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라면 별로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어린이 시절 나의 소원은 "김일성을 죽이는 것"이었다.
매일 밤마다 김일성을 죽이는 꿈을 꾼다.
북파공작원이 되어 북한군의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암살을 하는 것을 고민했다.
어린 시절 상상력 속에는 '암살'이라는 키워드가 '대응댐'처럼 버티고 서 있다.

아래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어릴 적 상상 속에서 김일성을 죽이러 다니던 기억이 잔인하게 스친다.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닐 울비치는 아래의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1976년 10월 6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타마사트 대학에 결집한 좌파 학생과 주변에 모인
우파 세력이 충돌했다. 총격전이 시작되고 국경 경비대가 동원되자 우세를 보이게 된
우파측은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였는데, 학생을 때려 죽여 나무에 매달거나 길 위에서
태워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 십 명이 사망하였고 수 천 명이 구속되었으며 결국 급진적인 학생운동 세력은
일망타진되고 말았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국정의
실권을 쥐자, 1973년 학생궐기 이후 계속되었던 태국의 민주화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 어린이를 포함한 청중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은 좌파 여대생은 나무에 목이 졸려 반쯤 떠 있고, 그 사체를 의자로 무섭게 내리찍는 한 남자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태국의 극우적 현대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촘스키의 <여론조작>이라는 책에서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언론학살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MBC <W>에서는 2년 동안 언론인 수십 명이 테러를 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전무한 스리랑카의 실정을 보았다. 노동부 장관은 방송사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뉴스 디렉터를 끌어내 짓밟고 때리고 무릎꿇렸지만, 당당히 다른 언론사에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이 들어선 이후로 '극우'의 손아귀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조금이나마 민주화를 진척시켜 위와 같은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사람의 인식이란 유혹당하기 쉬워서, 유혹의 극단에 이르면 잔인한 살해도 해맑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이 온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사회운동이란 '목숨을 건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덜 무서운 것들을 하고 있는 하루, 또 하루다.


※ 사진과 설명글은 <이연의 이미지, 텍스트 읽기>(http://image-reader.sisain.co.kr/1)에서 얻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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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말을 해야 하죠? 인간이란게 도대체 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끔찍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저런 인간의 야만이 과연 교육으로 정화되어질 수 있는걸까요? 이해 불가능하지만 절대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지금. 그래서 더 끔찍한지도 모르겠네요.

승주나무 2008-09-30 15:37   좋아요 0 | URL
어쨌든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의 인생이 아닌 것이지요