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동네 1000원샵'이라는 글에서 서민경제가 어려워 1,000원짜리 상품이 급증했던 사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슬픈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시장을 보러 까치산시장으로 갔습니다. 과일도 사고 반찬도 사다가, 야채 파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야채 파는 할머니라면 전봇대 아래 대충 좌판을 깔아 놓고 직접 따온 야채를 파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할머니의 야채 가게는 그래도 조그마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배추 하나에 1,000원이어서, 고기에 싸먹고 국도 끓여 먹을 겸 배추 하나를 샀습니다.
할머니는 계산을 마치고 손을 가져가더니 푸른 풋고추를 함줌 쥐어서 비닐봉지에 넣어주시는 겁니다.
참 오랜만에 보았던 시장 인심이었죠.
그것도 서울에서 한줌의 인심을 맛본 게 얼마만입니까.


▲ 시장 할머니가 배추 위에 풋고추를 한 줌 쥐어주었습니다. 오늘 고기 싸먹을 때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슬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님이 많이 오나요?"
라는 물음에
"아이구 말도 마~ 감자 한 알을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니까."

'감자 한 알'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감자 한 알은 원래 규모가 너무 적어 팔지 못합니다.
감자 한 예닐곱 정도는 돼야 봉지에 넣어서 1,000원을 받든 2,000원을 받든 하는데,
감자 한 알은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 할까요.




2008년 들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MB물가가 허탕치면서 정부는 물가정책에 아예 손을 놓고 있습니다.
강만수 장관은 '유동성을 풀어서 환율을 잡겠다'는 말만 합니다.
환율대란 다음에는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입니다.
중소기업은 아마 절반이 망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6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봤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6월은 7월과 8월에 비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가장 낮은 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200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서울신문 자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지금의 상황이 그래도 그나마 나은 상황이 아닐까.
1년 후에, 아니 6개월 후에는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주식시장에서는 바닥 아래, 지하 1층, 2층, 3층 이렇게 내려가는 흐름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장에서는 지금이 지하2층인지 지하3층인지 알 길조차 없습니다.
금융강국인 미국에서도 현재의 상황은 2년 후쯤에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민경제도 지금이 지하 2층인지 지하3층인지 모르는 상황이 아닐까요.
서민들의 공포심이 '감자 한 알'에 고스란히 배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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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라면 별로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어린이 시절 나의 소원은 "김일성을 죽이는 것"이었다.
매일 밤마다 김일성을 죽이는 꿈을 꾼다.
북파공작원이 되어 북한군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암살을 하는 것을 고민했다.
어린 시절 상상력 속에는 '암살'이라는 키워드가 '대응댐'처럼 버티고 서 있다.

아래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김일성을 죽이러 다니던 기억이 잔인하게 스친다.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닐 울비치는 아래의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국경 경비대가 동원되자 우세를 보이게 된
우파측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학생을 때려 죽여 나무에 매달거나 길 위에서
태워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십 명이 사망하였고 수 천 명이 구속되었으며 결국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국정의
실권을 쥐자, 1973년 학생궐기 이후 계속되었던 태국의 민주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태국의 극우적 현대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촘스키의 <여론조작>이라는 책에서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언론학살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MBC <W>에서는 2년 동안 언론인 수십 명이 테러를 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전무한 스리랑카의 실정을 보았다. 노동부 장관은 방송사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뉴스 디렉터를 끌어내 짓밟고 때리고 무릎꿇렸지만, 당당히 다른 언론사에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로 '극우'의 손아귀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조금이나마 민주화를 진척시켜 위와 같은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사람의 인식이란 유혹당하기 쉬워서, 유혹의 극단에 이르면 잔인한 살해도 해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이 온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사회운동이란 '목숨을 건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덜 무서운 것들을 하고 있는 하루, 또 하루다.


※ 사진과 설명글은 <이연의 이미지, 텍스트 읽기>(http://image-reader.sisain.co.kr/1)에서 얻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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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말을 해야 하죠? 인간이란게 도대체 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끔찍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저런 인간의 야만이 과연 교육으로 정화되어질 수 있는걸까요? 이해 불가능하지만 절대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지금. 그래서 더 끔찍한지도 모르겠네요.

