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보이스의 아픈 기억 - 칠레 실험

시카고 보이스(Cicago boys)란 시카고대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 말로 시카고 학파라고도 불리며, 신자유주의를 입안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학파라고도 한다. 이들은 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경제개입까지도 부정하는 자유방임정책을 옹호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복지제도의 축소, 규제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국제화 등을 주장하는데 '레이거노믹스'는 시카고학파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이다. 'MB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의 유사품이며 한나라당, 청와대 등 여권의 정책은 모두 시카고보이스에서부터 출발한다.


▲ 1970년대 칠레의 극단적인 두 가지 실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옌데가 민중들에게 제시한 가장 첫 번째 공약은 영유아들에게 분유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이 공약은 당시의 살인적인 유아사망률을 생각할 때 사람들의 고통을 쓰다듬었다. 결과는 절대적지지에 의한 대통령 당선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 칠레의 기득권인 토호 세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암중모색 끝에 쿠데타를 일으켜 민중 대통령 아옌데를 사살하고 그 자리에 독재자 피노체트를 앉히고 만다. 칠레 비극의 시작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에는 아옌데 칠레의 성공과 좌절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시카고보이스에게 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칠레의 실험이다. 이른바 '아옌데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미국의 좋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토호들의 2세를 중심이 된 그룹 '시카고 보이'들이 군인과 결탁해 당시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된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1970년 칠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였다. 아옌데가 중심이 된 칠레의 인민전선은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을 만큼 복지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며 그것은 절대 다수 민중의 뜻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의 탄압에다가 칠레의 토호 세력과 피노체트 군부는 CIA와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다. 시카고 학파는 이러한 칠레에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핵심정책을 완전하게 실현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세례를 받은 칠레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면적인 국유화였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한 복합투기자본도 이때 처음으로 실험됐는데 거품처럼 팽창하다가 1980년대 금융위기가 터지며 GDP가 15%쯤 축소되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졌다. 가장 극단적으로 자유 시장경제를 했던 나라에서 결과적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모조리 국유화되고 말았다. 아옌데가 집권했던 1971년 칠레의 1인당 소득은 (1990년 달러화 기준으로) 5,293달러였지만, 1975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가 실각한 뒤 칠레의 1인당 소득은 4,323달러까지 내려갔다. 금융버블 때문에 1981년 1인당 소득은 5,956달러까지 올라가지만 1983년 금융 붕괴 이후 1인당 소득은 다시 4,898달러까지 떨어지게 된다. 시카고 보이스의 칠레 실험은 완전 실패한 셈이다.


▲ 칠레 사례를 통해 우리는 극단적 민영화와 극단적 국유화, 복지 중심의 사회민주주의의 모델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큰 정부의 계획경제가 옳은지 작은 정부의 시장자율주의가 옳은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시장에 적절한 규제를 가하지 않고 고삐를 완전히 풀어 버렸을 때 얼마나 참담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는 <한국경제 새판짜기>(미들하우스)가 잘 말해주고 있다.


 

 

 

시카고 보이스, 미국 본토를 날려버리다


2008년 미국은 군사주의, 패권주의, 금융중심주의가 가지고 있던 위협이 한꺼번에 터지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군사주의를 통한 패권의 과잉 팽창이 경제에 지우는 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갖은 노력으로 복구했던 균형 예산을 부시 행정부가 다시 적자 예산으로 돌려세웠는데,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방비의 추가 지출이 밑빠진 독처럼 불어났고 재정 적자가 확대됐다. 2002년 1,580억 달러, 2003년 3,740억 달러, 2004년 4,130억 달러, 2007년 4,270억 달러다.
게다가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하면서 가계대출의 부실을 불러왔고, 대형 투자은행들이 휘청거리며 미국은 한치 앞을 못 보는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이라 불리는 3차 산업이 고착화되었는데, 3차 산업은 부동산, 보험, 은행 등 금융산업 중심이다. 금융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 고위험 고수익)'이다. 말 그대로 '대박' 아니면 '쪽박'을 차는 경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회사 ‘켈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의 설립자이자 CEO인 비트너는 1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켈너 모기지 대출액의 95%는 신용상태가 극도로 낮은 등급에 제공됐던 사실을 회상하며  “불합리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서브프라임은 원래 그런 대출을 위해 있는 것이고 지난 5년간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대출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가와 투자은행은 볼리비아 마약왕들과 같다”고 비판했다. 마약이나 금융 상품이나 외견상으로는 같은 절차를 거치는 것이며, 결국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윤리의식이라는 얘기다. 
비트너는 지난 6월 펴낸 ‘탐욕·사기·무지에 관한 내부자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마약상이나 다름 없는 모기지 판매업계 관행을 정면 비판했다. (경향신문 9월 20일자 『월가 투자은행은 마약왕 난 그 밑에서 마약거래』)

미국은 이제까지 한번도 본토에 대한 테러나 전쟁을 용납했던 적이 없다. 양대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주도하면서도 전장은 제3세계나 다른 나라에서 벌였다. 위험부담이 있는 경제정책 역시 본토의 실험은 최대한 회피했다. 신자유주의를 무섭게 외치면서도 정녕 본토에서는 '보호무역'을 지겹게 고수했다. 칠레경제를 초토화시킨 실험은 미국이 칠레를 전장으로 만든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미국도 리먼 브라더스와 AIG, 모건 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이나 몰락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아무런 규제 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기한 신자유주의와 금융중심 자본주의가 경종을 울리게 된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처럼 “지금은 단순히 시장 규제의 재조정이 아니라 규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경향신문, 9월18일자 『시장근본주의 붕괴…규제 아닌 재설계 필요』) 경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가 왔다. 일방적인 시장중심주의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미국 금융시장의 대대적인 국유화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뜨인돌)은 패권주의 미국이라는 명제를 뒤집어 역으로 미국의 실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 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숭미주의'를 초월해 미국을 아예 '신적인 존재'로 보고 있는 듯하다. 리먼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월가의 몰락을 명백히 지켜보면서도 미국에 대한 환상이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은 이런 상황일수록 미국에 대한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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