때는 젊고 건강한 이들이 독립언론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라도 대의를 계승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오 기자는 "우리가 열심히 하더라도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네이버, 다음과 우리 모두를 뛰어넘는, 즉 모든 것을 초월한 독립언론이 생겨날 것이다. 이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죽을 준비'를 하는 게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노조위원장은 '독립'이라는 말 자체가 다른 무엇인가에 기대어 있는 상태를 뜻하므로 '독립'은 항상 지배를 전제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주로 언론계에 '만연'(?)한 관습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이 담겨 있는 '언론인'이라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나도 '독립언론'의 '독립'이라는 말이 동아투위, 조선투위 때 쓰던 의미를 빌려 쓰는 것일 뿐이며 2008년에 맞는 '새로운 독립'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언론계에서는 '독립'이라는 말을 신주단지 모시듯 숭앙하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의 한정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관습의 그림자도 느낄 수 있었다. 시사저널 파업은 권력이 정권에서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정권이 새로이 권좌를 되찾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본은 지금껏 한번도 권좌에서 물러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정권과 자본'이라는 가장 '쎈 놈' 두 명이 힘을 합한 상황에 독립언론이 몰려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로 따지면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합병된 상황과 같다. 그리고 시사저널 때 자유언론을 세우기 위해 지원에 나섰던 독자들이 이제는 언론소비자의 주권을 찾기 위해 구속과 기소 등 정권에 의한 탄압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도 반영이 안 됐다. 그저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언론사들이 모인 토론회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다음에는 언론사가 밑바닥의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 건강미 넘치는 자리를 마련해 기사쓸 맛이 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이병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시사인의 앞에 진짜 남겨진 승부는 '경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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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9-0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 in 정말 나쁜 잡지입니다. 광고라고는, 순 불쌍한 사람 돕는 것들 투성이라서...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ㅠㅜ

승주나무 2008-09-05 00:53   좋아요 0 | URL
그래요..정말 나쁜 잡지입니다 ㅠㅠ
좋은 세상 좋은 잡지가 그립습니다^^;;

Koni 2008-09-0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일 년이라니 감개무량해요.^-^

승주나무 2008-09-05 00:5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벌써 일년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