승주나무 2008-09-30 15:37   좋아요 0 | URL
어쨌든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의 인생이 아닌 것이지요
 

블로그를 운영하며 시사와 책, 일상에 관한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 한 권 나와 세심히 읽고 나의 생활을 버물여 글을 올렸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작가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출판사는 물론 작가까지 글을 쓴 나를 무척 궁금해했다는 전언이었는데, 블로그의 글 하나가 만들어준 인연에 감사하며 손낙구 씨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는 9월 19일 점심께 후마니타스 출판사와 근처 식당에서 이루어졌고, 손낙구 씨 외에도 책에 발가락 그림을 그리면서 데뷔한 딸 손해인 양과, 책임편집을 맡은 박미경 씨, 리더스가이드의 일반 독자 회원이 가세하면서 자연스럽게 '팀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책이 주는 진지한 이야기 외에도 세입자로 살아가는 일반 소시민의 이야기와 책을 만드는 에피소드 등 시종일관 '잡담 같은 인터뷰'를 유지했다. 삐딱한 출판사(후마니타스)와 삐딱한 작가, 삐딱한 독자가 만나니 당연히 삐딱한 인터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는 사실 부동산보다 '노동' 분야의 전문가다. 꼬박 19년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고, 5년간은 민주노총 대변인으로 일하며 기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대변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그 후 자리를 옮겨 4년 동안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는데, 그 때 정부기관이 숨겨 놓은 '대외비급' 통계자료를 많이 얻어냈다.
그가 ‘부동산’에 올인하게 된 이유는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먹이사슬이 서민들에게 두 배의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토지공개념에 대한 공감대 기득권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는 지금 기회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출간의 변’으로 내놓았다.



▲ 필자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싶은 욕망이 있고, 편집자는 많이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인데, 밑바닥에서 19년 동안이나 서민들을 접한 손낙구 씨는 서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다툴 일이 없었다고 한다. 왼쪽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 오른쪽은 후마니타스 책임편집 박미경 씨




사기와 거짓으로 점철된 '부동산 관련기사'

- 나는 가장 거짓말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가 외신 번역과 '통계'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가?
"물론이다. 통계만큼 거짓말이 많이 들어간 자료는 없다. 통계는 숫자와 그래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문자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실제로 통계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기'가 이루어졌다. (옆에 앉아 있던 박상훈 대표는 "영국의 유명한 수상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남긴 '거짓말'을 환기해 주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There are three kinds of lies: lies, damned lies, and statistics.)    

- 말이 나온 김에 건설 관련 기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나도 시민기자를 하고 있지만, 신문사는 이미 장사치가 다 됐다고 생각한다. 기사의 반 이상이 광고성 글이며,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세를 교란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기사를 보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부동산 기사가 아닌가? 이런 기사에 대해서 독자에게 주의사항을 알려 달라.
"기자들의 좋아하는 기사는 '섹시하냐' 그렇지 않느냐 아닌가. 자극적으로 써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동향에 비해 과도하거나 모나게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독자는 이런 점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어찌 기자들만 탓할 수 있겠는가. 구조적인 문제인걸. 정보의 원천은 주로 정부기관이나 건설자본 연구소, 그것도 아니면 건설광고주에게서 나온다. 이런 기사가 약 80% 정도는 된다고 본다. 이런 기사는 정말 잘 봐야 한다."

- 언론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나 공급확대 등으로 무주택자를 없앤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는 언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 동굴이나 움막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가 무려 11만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국정감사 때인 9월 말에 '판잣집ㆍ움막ㆍ동굴에 11만 명이 산다'는 요지의 통계를 발표하자 파란이 일었다. 베이징원인도 아니고 21세기의 동굴이라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뿐 명백한 사실이다. 뉴스도 문명도 이들을 비껴간다. 좌파 척결이니 하며 무서운 표정을 짓는 보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온정이 있는 보수주의자라면 이 사람들을 가만히 방치하지는 못할 것이다.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는 『부산일보』 탐사팀의 끈질긴 탐사취재로 동굴ㆍ토굴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8차례나 보도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220쪽))



▲ 손낙구 씨는 우파 집권세력에게 수난받는 좌파에 대해 "경기장을 넓게 쓰지 않으면 좌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연히 1주택자들도 포옹해서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기장을 넓게 쓰지 않으면 좌파는 살아남지 못할 것

- 우리나라도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부동산'의 비중이 너무 큰 거 아닌가?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연원을 말하자면, 땅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던 봉건주의에 대한 일종의 자유 선언이었다. 땅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자는 사회가 자본주의인데, 우리나라를 보면 아직도 봉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회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토지개혁을 통해 봉건제를 철폐했지만 자본가가 지주를 대신해 토지를 다시 사들이면서 역사의 바퀴를 되돌리고 있다."

- 그러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부동산 자본주의'라고 불러야겠다.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체제다.
"부동산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은 마르크스에서도 나오기 어려운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이 '노동'을 상대하는 개념 아닌가. 그런데 한국 사회는 노동과 부동산, 이 두 개의 먹이사슬이 함께 돌아간다. 그래서 두 배로 더 고통스럽다. 문제는 이 부동산이 인간의 전 인생을 통제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생 일을 해서 3억원을 모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1억5천만원으로는 집을 얻고, 나머지 1억5천만원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3억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에게 남은 돈은 하나도 없게 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투기를 행복과 교환'한 셈이다."

- 하지만 상속세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이 더 거세지 않은가. 상속세가 무엇인가? 대체로 부동산 재산에 대한 세금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지난 4월 상속세 폐지와 경감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을 때 세율을 내려야 한다는 응답이 67.9%였는데, 오히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현실은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우리의 현대사, 아니 역사를 통틀어서 세금이 복지수단이 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당연히 세금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들은 기회주의자답게 세금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악용하는 정책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 하지만 좌파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나? 대체로 우파들은 욕망을 중심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좌파는 당위를 중심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서민들의 삶에 설득력을 주는 것은 대체로 우파적인 대안이다. 최근의 감세 논쟁에서도 ‘복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기도 좋지 않기 때문에 야당조차도 감세 맞불작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즉 '세금'의 본래 취지는 뉴스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좌파'나 '진보'라는 사람들이 예전과 다름 없이 '구닥다리' 수법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한 사람으로서 그 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으며 인정한다. 나는 현실의 좌파와 이론의 좌파로 구분하고자 한다. 당신이 말하는 '좌파'는 '이론의 좌파'라고 할 수 있겠다. 좌파의 행동반경이 여기서 문제가 되는데, 나는 '경기장을 넓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변해야 할 사람들은 무주택자가 아니라 집을 1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야 한다. 집을 소유하게 되면 당연히 보수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보수화가 아니라 집 때문에 고통을 덜 받게 하는 것이다. 23년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성선설'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적절히 버물여야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진다. 좌파든 우파든 정치가 아닌 것과 정치인 것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 정치의 사각지대, 언론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뉴타운 폭탄이 떨어진 서울에서는 1주택자나 무주택자 할 것 없이 도태되어 가고 있다)


 

▲ 손낙구 씨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딸(손해인)과의 공동작업이었기 때문에 해인이를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필자를 착취하기로 유명하다는 그 출판사..


- 책의 머리말을 읽어 보니 집필 과정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특히 이 출판사는 필자를 착취하기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손낙구 씨는 <부동산 계급사회>를 집필하며 3개월간 출판사에 출퇴근하면서 라면을 함께 끓여먹었다. 그 전에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쓴 장화식 씨는 2개월간 이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책을 만들다 보면 필자와 편집자가 많이 다투기도 한다는 데 에피소드는 없었나?
(편집자) " 필자는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고 싶은 욕망이 있고, 편집자는 많이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서로 이러한 생각이 앞서가다 보면 다툼이 벌어진다. 하지만 손낙구 선생님은 19년의 '현장경험'이 있고 대중과 호흡하는 법을 출판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출판작업 전체를 지휘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출판사에서 요청한 사항을 하루 만에 만들어오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손낙구 씨는 편집자의 말을 들으며 "그게 옳은 주장이니까"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 출판사보다 책을 잘 만드는 필자라. 참 재밌다. 이 책의 딜레마는 역시 통계가 아닐까 한다. 우석훈 씨는 통계와 책 판매에 정비례 관계가 있다며 통계자료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부동산 계급사회>에 있는 '통계 처리'는 어떻게 했나?
"정말 그렇다. 이 책에서 통계는 사실상 시작과 끝이다. 삽화, 퀴즈, 요약자료 등등의 조미료를 등장시킨 것도 통계 때문이다. 통계의 원소인 숫자가 독자를 괴롭힌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통계를 빼게 되면 이 책의 힘이 쫙 빠져버린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취지는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응이 아니겠나? 사실 통계도 통계지만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제목도 굉장히 위험한 발상 아닌가?
(편집자)"제목은 4월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장고 끝에 원 제목을 그대로 갔다. 그야말로 정공법이다. 책이 나온 후에 지인들이 나더러 '책 파는 거 포기했구나'하며 비아냥거렸다. 책을 팔기보다 이 책의 존재를 너무나 알리고 싶었다. 책에서 담은 문제의식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통계와 숫자가 잘 받아들여졌다. 나오기 직전까지도 팔릴까 걱정을 했는데, 2주 만에 3천부가 나가 재판까지 찍게 됐다."

- 축하한다. 이 책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따님의 '데뷔작'이기도 하지 않은가?
"해인이(발바닥 그림을 그린 손낙구 씨 딸)를 등장시킨 것 역시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다. 책을 읽히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이해를 해야 하는데, 중3이 알아볼 수 있게 쓰자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통계자료와 그래프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필요해서 해인이를 작업에 동참시켰다. 3개월 정도 그림 작업을 했는데, 데이터와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책 표지그림은 '퀴즈' 형식으로 돼 있는데, 원래는 대한민국 지도에 발바닥 인간 100명이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각 계층의 표정을 일일이 넣어가며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막판에 '그림작가'가 그림을 빼라고 하니 출판사 디자인팀과 필자가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손낙구 씨는 <부동산 계급사회>의 집필계기를 설명하며 '지식인들의 패배주의'를 경계했다. 동굴에 서식하는 인구가 11만명이 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자료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한 목사님이 찾아와서 손을 붙잡으면서 '이건희 씨한테라도 말해서 그들을 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경기도지사가 조금만 협력하면 이들은 당장이라도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역설했다. 흔히 "경제는 심리다"라고 하는데, 손낙구 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부동산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다.

"부동산은 관심이다."




▲ 손낙구 씨의 가족, 기자,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의 일반 독자, 출판사 편집자는 점심을 곁들이며 3시간 동안 책과 일상에 대해서 '까칠한 잡담'을 이어갔다.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씨와, 발바닥 화가인 딸 손해인 양의 공동사인, '승주나무'는 기자의 블로그 필명이다.

 

 



▲ <부동산 계급사회>는 19년 간 노동운동을 한 저자 손낙구 씨가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현재 진보신당 대표)의 보좌관 시절 정부기관으로부터 끈질기게 받아낸 귀중한 통계자료와 신문기사 자료를 서민 친화적인 글쓰기로 녹여낸 작품이다. 중3인 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다듬으면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출간작업을 할 때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에 3개월간 출퇴근하며 라면을 함께 끓여먹으며 책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최근 10년 안에는 이 정도의 대중적인 부동산 인문사회서가 다시 태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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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9-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즐거운 만남이었군요. 못간게 아쉽.

승주나무 2008-09-23 18:27   좋아요 0 | URL
오셨으면 재밌었을 거에요^^
 



한 여성이 지갑을 꺼내려다 지하철 직원의 제지를 받습니다.
지갑을 꺼내 보았자 전원은 다 꺼져 있습니다.


역시 무심코 지갑을 들이대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지하철 통과기를 그냥 지나쳐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지하철 위로 가면 분위기는 더욱 밝습니다.


 

 


차도에 차가 다니지 않고 어린이들이 자리깔고 그림그리니 참 정겹게 보입니다.
차가 쌩쌩 달려서 무섭고 여러 가지 신호등과 도로표지판으로 통제된 공간으로만 보였던 차도가 캔버스로 변신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동심은 오늘 신나는 하루였을 겁니다.
언론에서는 차 없는 날을 홍보하기 위해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냈고,
차 없는 날을 지내고 나서는 그를 알리기 위해 또 다시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올해는 강제성이 좀 덜해서 그랬는지 교통량이 예년에 비해 반밖에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문득 <맹자>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맡아 보았는데, 자기가 타는 수레로 진수와 유수에서 사람들을 건네 주었다. 이를 두고 맹자가 말했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 매년 11월이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의 작은 다리가 이루어지고, 12월이면 수레가 지나는 큰 다리가 이루어지면, 백성들은 물을 건너는 것을 걱정하지 아니한다. 군자가 정사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나가서 사람을 피하게 해도 좋다. 어찌 사람마다 건네 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모든 각 사람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부족할 것이다." - 맹자 이루하 편
子産聽鄭國之政, 以其乘輿濟人於溱洧. 孟子曰:  「惠而不知爲政. 君子平其政, 行辟人可也. 焉得人人而濟之? 故爲政者, 每人而悅之, 日亦不足矣. 」

하루 차비의 반값을 아끼기는 했지만, 차비야 그냥 내면 그만입니다. 생색만 들어준 기분이 들어 씁쓸했습니다. 교통량이 11%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교통량은 내일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검은 매연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남은 것은 서울시장의 '업적' 정도겠지요.

뉴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디어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이 '삽질'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린벨트 100㎢에 이어 군사시설보호구역 213㎢가 해제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수도권의 환경문제를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장치인 '수도권 공장 총량제'마저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롯데그룹과 공군 간에 논쟁이 계속되던 제2 롯데월드가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제2 롯데월드는 롯데 측이 지난 14년 동안 요구해온 과업이며 112층짜리(555m) 마천루가 특징입니다. 서울의 군사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끝까지 초고층 빌딩 신축을 반대해온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이 일로 인해 옷을 벗게 됐습니다.

또 이런 농담이 생각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하는 형벌인데, 죄인들이 끓는 물에는 안 들어가고 담배를 피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는 지옥이란 곳이 이렇게 널널한 곳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에 지옥 가마솥을 지키는 자가 한마디 합니다.
"10분간 휴식 끝, 100년간 다시 잠수!"

2010년 이맘때쯤 다시 차도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겠죠. 그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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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23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1회성 전시행정
오늘 평소보다 더 붐비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 자가용 운전자들은
아, 역시 못할짓이야, 나는 꼭 차 끌고 다녀야지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승주나무 2008-09-23 13:13   좋아요 0 | URL
저도 운전만 원활히 했으면 차 없는 거리를 시원하게 밟아 보았을 텐데 -_-;
 

시카고보이스의 아픈 기억 - 칠레 실험

시카고 보이스(Cicago boys)란 시카고대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 말로 시카고 학파라고도 불리며, 신자유주의를 입안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학파라고도 한다. 이들은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경제개입까지도 부정하는 자유방임정책을 옹호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복지제도의 축소, 규제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국제화 등을 주장하는데 '레이거노믹스'는 시카고학파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이다. 'MB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의 유사품이며 한나라당, 청와대 등 여권의 정책은 모두 시카고보이스에서부터 출발한다.


▲ 1970년대 칠레의 극단적인 두 가지 실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옌데가 민중들에게 제시한 가장 첫 번째 공약은 영유아들에게 분유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이 공약은 당시의 살인적인 유아사망률을 생각할 때 사람들의 고통을 쓰다듬었다. 결과는 절대적지지에 의한 대통령 당선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 칠레의 기득권인 토호 세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암중모색 끝에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 대통령 아옌데를 사살하고 그 자리에 독재자 피노체트를 앉히고 만다. 칠레 비극의 시작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에는 아옌데 칠레의 성공과 좌절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시카고보이스에게 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칠레의 실험이다. 이른바 '아옌데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미국의 좋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토호들의 2세를 중심이 된 그룹 '시카고 보이'들이 군인과 결탁해 당시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1970년 칠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였다. 아옌데가 중심이 된 칠레의 인민전선은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을 만큼 복지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며 그것은 절대 다수 민중의 뜻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의 탄압에다가 칠레의 토호 세력과 피노체트 군부는 CIA와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다. 시카고 학파는 이러한 칠레에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핵심정책을 완전하게 실현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세례를 받은 칠레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면적인 국유화였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한 복합투기자본도 이때 처음으로 실험됐는데 거품처럼 팽창하다가 1980년대 금융위기가 터지며 GDP가 15%쯤 축소되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졌다. 가장 극단적으로 자유 시장경제를 했던 나라에서 결과적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모조리 국유화되고 말았다. 아옌데가 집권했던 1971년 칠레의 1인당 소득은 (1990년 달러화 기준으로) 5,293달러였지만, 1975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가 실각한 뒤 칠레의 1인당 소득은 4,323달러까지 내려갔다. 금융버블 때문에 1981년 1인당 소득은 5,956달러까지 올라가지만 1983년 금융 붕괴 이후 1인당 소득은 다시 4,898달러까지 떨어지게 된다. 시카고 보이스의 칠레 실험은 완전 실패한 셈이다.


▲ 칠레 사례를 통해 우리는 극단적 민영화와 극단적 국유화, 복지 중심의 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큰 정부의 계획경제가 옳은지 작은 정부의 시장자율주의가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가하지 않고 고삐를 완전히 풀어 버렸을 때 얼마나 참담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는 <한국경제 새판짜기>(미들하우스)가 잘 말해주고 있다.


 

 

 

시카고 보이스, 미국 본토를 날려버리다


2008년 미국은 군사주의, 패권주의, 금융중심주의가 가지고 있던 위협이 한꺼번에 터지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군사주의를 통한 패권의 과잉 팽창이 경제에 지우는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갖은 노력으로 복구했던 균형 예산을 부시 행정부가 다시 적자 예산으로 돌려세웠는데,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방비의 추가 지출이 밑빠진 독처럼 불어났고 재정 적자가 확대됐다. 2002년 1,580억 달러, 2003년 3,740억 달러, 2004년 4,130억 달러, 2007년 4,270억 달러다.
게다가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하면서 가계대출의 부실을 불러왔고, 대형 투자은행들이 휘청거리며 미국은 한치 앞을 못 보는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이라 불리는 3차 산업이 고착화되었는데, 3차 산업은 부동산, 보험, 은행 등 금융산업 중심이다. 금융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고위험 고수익)'이다. 말 그대로 '대박' 아니면 '쪽박'을 차는 경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회사 ‘켈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의 설립자이자 CEO인 비트너는 1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켈너 모기지 대출액의 95%는 신용상태가 극도로 낮은 등급에 제공됐던 사실을 회상하며  “불합리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서브프라임은 원래 그런 대출을 위해 있는 것이고 지난 5년간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대출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가와 투자은행은 볼리비아 마약왕들과 같다”고 비판했다. 마약이나 금융 상품이나 외견상으로는 같은 절차를 거치는 것이며, 결국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윤리의식이라는 얘기다. 
비트너는 지난 6월 펴낸 ‘탐욕·사기·무지에 관한 내부자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마약상이나 다름 없는 모기지 판매업계 관행을 정면 비판했다. (경향신문 9월 20일자 『월가 투자은행은 마약왕 난 그 밑에서 마약거래』)

미국은 이제까지 한번도 본토에 대한 테러나 전쟁을 용납했던 적이 없다. 양대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주도하면서도 전장은 제3세계나 다른 나라에서 벌였다. 위험부담이 있는 경제정책 역시 본토의 실험은 최대한 회피했다. 신자유주의를 무섭게 외치면서도 정녕 본토에서는 '보호무역'을 지겹게 고수했다. 칠레경제를 초토화시킨 실험은 미국이 칠레를 전장으로 만든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미국도 리먼 브라더스와 AIG, 모건 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이나 몰락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규제 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기한 신자유주의와 금융중심 자본주의가 경종을 울리게 된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처럼 “지금은 단순히 시장 규제의 재조정이 아니라 규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경향신문, 9월18일자 『시장근본주의 붕괴…규제 아닌 재설계 필요』) 경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가 왔다. 일방적인 시장중심주의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미국 금융시장의 대대적인 국유화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뜨인돌)은 패권주의 미국이라는 명제를 뒤집어 역으로 미국의 실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 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숭미주의'를 초월해 미국을 아예 '신적인 존재'로 보고 있는 듯하다. 리먼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월가의 몰락을 명백히 지켜보면서도 미국에 대한 환상이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은 이런 상황일수록 미국에 대한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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